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진을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남자 아나운서 중 하나였으니까. 그동안 그를 수식하던 말들을 떼내고 지금, 다시 오상진을 본다.

슈트 재킷은 권오수 클래식(Kwonohsoo Classic). 셔츠와 넥타이, 만년필은 모두 S.T 듀퐁(S.T Dupont). 시계는 해밀턴 와치(Hamilton Watch).

슈트 재킷은 권오수 클래식(Kwonohsoo Classic). 셔츠와 넥타이, 만년필은 모두 S.T 듀퐁(S.T Dupont). 시계는 해밀턴 와치(Hamilton Watch).

올해 2월 프리랜스를 선언한 후 바쁜 한 해를 보냈어요. 진행을 맡았던 <댄싱 9>과 <미스코리아 비밀의 화원>이 연달아 막을 내렸는데 조금 여유가 생겼나요?
요즘은 <한식대첩>에 집중하고 있어요.

<한식대첩>은 보는 내내 군침이 돌더군요. 설마 그 요리들을 심사위원들만 먹는 건 아니겠죠?
심사가 끝나고 남은 음식은 함께 먹어요. 정말 하나같이 맛있어요. 이 모든 게 한 시간 동안 완성된 요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참가자들이 지역색도 강하고 재미있는 분들이라 즐겁게 녹화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아나운서가 특파원이나 통신원 등 방송기자 일을 하는 줄 알았다면서요? 사실인가요?
맞아요. 선배들이 신입에게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묻잖아요. 그래서 특파원을 하고 싶다고 했다가 완전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죠.

방송에서도 당신의 ‘허당’ 기질이 때로 보여요. 함께 프로그램에 출연한 송은이 씨는 당신이 ‘혼자 구시렁대는 게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구시렁대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가 약해서 그래요. 과감하게 치고 나가지를 못하고 혼자 뒤에서 한마디 얹는 성격이거든요. 학창시절에도 뒤에서 지켜보는 쪽이었어요.

학생회장도 했을 것 같은 느낌인데, 의외인걸요?
학생회 임원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섰다기보다는 대세에 순응한 거죠. ‘나를 따르라’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그런 흐름을 거절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거든요. 진행을 할 때도 나를 보여주는 것보다 조율하는 역할이 제 성격에 맞아요.

대학생 때는 어땠어요? 여자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나요?
그때도 별로 존재감이 없었어요. 과에 여학생이 별로 없기도 했고요. 제가 98학번인데 그때 여학생들의 로망은 영문과, 불문과였지 경영학과는 아니었거든요. 신입생 수가 많아서 반을 나눴는데 70명 중에 여자는 다섯 명뿐이었으니까요. 그중에 세 명은 재수한 누나들이었고요.

동아리 활동 같은 것도 안 했고요?
제가 무려 1968년도에 만들어진 학회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한번 들어가면 뼈를 묻어야겠다는 각오가 있었나 봐요. 꾸준히 활동해서 지금도 그 때 친구들과 연락을 하는데 단체 카톡방의 스무 명이 다 남자예요. 하루에 카톡이 100개씩 뜬다니까요!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한데요?
사는 건 다 똑같아요. 친구들 9%가 결혼을 해서 애 키우는 이야기도 하고, 주말에 등산 가자는 이야기도 하죠. 증권가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찌라시’를 올리기도 하는데 늘 저에게 이니셜이 누구냐고 물어봐요. 아는 이야기도 가끔 있지만 절대 말 안 하죠. 그렇게 8 년을 입 다물고 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안 물어보더라고요.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인연이 깊은 것 같아요. MBC 신입 아나운서를 뽑는 <신입사원>은 당신의 진행이 돋보인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때는 머리에 왁스 한 번 안 바르고 정말 양복만 입고 갔어요. 넥타이도 단색만 착용했고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이잖아요. 참가자들에게 탈락이니, 재심사니, 제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더라고요.

<댄싱 9>은 첫 번째 시즌이다 보니 생방송 때 사고도 많았죠. 현장에서는 어땠나요?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있었죠. 점수를 발표하기 전에 댄서들이 무대에서 퇴장하기도 하고, 리허설을 너무 많이 해서 정작 방송 때 목이 안 좋았던 적도 있어요. 어쨌든 목관리를 못한 거나, 진행이 어설펐던 건 제 책임이죠. 하지만 <댄싱9>에서 중요한 건 매끄러운 진행이나, 이기고 지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럼 뭐가 가장 중요했나요?
참가자들 모두 춤을 출 무대와 그 무대를 봐주는 사람들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하루에 몇 시간씩,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공연장에 가면 객석은 늘 텅 비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관객석이 가득 차고, <댄싱9 갈라쇼> 공연까지 매진 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희열과 자부심이 대단하더라고요. 그 현장에 저도 함께 한다는 게 매우 의미 있었어요.

지금은 당신이 인터뷰에 답하고 있지만, 당신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있었겠죠?
하쿠 류라는 배우를 아세요? 재일교포인데 야쿠자 장르 영화 전문이에요. 야쿠자는 극우파가 많은데, 그런 영화에서 재일교포가 주연을 하기란 정말 쉽지 않거든요. 게다가 야쿠자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이잖아요. 기대를 잔뜩 하고 갔는데 모든 질문에 ‘별거 아니에요,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가장 어려운 인터뷰 상대를 만났군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실망이 컸죠.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인터뷰할 가치가 없는 것 같다고 제작진들한테 말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 사람이 속마음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하더라고요. 워낙 힘든 일이 많았고, 이제는 극복해냈기 때문에 ‘괜찮다’고 대답했던 거였어요. 그때 나도 모르게 방송용 인터뷰에 익숙해져 있구나, 머릿속에서 사람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있었구나, 반성을 많이 했죠. 사람은 그 사람의 생각을 긴 호흡으로 들어야 알 수 있는 건데 말이에요.

베스트와 팬츠는 권오수 클래식. 셔츠는 S.T 듀퐁. 넥타이는 스테파노비지 바이 란스미어(Stefanobigi by Lansmere).

베스트와 팬츠는 권오수 클래식. 셔츠는 S.T 듀퐁. 넥타이는 스테파노비지 바이 란스미어(Stefanobigi by Lansmere).

MBC의 간판 아나운서였다가 프리랜서를 선언했다는 점, 생방송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 등 김성주 아나운서와 자주 비교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입사하면 일종의 도제기간을 거치는데 그때 성주 선배가 제 담임 선생님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늘 배우는 느낌이에요. 보고 따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저에게는 좋죠. 집이 가까워서 예전에는 종종 놀러 가기도 했어요.

민국이랑 민율이의 어린 시절을 봤겠군요?
그럼요. 아이들을 방송에서 보니까 또 좋더라고요. 저도 언젠간 그렇게 아이를 가져야 할 텐데 말이죠.

MBC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정치적 입장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1년이 넘게 참여했죠. 당시 트위터 릴레이 인터뷰에도 썼지만 ‘나중에 내 자신과 미래의 아들딸에게 떳떳한 부모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7년 동안 몸담은 회사를 떠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MBC를 떠나면서, 이제 개인의 소신보다는 내가 택한 직업에 충실하기로 결심했어요. 물론 머릿속 생각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직업인으로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방송에 매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게 프리랜스 아나운서로 생활하는 지금의 소감은 어때요?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사람들이 없어졌으니까 조금 외롭죠. 지금의 매니저와 새 회사 사람들이 있지만 같은 일을 하는 동료는 아니니까요. 열흘에 한 번씩 사무실에서 숙직을 한 것도 나름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밤에 방송국으로 얼마나 이상한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지 아세요?

이상한 전화요?
네. 여자 아나운서를 바꿔달라고 하거나 메모를 남겨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술 마시고 맞춤법 내기를 해서 확인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전화기 들고 촬영할 때 표정이 살아있었군요!
그럼요. 촬영할 때처럼 “변태 새끼야!” “전화하지 말라고!”라고 실제로 말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아나운서 데뷔 후 줄곧 당신을 따라다닌 ‘훈남’, ’엄친아’의 꼬리표를 이제 좀 뗀 것 같아요. 저만해도 2~3년 전엔 당신이 고생 모르고 자란 전형적인 남자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요?

엉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방송에서 닭똥을 치우면서 투덜댄다거나, 파업 기간에 게임의 패치 프로그램을 구한다거나. 그러고 보니 어때요? 요즘도 여전히 게임을 하나요?
지금도 플레이 스테이션 3는 집에 있어요. 그때 문제가 됐던 게임 ‘위닝 2012’도 갖고 있고요.

곧 플레이 스테이션 4가 나온다던데….
그래요? 그런데 저는 게임도 귀여운 캐릭터가 나오는 것 위주로 하는 편이라 요즘 인기인 총 쏘거나 좀비를 죽이는 게임 같은 건 별로더라고요.

방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8년 차에 이런 말 하는 게 좀 우습긴 하지만 제가 지향하는 방송은 결국 ‘저’예요. 조금 어리숙해도 나답게 하고 싶어요. 저는 실제로도 원칙을 지키는 걸 좋아하는 면도 있고,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런 모습을 좀 더 보여줄걸, 이런 프로그램을 할걸 하는 후회도 없고요?
제 성격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게 후회를 잘 안 한다는 거예요. 방송을 할 때도 시청자들이 못했다고 하면 ‘아 진짜 못했나 보다, 더 잘해야겠다’ 하고 납득도 빠른 편이고요. 답은 현장에 있거든요. 다음에 다시 잘하면 돼요. 그리고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려고 하죠.

당신에게 ‘안 되는 건’ 어떤 거였나요?
춤이요! 서바이벌 프로그램 MC로서 정말 자부심을 갖는 부분이 있다면 직접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참여해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도전하는 사람들 마음을 알아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정말 너무 떨리거든요. 무엇을 하든 닥치면 열심히 하는 편인데 춤은 그게 안 됐어요.

이미지 변신을 할 계획은 없나요? 당신이 ‘섹드립’을 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억지로 이미지를 바꾸려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때가 올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또 이만큼까지 온 것만으로 고맙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