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갤러리 큐레이터들은 11월, 어떤 전시를 기대하고 있을까? 4명의 큐레이터가 놓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전시를 꼽았다.

1 그레고리 스캇, ‘In the Next Room’. 2 민병헌, ‘RT 243’.

그레고리 스캇 개인전
21세기형 초현실주의 작가로 평가 받고 있는 미국 출신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그레고리 스캇의 국내 첫 개인전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의 뒤를 이어 21세기형 초현실주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 출신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그레고리 스캇의 작품은 몇 해 전 뉴욕에서 먼저 만난 적이 있는데, 여전히 그때의 놀라웠던 첫 만남을 기억한다. 그는 사진, 혹은 회화라고 명명하는 기존의 2차원 평면에 비디오 영상 모니터를 기묘하게 병치시키고, 이를 3차원 화면으로 재구성하는 독특한 작업을 선보인다. 보지 않고는 믿기 힘든 광경이란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전시는 11월 6일부터 12월 8일까지 삼청동 공근혜 갤러리에서 열린다. – 이은진(독립 큐레이터)

안창홍 개인전
안창홍은 1950년대 사진을 소재로 회화 작업을 한다. 그 시절의 ‘가족 사진’ 연작에서는 인물의 눈을 도려내거나 얼굴을 종이가면으로 가림으로써 억압된 사회와 시대의 고통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인간성을 잃어버린 황폐한 시대상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개인사를 역사 속한 부분으로 끌고 들어와 상실감과 소외감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중섭 미술상 수상작가 특별전으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11월 7일부터 전시가 열릴 예정인데, 조선일보와 안창홍의 만남은 ‘적과의 동침’에 비유될 정도로 쉽게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다. 그는 민중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잃거나 안주하지 않는, 과거의 예술이 아니라, 현재의 예술을 실현해나가는 작가임이 분명하니까. – 윤두현(갤러리기체 대표)

민병헌 사진전
우리 사진계에서 ‘민병헌’이라는 이름은 특별하다. 그의 사진은 지극히 어둡거나, 심할 정도로 밝다. 미묘한 회색조의 농담 변화만으로 담벼락 어딘가에 피어난 잡초와 물안개가 낀 폭포를 표현해낼 수 있는 섬세함이 놀랍다. 잡초와 안개, 설경 사진 연작으로 잘 알려진 민병헌이 이번에는 ‘강(江)’ 시리즈를 내놓았다. 한미미술관은 액자의 유리를 제거해 관람객의 눈과 작품 사이에 아무것도 개입하지 않도록 했는데, 이로써 민병헌의 은은하고 부드러운 회색조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아날로그 흑백 프린트 방식을 고수하는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사진이라는 언어로 포착해낸 자연의 섬세한 서정성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 이유영(살롱드에이치 큐레이터)

김덕기 기획전
따뜻하고 밝은 색채로 일상의 행복을 전하는 김덕기의 작품을 좋아한다. 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를 띠게 하는 그의 작품을 제주 다음 스페이스 갤러리 닷원에서 2014년 1월 5일까지 만날 수 있다. 김덕기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행복은 대단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삶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간 김덕기의 작품을 많이 봐왔지만 제주의 자연 안에서 그의 작품을 마주하니, 더욱 긍정적인 시너지가 느껴진다. 전시 기간 중에 제주를 찾는다면 갤러리 닷원을 첫 번째 코스로 잡아볼 것. 여행이 두 배로 즐거워질 거다. – 조진권(아뜰리에아키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