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여왕, 전도연

전도연 안에는 전도연이 없다. 전도연은 수현, 희주, 보라, 원주, 수진, 나영, 연순, 은하, 신애가 번갈아 살고 나간 집에 걸린 문패일 뿐이다. 그녀가 지금껏 스크린에 찍어낸 보폭은 단언컨대, 현존하는 어떤 한국 여배우도 흉내내지 못한다. 때문에 전도연이 궁금하면 그냥 영화를 보면 된다. 인터뷰하겠다고 마주 앉아‘트로피를 건네준 알랭 들롱이 섹시하던지?’ ‘새신랑과 칸 트로피 중 양자택일하라면 무엇을 취하겠는지?’등의 질문을 던졌을 때 듣게 되는 대답은 그녀의 연기에 비하면 영 시시하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도 그녀의 연기요, 삶에 보탬이 되는 것도 그녀의 연기다. 사실 이 페이지는 그녀의 칸 여우주연상 수상을 뒤늦게나마 축하하기 위한 지면이다. 물론 온갖 군데서 ‘칸의 여왕’ 등의 수식을 달아 전도연 찬가를 읊어댄 이후이니 늦은 감은 있지만, 그렇다고 어물쩍 넘기기도 섭섭하다. 어쨌든 권위의 상징이라던 칸의 묵직한 트로피를 먼저 거머쥔 주인공이 그간 ‘국민배우’ 대접받으며 우쭐대던 남자배우들 중 하나가 아니라, 열일곱 나이에 모델로 데뷔한 이래 한 번도 웅덩이 빠지는 일 없이 마른 자리 골라 디뎌온 이 조그만 여배우라는 사실은 대단히 유의미한 사건이니 말이다. 당분간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은 그녀의 몫이 될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