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오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그는 계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갔다. 지금의 주상욱은, 스스로 온전히 쌓아 올린 결과다. 데뷔 15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이 시작이라고 말한다.

재킷은 엠포리오 아르마니 (Emporio Armani).

오늘 준플레이오프 3차전 시구를 하고 왔죠? 만족스러웠나요?
아니요. 공이 완전 어이없게 날아갔어요.

보통 남자 배우들은 잘 던지던데요.
제가 운동도 잘하고 야구도 정말 잘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긴장했어요. 심지어 연습할 때 유희관 선수가 가르칠 게 없다고 할 정도였는데 실전에서 어이없는 실책을…. 어쩔 수 없죠. 제가 뼛속까지 두산 팬이에요.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 출신이라 더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어요.

드라마 끝나자마자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더군요.
드라마 끝난 지 3일 되었는데, 쫑파티하고 다음 날 <힐링캠프> 촬영하고, 어제는 VIP 영화 시사회가 있어서 다녀왔어요. 영화< 응징자>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아서 10월 한 달은 계속 바쁠 것 같아요. 열심히 홍보해야죠.

<굿 닥터> 김도한의 여운은 아직 남아 있겠죠?
꽤 오래 생각날 것 같아요. 첫 촬영 들어갈 때부터 부담감이 컸던 작품이에요. 어떠한 부분에서는 <특수사건 전담반 TEN>의 여지훈과 비교될 수 있는 포인트도 있었고, 현장 촬영의 비중이 높고, 전문 용어를 많이 구사하는 의학 드라마가 워낙 어려운 장르다 보니 걱정을 많이 했죠. 그만큼 준비를 많이 했고요. 예상했던 것보다 촬영도 수월했고 반응까지 좋아서 더없이 기뻤어요.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 현장 사진을 트위터에 직접 올리기도 했잖아요. 분위기가 좋아 보이더라고요.
이제까지의 어떤 드라마보다도 출연 배우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보통 드라마 촬영 때에는 스케줄도 다르고 바쁘다 보니 밥도 따로 먹고, 대기도 따로 할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번 드라마는 배우가 함께 밥도 먹고 대기실도 같이 썼어요. 여배우인 채원이까지도요. 나이대가 비슷하기도 했고 다들 착해서인지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요.

김도한은 주상욱이라는 배우에게 확실한 전환점이 되었나요?
그럼요. 김도한을 만나기 전까지는 대표작이 <자이언트>의 조민우였어요. 촬영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에요. <특수사건 전담반 TEN>의 여지훈을 최고라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케이블 방송이다 보니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은 게 사실이에요. 이제야 <자이언트> 다음의 대표작이 생긴 거죠.

후회 없이 쏟아냈나요?
제가 연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후회 없어요. 다만 이건 어떤 작품을 하든 마찬가지인데, ‘내가 김도한에게 원하는 것을 좀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죠. 물론 배우 혼자서 만드는 인물이 아니니까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긴 하지만요.


슈트는 휴고 보스(Hugo Boss). 셔츠는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 스카프는 에트로(Etro).

오래전부터 의사나 왕 역할을 갈구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의사는 완벽하게 성공했으니 이제 왕이 남은 거네요.
제가 사극을 워낙 좋아해요. 더 고생스러운 작업이 기는 한데 잘 만든 사극을 보면 분장, 말투, 세트, 그리고 인물들까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어요. 그중에서도 왕이라는 배역에 매력을 느껴요.

당신이 연기하는 왕은 어떻게 다를까요?
왕이라고 하면 누구나 카리스마 있고 근엄한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영화 <광해>를 인상적으로 봤는데, 거기서는 이제까지 알고 있던 왕과는 다른 모습의 왕이 나와요. 이병헌 선배가 워낙 연기를 잘하기도 했고, 그 역할이나 표현들이 정말 와 닿았어요. 그렇게 이제까지와는 좀 다른 왕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죠.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응징자>에서는 김도한과는 완전히 다른, 밑바닥 인생을 사는 준석이 되었죠?
준석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신나게 몰입해서 연기한 인물이에요. 완전히 빠져들었죠.

뭐가 그리 신나던가요? 관객 입장에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당신이 가지지 못한 자가 되고 양동근이 가진 자가 되었다는 점이에요. 보통은 그 반대의 캐스팅을 예상하니까요.
맞아요. 저는 연기를 하면서 ‘실장님’이라는 호칭을 수없이 들었어요. 계속 비슷한 역할이 들어오다 보니 비슷한 분위기의 연기만 하게 되었죠. ‘내가 이것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하는 고민이 들 정도로요. 거기서 좀 벗어난 게 <특수사건 전담반 TEN>의 여지훈이었고, 김도한이 좀 더 달랐고, <응징자>의 준석 같은 경우에는 그걸 깨고 나온 느낌이었어요. 그러니 빠져들 수밖에요.

준석이 되기 위한 시간들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겠네요.
이제까지 제가 연기한 인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캐릭터를 분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준석은 직업도 없고 옷도 없고 친구도 없는, 가진 것이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인물이었어요. 스스로 많이 풀어지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먹고 걷고 앉는 방식까지 준석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주상욱이 입은 슈트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타이는 제이미앤벨(Jamie&Bell). 모델이 입은 드레스는 케이수바이 김연주(KayeSu by KimYeonJu). 귀고리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실장님’이 된 양동근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영화에 거의 둘만 나올 정도로 같이 붙는 장면이 많아요. 쫓고 쫓기고 때리고 맞고, 저는 주로 맞는 편이었어요. 저는 늘 연기를 잘하는 배우와 함께 연기하기를 원해요. 물론 그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어디까지나 제 기준이고요. 예상대로 양동근은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였어요. 그를 보면서 많은 걸 배웠죠.

서로에게 익숙한 인물을 연기하는 만큼 그걸 지켜보는 과정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깔끔한 실장님이 된 양동근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지켜봤는데 제가 지금까지 연기한 실장님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더라고요. 서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동근이도 저를 보면서 자신의 지난 배역을 떠올린 때도 있었겠죠.

액션 신이 많던데 부상은 없었나요?
창식(양동근)이 상견례하는 자리에 찾아가서 뒤엎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도 엄청 맞아요. 그거 찍다가 부딪치는 바람에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었어요. 한 달 반 고생하고 이젠 괜찮아요.

복수를 하는 입장인데도 자꾸 얻어맞는 건 왜인가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복수하는 인물이 아니에요. 가지지 못한 자가 할 수 있는 굉장히 현실적인 방식의 복수를 하죠. 돈 많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창식에게 얻어터지고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면서 상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곤란하게 만들어요. 어느 순간부터 괴롭히는 게 재미있어지고 그래서 멈추지 않고 하는 거예요. 거기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게 딱 맞는 말이죠.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지네요.
사실 시나리오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뭔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촬영을 하면서 점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고, 얼마 전 완성된 영화를 봤는데 이 정도면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들에게는 어떤 영화이기를 바라나요?
무엇보다 재미있게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다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장점은 지루하지 않다는 거예요. 영화 후의 감상은 관객의 몫이겠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에는 시계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해요.



재킷은 아이러니 포르노(Irony Porn(o)). 팬츠는 쟈딕앤볼테르 (Zadig&Voltaire).

얼마 전 케이블 TV에서 영화 <90분>이 나오더라고요. 지금 당신의 인기를 반증하듯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어요.
<90분>은 정말 말이 많은 영화예요. 댓글을 보면 도대체 이걸 왜 한 거냐, 무슨 생각으로 했냐, 욕도 엄청 많아요. 정사 신이 전체 내용 중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 거리낌없이 했는데, 그 또한 악플이 많더라고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사정이 생겨 후시 녹음도 안 하고 포스터도 안 찍고 미완성인 상태로 개봉한 영화라 아쉬운 점이 있긴 해요. 하지만 제 선택으로 하게 된 작품이었고 후회는 없어요.

작품의 결과에 대해서는 처음보다 유연해지고 있나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연기를 놓지 않는 한 결코 유연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배우로 사는 데 있어 관객수와 시청률은 항상 신경 쓰이는 부분이죠<. 굿 닥터>는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에요. 제가 맡은 역할 중에 가장 비중 있는 역할이었고, 가장 최근, 그러니까 가장 나이 들어 한 작품이니까요. 한 살 한 살 나이 들수록 책임감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죠.

작품이 잘되면 잠을 못 자도 웃음이 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아니요. 아무리 작품이 잘돼도 잠을 못 자면 피곤해요. 나이는 속일 수 없거든요. 하하.

데뷔 15년 차예요. 전성기가 좀 더 일찍 왔었으면 하는 생각도 드나요?
좀 더 일찍 주목받았다면 더 오랜 시간 좋은 역할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배역이라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어릴 때 잘되면 그만큼 기회가 많아지죠. 하지만 지금도 만족해요. 지금 제 나이가 남자 배우가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 가장 많은, 정점의 나이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는 동안이니까요. 하하.

남자배우에게는 사십대도 훌륭한 지점이죠. 젊은 시절의 감상들이 얼굴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전 한 살이라도 어린, 지금이 제일 좋아요. 딱 삼십대 중반! 작품을 쉬지 않고 했지만 대중적으로 당신의 이름을 알린 건<남자 의 자격>이었어요. <남자의 자격> 덕분에 저를 알아보는 연령대가 확 넓어졌어요. 지난해 5월에 시작해서 올해 1월에 끝났으니 너무 짧았죠. 게다가 갑작스럽게 끝
난 거라 당시에는 좀 서운했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했으면 예능 이미지가 굳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고, 결과적으로 시작한 것도 끝난 것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셔츠는 라코스테 라이브(Lacoste Live). 케이프와 팬츠는 아이러니 포르노. 슈즈는 토즈(Tod’s).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의가 계속 들어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다시 도전할 의향은요?
지금은 예능 프로그램보다 드라마나 영화를 하고 싶어요. 연기를 꾸준히 하다 보면 또 언젠가 예능을 하고 싶을 때도 오겠죠. 지금은 게스트 정도로만 출연하고 싶어요.

배우가 아닌, 당신 자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요?
그런 건 없어요. 배우니까 분위기 잡고, 목소리 깔고 그런 것도 싫고요. 승부욕이 남다른 편이라 제가 출연하면 시청률이 1%라도 더 나오면 좋겠고 화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때문에 예능뿐 아니라 뭐든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 주에 당신이 출연한 <힐링 캠프>가 방송된다니 기대되네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으면 해서 나름대로 애를 썼어요. 경규 형과 워낙 친해서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요. 아마 저랑 경규 형이 계속 싸우고 있을 거예요. 하하. 기대하고 보셔도 좋습니다. 작가분이 최근 3개월 방송분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씀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기대하
고 있어요. 시청률이 잘 나와야 할 텐데요.

배우가 아닌 삼십대 중반의 남자 주상욱은 어떤 고민을 하나요?
지금은 남자 주상욱보다 배우 주상욱을 생각할 시점인 것 같아요. 요즘 결혼은 언제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여자도 없을뿐더러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굿 닥터>가 배우로서의 좋은 발판을 마련해준 만큼 그 분위기를 타고 열심히 할 때죠.

좀 더 욕심을 내본다면요?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상으로 치면 남우주연상, 방송 대상 같은 거죠. 상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상을 받는다는 건 대중들이 인정하는 배우가 되었다는 뜻이니까요.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달려야죠.

오늘은 좀 쉬어도 되는 금요일 밤이잖아요. 계획이 있나요?
요즘 정신이 없어서 금요일인지도 몰랐어요. 내일 아침에 스케줄이 있으니까 가볍게 족발에 소주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