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이 끝과 저 끝을 잇는 시내버스 노선은 지도 위에 가장 미세하게 펼쳐진 혈관과 같다. 낯선 도로에 잔뜩 긴장한 자가용 운전자보다 노련하고, 정해진 철로밖에 다니지 못하는 기차보다 자유로운 버스는, 심지어 자전거로도 두 발로도 걷기 힘든 골목과 언덕을 손쉽게 잘도 오른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여행했다. 새로운 풍경에 대한 기대를 안고.

서울
402번 이토록 아름다운 한강, 그리고 남산
402번은 장지공영차고지에서 출발해 뱅뱅사거리, 강남역, 신사역 등 강남의 주요 승차장을 지난다. 한남대교를 건넌 뒤에는 광화문과 서울역버스환승센터를 거친 후 다시 강남으로 돌아간다. 새침하게 되돌아가던 402번은 한남대교를 건너기 직전 숭례문에서 남산 쪽으로 빠져 힐튼호텔, 남산도서관, 후암약수터, 하얏트호텔을 지나는 여유를 부린다. 남산은 본디 아름답지만 두 특급호텔 앞의 풍경은 유독 산뜻하고 여유롭다.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신사역까지 멈추지 않고 한남대교를 한 번에 가로지르는 것도 402번의 미덕이다.
Stop Here 순천향대학병원 한남오거리로 걸어 내려가 길을 건너면 그곳이 바로 서울에서 지금 가장 핫하다는 한남동이다. 한남리첸시아를 기준으로 돌아다니면 된다.

7016번 부암동 언덕을 쉽게 오르는 방법
은평공영차고지에서 출발해 상명대학교로 향하는 버스. 홍대입구역과 신촌역, 서울역버스환승센터, 시청역 등 강북의 중요 버스 정류장을 지나 접근하기 꽤 까다로운 부암동과 세검정에 오른다. 신촌에서 종로로 빠지지 않고 원효로와 갈월동을 들러 빙 둘러가는 통에 시간이 제법 걸리긴 하지만, 그것 또한 버스 여행의 묘미다.
Stop Here 1 하림각 부암동 주민센터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부암동이다. 작년에 문을 연 서울미술관이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2 경복궁역 또는 효자동 서촌을 둘러본 후 직접 부암동까지 걸어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용산02번 오래된 용산의 얼굴을 보다
한신아파트에서 출발하는 버스. 녹사평역에서 출발해 녹사평역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쉽다. 마을버스이긴 하지만 녹사평역과 숙대역, 남영역과 삼각지역까지 용산 미군기지를 둘러싼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유일한 노선이기에 의미 있다. 좁은 골목과 언덕을 따라 동네와 시장이 형성된 후암동, 한창 개발 중인 용산역 주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은 갈월동과 동자동의풍경은 서울이 아닌 것처럼 낯설다.
Stop Here 해방촌오거리 외국인 거주비율이 유난히 높아 다양한 분위기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샘 해밍턴의 컵케이크 가게 ‘슈가 대디’, 내장파괴버거로 유명한 ‘자코비버거’ 본점이 있는 곳도 이곳. 한신아파트 바로 앞의 육교만 건너면 경리단길이 시작된다.

인천
2번 월미도부터 차이나타운까지
월미도에서 출발해 부평을 지나 다시 월미도로 돌아오기까지 이 버스가 지나는 정류장 개수는 자그마치 124개. 인천 앞바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월미도와 인천 차이나타운과 아트플랫폼, 신포닭강정으로 유명한 신포시장, 화평냉면거리가 시작되는 동인천역 등 인천의 주요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Stop Here 1 인천역 차이나타운과 개항박물관,아트플랫폼 등 근대건축물의 흔적을 따라 걷자. ’인천근대문화재 둘레길’이라는 이름의 안내 책자는 역에서 구할 수 있다. 2 백운역 자장면이 주메뉴인 차이나타운의 중국집이 아닌 진짜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산동포자’가 정답이다. 백운역에서 하차한 후 지하철역 3번 출구로 나와 고가도로 밑에 위치해 있다. 3일 전에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는 새우만두가 별미다.

제주
읍면순환버스 원시 제주를 품 안에
제주는 바다만큼이나 돌과 숲이 많은 섬이다. 김녕성세기해변 정류장에서 7시 40분에 출발하는 읍면순환버스(김녕-세화 순환)는 하루에 9대만 다닌다. 출발지인 김녕해변은 새하얀 백사장과 초록빛 바다, 강한 바람때문에 윈드서핑 마니아들이 자주 찾는 곳. 순환버스를 타면 만장굴, 비자림처럼 원시에 가까운 제주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배차 간격이 1~2시간이므로 버스 시간을 잘 알아둬야 일정에 차질이 없다.
Stop Here 1 만장굴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흐르며 생긴 동굴로 끝까지 갔다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분이면 충분하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김녕미로공원이 자리해 있다. 2 비자림 제주에서만 자라는 나무, 비자나무의 군락지로 2800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 태초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3 월정리 해변 바다 자체도 아름답지만 명물이 된 ‘고래가 될 카페’에 들르는 것도 잊지 말 것.

우도순환관광버스 섬 안의 섬, 우도 한 바퀴
우도는 성산포항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15분 거리에 자리한 섬이다.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두 곳의 항구로 들어갈 수 있다. 어디에서 내리든, 일단 우도에 도착했다면 우도순환 관광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섬을 둘러보면 된다. 아름다운 우도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우도봉, 검멀래 해변, 하고수동해수욕장, 영화 <시월애> 촬영장인 홍조단괴해수욕장까지 우도를 한 바퀴 돈다. 앞서 말한 정거장 네 곳에서 매 시간 두 대씩,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며 1일 패스 가격은 5천원이다.
Stop Here 모든 정류장! 버스가 서는 네 곳을 기점으로 여행을 계획할 것. 단 휴가철에는 하고수동해수욕장을 경유하지 않는다.

서일주버스 제주의 서쪽 얼굴을 보는 가장 쉬운 방법
제주도의 오른쪽 해안을 따라 도는 동일주 노선과 함께 여행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애월-한림-협재-중문 등을 통과하며 전 구간을 운행하는 데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서귀포 방면이냐 제주 방면이냐에 따라 정류장의 이름이 달라지기도 하므로 버스를 탈 때 확인하고 타는 것이 좋다.
Stop Here 1 협재해수욕장 제주의 바다에서도 유독 에메랄드빛이 또렷하다. 만화가 메가쇼킹의 게스트하우스 ‘쫄깃센타’, 베이커리 카페 ‘최마담네 빵다방’도 이곳에 있다. 2 한림공원 야자수와 선인장길,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산야초원길 등 9가지 테마로 꾸며진 아름다운 공원이다. 식물 외에도 동굴, 재암민속마을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입장료는 9천원. 3 고내리 올레길 15코스와 16코스가 지나는 곳. 슬렁슬렁 올레길을 거닐며 카페 사냥에 나서자. 바닷가에 자리 잡은 라면집 ‘그대가 바람이라면’, 진한 망고셰이크의 맛이 빛나는 ‘망고레이’가 인기다.

광주
금남 55번 광주의 현재와 근대를 달린다
5.18 민주화운동의 거점이었던 구 전남도청 자리는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성으로 바쁘다. 문화전당역입구에서 승차해 광주 최고의 번화가인 충장로 거리를 지나, 광주 근대건축물의 보고 양림동까지 지나는 코스. 광주역과 전남대사거리 앞에서도 멈추는 알찬 노선이다.
Stop Here 1 충파(북) 광주의 청춘을 엿볼 수 있는 충장로, 금남로와 가까운 정류장. 광주에서 가장 세련된 옷가게와 카페,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는 불로동을 꼭 들를 것. aA 뮤지엄이 광주에 오픈한 aA 라운지가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2 기독병원 아파트단지와 학교, 공원이 어우러진 양림동에는 곳곳에 20세기 초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11년 건립한 수피아홀과 1920년대에 지은 윈스보로 홀이 있는 수피아여고를 비롯해 근대건축물이 구석구석 남아 있어 유적 답사를 하기 위해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우일선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한 윌슨 선교사의 자택, 1904년에 축조한 양림교회 같은 근대양식 건축물과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 등 19세기에서 20세기 초 과도기에 지은 전통한옥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동네다.

전주
165번 전주의 황금노선
전주대학교에서 출발해 남부시장을 거쳐 전주동물원까지 가는 노선으로 전동성당과 한옥마을, 덕진공원에 모두 멈춰 선다. 드문 노선인 만큼 탑승객이 많으니 통학시간이나 러시아워는 피하는 것이 좋다.
Stop Here 1 덕진공원 전주 8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여름이면 호수 가득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연꽃을 볼 수 있다. 연꽃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곳은 밤이면 분수쇼가 열린다. 덕진공원과 나란히 자리한 건지산 편백나무 숲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을 정화하기에 좋다. 2 연화마을 전주동물원과 전북대 기숙사 사이에 자리한 마을로 귀여운 벽화가 가득하다. 평지에 자리해 있어 골목이나 언덕을 오를 필요 없이 벽화만 감상하면 된다.

경주
100번 경주 문화유산 답사기
첨성대, 안압지, 반월성과 복원 중인 월정교 등 경주의 유적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을 경주역사유적월성지구라고 부른다. 보문호를 둘러싸고 형성된 보문관광단지에는 호텔, 리조트가 밀집해 있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100번은 경주의 핵심 관광명소인 월성지구와 보문단지, 그리고 대게로 유명한 감포항을 돌아 종점으로 돌아오는 좌석 버스다.
Stop Here 1 월성동주민센터 첨성대 방향으로 걸어가면 산책하기 좋은 아담한 계림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반월성의 낮은 성곽을 따라 걸을 것. 경주교동법주로 유명한 최씨 집안과 밤에 찾으면 더욱 아름다운 안압지, 그리고 경주국립박물관도 가깝다. 2 경주월드 보문관광단지의 중심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늘어서 있는 자전거 대여점과 스쿠터 대여점에서 자전거나 스쿠터를 빌려 산책을 할 수도 있다. 먹거리는 순두부전문점과 약선요리집인 산드레 등 한식당이 대부분이다. 3 전촌삼거리/전촌해수욕장 감포항과 나정고운모래해변과 인접한 바다로 송림이 조성되어 있어 전촌솔밭해변이라고 불린다. 최근에는 캠핑장으로도 인기다. 상추에 싸먹는 회국수를 비롯해 물회가 유명하다.

부산
38번 부산의 척추, 산복도로
산복은 산의 중턱이라는 의미다. 범일동부터 수정동, 초량동, 감청동, 망양동을 지나는 산복도로는 부산의 시내와 바다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도로다. 일제강점기 때의 부두 노동자와 6.25전쟁의 피난민들이 갑작스레 모여들며 가파른 언덕에 켜켜이 집이 들어선 이곳은 현재도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산복도로뿐 아니라 해운대, 광안리 등 부산의 주요 역도 가로지른다.
Stop Here 중앙공원 민주공원 충혼탑과 4.19위령탑 등이 놓인 추모공원으로 국제시장과 보수동에서 올라오기도 편리하다. 충혼탑 앞에 서면 부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188번 해안도로를 달리는 버스
광복동과 해운대 등 우리에게 친숙한 부산 시내와 완전히 동떨어진 부산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버스다. 1995년 부산시로 편입된 기장군을 가로지르며 해안도로로 빠져나가 바다를 달린다. 일광해수욕장부터 동백, 신평, 칠암, 문중, 문동 등 5개 마을이 해안을 따라 횟촌을 이루고 있으며 대변항은 멸치회로 유명하다. 배차 간격은 20~25분 정도로 지하철역은 부산지하철 4호선인 동부산대학역, 안평고촌역과 가깝다.
Stop Here 1 교리초등학교 기장군청과 간이역인 기장역과 가까운 정거장이다. 조용한 작은 동네를 둘러보는 마음으로 내릴 것. 민속촌처럼 꾸며놓은 한정식집 ‘흙시루’, 매일 아침 제주에서 들여오는 두툼한 생갈치구이를 맛볼 수 있는 ‘못난이 식당’은 부산 시내 사람들도 찾는 곳이다. 2 일광해수욕장입구 부산의 변두리에 자리한 조용한 해수욕장. 소나무가 둘러싼 산책로를 걷기에 좋다. 아구찜, 장어, 복지리 등 먹거리도 다양하다.

강릉
501번 강릉의 다른 얼굴
경포대와 주문진 등 강릉의 바다로 향하는 대신, 강릉의 산골을 보고 나오는 노선이다.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기다란 내천, 남대천을 따라 국도를 타고 오봉산과 칠성산을 파고든다. 높이 1천 미터에 달하는 칠성산에 자리한 마을 왕산면과 강과 저수지가 펼쳐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강릉의 시골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Stop Here 안목 501번의 출발지점이자 종점이다. 커피거리가 조성되어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여는 카페가 많으니 커피나 음료를 테이크아웃해 여정에 오르도록 하자.

313번 강릉의 작은 바다
313번은 사천해안로를 시원하게 달린다. 강릉역과 인접한 구터미널 정류장에서 탑승하면 강릉 시내와 경포대를 거쳐 해안도로로 진입한다. 사근진, 순굿, 순개울 등 이름만 들어도 순하고 예쁜 강릉의 작은 바다를 지나 사천진리종점에서 다시 강릉 시내로 돌아온다. 사근진 해변은 국내 유일의 애견 해변이기도 하다.
Stop Here 1 오죽헌앞 사천진종점에서 강릉시내로 돌아올 때 하차한다. 율곡 이이의 생가로, 기념관과 강릉시립박물관이 한데 모여 있다. 2 사천진리종점 사천진리항은 본디 양미리와 도루묵으로 이름났던 곳. 최근에는 물회집이 늘어나고 있는데 장안횟집이 대표적이다.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와플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 카모메도 핫플레이스!

통영
700번 통영의 섬, 미륵도
미륵도는 통영에서 가장 큰 섬으로 꼽힌다. 통영대교를 건너는 700번은 통영시와 미륵도를 연결하는 버스다. 통영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며, 한려수도 케이블카 탑승장에 정차한다.
Stop Here 케이블카 탑승장 2008년 개시한 한려수도 케이블카는 선로 길이 1975m에 달하는, 국내 최장의 케이블카다. 케이블카를 타고 단숨에 미륵산 정상에 오른 후, 산과 멀리 보이는 한려수도의 정취를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도록. 한려수도를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다.

301번 통영은 시장으로 통한다
통영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미수동까지 다니는 버스는 매립지인 신시가지부터 시청과 시장 등이 있는 구시가지를 모두 지나는 노선이다. 300번, 321번과 노선은 유사하지만, 하루 29회로 배차가 잦아 이용이 편리하다. 서호시장과 중앙시장, 북신시장 등 통영의 주요 시장에 모두 정차하는 것도 특징.
Stop Here 1 서호시장 ‘원조시락국집’, 졸복국과 도다리쑥국으로 유명한 ‘분소식당’, 소문난 복집인 ‘만성복집’, 통영의 별미인 우짜 맛집 ‘할매우짜’, 영화 <하하하>에서 윤여정 식당으로 등장한 ‘호동식당’이 모두 서호시장에 있다. 대부분의 가게가 새벽부터 문을 연다. 2 중앙시장 통영의 상징처럼 된 나폴리모텔의 옆 골목으로 오르면 동피랑벽화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통영항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망산 국제조각공원도 지척이다.

태안
태안-소원 오래된 태안의 바다
태안터미널에서 출발해 만리포와 천리포 해수욕장을 지나 종점인 소원면에 들어갔다 나오는 농어촌버스다. 태안터미널에서 버스표를 미리 구입해서 승차해야 하며, 목적지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번잡한 만리포 해수욕장보다는 한결 조용한 학암포나 천리포에 들를 것을 권한다. 천리포 옆에는 바다가 보이는 수목원, 천리포수목원이 있다.
Stop Here 천리포수목원 귀화한 미국인 민병갈 선생이 평생 동안 가꾼 곳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중 하나로 꼽히며 수목원 내부에 게스트 하우스가 마련되어 있다. 간재미무침과 아나고두루치기가 맛있기로 소문난 천리포횟집과도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