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봄나물이 나고 봄 바다에는 주꾸미가 제철이다.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식탁으로 가져오는 술집들이 있다. 그날의 재료로 그날의 요리를 만드는 이들 술집의 메뉴판은 참 부지런히도 바뀐다.




1 산호


“한식은 참 어려워요. 한국 사람들은 모두 한식 전문가잖아요. 찌개 하나에도 자기만의 기준이 있죠.” 10년간 외식 업계에서 일해온 김도연 대표가 처음 자기 가게를 내겠다고 결심했을 때 생각한 것은 이자카야였다. 하지만 식재료를 찾아 떠난 여러 번의 국토여행에서 그는 우리 식재료는 우리 음식을 할 때 가장 맛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흔히 한식은 ‘손맛’이라고 하지만 조미료를 넣지 않는 한식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 그리고 ‘장’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강원도에서 된장을 가지고 오고, 민어, 굴 등 철마다 달라지는 전 요리는 신안에서 담가 온 새우젓에 찍어 먹는다. 밑반찬까지 그날그날 만드는 산호는 조림, 찜 등 다양한 일품요리와 함께 와인과 위스키를 곁들일 수 있는 곳이기도 한다. 6월부터 금어 기간에 들어가는 뿔소라, 산란기 직전의 키조개, 봄에만 맛볼 수 있는 미더덕회 등 통영에서 올라온 해산물이 가득한 모둠은 그야말로 봄의 바다를 그대로 담은 메뉴다. 바다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가격 통영해산물모둠 4만5천원, 지미핸드릭스 진 12만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주소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25-7 문의 02-517-0035




2 집구석


미안하지만 또 심야식당 이야기다. <심야식당>의 저자 아베 야로가 한국을 찾았을 때 한국의 심야식당이라며 들른 곳은 아파트 지하상가에 자리한 한 술집이었다. 그리고 그 술집의 단골이던 한 커플이 바로 그 위층에 가게를 차렸으니 세상에는 참 인연도 다양하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리포터로 활약하며 맛있는 것을 찾아 다녔던 여자와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가 차린집구석은 친절한 술집이다. 집에 놀러오는 손님과 나누는 것처럼 스팸과 계란프라이, 등갈비구이 등 어떤 맛인지 궁금하기보다는 친숙한 음식들을 솜씨 좋게 차린다. 매일 재래시장에 들러 사오는 재료는 자연스레 계절을 담는다. 해물냉채 소스에 들어가던 한라봉이 봄이 깊어지며 제철인 딸기로 바뀌고, 등갈비 구이 위에 잔뜩 올린 달래는 여름이 되면 또 다른 나물로 바뀔 것이다. 두 종류인 사케와 맥주, 그리고 소주뿐이던 단출한 주류 리스트에 올여름 생맥주를 추가할 예정이라니, 집구석에 놀러 가는 발걸음이 더욱 신나겠다.

가격 해물냉채, 등갈비달래구이 각각 2만원, 쿠보타 센쥬 8만원 영업시간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신동아아파트상가 1층 문의 02-542-1165




3 하카타 셉템버


하카타 셉템버의 내부는 간결하다. 이 정결함이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한 남자의 단단한 각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이곳에 조금만 머물면 알게 된다. 탄탄한 중소기업의 CEO 자리를 박차고 나와 요리를 배우러 떠났던 40대 남자가, 그 시절 일본의 요리학교와 요릿집에서 만들었던 음식 사진은 지금도 가게 벽을 장식하고 있다. 하카타 셉템버의 요리는 아름다워서 좋다. 계절을 따르는 음식들은 매월 그 계절의 꽃 이름을 달고 상에 오른다. 4월은 벚꽃이고, 5월은 모란이다. 코스 요리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술만 홀짝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세트가 마련되어 있으니 이름하여 ‘고독한 애주가’. 후쿠오카에서 직접 수입하는 하우스 사케와 생맥주 한 잔에 안주 두 세가지가 곁들여진다. 제철인 토란과 쑥갓, 문어 등 그 계절의 채소와 회를 사용하는 안주는 매일 다르다. 양이 적어 아쉽다면 일품요리를 주문하면 된다. 봄철 주꾸미와 키조개, 달래와 땅두릅에 딸기를 장식한 샐러드처럼, 그야말로 눈으로 먹는 요리는 애주가의 고독을 달래기에 충분하니까.

가격 고독한 애주가 세트 3만3천원 영업시간 정오부터 자정까지 주소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13-9 문의 02-549-6139




4 해달밥술


삐뚤삐뚤 늘어선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인 해달밥술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주모’인 편경자 대표가 마음대로 내놓는 요리다. 인당 1만5천원을 지불하면 금액에 맞춰 안주를 내주는 해달밥술에서 요리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요리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푸짐하다는 거다. 어릴 때부터 엄마 대신 동생들을 위해 밥을 차렸던 편경자 대표는 요리하는 게 좋았다. 자란 후에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새로운 음식을 맛봤다. 제주산 줄돔, 영양산 고춧가루 등 지금 해달밥술에 날아오는 식재료들은 그녀가 전국 각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공급받는 것이다. “그날의 요리가 뭐가 될지는 나도 몰라요. 기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재료가 올지는 저도 알 수 없거든요. 한번은 상자를 열었더니 처음 보는 고기가 잔뜩 들어 있더라고요.” 하지만 순식간에 절임 채소와 큼직하게 썬 문어 숙회 한 접시를 가져다 내는 그녀가 못할 요리는 없어 보인다. 그녀는 자연요리 전문가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도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는 술집이라는 뜻이다.

가격 1만5천원~2만원(1인 기준), 막걸리 4천원부터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재료 소진 시까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50-19 문의 02-322-4748




5 이파리


‘나뭇잎 엽(葉)’ 한 자만 덜렁 써 있는 간판을 ‘이파리’라 읽는다. 가게 중앙을 떡하니 차지한 카운터 주변의 의자는 고작해야 10개 남짓. 어떤 요리를 하는 곳일까, 감도 잡히지 않지만 이파리의 정체성은 의외로 명쾌하다. 바로 ‘한식을 내놓는 술집’이다. 연남동에 자리한 최군네 닭도리탕의 젊은 주인이자 ‘최군’으로 익숙했던 그가 새로운 한식을 택한 이유는 ‘왜 이자카야의 안주처럼 맛있고 보기 좋게 한식을 담아내는 술집은 없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밤이 깊으면 고깃집 또는 국밥집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유일한 한식당인 것이 아쉬웠던 그는,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와 함께 이파리를 차렸다. 이파리의 음식은 직접 담근 장과 김치, 오랫동안 천천히 우려낸 육수만으로 맛을 낸다. 고추장과 된장으로 각각 양념을 한 제철 병어회, 노릇하게 구운 숭어전이 보기 좋게 오르는 이파리의 상은 사극에서 봄직한 주안상을 떠오르게 하는 구석이 있다. 여기에 전통주인 죽력고와 이강주라도 함께 나오면 왠지 한시라도 읊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가격 숭어전 1만6천원 병어회 1만8천원, 3대명주 샘플러 7만8천원 영업시간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27-15 문의 010-5188-7766




6 이치에


맛있는 식당은 많다. 하지만 늘 가게 문 닫을 시간도 되기 전에 재료가 먼저 동났던 연남동의 스시집 이노시시와 이자카야 이타치는 유별나게 맛있는 곳이었다. 그 주방을 책임졌던 김건 셰프가 세 번째 라운드를 펼친 곳은 신사동이다. 그리고 지금 이치에는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이 한잔하기 위해 하루 걸러 들르는 곳이 됐다. 재료에 따라 메뉴가 바뀌고, 메뉴가 바뀌면 그에 어울리게 술도 바뀌니 단골들에게도 매일매일 새로운 가게인 셈이다. 김건 셰프에게 제철 요리는 당연한 의무다. “서울에서 제철 재료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안 해서 그렇죠.” 다부진 젊은 셰프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재료다. 신안 갑오징어, 완도산 도미 등 산지에서 올라온 좋은 재료에 원초적인 조리법을 가할 때 가장 음식이 맛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가 제일 좋아하고 자신 있는 요리는 여전히 사시미다. 두 달에 한 번씩은 교토, 오사카, 도쿄 등으로 떠나는 그는 일본의 맛을 서울의 식탁에 충실히 재현한다. ‘일본에서는 벚꽃 필 때 도미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며 커다란 도미를 내주는 그의 손이 듬직했다.

가격 두릅갑오징어튀김 1만6천원, 도미간장조림 2만9천원, 치요무스비 준마이 다이긴조 10만원 영업시간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주소 강남구 신사동 656-7 문의 070-4273-4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