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전혜빈은 자신이 걸어온 연기자의 길을 ‘타박타박 잘 걸어왔다’고 표현했다. 어쨌든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건 우리도 안다. 이렇게 가만히 정지한 순간에도 그녀는 어디론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 같으니까.

롱 드레스는 드민(Demin),골드 뱅글은 프란시스케이(Franciskay), 슈즈는나무하나(Namuhana).

롱 드레스는 드민(Demin),
골드 뱅글은 프란시스케이
(Franciskay), 슈즈는
나무하나(Namuhana).

 

블랙&화이트 톱은 비나정(Vina J),스커트는 박윤정(Vacyuunzung).뱅글과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화이트 톱은 비나정(Vina J),
스커트는 박윤정(Vacyuunzung).
뱅글과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비슷한 시기에 함께 시작한 새 드라마가 많은데, 같은 시간대 프로그램 중에서는 <직장의 신>이 시청률 1위를 기록했어요. 촬영장 분위기가 아주 좋겠는데요?
가장 반응이 좋긴 하지만, 아직은 비슷비슷해서 조금 불안하기도 해요. 아무래도 다른 드라마들이 사극이니까, 현대물을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호감을 얻은 것 같아요.

회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처음이죠?
맞아요,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평범한 직장인을 연기해보니 어때요? 연예인이라면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삶일 텐데요.
학교 다닐 때 빼고는 책상에 이렇게 오래 앉아 있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촬영을 주로 회사 건물 내에서 하다 보니, 촬영 대기할 장소도 딱히 없어서 배우들도 다들 자기 책상에 앉아 있어요. 오래 앉아 있다 보니까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학생에서 막 직장인으로 변신한 사람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것도 그 지점이죠!
저희는 워낙 활동적인 일을 하는 사람인데, 움직일 수 없으니까 답답할 때가 많아요. 회사 생활 하는 분들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만약 배우가 되지 않고 회사를 다녔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아요?
한번 생각해봤는데요, 연기하는 일을 안 하고 직장을 다녔더라도 조금이라도 활동적인 일을 했을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만 하는 업무 말고 막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일 같은 거요. 취업도 그렇지만 회사를 성실하게 다닌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지금 극 중에서 순진하고 착한 사원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죠. 순하고 착한 역, 오랜만이죠?
처음에 악역일까 봐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아니었어요. 사람에게, 배우에게 이미지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꼈거든요.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제게 어떤 정해진 ‘이미지’가 있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인정을 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나는 나니까요. 이건 캐릭터일 뿐이고, 시청자들은 연기라는 걸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드라마 속 캐릭터가 배우에게도 씌워지는 것 같고요.

이미지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다고 생각해요?
만들어져 있는 이미지를 깨트리려면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마음고생은 많이 하고, 일일이 사람들 붙잡고 설명을 할 수가 없잖아요. 한 가지 캐릭터에 ‘갇힌다’라는 것 자체가 배우에게는 가장 큰 숙제죠. 저는 오해를 잘 받는 얼굴이에요. 좀 못 되고, 셀 것같이 생겼지만 허당이죠.

바로 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애쓰기도 하잖아요.
아직 마땅한 캐릭터를 잡지 못하는 배우들은 제가 부러울 수도 있겠지만 전 또 자유롭게 다양한 이미지를 오가는 배우들이 부럽고요. 아마 사회생활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직장의 신>의 금빛나 캐릭터도 그래요. 뭘 몰라서 미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나쁜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실수를 하는 건 대부분 그 지점이죠. 뭐가 뭔지 몰라서요.
실수를 많이 하는데, 또 집안은 좋아서 주변에서 봐주곤 하니까 제가 봐도 좀 얄미운 캐릭터죠. 고생 한 번 안 한 설정이거든요. 기사가 회사까지 차를 태워주고, 지하철 한 번 안 타보고. 저와는 정말 반대죠. 저는 고등학교 때는 집은 덕수고, 학교는 분당이고, 연습실은 삼성동이라 차 안에서만 5시간을 있어야 했어요. 버스, 지하철 갈아타는 데 일등이었어요.

연기를 오래 해온 배우들에게서 ‘배우는 직업인이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해요. 배우에게는 촬영장이 직장인 거죠. 그곳에서는 뭐가 제일 중요한가요?
음… 회사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잖아요? 배우는 비정규직이죠. 매일매일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월급이 들어오는 게 아닌 비정규직이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지내는 거 같죠. <가족오락관>에서 하던 폭탄을 돌리는 게임 같다는 느낌을 늘 받아요. 모든 연예인은 아마 가슴속에 불안이 있을 거예요. 인생에서 계획이 필요한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저도 남이 살라는 대로만 살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요?
어렸을 때부터 ‘너는 남자친구 사귀면 안 돼, 너는 연예인이니까 친구들이랑 함부로 놀러다니면 안 돼, 술도 마시면 안 돼’ 같은 제약들이 참 많았어요. 저는 너무너무 자유로운 성격이었는데, 그게 제약이 되니까 어느 순간 위축되고, 불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소속사도 월급제로 바뀌어야 할까 봐요. 활동 많이 하면 인센티브처럼 더 주고요.
하하. 원래 일본은 그렇대요. 배우들은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조급증이 있어요. 그런데 저도 이제는 조금 느긋해졌어요. 원래 뭐 없이도 살고, 있으면 있는 대로 사는 편이거든요. 주어진 거에 감사할 줄도 알고, 받았으면 줄 줄도 알고.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점프슈트는 프라다(Prada).

점프슈트는 프라다(Prada).

 

언더웨어는 CK 언더웨어(CK Underwear), 뷔스티에는비나정(Vina J), 롱스커트는 드민(Demin).

언더웨어는 CK 언더웨어
(CK Underwear), 뷔스티에는
비나정(Vina J), 롱
스커트는 드민(Demin).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당신의 속성은 뭐예요?
저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 뭐든 배우려고 해요. 지난 겨울에는 스키를 배웠어요. 스키를 한 번도 안 타봤었거든요. 다행히 안전하게 잘 배웠어요.

역시 운동에 소질이 있군요.
운동을 좋아해요.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배우는 거 같고요.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해서 그런지 뭐든 빨리 익히는데 실력이 늘지는 않아요.

아직 무용하던 사람의 근육이 남아 있어요. 계속 운동하고 있어요?
저는 운동 안 하고 잘 먹으면 체중이 늘어요. 필요할 때만 빼요. 근육으로 탄탄한 몸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쉽지 않죠. 그런데 운동을 하다 보면 좋은 게, 에너지가 생기거든요.

‘사람의 기는 근육에서 나온다’고 어떤 트레이너가 말했다는데 귀가 솔깃하더라고요.
일리가 있다고 봐요! 몸을 단련하는 거니까요. 저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해요. 만약에 남들보다 내 몸이 빨리 변화되는 걸 보고 싶은 사람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조금 마른 몸에 선이 긴 근육을 갖고 싶으면 필라테스를 하면 되죠. 저는 혼자 할 수 있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해요. 시간 맞춰서 어디 나가고 하는 게 성격에 잘 안 맞더라고요.

아직 초반이라 드라마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는데, <직장의 신>에서 금빛나는 열혈 직원으로 거듭나나요?
아마 러브라인이 있을 것 같아요. 오지호 씨와 제가 옛 연인 관계거든요. 과거의 이야기지만 아직 애증이 남아 있어요. 김혜수 씨와 오지호 씨의 러브라인이 형성되는데, 제가 그 사이에 끼지 않을까요? 내용이 재미있고 반응이 좋으니까 저도 기분이 좋아요. 보통 대본이 나오면 먼저 자기것만 보는데 이 대본은 만화책을 보는 것처럼 기다려져요.

이제 당신이 아이돌 출신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죠?
정규 앨범을 딱 두 번 냈어요. 데뷔했을 때와 솔로로 나왔을 때. 그런데 그 앨범이 저의 첫인상이었던 거예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머지 7년, 8년을 드라마로 채워가면서 정말 많이 깨달았어요. 이제는 아예 의식 못하는 분들이 늘었지만 그게 제게는 너무너무 큰 걸림돌이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더 하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 차예요. 어떤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타박타박 잘 걸어왔구나.” 연예인으로 활동하며 이제 지구력은 좀 생긴 것 같아요!

당신은 항상 용감해 보여요. 맹렬한 삶의 에너지도 느껴지고요. <정글의 법칙> 촬영을 함께 할 수 있는 여배우는 흔하지 않죠.
하하하. <정글의 법칙>은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원래 그때 새 드라마를 하려던 시점이었어요. 그런데 드라마로 고생하나 정글 속에서 고생하나 똑같을 것 같은데, 왠지 정글은 지금 안 가면 평생 못 갈 거 같은 거예요. 한 살 더 먹기 전에 오지를 탐험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마다가스카르라고 하잖아요? 바로 혹했죠.

오지 탐험의 낭만과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르>의 즐거움을 상상했군요!
정말 그런 환상을 갖고 있었어요. 물론 실제는 너무 달랐죠. 하지만 다녀오니까 조금 차가워 보이는 제 이미지에 대한 편견도 많이 깨진 거 같아서 주변에서도 좋아했어요. 오히려 반전효과 같은 것들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소속사에서도 반응이 좋으니까 한 번 더 갔다 오자고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건 좀 힘들겠더라요. 그 공포를 한번 겪어보았으니까 말이죠.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그곳의 풍경이나 그때 했던 생각을 마음에 많이 담아두고 있어요.

<정글의 법칙>에 나온 여자 게스트 중에서 가장 팀에 잘 융화되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든, 인생이든 팀플레이가 중요하니까.
저는 꼭 고집스럽게 지켜야 할 것 빼면 그냥 다수결에 따라다닐 때가 많아요. 이기적으로 굴고 싶지 않거든요. 다 같이 재미있게 일하면 훨씬 좋잖아요. ‘내가 하루 더 예쁘게 나와서 뭐가 크게 달라지는데?’ 이런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이건 장단점이 있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가장 큰 단점이 뭐예요?
그렇게 다수결에 따라가다 보면 정작 마음에 안 드는 게 대부분이라는 거죠!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죠. 예전에는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도 마음에 안 든다는 말도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내 머리통은 이렇게 생겼으니까, 여기를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이야기는 하게 됐지만 사람 마음에 비수를 꽂아가면서까지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앞으로 10년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죠. 사실은 지금 저는 좀 혼란기인 것 같기도 해요. 여자는 30대가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시기잖아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저는 바닷가에서 핫팬츠 입고 롤러블레이드 타면서 막 뛰어다니는 게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또 ‘제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나이에 맞는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찾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방법은 아무도 안 가르쳐줘요. 어쨌든 나머지 10년을 좀 더 잘살아봐야죠.

<직장의 신>이 끝나면 또 뭘 배울 거예요?
하와이에서 서핑을 배우려고요! 이건 꼭 지금 배워야만 할 것 같아요.

서핑보드에 막 이름도 쓰고요?
제 이름이 혜빈이잖아요. ‘헤븐’이라는 영어 이름이 있어요. ‘헤븐’이라고 부르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