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보르도에는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고, 포도는 무럭무럭 자란다. 레드 와인을 대표하는 이름, 보르도 메독 지방으로 떠난 여행. 눈과 입이 모두 짜릿하게 황홀했던 날들. 마시고, 먹고, 마신 하루를 모두 더해보니 일주일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랑 크뤼 3등급 샤토 팔머의 포도밭.

프랑스 보르도에서는 온통 두 가지 색만 보였다. 초록은 포도밭이요, 노르스름한 것은 집이거나 와인창고였다. 가을이 되면 초록 잎은 단풍이 되어 갈색으로 물든다고 했지만, 아직은 잎사귀며 포도알, 줄기까지 모두가 파랬다. 그 위로 햇살이 쨍쨍 내리쬐었다. 강렬한 태양은 밤 10시까지도 잠들지 않는다. 그래서 보르도의 와인 소유주는 경운기를 내려놓고 근사한 클래식 재규어를 몰더라도 모두가 헤밍웨이처럼 잘 그을린 피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포도를 경작하는 농부임을 자랑스러워한다. 보르도는 프랑스에서도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다. ‘보르도’라는 이름은 와인의 또 다른 이름처럼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접착식 메모지를 통틀어 ‘포스트잇’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 보르도에서도 가장 유명한 지역이 바로 메독이다. ‘레드 와인’의 대표격인 메독도 그냥 다 메독이 아니다. 한번쯤 들어봤을 메독, 포이약, 마고, 생테스테프, 물리스, 오메독, 생줄리앙, 리스트락 등 다시 8개의 지역(아펠라시옹)으로 나누어져 있고, 크뤼 아르티장부터 그랑 크뤼까지 분류와 등급도 세밀하게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것쯤 하나도 몰라도 된다. 메독 곳곳을 오가는 사이, 와이너리의 문을 하나씩 열고 한 잔 두 잔 시음하는 와인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까. 보르도 여행법은 단지 먹고 마시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랑 크뤼의 눈부신 날들
가장 좋은 와인을 의미하는, 또 가장 비싼 와인을 의미하는 그랑 크뤼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건 짜릿하고 황홀한 일이었다. 샤토 마고(Château Margaux)의 아름다운 문 앞에서 환호했고, 리노베이션 중이라 간발의 차로 새로운 모습을 보지 못한 샤토 탈보(ChâteauTalbot)에서는 아쉬워했다. 샤토 탈보는 여전히 가족 경영을 고집하고 수확하는 모든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 하는 그랑 크뤼 중 하나다. 1864년 피숑 남작이 장인의 포도밭을 물려받으며 시작했고, 현재는 프랑스의 보험회사인 악사밀레짐(AXA-Millésimes)이 소유하고 있는 그랑 크뤼 2등급인 샤토 피숑 롱그빌(Château Pichon Longueville)은 그 우아함과 화려함으로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했다. 중세 시대 성안에는 모든 것이 진정한 앤티크 가구로채워져 있다. 이 안에서 프라이빗 요리사가 요리하는 호화로운 만찬을 즐겼고, 비밀스러운 지하창고에서 각자 자신이 태어난 해의 와인을 찾아봤다. 호수 아래 숨어 있는 테이스팅 룸에서는 좋은 빈티지 와인이 계속 나왔다. 샤토 피숑 롱그빌처럼 은행이나 기업이 와이너리를 소유하는 형태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막강한 자본력과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안주인을 맡고 있는 아름다운 홍보 이사 마리 루이즈 슐러가 말했다. “저희는 헝가리와 포르투갈, 프랑스에 모두 8개의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의 철학은 ‘그 지역다운 와인을만드는 것’입니다. 메독에서는 메독다운, 소테른에서는 소테른다운 와인을 만들어요. 메독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은 블렌딩과 우아함, 그리고 오랜 시간을 견디는 힘이죠.” 이 저택에서의 프라이빗한 정찬은 한번 경험 해볼 가치가 있다. 최소 8인 이상이면 예약이 가능한데, 식사 시간만큼은 이 성을 통째로 빌린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랑 크뤼 3등급인 샤토 팔머(Château Palmer)에서는 서재와 사진 갤러리를 겸하고 있는 테이스팅 룸에서 와인 메이커 사브리나 페르네와 테이스팅을 할 수 있다. 특히 샤토 팔머와 함께 또 다른 레이블인 ‘얼터 에고(Alter Ego)’도 함께 비교하며 시음해볼 수 있었다. “샤토 팔머의 특징은 메를로의 비중이 높다는 거예요. 우리는 가장 좋은 테루아에 메를로를 심어요. 샤토 팔머의 섬세하고 우아한 맛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답니다. 얼터 에고는 샤토 팔머의 세컨드 와인이 아니에요. 즉, 샤토 팔머를 만들고 남은 포도나 와인으로 만드는 게 아니죠. 우리는 얼터 에고를 위한 구획을 따로 경작하고 있어요.샤토 팔머는 골격과 구조가 강하고 장기숙성에 유리한 와인이고, 얼터 에고는 그보다 짧게 숙성해서 신선하게 마시는 와인이죠.” 이쯤 되면 궁금해질 법하다. 프랑스어를 못해도 메독을 여행할 수 있을까? 놀라운 일이지만, 와이너리에는 ‘영어 전담관’이 꼭 한 명은 있다! 게다가 나파 밸리에 비해서 아직 덜 상업화된 메독은, 무료이거나 적은 금액으로 그랑 크뤼 와인 서너 가지를 테이스팅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등급의 와인도 마찬가지다. 와이너리 입구에 ‘Dégustation(시음)’이라고 적혀 있다면 와인 여행자들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뜻이다.


1 그랑 크뤼 2등급인 린슈 바주에서 소유한 코르데이양 바주 호텔. 장-뤽 로샤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도 여기있다. 23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인 샤토 카스테라의 와인 저장고. 3 린슈 바주에서는 과거 양조 시설을 그대로 보존해 갤러리로 쓰고 있다.

숨은 와이너리 찾기
보르도에서 당부하고 싶은 말. 절대 ‘그랑 크뤼’ 와이너리만을 찾아 다니지 말 것. 물론 세계적 추앙을 받고 있는 그랑 크뤼 와이너리의 문을 여는 것은 보르도 여행에서 아드레날린이 증폭될 만한 일이지만, 다양한 등급의 와이너리를 찾는 기쁨도 그보다 덜하지는 않았다. 크뤼 부르주아 등급으로 AOC 물리스(Moulis)에 속한 샤토 르베르디(Château Reverdi)는 세심한 테이스팅 프로그램으로 ‘와인 투어리즘’ 상을 타기도 했다. 공동 소유주인 여동생이 ‘바캉스’를 떠난 사이 마티유 토마가 혼자 포도밭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 이곳은 ‘르베르디’라는 이탈리아 가문의 소유였죠. 그래서 이탈리아식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밭에서 는 종종 로마 시대 유물이 나와요. 농업기구나 수로의 흔적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이 농경에 적합한 땅이었다는 증거죠.” 마티유 토마는 경작부터 수확, 양조, 블렌딩과 시음 등 와인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이곳의 테이스팅 방식은 다른 곳과 다른데, 테이블 위에 빈 와인잔과 함께 실린더가 놓여 있다. 메독의 대표 품종인 카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프티 베르도를 각각 시음해 각 품종의 특징을 이해한 후, 각자 자기만의 비율로 와인을 블렌딩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메독 와인의 매력은 바로 ‘블렌딩’에 있음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카베르네 쇼비뇽은 타닌으로 성격을 부여하죠. 메를로는 멋진 과일향과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고, 프티 베르도는 가장 적은 비율로 사용되지만 짙은 색깔과 아름다운 제비꽃 향기를 가지고있어요.” 12만 병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지만, 평균적으로 한해 7만 병 정도만 생산한다. 품질관리를 위해 각별하게 선별한 포도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찾아간 AOC 포이약에 속한 샤토 줄리아(Château Julia)는 1.5헥타르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작은 와이너리만 가질 수 있는 매력이 듬뿍 담긴 곳이었다. 푸시아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소피 마르탱은 다른 와인 메이커처럼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다. 샤토 줄리아는 그랑 크뤼 등급인 린슈 바주와 샤토 라투르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그녀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들은 항상 제게 포도밭을 팔라고해요!” 한 해 4천 병을 생산하는 샤토 줄리아. 손으로 하기 어려운 코르크 작업만 제외하면 경작은 물론, 라벨까지 일일이 손으로 붙이는 순수한 ‘핸드메이드’ 와인이다. “저는 15년 정도 숙성해야 하는 포이약 스타일의 와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이 지역에선 드물게 바로 마실 수 있는 와인을 추구해요. 그래서 메를로와 카베르네 쇼비뇽을 9 : 1 비율로 블렌딩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5 : 5의 비율을 유지하거든요. 포이약의 인지도 덕분인지 반응은 좋은 편이에요. 요즘은 페이스북도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 되는 것 같고요. 페이스북을 보고 많이 찾아오거든요!”


1 중세 시대에 지어진 샤토 카스테라. 손님들이 이 성의 침실에서 묵어 가기도 한다. 2, 6 샤토 모카이유에는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와인에 대한 상식을 보기 좋게 꾸며놓은 박물관이 있다. 3 그랑 크뤼 4등급 샤토 탈보의 와인 저장고. 4 메독의 레드 와인은 육류와 아주 잘 어울린다. 돼지고기로 만든 차가운 전채 요리에 샤토 카스테라의 와인을 곁들였다.5 마른 포도나무 가지로 굽는 두툼한 티본 스테이크는 보르도의 명물이다. 7 라벨 작업까지 손으로 직접 하는 샤토 줄리아. 8 보르도에서 탄생한 디저트 카늘레.

샤토에서의 하룻밤
우리나라에서도 꽤 인기가 좋은 크뤼 부르주아 등급의 샤토 카스테라(Château Castera). 이곳은 메독에서도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다. 얼마나 오래되었냐면, 14세기부터 와인을 만든 기록이 있고, 이곳의 고문서에 <수상록>을 쓴 몽테뉴도 등장할 정도다. 몽테뉴의 형이 샤토 카스테라의 상속녀와 결혼했기 때문에 몽테뉴 역시 이곳에 자주 왔다고 한다. 긴 역사를 지닌 샤토 카스테라는 아름다운 중세 시대 성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 채의 별채는 물론, 가족을 위한 작은 예배당도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묵어 갈수 있는 침실도 마련되어 있다. 현재 이곳을 소유하고 있는 독일인 오너가 한 달에 한 번쯤 이곳을 방문해 며칠 머물기도 하고,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날 손님은 오직 우리뿐이었다. 하룻밤을 머물 우리를 위해 샤토 카스테라의 와인 메이커와 세일즈 디렉터가 직접 저녁을 차리기로 했다. 그러니까, 두 아저씨가 직접 ‘보르도 가정식 만찬’을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과연 아저씨들이 요리를 잘할 수 있을까? 성의 정원, 가장 큰 떡갈나무 아래에서 아페리티프로 샴페인을 마시는 것으로 긴 저녁이 시작되었다. 의자를 빙 둘러 놓고, 겉에 곰팡이가 살짝 핀 살라미를 썰어 먹었다. 메독은 곧 레드 와인의 땅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흰 와인’을 본 우리는 새삼 반가운 마음으로 샴페인 두 병과 살라미 한 덩이를 해치운 뒤 부엌으로 향했다. 커다란 화덕과 가스레인지가 있는 부엌. 작은 창밖으로는 이제 익숙한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부엌의 커다란 식탁에는 음식을 제외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세일즈 디렉터는 야생버섯과 감자를 볶고, 허브를 뿌렸다. 와인 메이커는 코르크따개 대신 거대한 바비큐용 포크를 들고 있었다. 엄청나게 크고 두꺼운 스테이크가 화덕 옆에 의기양양하게 놓여 있었다. “보르도식 스테이크는 유명하죠. 간단하게 말하면 티본 스테이크예요. 마른 포도나무 가지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이 한풀 꺾일 때 그릴을 올려 스테이크를 구우면 되죠.” 여기에 특별한 소스가 필요하다. 그건 바로 다진 샬럿! 양파의 일종인 샬럿을 아주 잘게 다져서 스테이크 위에 가득 올린다. 이게 바로 보르도식 스테이크인데, 스테이크를 내는 보르도 레스토랑 어디에서나 바로 이 ‘샬럿 소스’를 만날 수 있다. 맛있게 구운 스테이크와 야생버섯감 자볶음 그리고 프랑스식 순대 부댕과 차가운 전채 요리. 여기에 디저트와 무슈 카스테라들이 선별한 샤토 카스테라의 눈부신 와인들까지! 레스토랑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와인 페어링을 하는 것보다 백 배는 더 신나는 저녁이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샤토 카스텔라의 이야기도 옛날이야기처럼 맛있었다. 그날, 우리는 밤 10시까지 해가 지지 않던 하늘이 깜깜해져 별이 빛날 때까지 먹고 마셨다. 마지막에는 핸드드립한 커피에 족히 100년은 되어 보이는 팬으로 데운 우유까지 넣어 마셨는데, 더 이상은 한입도 먹을 수 없다고 모두 비명을 지른 후에야 긴 식사가 끝났다. 이게 바로 ‘보르도 가정식 만찬’이다. 다음 날, 눈을 뜬 다음에 비로소 샤토에서 보낸 하룻밤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아침 햇살이 성의 구석구석을 비추고, 여기저기서 맑은 새소리가 들렸다. 강렬한 햇살을 막아주는 덧창을 열고, 다시 유리창을 열면 빛이 가득 들어왔다. 견고함 위에 시간이 덧씌워진 아름다운 성. 정원을 바라보는 야외 테이블에는 브리오슈와 함께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샤토 카스테라의 와인 라벨에는 바로 이 성이 그려져 있다


1 둘러보기 좋은 바주 마을. 다양한 셀렉트숍과 식료품점이 있다. 2 보르도 시내 오페라 극장에 위치한 카페 오페라의 전채 요리. 3 언덕 위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는 샤토 르 크록의 와인 저장고. 4 샤토 줄리아의 작은 와인 저장고에서의 와인 테이스팅 시간.

보르도에서는 누구나 대식가처럼
와인이 있는 곳에 음식이 있고, 음식이 있는 곳에 와인이 있다. 적어도 보르도에서는 그게 룰인 것 같았다. 게다가 파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먹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보르도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메독을 가로지르는 지롱드 강부터 보르도의 끝자락에는 바다까지. 그래서 땅과 산, 강과 바다에서 나는 다양한 재료를 아낌없이 쓸 수 있다. 첫 식사는 보르도 시내에 있는 오페라 극장에 위치한 레스토랑 카페 오페라(Café Opéra)에서 했다. 황금색과 흑백 줄무늬가 어우러진 호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모던한 프랑스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오크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토넬리 나달리에(Tonnellerie Nadalié)에서도 의외의 맛을 발견했다. 메독에서 가장 큰 오크통 제조 회사인 나달리에는 프랑스는 물론 뉴질랜드와 나파 밸리까지 이른바 ‘프렌치 오크통’을 수출하는 회사다. 오크통 제조 회사 외에도 아버지의 와이너리 샤토 보 리바주(Château Beau Rivage)와 자신만의 클로 라 보엠(Clors La Bohem)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틴 나달리에(Christine Nadalié)가 최근 새롭게 레스토랑 ‘1902’를 낸 것이다. 구내식당처럼 만들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점심시간에는 보르도 사람들로 가득 찰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13유로로 육류나 생선 요리가 포함된 3가지 코스를 먹을 수 있는데, 메뉴는 매일 바뀐다. 개당 650유로를 호가하는 오크통이 만들어지는 흥미진진한 과정을 볼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으니, 그 후에는 ‘1902’에서 오크통처럼 겉과 속을 골고루 구운 보르도식 스테이크를 맛보길. 가이양(Gaillan)에 위치한 보 자르댕(Beau Jardin)은 프랑스인 셰프가 영국인 아내와 운영하는 호텔 겸 레
스토랑이다. 18세기 건물을 개조한 1층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도 있고, 애완용 오리가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정원의 호숫가에서 먹을 수도 있다. 안주인이 하나하나 세심하게 주문을 영어로 도와주기 때문에, 스마트 폰 프랑스어 해독기로 이 단어가 어떤 재료를 의미하는지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 3코스 점심 식사 가격이 25유로. 디저트를 생략하면 21유로지만 디저트를 놓쳐서는 안 된다! 보 자르댕은 보르도에서 보낸 일주일 중 가장 맛있는 식사를 한 곳 중 하나였다. 3코스 식사지만 각 코스마다 7개의 메뉴가 있어, 총 21개의 메뉴 중 3개만 선택하느라 고통스러웠던 것만 빼면 모든 것이 행복했다. 특히 파블로바는 꼭 맛볼 것. 이곳의 파블로바를 먹고 나서야 왜 이 디저트가 전설적 발레리나의 이름을 따게 되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메뉴에 적힌 정식 이름은 ‘피스타치오 샹티이와 캐러멜, 딸기를 곁들인 파블로바’다. 메독에는 재미있는 마을이 있다. 그랑 크뤼 5등급인 샤토 린슈 바주(Lynch Bages)의 오너인 장-미셸 카즈(Jean-Michel Cazes)는 메독 와인에서 입지적인 인물이다. 단지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와인을 주제로 한 다양한 사업과 이곳을 찾아오는 여행자들에게도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와인을 제외하곤 여느 시골처럼 쇠락해가는 마을을 보다못해, 옛 느낌을 되살려 ‘바주 마을(Village de Bages)’을 만들었다. 와이너리와 레스토랑을 제외하곤 별다른 즐길 거리가 없는 메독 내에 멋진 셀렉트 숍들이 모인 작은 마을을 만든 것이다. 와인 가게, 식료품 가게, 리빙 숍, 자전거 숍, 패션 숍 등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에 있는 카페 라비날(Café Lavinal)에서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멋진 식사를 할 수 있다. 도미나 대구로 만드는 생선 요리, 스푼으로 떠먹기도 아까운 근사한 색깔의 아스파라거스 수프와 ‘떠다니는 섬’이라는 뜻의 디저트인 일 플로탕트 등 18~22유로로 멋진 정찬을 즐길 수 있다. 한번쯤은 미슐랭 별이 빛나는 레스토랑을 경험해보길. 코르데이양 바주(Cordeillan Bages) 호텔의 더 레스토랑(The Restaurant)은 보르도에서 유일하게 미슐랭 별 두 개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보르도에서도 오직 두 레스토랑만이 미슐랭 별을 가지고 있어요.” 지배인이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셰프 장-뤽 로샤(Jean-Luc Rocha)는 미슐랭의 별은 영광스럽지만, 그 별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건 음식이라는 것이다. “보르도, 특히 메독의 셰프는 행운아죠. 이곳에는 프랑스에서도 좋은 식재료가 나는 곳이고, 또 좋은 와인도 얼마든지 있어요. 그리고 음식과 와인을 즐길 줄 아는 훌륭한 손님들이 늘 있죠. 물론 그건 가끔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또 셰프는 비밀스러운 주방을 공개했다. 주방은 여느 레스토랑과 같았다. 많은 요리사가 셰프의 손발이 되어 멋진 음식을 창조하고 있었고, 벽에는 주문서가 가득했다. 웨이터들은 완성된 음식을 깃털처럼 가볍게 한 손에 들고, 백조처럼 손님들의 식탁으로 미끄러져 갔다. 셰프의 시그너처 메뉴인 장어 요리와 프아그라를 주문했다. 샴페인으로 시작해 린슈 바주의 레드 와인을 곁들였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정원에서 별을 보며 남은 와인을 마실 수도 있었다. 마지막 만찬이 끝난 후 붉은 볼과 흥얼흥얼한 걸음걸이로 레스토랑 2층에 있는 객실로 향했다. 이런 게 여행에서의 진짜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가는 길. 보르도 공항에서는 유난히 만족스러운 웃음을 띤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입술은 그동안 마신 와인을 증명하는 와인빛으로 살짝 물들어 있다. 그들과 서로 눈인사를 나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다시 보르도를 여행하는 축복이 당신에게 있길.


1 카페 라비날의 생선 요리. 라타투이를 곁들였다. 2 그랑 크뤼 2등급인 샤토 피숑 롱그빌의 성에서 프라이빗한 정찬을 즐길 수 있다. 3 메독 와인생산자 조합에서 생산하는 와인들. 4 아름답게 꾸며진 린슈 바주 와이너리. 5 품종별 포도를 심어 놓은 코르데이양 바주의 정원.

보르도 여행 TIP

보르도의 멋진 숙소 보르도에 왔다면 느긋하게 며칠 머물며 와인 여행을 즐기길. 보르도를 여행하는 사이 한 번쯤 오크통 꿈을 꾸게 된다.
골프 뒤 팽 메독(Golf du Pian Médoc) 골프장 안에 위치한 리조트. 잘 관리된 골프장 위로 해와 달이 뜨는 풍경이 아름다운 리조트다. 웹사이트 hotel-golf-du-medoc.com
코르데이양 바주(Cordeillan Bages) 그랑 크뤼 등급인 린슈 바주에서 소유한 호텔로, 18세기 성을 개조한 호텔이다. 레스토랑과 호텔 연합인 ‘Relais &Chateaux’ 멤버 중 하나. 호텔에서 바로 포도밭이 이어져, 와이너리를 바라보면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 특히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장-뤽 로샤(Jean-LucRocha)의 레스토랑이 있다. 웹사이트 cordeillanbages.com
보 자르댕(Beau Jardin) 영국인 아내와 프랑스인 셰프가 운영하는 부티크호텔 겸 레스토랑. 18세기 저택을 리모델링해 10개의 객실을 만들었는데, 각기방의 형태를 그대로 두어 같은 방이 하나도 없다. 호텔보다 불편하지만 누군가의 저택에서 머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웹사이트 chateaubeaujardin.com

와인 클래스 메독 와인의 등급에 대하여.
그랑 크뤼(Grand Cru) 최고급 와인이라는 증표. 지금의 체계를 만든 주인공은 바로 나폴레옹 3세로, 1855년 열린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만든 후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랑 크뤼 와인은 5개의 1등 급과 14개의 2등급, 14개의 3등급, 10개의 4등급, 18개의 5등급 와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딱 한 번 1973년 샤토 무통 로칠드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상승한 경우를 제외하곤 나폴레옹 3세가 만든 등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게 놀랍다. 와인의 최고이자 정수라고 할 수 있기에 가격이 높으며, 대부분 장기 숙성을 한다.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 부르주아의 와인이라는 뜻처럼, 15세기부터 와이너리를 소유한 부르주아들이 생산한 와인에서 유래했다. 8개 메독 아펠라시옹에 분산된 크뤼 부르주아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전체 와인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크뤼 부르주아는 높은 품질과 함께 제각기 다양한 개성을 자랑해 ‘와인 애호가’들에게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3~4년 정도로 약하게 숙성된 시기에도 마시기 좋다.
크뤼 아르티장(Cru Artisans) ‘장인(Artisan)의 와인’이라는 뜻. 작지만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에 주어진다. 메독에만 있는 등급으로 총 44곳이 있다. 보통 소규모 가족 경영을 통해 와인을 생산하는데, 평균 8헥타르 정도로 크기는 작지만 자부심만큼은 최고다.

와인 여행자를 위한그 밖의 와이너리들
그랑 리스트락 공동 조합(Cave GrandListrac) ‘와인생산자 연합’으로 ‘보르도의 와인 농협’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메독 지방의 모든 포도원이 자신만의 와인 레이블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공동조합에서는 농부의 포도를 수매해 ‘그랑 리스트락’이라는 이름의 와인을 만드는데,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웹사이트 cave-listrac-medoc.com
샤토 밀 로즈(Château Mille Roses) AOC 오메독에 위치해 있다. 아들의 탄생을 축하해 ‘L’enfant’이라는 새로운 와인을 만들 정도로 가정적인 소유주가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아름다운 와이너
리다. 이곳뿐만 아니라 보르도에서는 포도밭 가장자리에 장미를 심은 경우가 많은데, 장미가 포도에 해로운 병충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웹사이트 chateaumilleroses.com
샤토 모카이유(Château Maucaillou) 샤토 모카이유는 18세기부터 와인을 만든 두르트 가문의 소유다. 이 가문은 와인에 대한 몇몇 발명으로 유명해졌는데, 와이너리 안에 박물관을 가지고 있어서 오래된 와인 관련 골동품들과 과거에 와인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웹사이트 maucaillou.com
샤토 오-그라바(Château Haut-Gravat) 라노 부부가 5대째 물려받은 크뤼 아르티장 등급의 포도밭을 운영하고 있다. 본래 크뤼 아르티장은 와인을 만드는 것 외에도 다른 직업이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선대들은 목축업과 겸업했지만 지금은 와인만 만든다. 웹사이트 chateau-haut-gravat.fr
<샤토 블레냥(Château Blaignan) 프랑스 은행인 크레디아르디콜이 소유한 와이너리로 1932년 이래 크뤼 부르주아 등급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 해 60만 병을 생산하는 큰 와이너리다. 이곳은 오
크통 숙성을 잘 하지 않는데, 그래서 특유의 오크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가격도 좀 더 저렴하다. 신선한 과일향을 느낄 수 있다. 웹사이트 blaignan.fr
샤토 생-크리스톨리(Château Saint-Christoly) 두 자매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와이너리를 공동 경영하고 있다. 바다까지 겨우 20km 떨어져 있어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오고, 오크통 숙성실에서는 갤러리처럼 다양한 아티스트 작품의 전시가 열린다. 웹사이트 chateausaintchristoly.com
샤토 르 크록(Château Le Crock) 아름다운 중세 성의 이 와이너리는 크뤼 부르주아 등급이다. 호수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와이너리가 아름답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들를 가치가 있다. 이곳의 손님이 되면 성에 머물 수도 있다. 웹사이트 chateaulecrock.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