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들은 새로운 앨범을 내놓을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신을 감행한다. 패션과 함께 이들의 변신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이 헤어 스타일이다. 완벽하게 세팅된 그녀들의 헤어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이 한창 활동하던 1990년대만 해도 아이돌 스타들의 헤어 스타일은 극과 극이었다. 남자 아이돌은 초록색과 보라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젤을 듬뿍 발라 머리를 공중에 띄우는 등 코스프레를 연상시키는 과장된 스타일을 추구한 반면, 여자 아이돌은 한결같이 청순하거나 귀여운 스타일을 고수했다. 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넓고 예쁜 이마를 훤히 드러낸 유진의 긴 생머리와 백콤을 넣어 볼륨을 한껏 살려 높게 묶은 성유리의 분수머리는 당시 여고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들의 성공을 발판으로 대형 기획사의 ‘스타 제조 시스템’이 날로 발전해오면서 비주얼 디렉터를 중심으로 스타일리스트와 헤어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들의 기획하에 아이돌의 스타일은 날로 치밀해지고 있다.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된 에프엑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앨범 에서 에프엑스의 스타일을 만든 주인공은 SM의 비주얼 디렉터인 민희진이다. 그녀는 곡이 정해지면 전체적인 콘셉트를 구상하면서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을 동시에 그린다고 한다. 그러고서 헤어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멤버들 앞에서 전체 콘셉트에 대해 설명하면 각자 시안을 준비해와서 서로 의견을 조율해가며 구체적인 스타일링을 정한다고. 그 덕분인지 오렌지색으로 염색한 웨이브 단발머리로 소녀에서 여자로 다시 태어난 설리의 헤어 스타일은 ‘설리 다이어트’만큼이나 화제가 됐다. 영화 <제5원소>의 여주인공 밀라 요보비치를 떠오르게 하는 크리스탈의 붉은 머리 역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헤어 스타일을 정하는 데 있어 곡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살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기준은 멤버 각자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새로움이라는 틀에 갇혀 억지로 매번 다른 이미지로 변신하려고 하기보다 멤버 각자의 개성을 살리되 새로움을 더하려고 노력해요. 크리스탈은 특유의쿨한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려고 하는 것처럼요. 스타일은 누군가 꾸며준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해와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애티튜드가 더해져 완성된다고 생각하니까요. 특히 헤어 스타일을 정할 때 각자의 취향이나 얼굴형을 반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민희진의 말이다.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은 영화 속 뮤즈와 소설,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다. “설리 헤어 스타일에 영감을 준 건 영화 속 여주인공이었어요. 붉은빛이 도는 오렌지색은 영화 <인 타임>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헤어에서, 굵은 웨이브를 넣은 단발머리는 마릴린 먼로에게서 영감을 받았어요. 설리의 얼굴이 마릴린 먼로를 닮아서 스타일이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크리스탈의 붉은 머리는 리한나의 헤어 스타일을 참고했어요. 크리스탈 본인이 원하던 스타일이기도 했고요.” 에프엑스의 헤어 스타일을 담당한 헤어디자이너 배경빈의 말이다.


이미지를 바꾸는 헤어 스타일의 힘
그룹 안에서도 인기 순위가 나뉘다 보니 멤버들 사이에서도 스타일을 정하는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메이크업은 ‘걸그룹 메이크업 매뉴얼’이 존재할 만큼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헤어 스타일이 이미지 변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민아의 뒤를 이어 걸스데이의 중심으로 떠오른 혜리가 대표적인 예다. 민아의 그늘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혜리는 ‘여자 대통령’으로 컴백하며 긴 머리를 단발머리로 자르고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작은 얼굴에,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혜리를 처음 봤을 때 60년대 패션 아이콘인 트위기가 떠올랐어요. 소녀처럼 사랑스러우면서도 때때로 시크한 매력을 풍기는 트위기처럼 혜리도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발머리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헤어디자이너 써니의 말이다. 최근 솔로로 돌아온 선미 역시 원더걸스 시절의 풋풋한 여고생 이미지를 벗고 성숙하고 섹시한 이미지로 변신하는 데 헤어 스타일의 공이 컸다. 헤어디자이너 피트 강은 화면 속에서 긴 호흡으로 배역을 연기하는 여배우와 달리 무대에서 짧은 시간 안에 대중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는 걸그룹에게는 강한 임팩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춤을 추거나 동작을 취할 때 헤어 스타일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고려해야 해요. 선미의 댄스 동영상을 보며 춤추는 건축물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리듬에 따라 헤어가 구조적으로 움직이도록 볼륨 있는 보브 단발로 자르고, 몽환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박진영 씨가 제안한 핑크색에 라벤더색을 섞어 라벤더 핑크빛으로 염색했어요.” 선미나 크리스탈만큼 파격적이지는 않더라도 알 듯 모를 듯 이미지를 미묘하게 바꾸는 데 염색을 활용하는 경우는 많다. ‘Falling in Love’를 통해 기존의 강한 이미지에서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변신한 2NE1 역시 염색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경우다. 데뷔 이후 줄곧 밝은 염색머리를 고수해온 박봄은 다크브라운으로 염색해 청순하고 귀엽게 변신했고, 밝은 금발머리를 주로 해온 씨엘 역시 카키브라운으로 염색한 긴 웨이브 머리로 세련되고 여성스럽게 변신했다. ‘All Right’에서 밝은 갈색 머리로 섹시한 매력을 발산한 김예림도 신곡 ‘Rain’에서는 어두운 카키브라운으로 염색해 스무 살 나이에 걸맞은 순수함을 되찾았다. 헤어디자이너 민숙은 “이전 곡인 ‘All Right’에서는 뭘 좀 아는 스무 살이었다면 ‘Rain’에서는 소녀의 감성을 간직한 스무 살이기 때문에 헤어 컬러를 어둡게 하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최고의 전문가들이 시간과 열정을 쏟은 덕분에 아이돌 스타들의 헤어 스타일은 날로 세련미를 더해가고, 트렌드를 이끌며 드라마의 여주인공 스타일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신 헤어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 스타들의 헤어를 참고하면 된다.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 헤어 스타일 10


여자 아이돌 스타의 헤어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헤어디자이너들이 이야기하는 헤어 스타일 연출법.

1 설리 “층을 내지 않은 단발머리예요. 모발 뿌리까지 굵은 웨이브를 넣어 풍성한 느낌을 주고 여러 번의 탈색 과정을 거쳐 밝은 오렌지색으로 염색했어요. 촬영이 있는 날은 전기 세팅기를 이용해 모발 뿌리까지 말아 웨이브를 만들고 빗으로 가볍게 빗어 자연스럽게 연출해요. 설리는 스케줄이 없을 때는 모자를 쓰거나 하나로 묶고 다니는 편이에요.” – 배경빈(‘바이라’ 헤어디자이너)

2 민아 “모발이 가늘고 힘이 없기 때문에 긴 머리보다 짧은 긴 단발에 가깝게 자르고, 앞머리는 가볍게 숱을 친 뱅 스타일로 잘랐어요. 자연스러운 매직 세팅 펌으로 모발 위쪽은 매끄럽게 잡아주고, 모발 끝에는 C컬을 연출했어요. 하얗고 맑은 피부를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섹시한 느낌을 주기 위해 레드브라운으로 염색했죠. 스타일링은 뿌리 쪽 볼륨을 살리고 아이론으로 굵은 웨이브를 지그재그로 불규칙하게 넣어 완성해요.” – 써니(‘라이크어 유키’ 헤어디자이너)

3 선미 “선미의 매력인 길고 가는 목선이 돋보이도록 턱선보다 짧게 보브 커트로 자르고 부분부분 층을 내서 춤을 출 때마다 율동감 있게 흔들리도록 했어요. 몽환적인 분위기의 분홍색을 만들기 위해 두 번에 걸쳐 탈색하고, 베이비 핑크색 염색약과 라벤더색 염색약을 9대1의 비율로 섞어서 사용했어요. 커트로 머리 모양을 충분히 잡아줬기 때문에 샴푸 후에는 빗을 이용해 뒤에서 앞으로 빗으며 드라이기로 말린 다음 물기가 약간 남았을 때 손으로 가볍게 털어줘도 자연스럽고 예뻐요. 공연이 있는 날은 아이론으로 스트레이트와 뻗친 머리를 섞어서 연출해요.” – 피트 강(‘이가자 헤어비스’ 헤어디자이너)

4 씨엘 “씨엘의 헤어 스타일은 그야말로 모든 여자가 시도해볼 만한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스타일이에요.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이 들도록 층을 내지 않고, 앞머리만 뒷머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잘랐어요. 풍성한 느낌을 주기 위해 열 펌으로 굵은 웨이브를 넣고 카키브라운으로 염색해 기존의 강한 이미지 대신 세련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무대에 서기 전에 아이론으로 다시 한 번 굵은 컬을 넣어 풍성하게 연출해요.” – 서윤(‘고원’ 헤어디자이너)

5 혜리 “얼굴이 작지만 둥근 형이라 이를 보완할 수 있게 뒤쪽은 일자로 잘라 층을 가볍게 내고 앞쪽으로 갈수록 길게 자르는 A라인 보브 커트를 시도했어요. 모발 위쪽은 볼륨 매직 펌으로 뿌리 쪽 볼륨을 살리고, 아래쪽은 웨이브 펌으로 밖으로 살짝 뻗치는 C컬을 만들었어요. 까무잡잡한 피부가 화사해 보이고 세련된 느낌이 들도록 레드 오렌지 브라운으로 염색했어요. 촬영이 있을 때는 아이론을 사용해 물결 웨이브와 굵은 웨이브를 섞어서 자연스럽게 연출해요. 평소에는 타월 드라이한 상태에서 컬크림을 바르고 그대로 말리면 웨이브가 자연스럽고 예뻐요.” – 써니(‘라이크어 유키’ 헤어디자이너)



6 박봄 “여성스러운 긴 생머리에 가볍게 층을 내 율동감을 더했어요. 앞머리는 이마를 거의 가리는 뱅 스타일로 잘라 귀여운 매력을 더했죠. 모발의 윗부분은 매직스트레이트로 깔끔하게 정돈하고 밑부분은 열 펌으로 굵게 말아 자연스럽게 풀린 듯한 웨이브를 연출했어요. 스타일링을 할 때는 아이론으로 윗부분을 깨끗하게 펴고 밑부분만 컬을 살짝 넣거나 스트레이트로 펴줘요. 늘 밝은 색으로 염색하다 다크브라운으로 염색한 덕분에 한결 세련돼 보여요.” – 서윤(‘고원’ 헤어디자이너)

7 니콜 “매니시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긴 머리를 보브 커트로 과감하게 잘랐어요. 커트 선을 수평에 가깝게 자르되 가볍게 층을 내서 모발의 질감을 살려 여성스러움을 더했고요. 그리고 어두운 쿠퍼 브라운 컬러로 염색해 세련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살렸죠. 커트로 느낌을 충분히 살렸기 때문에 샴푸 후에는 물기를 제거하고 모발의 질감이 자연스럽게 살아나도록 손으로 털어주면서 드라이기로 말리고 헤어 세럼을 발라 마무리해요.” – 손은희(프리랜스 헤어디자이너)

8 크리스탈 “모발이 가늘고 착 달라붙는 편이라 층을 많이 내서 모발의 무게를 줄였어요. 스타일링을 할 때도 고데기로 뿌리 쪽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백콤을 가볍게 넣은 다음 스프레이를 뿌려 볼륨을 오래 유지하는 데 공을 들여요. 선명한 붉은색을 내기 위해서 2회에 걸쳐서 탈색하고 붉은색으로 염색한 다음 매니큐어를 해서 붉은색을 더 또렷하게 살리고 색이 쉽게 빠지지 않도록 했죠.” – 배경빈(‘바이라’ 헤어디자이너)

9 김예림 “뒤쪽 모발은 펌으로 굵은 C컬을 넣어 풍성하고 찰랑거리게 표현하고, 앞쪽 모발은 밑으로 갈수록 컬이 굵어지는 꼬칼펌으로 탄력 있는 웨이브를 연출했어요. 어두운 카키브라운으로 염색해 스무 살 소녀의 순수하고 발랄한 느낌을 더했어요.” – 민숙(‘고원’ 헤어디자이너)

10 강지영 “긴 머리가 무거워 보이지 않도록 부분부분 층을 내서 모발의 질감을 살렸어요. 앞머리는 가운데서 양옆으로 갈수록 조금씩 길게 사선으로 자르고, 중앙에 숱을 많이 쳐서 이마가 보일 듯 말 듯한 시스루 뱅으로 연출해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었어요. 여왕처럼 차가워 보이면서도 고혹적인 매력이 느껴지도록 블랙에 가까운 다크 바이올렛 컬러로 염색했어요.” – 손은희(프리랜스 헤어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