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미술관에서 준비한 라이언 맥긴리의 개인전, 몽환적인 판타지에 젖어들 시간.

1 시규어 로스의 앨범 커버로도 쓰인 ‘Highway’. 2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 ‘Coco’s Cliff’.

까만 밤, 나뭇가지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들판을 뛰어다니고, 불꽃놀이를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리기도 한다. 벌거벗은 채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빛을 끌어안으면서 말이다.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의 사진에는 크레딧이 필요 없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찍든 맥긴리의 사진임을 분별해낼 수 있으니까. 사진이 오롯이 작가가 될 수 있는, 이 시대의 몇 안 되는 사진가, 그가 바로 라이언 맥긴리다.
라이언 맥긴리는 젊음의 순간을 빛과 시공간 속에서 재구성한다. 젊음이 꿈꾸는 세계, 그들이 표출하는 찰나의 감정이 그의 카메라를 통해 영원히 멈춰 선다. 자연, 청춘, 헤도니즘, 누드, 빛은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키워드다. 그는 특히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뒤섞이는지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사각의 틀 안에서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판타지로 만들어낸다.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진은 날것 그대로다. 사진 속 남녀는 풀밭에서 나체로 뒹굴고, 동굴 안에서 부둥켜 안고 서로를 어루만진다. 그러나 그 모습은 퇴폐적이거나 외설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순수에 가깝다.
그는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로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MoMA PS1에서 개인전을 가진 사진작가다. 뉴욕의 파슨스 비주얼 아트 스쿨에서 공부했고, 좋아하는 잡지사에 자신의 사진집을 보낸 후 그의 재능을 알아본 잡지사와 작업하며 프로 사진가의 길로 들어섰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를 잇는 스냅 사진가로 이름을 떨치며 패션지와 갤러리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개인작업을 쉬지 않는다. 게다가 그의 작업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순간의 포착에만 집중했던 예전 사진에 비해, 하나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시리즈 작품의 수가 늘었고, 색감이나 연출적인 요소에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있다.
사진만 보면 그의 삶 역시 몽환적인 판타지에 젖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의 삶은 사진과 동떨어져 있다. “내 사진은 일종의 픽션에 가까워요. 평소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이 주위 풍경과 어떻게 뒤섞이는지, 어떤 식으로 햇살을 받아 빛나는지를 유심히 봐요. 그러다 보면 눈앞의 그림이 예술의 한 부분이 되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 특별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거예요.” 즉흥적 행동에 초점을 둔 사진과 달리, 그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비해 철저하게 준비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은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예요. 사진을 찍을 때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꿈꾸는 것들, 내가 남겨두고 싶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뿐이죠.” 그 철저함 덕분에,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찰나의 빛이라는 즉흥적인 요소들을 더욱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짐작된다. 현상을 포착한 그의 사진에서 우리가 판타지적인 요소를 읽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라이언 맥긴리 이야기를 꺼낸 건 그의 작품이 서울에 오기 때문이다. 대림 미술관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라이언 맥긴리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1월 7일부터 시작하는 전시를 서둘러 소개하는 건 그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미 11월에 닿아 있어서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니, 아름다운 판타지를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