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우면서도 매혹적인 여행지를 한 군데 말하라면, 단연 부산이다. 과거와 미래, 자갈치시장의 비린내와 매끈한 마천루들, 서핑과 파티로 북적이는 항구의 여름. 그곳으로부터 온 가장 새롭고 근사한 소식들.

 

밤의 광안대교. 오래된 부산을 센텀시티, 그리고해운대가 있는 새로운 부산과 잇는 다리다.

밤의 광안대교. 오래된 부산을 센텀시티, 그리고
해운대가 있는 새로운 부산과 잇는 다리다.


1. 광안대교
2013년 부산의 이미지는 이 풍경으로 대변된다. 센텀시티와 마린시티는 유명한 건축가들이 세운 유리 바벨탑들로 가득하다. 하늘을 눌러 터뜨릴 듯 높이 솟은 능선은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축조되었으며, 쇼핑몰과 건물들은 ‘최고’ ‘최장’ ‘최대’의 슬로건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다.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것이 광안대교다. 매립한 땅 위에 세운 신시가지와 오륙도를 품은 옛 동네를 잇는 교각은 바다 위에 지은 다리들 중 최장 길이를 기록했다. 운전할 자동차가 없다면 택시에라도 올라 여행자의 치기를 부려보자. 광안대교를 한번 건너달라는 주문을 두고 어떤 기사도 비웃지 않을 것이다. 수평선과 도시 사이에서 내달리는 드라이브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2. 서핑의 메카, 송정
1990년대 말 한국의 1세대 서퍼들은 송정 해변의 진가를 발견했다. 바닷가의 군부대 때문에 개발이 제한되고 행락객들도 해운대로만 모여들던 시절이었다. 동해와 남해 두 바다에 모두 맞닿은 송정에서는 1년 내내 서핑을 즐길 수 있다. 겨울의 북동풍은 거친 파도를 데려오고, 4월부터 10월까지 불어오는 남동풍은 부드러운 물결을 동반한다. 숙련자들이 혹한의 수평선으로 달려간다면, 천천히 허물어지는 여름의 파도는 초보자들에게 알맞다. 1996년에 송정 서핑 학교가 들어선 지 20여 년, 송정은 예전과 다른 활기로 붐비고 있다. 해안 마을에는 서퍼들의 공동체가 형성됐다. 오랜 지기가 된 서핑 스쿨의 강사들, 서퍼가 다른 서퍼들을 위해 운영하는 하와이식 펍이 매력적이다. 인근의 서핑 스쿨에서는 1일 체험부터 개인 강습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사흘에 걸쳐 6시간 정도 강습을 받고 나면 보드 위에서 일어서는 동작까지 익힐 수 있다. 서핑이 목적이었다면 식사 시간에도 그 기분을 이어보자. 하와이안 펍 ‘하이’는 발리에서 서핑 스쿨을 운영하다 귀국한 서퍼가 운영한다. 메뉴는 하와이식 패스트푸드인 갈릭 슈림프와 발리 요리들. 햇볕 아래 파도와 한참 싸운 후 들이켜는 호가든 생맥주도 기막히다.

 


3. 꼴라메르까토
달맞이 언덕에서 바라보는 해운대는 각별하다. 완만한 경사를 타고 이어지는 레스토랑과 카페들 가운데 유독 기막힌 풍경을 간직한 이곳은 이탤리언 레스토랑 꼴라메르까토다. 꼴라메르까토는 언덕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해월정 바로 앞의 건물 5층에 올라서 있다.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활짝 열린 테라스가 시선을 붙든다. 언덕 기슭의 숲이나 북적이는 해변조차 시야에서 지워진다. 창가 좌석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아득한 수평선뿐. 6층의 별실 또한 특별하다. 야외와 연결된 넓고 우아한 방 안에 테이블은 단 하나. 풍광이 좋은 식당들은 주방에 소홀하기 쉽지만, 꼴라메르까토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적절한 가격으로 선보이는 런치 코스가 매력적이며, 새 메뉴로 등장한 마스카포네 치즈 버섯구이 역시 반응이 좋다.
주소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1490-3 문의 051-744-5583

 


4. 해변의 휴식, 스파
‘씨메르’는 ‘바다와 하늘’을 뜻하는 프랑스어. 작명의 유래는 무엇인지, 부산에서 최고의 스파를 뽑는다면 왜 이곳이어야 하는지, 씨메르 스파는 야외 데크의 전망만으로 의문들을 해소한다. 해변 바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노천 스파는 부산에서 이곳밖에 없으니까. 스파 배스의 뒤쪽, 시야를 두 종류의 파란색으로 나누는 수평선은 첨단 시설과 실내 장식으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풍경이다. 온천욕과 버블 매트를 제공하는 테라피 존에서 피로를 푼 후 아쿠아바에서 탄산수 한 잔을 주문해보길. 해변에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소음을 귓등으로 흘려보내며 호젓하게 즐기는 휴식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주소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1408-5 문의 051-749-2358

 


5. 팥빙수 거리
커피 빙수, 녹차 빙수. 딸기 빙수…. 사각이는 얼음이 온갖 색깔들로 변주되기 전의 얘기다. 부드럽게 삶은 팥과 우유만으로 완성한 팥빙수, 그 간결하지만 명징한 단맛을 기억하는지? 남포동 B&C 골목에서 보수동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번잡한 소로의 왼편으로 70년대식 쇄빙기를 올린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다. 겨울엔 단팥죽, 여름엔 팥빙수를 파는 이 골목을 시장 상인들은 ‘팥 골목’이라 부른다. 아주머니들이 직접 쑨 단팥은 조금씩 맛이 다르지만, 팥빙수의 구성은 모두 비슷하다. 쇄빙기에서 막 갈아낸 얼음 위에 팥과 사과잼, 프루츠 칵테일, 연유를 터프하게 올린 후 손님에게 낸다. 옛날식 팥빙수지만 반가움보다도 맛있다는 감탄이 먼저 떠오른다. 그것이야말로 원형의 힘일까?

 

6. 산복도로
수정동과 보수동, 영주동을 잇는 산복도로의 유명세는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항구의 전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곳의 매력은 그뿐이 아니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건설된 도로는 50년의 세월 동안 동네의 풍경에 완전히 밀착했다. 구 도심의 위쪽에 위치한 산복도로와 그 일대를 돌아다니는 건 도시의 깊숙한 뱃속으로 발을 딛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요정으로 사용된 적산가옥들, 좁은 부지에 모양을 맞추느라 이등변삼각형이나 사다리꼴로 설계된 단층 가옥들은 다른 어디에도 없는 풍경을 완성한다. 그 너머 발아래로는 철책과 물탱크, 화물선과 크레인이 이루는 항구 도시가 있다. 부산의 특급 호텔들에서 최근 선보인 산복도로 투어에 동행하는 것도 괜찮지만, 발길의 본능에만 의존한 채 동네 곳곳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게 더 즐겁다. 출출해지면 부산역이 있는 초량 쪽으로 방향을 틀자. 차이나 타운의 족발냉채와 평산옥의 수육,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부부(Osteria Bubu)’의 콜드 파스타가 당신의 선택을 기다린다.

 


7. 부산에서 세일링
수영만 요트 경기장은 88 올림픽의 수상 경기 종목을 위해 태어났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난 후, 경기장은 계류장으로 용도를 바꿨다. 그로부터 25년, 수영만은 국내외 요티들이 손꼽는 물 위 정거장인 동시에 윈드서핑의 메카가 되었다. 해운대의 변모와 함께 일대의 풍경도 바뀌었다. 계류장 주변에는 거대한 마천루들과 광안대교가 은빛 병풍처럼 둘러섰다. 새하얀 요트들이 햇볕을 받으며 정박한 가운데, 윈드서퍼들은 돛을 붙든 채 방파제를 유유히 빠져나가곤 하는 이곳에서 어떤 이들은 토론토를, 또 다른 이들은 홍콩을 연상한다. 최근 요트 대여 업체들의 등장과 함께 한나절의 항해를 즐길 기회가 늘어났다. 추천할 만한 곳은 요트B(www.yachtb.co.kr). 퍼블릭 투어와 프라이빗 투어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데, 퍼블릭 투어는 승선 시간과 인원수에 맞춰 여럿이 함께 배를 타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갑판 위에는 간단한 스낵이 준비된다. 프라이빗 투어는 3시간 대여료가 1백만원에 이르지만 요트 위의 파티라는 버킷 리스트를 이뤄볼 수 있겠다. 프랑크 시나트라의 스탠더드 넘버들과 샴페인 몇 병을 준비한 채, 출항은 황혼이 번지는 저녁쯤이 어떨까?

 


8. 파크 하얏트 부산
음식, 술, 쇼핑, 그루밍, 디자인, 때로는 예술까지, 라이프스타일의 거의 모든 장르가 밀집한 곳. 호텔을 숙소 이상의 공간으로 만드는 요인은 다양하다. 최근 등장한 특급 호텔들 가운데 유난히 시선을 집중시켰던 파크 하얏트 부산에서 그 핵심은 호텔 외부에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반원 모양의 건물은 온통 유리로 덮여 있다. 유선형의 물고기, 수직으로 꽂은 장검, 혹은 불시착한 우주선. 좀 더 정확한 비유를 떠올리려 애써보지만 그중 무엇도 눈앞에서 보는 실물의 인상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바다를 향해 돌출한 매립지에 지은 데다 호텔이 고층에 위치한 덕에 풍광 역시 멋지다. 객실에 투숙하기 힘들다 해도, 31층과 32층의 두 레스토랑은 한번 방문해보는 게 좋다. 360도로 이어지는 통창은 바다와 요트 계류장, 센텀시티의 스카이라인을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놓는다. 여러 국적이 섞인 메뉴를 보고 음식마저 잡다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파크 하얏트 서울의 총주방장으로 오랫동안 활약했던 스테파노 디 살보는 일식과 한식, 양식을 모두 능란하게 완성해낸다.

 


9. 올모스트 페이머스 파티
2011년 경성대학교 앞에 문을 연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부산에서 가장 ‘핫’한 클럽이다. ‘소돔과 고모라’로 불리는 주말 서면의 클럽들과는 좀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평소에는 좋은 음악을 선곡하는 바이지만, 파티가 열리는 밤이면 부산 최고의 멋쟁이들이 모여드는 클럽으로 변한다. 올모스트페이머스의 파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지금까지 15차례 열린 ‘베이스먼트’. 레게와 드럼앤베이스, 정글 등 사운드 시스템 컬처에 기반한 음악 장르를 바이닐 레코드로트는 파티다. 해외와 서울에서 초청한 뮤지션, 디제이들이 로컬 디제이들과 함께 파티에 참여하는 경우도 흔하다. 8월 3일에는 베이스먼트 2주년 파티가 열린다.
주소 부산시 남구 대연3동 55-2

 


10. 메르시엘에서 여름 정찬을
해운대 달맞이 언덕의 중턱에 위치한 레스토랑 메르시엘은 바닷가로 난 벽을 통창으로 대신했다. 메르시엘은 서울의 미식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12년 동안 세계적인 스타 셰프 레스토랑에서 활동하며 꾸준하게 주목받아온 윤화영 셰프의 첫 레스토랑이기 때문이다. 메르시엘의 요리들은 프렌치 퀴진을 엄밀하게 준수하려는 셰프의 의지에서 출발한다. 이를테면 오리는 체리와 함께 요리하고, 체리는 다시 아몬드와 함께 먹는 것. 식재료의 전통적인 매칭 위에 셰프의 영감과 기술이 더해진 것이 메르시엘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다. 한 층 위에 자리 잡은 브라세리에서는 파스타를 비롯한 가벼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화폭처럼 아득한 수평선을 담은 기막힌 전망은 그대로다.
주소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1502-12 문의 051-747-9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