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나는 누굴까? 지금 행복한가? 물론,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마인드프리즘의 홀가분워크숍에서 나와 닮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게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했다.

“내가 나를 잘 아는 것은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시작이에요.” 언젠가부터 이 말이 내 주변을 빙빙 돌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지난여름, 더위가 온 도시를 점령하고 있을 때 내 신경은 온통 창간기념호 특집 인터뷰에 실려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아낌없이 쓰고 있는 여자들을 만났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심리연구소 마인드프리즘의 정혜신 박사였다.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한 달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인터뷰를 하지만, 정혜신 박사와의 인터뷰는 조금 더 특별했다. 인터뷰가 마지막에 다다를 때쯤, 나는 인터뷰어인 동시에 한 사람의 고백자로 절실하게 묻고 있었다. 분명히 치 열하게 ‘나는 누구인가?’를 묻던 때가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던 때. 하지만 언젠가부터 당장 눈앞의 일이 더 급해졌고, 나 자신과의 대화는 미루게 되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면, 그 질문은 어떤 게 되어야 할까? 정혜신 박사는 예의 그 따뜻한 목소리로 답했다. “살면서 정작 자기 마음 한번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죠.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계속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해요. 그 질문은 ‘내 마음은 어떤가’여야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없다면 나를 질문 속으로 밀어 넣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았다. 토요일 오후, 나는 마인드프리즘이 운영하는 홀가분워크숍에 앉아 있었다.

잊고 있던 나를 찾아서
한 달에 한 번씩 낯선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심리워크숍인 홀가분워크숍은 ‘나’와 ‘우리’ 두 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참석한 ‘홀가분워크숍-나’를 설명하는 문구는 이렇다. ‘나’를 중심으로 마음을 탐색하고, 일상에서의 대인 관계와 연결되는 감정의 고리를 찾아내는 것. 나 역시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자리했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이끄는 디렉터의 진행에 따라 가볍게 인사를 했다. 이름이나 나이, 사는 곳과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건 시작할 때부터 밝혀졌다. 바로 ‘나를 닮은 음식’을 소개해야 했는데, 10분 동안의 자기 소개가 끝난 후에 우리는 각각 국수, 달걀 프라이, 피자, 미역국을 닮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눈을 감고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면서 과거 속의 나를 만나야 했다. 눈을 감고 디렉터의 목소리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은 명상에 가까웠는데, 사실 모든 과정을 통틀어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한 계단 내려갈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과거로 내려갑니다. 한 계단, 한 계단….” 모두 일곱 계단쯤 내려가면,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어린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열심히 과거의 나를 찾아다닌 후 눈을 떴다. 이제 뭘 해야 하나 하고 잠시 당황한 우리에게 주어진 건 아주 멋진 색색의 고무 찰흙. “여러분이 만난 아이를 찰흙 인형으로 만들어보세요.” 적어도 스무 살에서 많게는 쉰 살이 넘은 사람들 모두가 제각기 찰흙을 떼어 조물조물 만지고 붙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것은 작았고, 누군가의 것은 컸다. 어떤 사람은 주황색과 흰색을 섞어서 살색을 완벽하게 재현했지만 내가 만든 나는 심슨처럼 온몸이 노랬고 손에 책을 들고 있다. 20분 동안의 공작 시간은 모두를 집중하게 했지만 그 다음 이어진 디렉터의 질문은 어려웠다. “이 아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요?”
기억의 한계가 거기까지던 걸까. 사람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만들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뭐예요?”라는 말에는 머뭇거리던 사람들은, 자신의 인형을 앞에 두고선 술술 이야기를 풀었다. “한번 전쟁이 난 줄 알았던 적이 있었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어요. 혼자 가족들을 기다리는데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났어요.” “늘 완벽한 장남 역할을 기대하셨어요. 무겁고 힘들다고 하는 것 같아요.” 그의 인형은 슈퍼맨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질문은 나에게도 왔다. “왜 책을 들고 있나요?” 왜 나는 책을 들었을까?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뛰노는 놀이에는 소질이 없었다. 엄마는 바빴다. 어쩌면 책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을지도 모르겠다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낯선 사람들은 어쩌면 너무 가까워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홀가분워크숍의 원칙은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나머지는 모두 경청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는 맞장구나, 해결을 위한 성급한 조언 대신 눈과 귀, 약간의 끄덕거림만을 사용해서 열심히 들었다.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서 오는 힘이 더 크게 느껴졌다. 몇몇은 눈물을 흘렸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아내와 더 잘 소통하기 위해서, 엄마와 화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남편을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마지막 세션이 끝나고, 한 남성 참여자가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에게도, 친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오늘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말을 하고, 내 말을 들어준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 이제 알았습니다.”

숨은 관계의 법칙
두 번째로 참석한 ‘홀가분워크숍 – 우리’는 먼저 참여한 ‘나’편과는 또 달랐다. ‘나라는 개인에서 관계로 차원을 확장시킵니다. 심리검사를 통해서 자신의 관계패턴을 파악하고 관계에 대해 통찰합니다.’ 역시 내 테이블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설명해야 했는데,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 우리는 냉면, 순대, 김밥,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명상을 하는 대신 관계 유형 검사부터 시작했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4가지 패턴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내가 다른 사람의 일부로 존재하는 유형1, 나의 가치관, 감정, 욕구보다 다른 사람의 욕구를 더 우선시하는 유형2, 나의 가치관과 감정, 욕구를 타인보다 비중 있게 고려하는 유형3, 그리고 타인과 나의 거리를 뚜렷하게 유지하기를 원하는 유형4. 해당 유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각 유형을 닮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 속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어느새 모두가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기에, 드라마 속 주인공 중에 나를 닮은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그 방식’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뿐. 오늘의 과제는 바로 ‘그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서로 어떤 유형인지를 말하고, 소감이나 궁금한 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덧 마이크가 내게 넘어왔다. “저는 다른 사람의 욕구, 감정에 민감하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우선시하는 두 번째 유형인데요. 사람들은 저를 그 반대인 세 번째 유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거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요! 내 것도 못 찾고, 알아주지도 않고.” 유형2가 갖기 쉬운 스트레스가 바로 이것이라고 한다.
디렉터의 진행에 따라 우리는 ‘지금 가장 편한 사람’을 찾고, ‘지금 가장 불편한 사람’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편한 사람은 가족이거나 친구거나 직장에 있었다. 가장 불편한 사람 역시 가족이거나 친구거나 직장 동료 혹은 상사였다. 모두가 우리의 인생과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또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한 그림을 그리며 나와 타인들의 관계를 알아갔다. 가장 놀라운 건, 나조차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타인들의 질문과 눈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관계의 발견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모두 가족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 가족 중에도 내가 더 의지하거나, 나를 더 의지하거나, 내가 희생하거나 나를 희생하게 하는 ‘관계’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예정된 6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간이 더 지나도록 타인의 관계에 대해, 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모두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어느새 누구와 더 잘 지내고 싶어 하는지, 누가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정확히 몰랐다. 나이와 소속, 어느 회사의 누구나 어느 집의 누구라는 수식어가 가득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해방감은 낯선 것이었다. 디렉터가 말했다. “홀가분워크숍인데 홀가분해졌나요?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해요. 홀가분하지 않을 겁니다. 고민이 더 많아졌을 거고, 아마 마음이 더 불편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모두는 각자 관계의 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건강한 불편함이랍니다. 이제 그 불편함을, 관계를 알게 되었으니 우리는 계속 노력하고, 생각할 거예요. 바로 그것이 의미 있는 것입니다.” 워크숍은 바로 이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 가지 키워드를 알려주었다. 말하는 것. 듣는 것. 공감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잘하기만 하면 강력한 마법을 부렸다. 그 잘하기가 어려워서 문제지만.
마지막으로 주어진 건 손바닥만 한 노란 포스트잇. 여기에 오늘 느낀 점을 단 한 문장으로 적은 뒤 출구 쪽 칠판에 붙이면 오늘의 워크숍은 끝이었다.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바탕에 꾹 눌러쓴 글씨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도 외로웠구나.” 갑자기 코끝이 시렸다. 그 노란 쪽지를 남겨놓고, 우리는 모두 다시 각자의 관계 속으로 걸어나갔다. 어쩌면 조금 더 씩씩한 발걸음으로.

스스로에게 말 걸기
자신과의 대화를 도와주는 마인드프리즘의 두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내마음보고서>
마인드프리즘 심리연구소에서 개발한 <내마음보고서>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려주는 심리검사다. 개인의 심리 특성을 심층적이고 통합적으로 해석하여 정확하게 알려주는 심리 분석 서비스다. 마인드프리즘 웹사이트에서 신청하면 심리검사지가 배송된다. 이 검사지를 작성하면 검사 결과가 자신을 닮은 시 처방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져 온다. “보통 심리검사들이 임상적으로 정신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사용하거나 심리적 특징을 유형화하는 접근을 하는 반면, <내마음보고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죠. 개인인 ‘나’에 초점을 맞춘 심리적 색깔을 알려줍니다.” 마인드프리즘 정혜신 박사의 설명이다. 마인드프리즘에서는 마음도 몸의 건강검진처럼 1년에 한 번씩 들여다봐야 한다는 취지로, 1~2년에 한 번씩 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개인 정보는 철저히 보호되며, 만 17세 이상부터 참여할 수 있다. <내마음보고서>의 가격은 8만원.
<홀가분워크숍>
<내마음보고서> 후 자신에 대해 좀 더 다가가고 싶을 때 <홀가분워크숍>을 권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마음보고서>를 건너뛰고 워크숍에만 참여해도 상관없다. 낯선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고, 세부 그룹이 되어 5~6시간에 걸쳐서 집중적으로 자신에 대해, 관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다. “홀가분워크숍은 일종의 심리적 무균실과 같습니다. 유일한 방법인 수용, 공감, 지지로 무장한 채 어떤 비난이나 평가도 받지 않는 안전한 공간에서 내 상처를 소독하는 공간입니다.” 정혜신 박사의 설명이다. ‘나’는 근원적인 내 모습에 다가가는 과정에, ‘우리’는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까닭에 두 워크숍의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참여해본 결과 ‘나’편은 좀 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우리’편은 좀 더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더 큰 심리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홀가분워크숍>은 한 달에 한 번씩, 토요일 오후에 열린다. <홀가분워크숍> 참가료는 10만원. 하지만 마인드프리즘이 카카오톡 기반으로 운영하는 ‘힐링톡’에서 무료 참여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