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심신을 건강하게 만들었지만 ‘뷰티’라는 단어에 대해서 고민하게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자연과 자연식에서 얻은 힐링, 느린 속도로 그들만의 문명을 만들며 삶을 영위하는 아프리카 여인들만이 ‘뷰티’라는 단어에 가장 합당해 보였다.

낡은 도요타 차가 보라색 자카랜다 나무 아래 서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폴로콰네에서 보츠와나 국경을 넘으려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한 NGO를 통해 지원한 남아프리카의 환경자원봉사, 그중에서 야생동물보호 프로젝트 참가를 수락받고 아프리카 땅에 막 도착한 나는 장시간 비행으로 이미 지쳐 있었다. 키가 족히 1미터 9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아프리칸 운전수는 동양에서 온 뷰티 에디터 따위는 관심 없다는 시크한 표정으로 운전에 집중했다. 세계에서 야생동물이 가장 많은 나라라는 보츠와나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비포장 도로를 몇 시간 달리는 도중 멀미의 단계는 지나갔지만 차가 탈이 났다. 흙길 한가운데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자원봉사자의 캠프인 보츠와나 모툴리 캠프에 도착했다. 정글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할 정도였다. 건조하고 척박하며 나무라고는 낮은 가시덤불뿐인 황량한 정글. 동물들은, 원주민들은 무얼 먹고 사는 거지? 그나마 군데군데 거대한 바오밥 나무가 아프리카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듯 위용을 드러내며 새들의 공동주택이 되어주고 있었을 뿐이다. 텐트에 짐을 풀고 침낭을 깔고 난 후 잠시 밖을 산책하다가 청명한 새소리를 들었다. 캠프에서 야생동물을 위해 파놓은 우물에 물을 마시러 온 작은 새끼 임팔라는 눈이 마주치자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다 이내 한달음에 도망가버렸다. 순간, ‘이제 동식물을 위한 노동과 조사를 하며 한 달간 아프리카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대자연 앞에서 설렘으로 바뀌어버렸다.
종이 울렸다.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다. 유독 여자들이 많이 보였다. 아프리카인 제인이 요리를 하고 또 한 명의 아프리카인 핑키가 준비를 도왔다. 제인은 무척 날씬했다. 야윈 느낌이라는 게 맞겠다. 그런데 매번 밥을 자신의 그릇에 가득 담는다. 평범한 한국 여자들의 식사량의 족히 2~3배는 되어 보이는 양이었다. 다이어트는 따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뭘 먹길래? 자신이 한 요리, 즉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대답은 매일매일의 식사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걸쭉한 밀죽과 채소가 듬뿍 든 고기스튜가 첫 식사였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소 카레, 구운 감자, 채소 샐러드도 있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요리는 맛과 재료가 거의 다르지 않았다. 호박, 양파, 당근, 사과 등을 많이 사용한 요리는 ‘맛있는 헬시 푸드’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가장 많이 먹은 것은 우리네 쌀밥처럼 흔한 건포도를 넣은 노란 쌀밥이었다. 닭고기 키쉬나 모닥불에 구운 소시지, 토마토를 짓이겨 말린 허브를 듬뿍 넣어 만든 파스타 소스도. 단 파스타 면은 기름에 볶지 않고 물에만 삶아서 내놓는다. 호박튀김, 달걀과 완두콩을 곁들인 오이샐러드도 하루 건너 한 번씩 경험할 정도로 흔한 음식이다. 전기도, 그래서 정수기도 없는 그곳에서는 당연한 듯 모두가 지하수를 그냥 마신다. 겁 많은 나는 이틀 동안은 지하수를 펄펄 끓여 식혀서 마셨지만 더위에 지치고 노동이 힘든 어느 날 이 금기를 깼다. 깨달았다. 이건 볼빅이나 에비앙 못지않은 풍부한 미네랄을 자랑하는 깨끗한 물이라는 것을! 아프리카의 건강 음식과 미네랄 워터가 결합된 결과는 일주일 후부터 나타났다. 트러블 가득한 피부가 서서히 튼튼해지고 있었다.
다운타운과 캠프를 오가며 만난 아프리카 여자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뚱뚱한 코사족 여자들은 웃음이 많았고 줄루족 여자들은 예민했지만 날씬했다. 검은 피부에 풍성한 가슴을 가진 한 여자는 눈이 마주치면 늘 여유로운 미소를 건넸다. 새벽에 일어나 머리에 쓰는 스카프인 콥둑으로 머리를 감쌌는데 따라 하고 싶을 만큼 예뻐 보였다. 행주치마와도 어울렸고, 롱스커트와도 딱이었다. 낮에는 자주 맨발로 걸어 다니곤 했는데 언뜻 보이는 분홍빛을 띤 그녀의 갈색 발바닥은 건강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헤어는 마음을 열게 한다. 땋은 머리는 ‘레게 헤어’로만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여유롭게 천천히 걸을 때마다 가닥가닥 흔들리는 그 자유로운 움직임은 나를 힐링하게 했다. 슬로 라이프를 위한 헤어 스타일이다. 헤어 아티스트 사샤 마스콜로가 이번 시즌 자일즈 쇼에서 보여준 레게 머리가 생각났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영화배우 멜 깁슨의 머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나? 머리를 네 가닥으로 만들어 매듭을 지으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들은 혼자 너끈히 해낸다. 헤어 아티스트 피터 그레이는 말리 사람들이 하는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을 위해 진흙과 찰흙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이 흙을 서로 섞어 머리에 바르며 땋았는데 결국 모두 다른 헤어 스타일이 나왔다고 예찬했었다. 머리에 얹은 진흙이 시간이 지나면서 갈라져 퇴락한 듯 보이는 것이 아름다웠다고 말이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그녀들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피부색만큼 짙은 눈썹은 아이브로 펜슬이 필요 없을 정도였고, 숱이 많아서 꽉 잡아 묶은 머리는 오히려 메이크업을 강조해 화려하게 만들었으니까.
‘뷰티’란 뭘까? 이곳에서는 ‘천천히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가는 것’이라고 속삭인다. ‘유기농’이라는 단어의 바른 주석일지도 모른다. 가장 처음에 물과 공기, 모래, 태양이라는 요소들이 존재한 지구. 모든 ‘뷰티적’ 요소는 이곳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볼이 빨갛게 상기되면 블러셔가 필요 없고, 흙바람을 맞으면 얼굴이 반짝거려 윤곽 메이크업이 필요 없다. 이건 잭슨 폴록이 최고의 브러시를 들고 와도 묘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덤으로 태양은 피부를 건강하고 예쁘게 그을린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 ‘섹시함’이 되는 순간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철저히 문명을 차단한 삶은 온전한 ‘뷰티 라이프’였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하는 기도와 명상은 가장 큰 힐링이다. 몸 안의 세포들이 꿈틀거린다. 잠깐 흙길을 걷는 산책 후 부엌에서 아침을 먹는다. 뜨거운 물을 양철 컵에 붓고 파이브 로즈 티의 찻잎을 우려낸다. 이건 그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은 사과 한 개와 나티스(감귤 같지만 씨가 있다) 두 개와 말린 곡물을 먹는다. 배가 고픈 어느 날 아침은 바나나 하나를 더하면 그만이다. 아프리카에서의 노동은 도심 속 피트니스 따위와는 비견될 수 없다. 노동에서 얻는 힐링은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도시의 여자에게 필요했다. 오전 내내 노동을 하고, 정글을 걷고 점심을 먹고 바람을 느끼며 오수를 즐긴다. 잠든 사이 건조한 바람에 실려온 엷은 연둣빛의 모파니 나뭇잎이 얼굴에 떨어진다. 함께 지낸 친구는 나에게 ‘너는 그 순간 심호흡을 하며 미소를 지어’라고 했다. 그건 흡사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면서 키가 크는 행복한 느낌이다. 그들은 오후 노동 후 돌아오는 길에 석양을 보러 잠깐 바위산에 오르자고 하곤 했다. 계획적인 삶의 반대말이 있다면 아마 이들의 것이 아닐까. 저 멀리의 하이에나가 바위산 노을을 배경으로 인사를 건넨다. 아프리칸 뷰티란 결국 자연을 갖는 것이 아닌 자연에 흡수되고 천천히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힘은 놀라워서, 알게 모르게 당신을 누르고 있는 청교도적인 삶을 던져버리라는 말조차도 필요 없을 만큼 자유로운 영혼으로 만든다. 부디 경험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