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제과점의 위세에 눌려 영영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동네 빵집들이 다시 하나둘 골목으로 돌아오고 있다. 가까이에 있어서 더 좋은, 소박하고 정직한 우리 동네 빵집 순례기.

주재료를 풍성하게 넣는 것이 그랑부아의 비결이다.

그랑부아
방배동의 아파트 단지 앞에 자리 잡은 그랑부아는 잘하는 걸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곳이다. 그랑부아의 원칙은 한 가지다. 주재료를 무조건 듬뿍 넣을 것! 맥 빠지게하는 답일 수도 있지만 그 위력은 대단하다. 베어무는 순간 바로 크림이 터질 듯이 쏟아져 나오는 슈, 피칸이 입속에서 가득 부서지는 피칸 타르트가 맛이 없을 리 만무하니까. 두꺼운 타르트의 필링과 캐러멜처럼 진득하게 달라붙은 설탕이 어찌나 달콤하게 입을 휘감는지는 먹어본 사람만 안다. 처음에는 타르트와 스콘 몇 가지뿐이던 빵 종류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그랑부아는 이제 빵과 디저트 마니아들이 ‘순례’하는 가게 중 하나가 됐다. 메뉴가 늘어나며 부엌을 확장 공사한 탓에 홀은 테이블을 하나 겨우 놓을 정도로 작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조연희 대표의 감각이 돋보이는 내부는 절대 좁거나 번잡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그랑부아를 찾을 때면 넉넉한 크기의 빈 가방을 들고 갈 것. 집에 가져와 두고두고 먹고 싶은 메뉴가 가득하니 말이다.

가격 피칸 타르트 5천3백원, 우유크림빵 1천8백원 영업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주말은 오후8시까지) 주소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1020-10 문의 02-597-3948

아토피에 걸린 아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순한 빵을 만드는 빵집. 아쉽게도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빵집
혼자서 빵집의 모든 빵을 구워내는 김혜경 대표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냉동빵이 아닌, 맛있는 빵을 먹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제빵을 시작했다.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한 빵을 만들어야 한다는 확신은 채식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동안 한층 깊어졌다. 빵집은 동물성식품인 버터와 달걀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100% 유기농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요거트, 단팥소, 과일 즙을 직접 만드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하는 덕에 가게를 열지 않는 주말에도 분주하지만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며 들렀던 동네 손님들이 하나둘 단골이 되는 것을 보는 지금이 즐겁다. 매일 종류를 조금씩 달리하며 10종류 남짓한 빵을 선보이는 만큼 재미있는 빵도 많다. 직접 벗기고 말린 오렌지껍질 맛이 물씬 풍기는 오렌지 커런츠 브레드, 빵의 반은 시금치가루를, 남은 절반은 요거트를 넣어 만든 시금치요거트치즈빵 등 오늘은 어떤 빵이 있을지 들를 때마다 마음 설레는 곳이다.

가격 오렌지커런츠브레드 4천8백원 시금치요거트치즈빵 4천2백원 영업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75-42 문의 070-8886-0900

롤케이크만큼이나 아기자기한 실내.

쉐즈롤
4년 전 같은 제과점에서 일하다 만난 남자와 여자가 함께 빵집을 차렸다. 서교초등학교 바로 맞은편에 자리 잡은 작은 가게 쉐즈롤은 보기 드문 롤케이크 전문점이다. 일본여행에서 맛본 롤케이크 맛에 반한 것이 첫 번째 이유, 하나만 잘하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던 게 그들이 쉐즈롤을 차린 두 번째 이유다. 생각해보면 롤케이크는 참 모난 구석이 없는 빵이다. 푹신한 시트 사이에 그만큼 달콤한 크림을 품은 채 동그랗게 둘둘 만 생김새라니! 초콜릿과 플레인, 녹차, 그리고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라즈베리를 넣어 만드는 베리롤까지. 딱 네 종류의 롤케이크만 만드는 쉐즈롤은 시트에 가장 공을 들인다. 입에 넣는 순간 촉촉한 기운이 가득 퍼지는 롤은 섬세하고 부드럽게 혀에 녹아든다. 아들, 딸이 선물한 쉐즈롤의 롤케이크를 처음 맛본 50~60대 손님들이 가게를 찾는 일이 많은 것도 자랑이다. 커피가 없는 대신 홍차와 우유 등 롤케이크와 더 어울릴 만한 음료를 메뉴판 가득 마련했다.

가격 미니사이즈 롤케이크 3천5백원부터, 마리아주 프레르 홍차 5천원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42-19 문의 070-8152-0401


디저트 카페 라비앙봉봉을 이끌었던 쌍둥이 자매가 차린 빵집, 플라워앤. 흰빵, 하드롤, 무스케이크 증 제법 다양한 빵을 맛볼 수 있다.

플라워앤
테라스에 가득한 화분과 가게 이름 때문에 꽃집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지만 이름 그대로 플라워앤(Flour&)은 엄연한 빵집이다. 근사한 디저트로 수많은 마니아의 사랑을 받았던 디저트 전문점 라비앙봉봉의 쌍둥이 자매가 빵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싶어서 새로이 차린 가게인 만큼,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내공을 뽐낸다. 살구, 베리크림, 팥과 연유가 흘러내리는 흰 빵을 비롯한 디저트빵, 먹어도 질리지 않는 딱딱한 하드빵, 그리고 라비앙봉봉 시절의 인기 메뉴였던 무스케이크까지. 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빵집 치고는 제법 많은 품목을 갖춘 플라워앤의 진열대에서, 어떤 것을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스럽다면 카운터의 시식 코너를 이용하면 된다. 큼직하게 자른 시식용 빵이 인심 좋게도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으니까. 화려한 디저트를 만들던 그녀들이 수수한 빵의 매력에 빠진 이유는 빵이 건강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몸에 좋다’고 하기엔 약간 망설여지는 케이크와 달리 빵은 좋은 재료와 시간을 맘껏 투자할 수 있으니까. 새벽 6시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플라워앤의 주방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판매하는 아침세트도 놓치지 말 것을 권한다.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제법 근사한 일일 테니.

가격 우유크림단팥빵 2천5백원,카카오브레드 3천원 영업시간 오전 8부터 오후 10시까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95-171 문의 02-556-5565

아티장이라는 말 그대로 장인 정신에 입각해 빵을 만드는 아티장 베이커스. 사워종 빵에 대한 애정이 지극한 곳이다.

아티장베이커스
아티장베이커스의 주인인 모태성 대표의 사워종(Sour Dough) 빵 사랑은 지극하다. 호주에서 요리를 공부하던 셰프가 빵의 매력에 빠져 베이커로 전향했으니 그 사랑을 짐작할 만하다. 사워종 빵은 이스트 대신 천연효모인 사워종과 밀가루, 물을 이용해 만드는 빵이다. 부풀기까지의 시간,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워종 빵은 사람처럼 생김새도 각각 다를 뿐 아니라 어린아이 돌보는 것처럼 손도 많이 간다. 그럼에도 모태성 대표가 사워종 빵을 고집하는 이유는 사워종 빵이야말로 어디에나 어울리는 건강한 진짜 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식감은 다소 거칠지만 고소하고 시큼한 맛이 씹을수록 매력적인 아티장베이커스의 사워종 빵은 호밀사워종, 무화과와 올리브를 넣은 사워종 등 그 종류도 제법 다양하다. 좋은 빵에는 좋은 음료를 곁들여야 하는 법이라서, 전남 영광군의 목장에서 가져온 우유, 요거트, 발효 버터도 함께 판매한다. 주말에는 다양한 베이킹 수업을 진행하니 시간표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가격 사워종 빵 3천5백원부터, 목장우유 4천2백원 영업시간 오전 10부터 오후 9시까지 주소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30-3 문의 02-749-3426


서촌의 느긋한 빵집 슬로우브레드에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밀의 조합이다. 투박한 생김새와 달리 진하고 또렷한 맛을 자랑한다.

슬로우브레드에버
슬로우브레드에버의 문혜영 대표는 일본의 나카무라 요리학교 출신이다. 과자, 케이크 등 일본식 디저트 조리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한 학교지만 일본으로 떠난 문혜영 대표의 시선은 자꾸만 투박하고 단순하게 생긴 빵에 머물렀다.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밀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밀을 사용하고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비슷하게 생긴 빵들이 각기 다른 맛과 식감을 뽐낸다는 사실에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그래서 차린 가게가 바로 슬로우브레드에버. 경복궁 서쪽에 자리한 서촌은 서울에서 가장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동네이니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을 찾은 셈이다. 천천히 느긋하게 만든 빵은 순하게 생겼지만 개성은 또렷하다. 특히 초콜릿을 듬뿍 넣어 진한 초콜릿 맛을 자랑하는 초코발효종빵은 인기 메뉴이니 꼭 맛볼 것. 빵집을 찾는 동네 손님들을 위해 식빵과 바게트, 치아바타도 굽는다. 오는 10월, 좀 더 큰 가게로 자리를 옮기면 샐러드와 수프 등 빵과 함께 어울리는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 멀리 떠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새로운 가게의 위치는 바로 맞은편으로 정했다니 참 다행이다.

가격 크랜베리저온발효빵 3천5백원, 초코발효종빵 4천원 영업시간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주소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104 문의 02-734-0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