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스치는 찰나의 순간에 향은 좋은 기억이 되기도, 그렇지 않은 기억이 되기도 한다. 조향사 까밀구딸에게 여심을 훔치는 향기에 대해 물었다.



스타일의 화룡점정은 가방이나 구두보다 향수가 아닐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화롭게 차려입고, 그 스타일에 어울리는 향을 입는 것은 한 단계 더 진화된,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만약, 잘 재단된 실크 드레스를 입고 햇살 가득한 정원을 산책하는 우아한 여성이고 싶다면, 아닉구딸의 향수를 권한다. 아닉구딸은 지중해의 축복받은 기후에서 자란 과일의 풍부한 과즙의 향을 담은 향수니까. 아닉구딸은 프랑스의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패션 모델이었던 아닉구딸이 그라스 지방을 여행하다 향기에 심취해 만든 브랜드로, 인공 향이 아닌 자연에서 얻은 향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30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아닉구딸은“자 연의 고귀한 만물이 나를 이끈다. 감동은 향기로 변하고, 나는 이 꿈을 퍼퓸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건 어머니 아닉구딸의 뒤를 이어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딸, 까밀구딸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서울에서 만난 그녀는 질 좋은 재료, 섬세한 조향, 그리고 고급스러운 패키지라는 삼박자를 갖춘 아닉구딸 향수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최근 한국에서는 니치 향수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브랜드에서 니치 향수를 표방하며 새로운 향수를 선보이고 있는데, 니치 향수의 기준이 될 만한 점은 무엇인가?
우선, 브랜드 안에 조향사가 있는지의 여부다. 브랜드의 이미지와 전통을 향에 고스란히 담기 위해서는 외부 조향사에게 의존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아닉구딸은 나와 이사벨 도엔이 조향을 맡고 있다. 이사벨은 어머니 아닉구딸이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부터 함께 일한 조향사이다. 한편, 향수가 판매되는 장소도 좋은 향수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개성이 강한 니치 향수는 대부분 그 브랜드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취향이 뚜렷한 공간에서 판매된다.

어머니가 일궈낸 브랜드를 이끄는 건 특별한 일일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향수를 만드는 매 순간 함께했다. 아닉구딸의 쁘띠뜨 쉐리는 어머니가 나를 부르던 애칭을 따 이름 붙인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진가에서 조향사의 길로 접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물론, 조향사 이사벨 도엔의 도움도 컸다.

향수를 만드는 데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그림, 소설의 주인공 등 주변의 모든 것이다. 아닉구딸의 오 드 아드리앙은 어머니가 소설 <아드리앙 황제의 기억>을 읽던 중 아드리앙 황제의 전투적이면서도 철학적이고, 풍부한 감성에 매료돼 만든 향수다.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적도 있다. 그리고 여행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콜로뉴 컬렉션은 어머니에 대한 오마주이자 여행의 추억이다. 콜로뉴 베티베르는 어머니와 휴가를 즐기곤 했던 프랑스의 레 섬의 바다를 담았다. 콜로뉴 네롤리는 그리스 여행에서 맡은 오렌지나무의 꽃향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콜로뉴 오 드 아드리앙은 어머니가 만든 오 드 아드리앙 오 드 투왈렛을 오 드 코롱으로 만든 것이다.

향기로운 공간 지난달, 서울에 온 까밀구딸을 만나러 간 한 호텔은 파리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과 매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최근 리뉴얼된 아닉구딸의 새로운 패키지처럼 화이트와 골드로 꾸며진 정갈한 룸, 그녀의 리빙 라이프를 엿볼 수 있는 향초와 퍼퓸 보디 크림이 놓인 욕실, 자연이 살아 있는 옥상 정원, 그리고 영감의 원천, 향기에 대한 기억, 디자인에 대한 구상, 좋은 재료들이 빼곡히 적혀 있는 수첩이 놓인 작업실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또 하나, 커튼과 소파 곳곳에서 풍기던 아닉구딸의 싱그러운 향은 향수가 삶 자체인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1 아닉구딸의 오 드 아드리앙 남성용오 드 뚜왈렛. 시칠리아 레몬과 그린만다린의 향을 담은 시트러스 계열의향수. 100ml 가격미정. 2 아닉구딸의꿸 아모르 오 드 뚜왈렛, 와일드 로즈와블루베리의 향이 어우러진 향수. 100ml가격미정. 3 아닉구딸의 오 드 아드리앙오 드 뚜왈렛. 시칠리아 레몬과 그레이프프루츠, 그린 만다린, 일랑일랑의향이 조화를 이룬다. 100ml 가격미정.4 아닉구딸의 쁘띠뜨 쉐리 오 드 뚜왈렛.배와 복숭아, 로즈 머스크, 바닐라의향을 담은 향수. 100ml 가격미정.

5 아닉구딸의 콜로뉴 네롤리. 200ml 29만원대. 6 아닉구딸의 콜로뉴 베티베르. 200ml 29만원대. 7 아닉구딸의 콜로뉴 오 드 아드리앙. 200ml 29만원대.

여행지에서는 어울리는 향수를 뿌리게 되는데, 당신은 어떤가?
여행지에서는 기후와 풍경, 사람들의 분위기에 맞춰 향수를 선택한다. 그리고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 나라의 여성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권하기도 한다. 한국 여성들에게는 배와 복숭아, 로즈 머스크, 바닐라가 어우러진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쁘띠뜨 쉐리가 잘 어울린다.

조향 일을 할 때에는 향수를 뿌리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
단 하루도 향수를 뿌리지 않는 날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향수를 뿌릴 정도다. 일을 할 때는 콜로뉴 네롤리처럼 은은한 향수를, 저녁 모임에는 좀 진한 송쥬 오 드 퍼퓸을 뿌리는 것처럼 강약을 조절한다. 잠자기 전, 다음 날 입을 옷이나 스카프에 살짝 뿌려두기도 한다.

향수 레이어링에 대한 생각은?
향수는 와인과 비슷하다. 맛과 향이 다른 와인을 섞어 마시지 않는 것처럼 향수도 혼합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향수에는 영감과 원료, 조향 등이 모여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고 있으니 온전히 즐기는 게 좋다. 게다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두 개 이상의 향수를 섞었을 때 그 향이 더 좋아지는 일은 드물다. 만약, 그래도 향수를 레이어링하길 원한다면, 과일 계열은 과일끼리, 우디 계열은 우디끼리 섞으라고 조언한다.

향수를 와인에 비유한 점이 흥미롭다.
조향사 이사벨 도엔과 프랑스 포메롤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레드 와인이 유명한 곳이어서 와이너리에서 머물 일이 많았는데, 그때 향수와 와인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신선한 재료와 다루는 솜씨에 따라 향이 달라지니까. 다만, 와인은 숙성될수록 맛과 향이 좋아지지만, 향수는 숙성되지 못하게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향수는 향 못지않게 패키지가 중요하다. 당신은 어떤 점에 공들이는가?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의 정의는 디테일의 완벽함에 있다. 이를 위해 패키지에 더욱 공을 들이고, 소장가치가 있는 패키지를 추구한다. 그래서 향수병과 장식품은 모두 프랑스에서 수작업으로 만든다. 얼마 전에 선보인 쁘띠뜨 쉐리 뮤즈 리미티드 에디션은 디자이너 아르튀르 베르트랑의 주얼리를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향수 외에도 당신이 생활 속에서 향을 즐기는 방법은?
좋은 향기는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어야 한다. 주방에 향초를 두고, 커튼과 쇼파에 홈 스프레이를 뿌리곤 한다. 그리고 욕실에는 향이 좋은 퍼퓸 바디 크림과 퍼퓸 샤워젤 컬렉션을 구비해둔다.

아닉구딸의 향으로 결정되는 핵심 조건은 무엇인가?
사랑에 빠졌을 때만큼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향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