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도 바다도 풍년인 가을의 여수를 찾은 건, 음식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 촬영에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그 유명한‘ 여수 밤바다’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더 매력적인‘ 여수 참문어’를 원없이 보고 듣고 먹었다.

1 하루 종일 손에서 펜과 노트를 놓지 않는 최불암. 2 이경애 장인이 차려준 여수 이바지 음식들. 3 교동시장의 건어물집에서 만난 피문어. 4 삶은 문어에 꽃을 장식한, 정성스러운 문어찜.

문어잡이 배를 타고
목적지는 여수였다. 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는데도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먼 땅, 그리고 아름다운 땅. 여수의 들판과 바다는 가을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먼 길을 한숨에 달려온 건 여수의 풍요로운 바다가 키워낸 참문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몸집이 작고 단단하여 쫄깃한 맛을 내는, 타우린 함량이 특히 풍부해 건강식으로도 인기가 좋은 그 참문어말이다. 여수 돌산도를 이야기하면 열에 아홉은 갓김치를 먼저 떠올리지만, 돌이 많은 돌산도는 돌 틈에 참문어가 숨어 살기에 최적의 장소인 만큼, 국내 최고의 문어 어획량을 자랑한다. 여수의 문어 생산량은 연중 750톤. 전국에서 생산되는 문어의 60%에 이르는 양이다. 여수에 도착해 신기마을로 들어가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한국인의 밥상>의 촬영팀이 마중 나와서 손을 흔든다. 피디와 조연출, 촬영 감독은 벌써 3주째 여수에 머물고 있다. 여수 어부들 사이에서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까맣게 그을린 모습을 보니 그간 얼마나 열심히 여수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을지 그림이 그려졌다.
<한국인의 밥상>은 매주 옛 방식을 지키며 밥상의 맛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지리산, 장흥, 흑산도, 제주도…. 밥상이 있는 곳이라면, 그 밥상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그리고 오늘은 여수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올라가는 다리의 주탑, 들어오고 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여유를 부리다 보니 곧 최불암 일행이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차 타고 왔어요? 아침 일찍 애썼네.” 보통은 새벽같이 촬영지에 도착해 촬영을 시작하지만 여수행 비행기 스케줄때문에 조금 늦어진 만남이었다. 덕분에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첫 번째 촬영 장소로 이동했다.
피디의 차를 따라 올라간 곳은 400년이 넘은 팽나무가 늘어선 낮은 산이었다. 노트에 빼곡히 적은 메모와 대본을 확인한 그는 곧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가 여수 신기마을인데요. 우리나라에서 문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기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마치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느껴지네요.” 대본에는 분명, 어머니의 ‘마음’이라 쓰여 있었지만 최불암은 ‘젖가슴’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육지를 품어 안은 포근한 바다의 모습을 보니 ‘마음’보다는 ‘젖가슴’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서둘러 신기항으로 다시 내려간 건 약속된 시간에 맞춰 문어잡이 배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배 안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작은 바다를 방불케 했다. 바닥 여기저기에 불가사리와 조개, 작은 물고기와 새끼 문어가 팔딱거리고 있었고, 한쪽에는 문어를 잡아 올리는 일명 ‘통발’이라 부르는 문어 단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옛날 문어단지는 항아리를 사용하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플라스틱 제품을 쓴다. 무게가 가벼워 안에다 콘크리트를 넣어 가라앉게 만들었다.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단지를 이용하는 어획 방식은 현재 남해와 동해에서 쓰이고 있다. 긴 밧줄에 미끼를 넣은 수천 개의 단지를 달아 수심 20∼50m의 바다에 던져놓고, 하루이틀 지나서 끌어올리면 통 안 가득 문어가 들어가 있다. 최불암은 갓 잡아 올린 문어 단지 안에서 문어 한 마리를 끄집어냈다. 곧 문어를 잡으려는 그와 잡히지 않으려는 문어 사이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문어의 힘이 어찌나 센지 선생의 손에 기어코 피까지 내고 말았다. “이놈 힘이 대단하네. 아주 팔팔해.” 온힘을 다해 저항하던 문어는 곧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꼬꾸라진 문어를 잡아 올리며 어부가 말했다.“ 7월 중순경부터 12월까지 문어가 제일 많이 잡힙니다. 지금이 알도 차 있고 가장 맛있는 때죠. 명절을 앞두고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부족해요.” 흔들리는 배 위에 선 그는 어부에게 한참을 질문하고 원하는 대답을 얻고 나서야 배 난간에 조용히 앉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땀을 닦아내는 그의 뒷모습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는 흔들리는 뱃머리에 앉아서 노트를 폈다. 어부가 해준 이야기를 메모하기 위해서였다. “잊어버리기 전에 메모해서 시청자들에게도 알려줘야지, 나만 알고 있으면 되나.”


1 배에 올라탄 최불암이 갓 잡은 문어를 잡고 어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2 커다란 솥에서 오랜 시간 우려낸 문어 죽. 문어와 약재가 가득 들어 있다. 3 여수 이바지 음식에 들어가는 약과와 떡. 모양뿐 아니라 맛도 기막히다. 4 여수의 명물, 돌산 갓김치

신기마을의 진짜 밥상
수십 년간 문어를 잡으며 살아온 여수 신기마을의 한 가정집은 이번 촬영의 하이라이트인 문어 밥상을 차려내느라 아침부터 부산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촬영을 구경하겠다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온 터라 마당과 평상이 쉴 새 없이 북적거렸다. 최불암은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카메라가 돌든, 돌지 않든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본도 필요 없었다. 여수에서 어부로 살아가는 이야기, 차려진 밥상에 대한 이야기, 여수 문어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면, 카메라 감독은 그 모습을 또 자연스럽게 담았다. 감독이 컷을 외치자, 최불암은 목소리를 높여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이게 오늘 점심이니까, 다들 이리로 와서 한술 떠요.”
먹장국, 문어 숙회, 문어 물회, 문어 초무침, 문어 잡채, 돌산 갓김치와 쏨뱅이 구이까지, 상 위에 오른 먹음직스러운 요리에 군침이 돌았지만, 체면치레를 하느라 쭈뼛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다시 한 번 재촉한다.“ 어허, 지금 안 먹으면 배고파 쓰러진대도.”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을 들고 문어 숙회부터 입에 넣었다. 여수의 참문어는 정말 달랐다. 고소하면서도 담백하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돌았다. 다음에는 먹장국에 도전했다. 먹장국은 신기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음식으로 문어의 내장과 코를 된장에 볶아 푹 고아낸 해장국이다. 여름에는 호박을 넣고, 겨울엔 시래기를 넣어 끓이는데 어떤 재료든 아낌없이 넣는 게 포인트다. 문어 내장이 들어갔는데도 비리지 않고 구수하고 시원했다. 거기에 간간이 씹히는 땡초 덕분에 얼큰한 맛까지 더해졌다. 문어 초무침, 문어 물회, 문어 잡채를 돌아가며 맛보고 있으니, 주인 어르신이 소주잔을 건네주신다. “좋은 음식을 먹을 때는 소주도 한잔해야지.” 이번에는 빼지 않고 단숨에 들이켰다. 수십 명이 작은 상에 옹기종기 모여 맛있고 든든하게 식사를 끝냈다. 일찍 식사를 마친 최불암은 그 모습을 뿌듯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옛사람들의 지혜, 문화, 역사가 우리 밥상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외국 음식이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고, 우리 것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무너지고 있는 거지.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게 중요한데 그 기본이 바로 우리 밥상에 있어. 조상의 문화유산을 기록해서 음식의 문화적 가치를 찾아가야 돼. 이 프로그램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식사를 마친 최불암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한국인의 밥상>을 시작한 지 벌써 3년. 그는 자신이 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지, 왜 앞으로도 이 프로그램이 계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기록들과 영상이 오래 남아서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도 중요한 자료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매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일이 힘에 부칠 법도 한데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한국인의 밥상>에는 여느 음식 프로그램에는 없는 게 많다. 지역의 맛집을 소개하거나 호들갑스럽게 음식을 먹는 리포터도 없다. 그 대신 발로 뛰며 만들어내는 영상, 절제된 화면, 현지 주민들의 삶과 밥상, 최불암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한 편의<한국인의 밥상>이 만들어진다. “오늘 봐서 알겠지만 현장에서는 여유롭게 밥 먹는 시간조차 없어. 친구들은 혼자서 맛있는 거 먹고 다닌다고 질투하는데, 사실 현장 상황이 그렇지 않거든. 그래도 감사하지. 이 프로그램이 아니면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렇게 귀한 음식을 먹어보겠어.”


5 여수 신기마을의 가정집에서 차려준 밥상. 쏨뱅이 구이와 문어 숙회, 문어 물회 등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한가득이다. 6 신기항으로 들어오고 있는 문어잡이 배. 7 돌산대교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 최불암. 옆으로 지나던 운전자들이 차를 멈춰 세우고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8 장인의 손에서 이바지 음식으로 태어난 백문어.

피문어와 이바지 음식
이번에는 여수 교동 시장의 풍물거리다. 장을 보던 여수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최불암 선생님’, ‘영남이 아버지’, ‘불암이 오빠’, 부르는 호칭도 가지각색이다. 악수도 하고 사인도 하던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풍물거리 안에 위치한 건어물집으로 들어섰다. 피문어를 파는 건어물집에서 다시 한 번 만상 토론이 이어졌다. 참문어를 말린 것을 피문어라 하는데, 여수의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집집마다 햇볕에 바짝 말린 피문어로 앞마당을 채운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남자들이 문어를 잡아오면 여자들은 문어 머리에 칡줄기를 끼워 모양을 내 말리곤 했다. 감칠맛과 단맛이 나고, 말리기 전보다 살이 부드러워지는 피문어는 참문어만큼이나 인기가 좋다. 오동통한 피문어 다리를 잘라 한입 베어 먹고, 계산까지 정확하게 마친 그가 건어물 가게를 나오자 스태프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는 싱싱한 해산물로 가득한 어시장으로 들어섰다. 서대회, 갈치, 참조기, 쏨뱅이, 아귀, 전어, 코다리, 삼치, 넙치까지 그야말로 없는 생선이 없다. 맞은편에는 고추장과 막걸리식초로 새콤달콤 버무린 서대회 무침, 구수한 장어탕, 금풍생이 구이와 콩죽 등 여수 먹거리를 바로 시식할 수 있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어시장은 인심 또한 넉넉한 모습이다. 8마리가 한 묶음인 서대회는 만원 안팎이고, 무게를 달아 파는 간장게장은 서울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싸다. 3만원이면 살아서 꿈틀거리는 큼직한 문어도 가져갈 수 있다.
다음은 이바지 음식을 만드는 장인, 이경애를 만날 차례였다. 전라도 여수를 대표하는 문어오림 전문가인 그녀는 대목을 앞두고 더 빠른 손놀림으로 문어를 오리고 있었다. 갖가지 모양의 꽃과 봉황 모습의 문어 오림, 곱게 모양을 낸 약과와 떡, 꽃으로 장식한 삶은 문어까지,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여수 이바지 음식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8개의 다리로 복을 끌어들인다는 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문어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제사상과 결혼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 마리를 통째로 삶아서 올리기도 하고, 말린 문어를 가위로 오려서 문양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녀의 작업실에는 문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이바지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최불암은 작업하는 장인에게 방해가 될까, 조심스레 앉아 그녀의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봤다. “한번 해보시겠어요?” 장인의 권유에 마지못해 가위를 들었는데 제법 모양을 내는 덕에 손 매무새가 단정하다고 칭찬까지 받았다. 그가 장인의 작품을 조심스럽게 꺼내어보며 감탄, 또 감탄하는 동안 솥에서 끓고 있는 죽이 완성되었다. 이번에는 이바지 음식으로 한 상이 차려졌다. 역시 주인공은 문어였다. 콩밥과 오이냉국, 문어 죽, 문어 초회, 바지락 꼬치, 약과와 떡으로 꾸민 이바지 한 상은 그 모양새만큼이나 맛도 훌륭했다. 팔팔 끓는 솥에서 갓 퍼낸 문어 죽은 문어는 물론 각종 약재가 가득 들어간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바지락을 꼬치에 끼워 간장으로 맛을 낸 바지락 꼬치는 짭조름하면서도 단맛이 돌아 자꾸 손이 갔다. 특히 후식으로 먹은, 생애 처음 먹어본 호박식혜의 담백함이란! 다시 한 번 모든 스태프가 모여 한 상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한국인의 밥상>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포진한 오후 7시 30분에 방송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한국인의 밥상>을 본다. 프로그램을 통해 잊혀진 우리의 음식에 대해, 매일 세 번씩 마주하는 자신의 밥상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해외 동포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고향에 대한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 진행하고 나서 해외 동포들한테 연락을 많이 받아. 고향을 찾아주고 어린 시절에 그들이 먹은 음식을 차려줘서 고맙다는 거야. 가정집의 진짜 밥상을 찾아다니니 가능한 일이지. 모든 음식이 다 건강하잖아. 조미료 대신 사랑을 넣는 거야” . 옛 방식을 이어오며 맛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고집, 그 사람들을 집요하게 찾아내는 <한국인의 밥상>의 고집, 그 이유 있는 고집 덕분에 지금, 우리의 밥상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 서유석 피디와의 인터뷰

<한국인의 밥상>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각각의 풍토, 기후에서 자란 식재료와 그 지역만의 독특한 조리법이 만나서 고유한 맛을 내게 되는데 이 맛 속에 과학이 있다. 음식에 있어서는 상세한 조리법을 공개해 그 속에 숨어 있는 과학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또 그 지역의 음식뿐 아니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내려 한다. 그 지역의 음식 맛, 음식의 의미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맛집을 소개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뭔가?
그게 우리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이유다. 식당의 역사는 짧다. 한 가정으로 들어가면 좀 변했을지언정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음식을 먹는다. 특별히 배우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먹었던 자연스러운 그 음식 말이다. 우리 프로그램의 역할은 이것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최불암을 내레이터로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최불암 선생은 진행자이자 내레이터로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어디를 가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우리나라가 흑백 텔레비전을 볼 때부터 텔레비전 안에 존재했던 사람이다. 농촌 사회를 대표하는 이장님이기도 했고 수사반장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존경하는 선생님으로서의 이미지가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이미지 말이다.
최불암은 현장에서 본인이 느낀 것을 바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게 굉장히 정확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가?
그렇다. 촬영 현장에 오기 전에 두 번의 미팅을 하는데 중요한 콘셉트를 이야기하면 어김없이 메모를 하고 책과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한 내용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의 삶에 대한 경험, 음식에 대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덕분에 프로그램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1회분 촬영을 위해 꼬박 3주가 걸린다. 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주제가 정해지면 그 지역으로 답사를 간다. 답사를 가서 확신이 들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자료를 취합한 뒤에 다시 내려가서 적합한 인물과 장소를 찾는다. 이때 군청, 시청 등 모든 관할 지역에 연락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답사와 촬영을 하고 서울로 올라와 편집, 더빙, 음악 작업 등 후반작업까지 하다 보면 한 달이 금방 간다.
주제에 적합한 밥상을 차려내는 가정집을 찾는 게 가장 어려울 것 같은데 인물 섭외는 어떻게 이뤄지나?
모든 집에 들어가 상을 내달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마을의 이장에게 도움을 받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여수 참문어의 경우, 3대 이상 문어잡이를 하는 집, 그중에서도 사모님의 요리 솜씨가 좋은 집을 추천해달라 했다. 몇 곳을 추천해주면 직접 방문해서 최종 장소를 선정한다.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올해 말 해외 특집을 준비하고 있다. 멕시코, 브라질 등 남미의 한인 이주 역사를 취재한다. 그곳의 한인 1, 2세대의 밥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담아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