훈남 셰프들에 이어 ‘요리요정’ 정재형까지. TV 속 요리하는 남자들.

TV를 켜니 정재형이 신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환한 방에서 특유의 ‘홍홍홍’ 웃음소리를 터뜨리고, 갑작스레 피아노를 치면서 춤추듯 요리하는 남자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저렇게 신나게 요리를 하고 싶다!”
언젠가부터, TV 속의 남자들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투박하게는 <아빠! 어디 가? >의 아빠들과 <나 혼자 산다>의 싱글남들부터, 채널 올리브에 포진한 수많은 셰프까지.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물론, 레스토랑의 정돈된 식당이나 이자카야의 정갈한 조리대는 본디 남자들의 영역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토록 요리 프로그램의 대다수를 남자들이 독차지한 적은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남자가 요리를 시작한 걸까?
요리 채널이 남자 출연자를 출연시키는 이유는, <무한도전>의 MC들이 남자 게스트보다 여자 게스트가 나오는 것을 훨씬 반기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요리채널의 주요 시청자층인 여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 이런 현상은 몇 년 전, 장동건이 ‘정원아~’를 외치던 고추장 광고를 시작으로 남자 톱스타들이 외식 브랜드 광고에 대거 등장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꽃셰프의 야식 배틀’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셰프의 야식 2>는 현재 유명 레스토랑 및 다이닝 바에서 활약하는 남자 셰프들을 등장시킨다. MC는 ‘톱게이’ 홍석천. 훈남 셰프들에게 은근슬쩍 추파를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남자다. 베이킹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노 오븐 디저트>의 타이틀은 무려 ‘더욱 달콤하게 돌아온 오빠들의 달달한 레시피’다. 예전부터 <올리브쇼>에서 활약해온 만화가 김풍과 쇼콜라티에 루이 강이 함께 출연한다. 오븐 없이 밥솥, 토스터를 이용해 디저트를 만드는 <노 오븐 디저트<는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요리를 하지는 않지만 요리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한 프로그램, <맛있는 19>도 있다. MC는 딕펑스의 보컬인 김태현과 키보디스트 김현우가 맡았는데, ‘딕펑스에서 가장 잘생긴 멤버 두 명을 뽑았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맛있는 19>는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테이스티 로드>의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박수진과 임성은이 ‘핫 플레이스’를 즐길 때, <맛있는 19<의 두 남자는 짜장라면에 마요네즈를 뿌려가며 최고의 궁합을 찾고, 먹방을 찍는다.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시간도 절묘하다. 일요일 낮 1시. 느지막이 일어나 ‘나도 짜파게티 요리사’를 외치며 집에서 해 먹을 간단한 음식을 찾고 있을 시간이다.
지난 3월 10일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 <올리브쇼>에서도 훈남들의 활약은 계속된다. 남성렬 셰프, 황요환 셰프 등 훈남 셰프들이 요리 대결을 펼치고, 이미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레이먼킴 셰프 역시 출연해 코멘트를 던진다. 광희와 박준우, 두 남자가 마트에서 판매하는 요리를 비교하고, 신제품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인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도 <올리브쇼>의 정규 코너로 안착했다. ‘요리하는 남자’의 활약 범위는 이제 레스토랑, 자취방, 마트까지 무궁무진하다.
앞서 말한 <정재형의 프랑스 가정식>은 이처럼 한결 자유로워진 요리 채널이, 적절한 호스트를 만났을 때 선보일 수 있는 궁극의 포맷에 가깝다. 물론 9년 가까이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한 정재형의 요리 내공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요리하는 정재형은 즐겁다. ‘남자’이기보다는 ‘요리요정’이라고 불리는 정재형은 요리 중에 추억담을 펼치기도 하고, 요리가 잘 안 되면 짜증을 부리며, ‘놀면 뭐 하냐’며 잠시 쉬고 있는 스태프를 요리하는 데 동원하기도 한다. 조리대와 건반 앞을 자유롭게 오가며 요리가 삶의 일부임을 온몸으로 외친다. 어쩌면 요리 프로그램에 훈남이 등장하게 된 것도 그런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리를 좀 더 즐겁고 쉬운 일로 느끼고, 그리고 그 과정에 함께 동참하고 싶게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