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닮고 싶은 남자,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남자라면 한 번은 거쳐갔을 자리가 바로 남자 향수 모델이다. 그 자리를 거쳐간 사람들과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1 샤넬의 블루 드 샤넬 오 드 뚜왈렛. 시트러스와 페퍼민트향으로 남성미를 표현한 블루 드 샤넬의 모델은 조각 같은 외모의 프랑스 배우 가스파르 울리엘이다. 100ml 12만4천원.2 페라리의 스쿠데리아 페라리 클럽 오 드 뚜왈렛. 현재의 F1을 대표하는 카레이서 페르난도 알론소가 페라리의 모델이다. 125ml 9만9천원.3 디올의 디올 옴므. 댄디한 멋의 섹시함을 뽐내는 로버트 패틴슨이 우디 계열의 스파이시한 향을 내는 디올 옴므의 모델이다. 100ml 12만4천원. 4 버버리의 브릿 리듬 포 힘 오 드 뚜왈렛. 모델 겸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는 조지 바넷이 상큼한 버베나 향이 나는 브릿 리듬의 모델이다. 90ml 11만7천원.5 몽블랑의 레전드 인텐스 오 드 뚜왈렛. 묵직한 머스크 향의 유행을 타지 않는 영원함을 표현하기 위해 모델 사이먼 클락에게 블랙 터틀넥을 입히고 촬영했다. 100ml 12만5천원.6 베르사체의 에로스 오 드 뚜왈렛. 그리스의 신과 같은 열정적인 향수에 어울리는 모델로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선택한 패션 모델 브라이언 시몬스키. 100ml 11만8천원.7 불가리의 블루 옴므. 클라이브 오웬에 이어 차가운 도시 남자 이미지의 에릭 바나가 모델이 된불가리의 베스트셀러. 50ml 8만7천원. 8 입생로랑의 롬므 입생로랑 오 드 뚜왈렛. 톡 쏘는 진저 향 뒤로 전해지는 우디 향을 배우 개럿헤들런드의 우수에 찬 표정으로 표현했다. 100ml 12만4천원

‘샤넬 No. 5’ 광고에서 브래드 피트가 말했다. “어디를 가든 네가 있지, 나의 운명.”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는 No. 5만 입고 잠자리에 든다고 했던 마릴린 먼로의 대사보다 섹시했다. 시선을 뺏는 화려한 영상미 대신 소리에 집중하게 하는 빛과 흑백의 영상은 영화 <오만과 편견>의 조 라이트 감독의 작품이다. 이처럼 영화감독이 향수 광고를 연출하는 것은 이제는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마틴 스콜세지나 소피아 코폴라, 장 자크 아노, 데이비드 핀처, 가이 리치가 그랬던 것처럼 영상미로 이름을 떨친 감독이라면 으레 밟아야 하는 코스처럼 여겨질 정도니까. 놀라운 것은 이런 거장들이 연출한 향수 광고 속에서조차 모델들은 여전히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며 시폰 드레스를 흩날리거나, 해변에서 물을 튀기며 늘씬한 몸매를 뽐내거나, 사랑받고 있는 여인을 연기하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건 남자 향수 광고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남자 향수 광고는 패션 모델들의 차지였다. 향수의 대부분이 패션 하우스에 기반을 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향수를 구입하는 남자들에게 어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여자에게 통하는 모델을 기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눈 씻고 둘러봐도 찾기 힘든 초콜릿 복근으로 무장한 모델을 벗기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차별성이라고는 향수의 이름과 디자인이 전부였다. 이 모델에 저 향수를 갖다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비슷한 콘셉트의 광고가 판을 쳤다. 실제로 덴마크의 패션 모델 마티어스 라우리드센은 구찌와 폴 스미스, 엠포리오 아르마니 향수 광고를 섭렵했다. 그러다 향수 시장의 흐름이 바뀌면서 굳건했던 모델들의 위치가 바뀌기 시작했다. 향수 광고 모델들이 마냥 멋지기만 하면 되던 시대가 가고 그들이 왜 멋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추가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게 2000년대 중후반이었다. 여자 향수 광고처럼 우리 눈에 익숙한 남자 배우들이 광고에 속속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먼저 디올은 영화 <리플리>나 <나를 책임져, 알피> 때의 풋풋함은 가셨지만 여전히 섹시한 꽃미남 대열에서 순위권을 다투고 있던 주드 로를 선택했다. 하지만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는 법. 시간이 흐르고, 디올은 로버트 패틴슨을 다음 뮤즈로 선택했다. “기존의 향수는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성공한 남자의 이미지가 강했어요. 하지만 향수를 사용하는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향수로 어필하기 시작했고, 자유분방한 젊은 남자의 이미지가 필요해진 것이죠”. 디올 교육부의 향수 트레이너 이현주 차장의 말이다. 주드 로를 아끼는 팬 입장에서는 그의 넓어진 이마에서 보이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젊고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기 위해 구찌 바이 구찌 옴므의 뮤즈로 제임스 프랭코를 선택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는 보다 강렬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는 길티 옴므를 위해 크리스 에반스와 손잡고 길티의 섹시한 향을 여자친구의 온몸에 배게 해줄 것만 같은 옴므파탈의 기운이 느껴지는 비주얼을 완성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다비도프는 쿨 워터의 모델로 배우 조시 할러웨이에 이어 폴 워커를 택했지만 그들의 팬이 아니고서야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콘셉트를 유지했다. 해변을 등지고 서서 물기를 뚝뚝 흘리며 넘실거리는 파도 위로 근육을 자랑하듯 보여주는 모습은 구도까지 똑같았다. 상쾌한 향의 ‘끝판왕’격인 이 향수에 대한 변함없는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생각해 무리해서 변화를 줄 이유가 없다는 게 그 이유. 변화는 실제로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즐기던 이완 맥그리거를 어드벤처의 모델로 기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돌체앤가바나의 향수 더 원 포맨의 모델은 매튜 매커너히의 차지였다. 지성에 섹시함까지 갖췄다며 돌체와 가바나의 극찬을 받았던 매튜는 지금까지도 스칼렛 요한슨과 호흡을 맞추며 돌체앤가바나를 대표하고 있다. 숲의 이미지가 어울리는 불가리의 맨 익스트림은 랑콤의 모델을 지낸 클라이브 오웬을 뮤즈로 선택했다. 조각처럼 잘생긴 남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영화< 트로이>의 히어로 에릭 바나에게 바통을 넘겨줬고, 에릭은 따스한 미소 따위는 기대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 차가운 도시 남자의 지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조한 캠페인을 보여주었다. 그 옛날 디자이너 입생로랑이 자신의 누드로 광고를 찍은 뒤로, 줄곧 섹스 어필한 콘셉트의 광고를 선보여온 브랜드 입생로랑은 향수에서 우디 노트와 머스크의 비중을 줄이면서 광고에서도 ‘색기’를 많이 걷어냈다. 광고 모델도 영화 <언페이스풀>에서 다이안 레인을 한눈에 사로잡은 배우 올리비에 마르티네즈, 뱅상 카셀을 거쳐, 다시 모델보다 더 모델 같은 배우 개럿 헤들런드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모델은 브랜드의 이미지와 제품의 콘셉트를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미묘한 표정과 포즈로 표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향수 모델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형의 향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는 광고 캠페인에서 향을 섬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없었어요. 광고에서 풍기는 무드가 향을 대변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소비자들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광고의 이미지 자체도 빠르게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과제가 남게 된 것이죠. 그래서 소비자에게 익숙한 얼굴이 광고 모델로 자리 잡게 됐어요.” 던힐의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인 제이슨 버클리의 말이다. 이와 같은 흐름에서 배우들이 모델로 서게 된 것은 다양한 장점을 갖기도 한다. 표정과 포즈로 승부를 거는 패션 모델들과 달리 연기가 되는 배우들이기에 한 편의 영화 같은 광고를 찍을 때에도 배우 특유의 악센트가 묻어나는 내레이션을 더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향기 하나로 배우들의 인생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심도 깊은 내용을 더해 신뢰감을 높이는 경우도 생겨났다. 하지만 염려스러운 것은, 비록 상투적일지라도 한 장의 이미지 안에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만큼은 확실했던 과거의 광고와 달리, 요즘의 광고는 익숙한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노출시키는 것에 급급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향수를 대표하는 얼굴의 수명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브랜드는 시각적인 임팩트가 강했던 광고보다 브래드 피트의 나지막한 내레이션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출 전 마지막으로 입는 옷인 향수는 시각이 아닌 후각을 통해 들어와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