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예련의 필모그래피는 <여고괴담:목소리> <구타유발자들> <므이>로 묵직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 귀여운 간주처럼 귀여니 원작의 청춘 멜로 <도레미파솔라시도>가 끼어 있다. 무겁고 진지했던 두 편의 전작을 통해‘ 스타가 아닌 배우의 길을 선택한 의식 있는 신인’이라는 평가를 얻어낸 차예련.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선택이 가져온 결과일뿐. 실상 이런 마음도 있었다“. 단 한 편의 영화로 인해 사납고 무서운 이미지로 굳어져버렸어요. 어린 나이에 상처가 되기도 했죠. 호러 퀸이라는 수식어도 듣기 싫었어요.” 그렇다고 차예련이 공포영화 <므이>를 선택한 것에 대해 ‘왜 또?’라고 딴지 걸 필요는 없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그녀가 가진 것은 현재뿐. 그 시점에 취할 수 있었던 최상의 패가 바로 <므이>였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공교롭게도 전작의 이미지를 잇는 <므이>와 전작의 이미지를 뒤엎는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봉한다. 다시 한 번 그녀는, 배우냐 스타냐를 선택하는 갈림길에 설 듯하다. 이번엔 그녀의 의지가 개입될 것이다.

러플 디테일의 셔츠는 주카 바이에크루(Zucca by Ecru), 크리스널진주 목걸이는 이카트리나 뉴욕 바이믹스트(Ekatrina New York by Mixte)

러플 디테일의 셔츠는 주카 바이
에크루(Zucca by Ecru), 크리스널
진주 목걸이는 이카트리나 뉴욕 바이
믹스트(Ekatrina New York by Mixte)

그녀는 예뻤다. 가늘고 긴 팔다리, 조그맣고 갸름한 얼굴, 뭘 입어도 태가 나는‘ 천상 모델’의 몸매. 무엇보다‘ 예쁘거나 혹은 순수하거나’로 요약 되는 한국 여배우들에게 주어지는 부덕(婦德)의 속박 따위 일찌감치 벗어 버린 개성 있는 마스크. 네 글자로 줄인다면‘ 뭘 더 바래?’로 표현될 하드웨어다! 하지만 이런 강렬함은 때론 덫이 된다. 도드라지는 신체 조건과 마스크 덕에, 그녀를 찾아온 캐릭터들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아니 온듯 빠져나가기가 어렵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꽃 뿌리고 찍은 미샤 CF처럼 해맑고 발랄한 이미지로 등장한 CF도 꽤 많거든요.” 말하자면 그녀는‘ 그건 당신들의 선입견’이라는 얘기가 하고 싶은 게다. 하긴‘ 바람에도 가볍게 뒤로 밀리던’ 발레리나로 등장했던 컵 누들 CF의 그녀나 헤드셋을 머리에 걸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한국 수자력 원자력 공익광고 속 그녀는 모두 청순하고 순수했다“. <구타유발자들>에서도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분홍 카디건 입은 나름 청순한 외모의 여대생이었어요. 헌데 영화 자체가 강렬하고 제목도 강하다 보니 제가 또 센 캐릭터를 맡았다고들 생각하더라고요. 이후 가볍게 가보려던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지연되면서 지금 제겐 <여고괴담>과 <구타유발자들>의 이미지만 있는 거죠.” 본인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사람들-특히 영화 관계자들-은 그런 그녀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충무로 블루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지도 이미 오래전. 사실 <여고괴담> 시리즈는 여자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과도 같은 영화다. 1편의 최강희· 김규리·윤지혜, 2편의 공효진·김민선·박예진·이영진, 3편의 송지효·박한별·조안, 4편의 김옥빈 등이 이전보다 나은 인지도를 얻으며 스타 혹은 배우로 거듭났다.

“영화나 CF감독님들이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처음에 제가 등장했을 때 그저 스타 메이킹이나 하고 끝날 애라고 생각했는데, 데뷔작 이후 두 번째 영화로 <구타유발자들>을 선택한 거 보고‘ 아! 얘가 배우를 하려는 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이죠.” 하지만 배우 냄새 풍기겠다고 선택한 영화가 아니다. 그저 신뢰 가는 대선배들-한석규, 이문식, 오달수 등-이 한 큐에 선택한 시나리오라서 마음을 굳혔다 한다“. 드라마는 스쳐 지나가면 끝이지만 영화는 남는다고 하잖아요. 정말 그랬어요. 개봉 당시엔 흥행이 잘 안 돼 속상했지만, 개봉하고 2달 만에 DVD가 나오자 상황이 달라졌어요. 뒤늦게 영화 검색 순위 1위에 올라 2주를 버텼다니까요. 배우들끼리 연락하면서‘ 우리 재개봉했냐?’ 이럴 정도였어요.” 그렇게 슬쩍, 영화의 맛을 봐버렸다. 그리고 지난 열 달 동안 그녀는 두 편의 영화 <므이>와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촬영장을 오갔다. 연기자로서의 욕심이라면 욕심이랄까,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연거푸 뒤집듯 각기 다른 캐릭터를 오가며 카메라 앞에 몸을 던졌다.“ <도레미파솔라시도>는 딱 제 나이와 성격에 맞는 역할이었어요. 명랑하고 밝죠. 반면 <므이>는 대사가 아닌 눈빛 하나로 행간의 의미까지 전달해야 하니 쉽진 않았어요. 신비로운 구석도 있는 캐릭터였고요. 두 번째 공포영화이니 전작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사실 연기 부문에서 얼마나 그런 것들이 잘 드러날까 싶기도 해요. 솔직히 공포영화의 성패는 배우의 연기보다는 시나리오 자체의 힘이나 어떤 효과 그리고 장치들에 의해 많이 좌우되잖아요. 배우들끼리 그런 부분에 대해 모이기만 하면 자주 얘기하곤 했죠. 공포라는 장르는, 그 자체로 배우에겐 어떤 틀이 지워지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 틀에 속박되진 않았다. 젊음이 주는 혜택이다. 아직은 더 많이 도전하고 깨지고 더 많이 기다려도 되는, 그녀의 나이 스물셋. 그럼에도 ‘이제 갓 시작’이 아니라 적잖은 도전과 시행착오를 이미 겪고 일정한 경험치를 쌓아두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내일은 맑음이다.

화이트 뷔스티에는 디젤(Diesel), 그레이미니스커트는 제시카 트로스만 바이쿤(Jessica Trosman by Koon), 늘어지는목걸이와 귀고리, 코튼 머플러는 마리아칼데라라 바이 구(Maria Calderara by Gout).

화이트 뷔스티에는 디젤(Diesel), 그레이
미니스커트는 제시카 트로스만 바이
쿤(Jessica Trosman by Koon), 늘어지는
목걸이와 귀고리, 코튼 머플러는 마리아
칼데라라 바이 구(Maria Calderara by Gout).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을 열거하자면 대략 이렇다. 그녀는 쿨하다, 화끈하다, 직설적이다, 당당하다, 쾌활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특징들은 다음과 같이 포착되기도 한다. 그녀는 버릇없다, 건방지다, 감정적이다, 도도하다, 그리고 무미건조하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물론 전자와 후자가 모두 그녀의 모습이다. 상황에 따라 그리고 상대에 따라, 차예련은 전혀 다른 인물로 해석된다. 실제로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차예련이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소득 없는 관찰과 분석은 접어두고, 그녀에게 직접 묻기로 했다. 그녀를 보기만 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차예련은 직접 명제를 뽑아주었다. 적어도 그녀는 아래 명제와 같은 사람이거나, 그렇게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차예련은 겉과 속이 다르다 | “보이는 것보다 성격이 밝아요. 차갑고 무서워 보인다는 얘기나 쉽게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도도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저랑 친한 사람들은 죄다 알아요. 제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가서 말을 걸 정도로 밝고 친화력 있는 아이라는 걸 말이죠. 게다가 보기보다 따뜻한 구석도 있어요. 얼마 전 볼일이 있어 수원에 갔을 땐, 너무 춥게 입은 길거리의 할머니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해 차에 있던 점퍼를 꺼내드리고 오기도 했는걸요. 평소 자선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항상 밝게 지내려 하고, 싫은 일 있어도 웬만하면 웃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물론 이런 성격이 늘 좋은 건 아니죠. 힘들어도 내색 않고 항상 밝게 지내니까, 왠지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저도 속으로 나름 고민 있고 힘든데,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은 또 그걸 몰라주거든요.”

차예련은 생각이 굉장히 많다 |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을 못 잘 때가 많아요. 굳이 안 해도 되는 생각들을 머리가 아플 때까지 계속해요. 가령 자려고 누워서는 오늘 하루 일과를 되짚죠. 오늘 누군가 기분이 안 좋아 보였는데 그것이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싶고, 너무 친한 사람이라 반갑게 인사했는데 상대의 반응이 심드렁했을 때 저 사람이 혹시 나 때문에 화났나 싶기도 하고, 이런 것들을 되짚으면서 걱정을 하죠. 오늘 일뿐 아니라 내일, 일주일, 한 달 뒤, 1년 뒤의 것까지 세웠다 허물었다를 반복하느라 너무 괴롭고 힘들어요. 항상 나쁜 쪽으로, 그것도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기 때문에 더 안 좋죠. 내일 뭐 입고 가야지, 내일 이런 건 이렇게 해야지 하는 정도의 단기적인 계획 정도만 도움이 되지, 대부분 일상에 별 도움이 안 돼요. 게다가 자고 일어나면 까먹는 것들이 대부분이고요. 안좋은 걸 알면서도 쉽게 고칠 수 없는 버릇이에요.”

차예련은 모든 연령을 커버한다 | “제일 친하고 편한 사람은 세 명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 그리고 친언니, 그리고 저보다 무려 스물다섯 살은 많은 한 분. 힘든 일 있을 때 허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들이죠. 대화가 가장 잘 통하는 사람들이고요. 사람들이 그래요. 말투나 행동은 또래들이랑 비슷한데 처세랄까, 머리 돌아가는 그런 건 또래들보다 많이 조숙하다고 말이죠. 헌데 제가 태어날 때부터 이랬겠어요? 하하. 당연히 아니죠. 잡지 모델 활동부터 시작하면 벌써 5년이 돼가잖아요. 만나는 사람 중에 어린 사람이 없어요. 20대 후반부터 30대, 40대 다 그렇거든요. 항상 열 살 이상 많은 분들과 같이 대화하고 밥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 있곤 하니 아무래도 영향을 받았겠죠.

차예련은 일상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우선 무작정 훌쩍 떠나는 여행을 좋아해요. 새벽 2시에 일 끝났을 때 며칠 쉬는 짬이 있으면 친구들이나 가족들이랑 무작정 떠나요. 가까운 일본에 가기도 하고, 강원도로 떠나기도 하죠. 휘닉스파크 근처 흥정계곡을 자주 찾거든요. 계곡물도 흐르고 깔끔한 펜션도 있고 허브마을도 있고, 정말 젊은 사람들이 찾아도 너무 좋은 곳이에요. 그리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죠.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 주로 김치찌개, 닭도리탕, 고추장 찌개처럼 남들이 술안주 삼는 걸쭉한 것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유년기에 전라도 할머니 댁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어서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피곤을 수다로 푸는 것도 좋아해요. 물론 육체적 피로까지 풀리진 않지만, 말을 많이 하고 나면 정신적으로 힘든 게 좀 풀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뻥 뚫린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아해요. 요즘 자주 연락하는 친한 친구들이 다 운전을 좋아해서, 각자 차타고 드라이브 가요. 같이 출발해서 따로 달리는 거죠.”

차예련은 네 채의 집을 갖는 게 꿈이다 | “물론 앞으로 개봉하게 될 영화, 작업하게 될 작품에 가장 관심이 많죠. 그 외엔 이성에 조금, 그리고 재테크에 조금 관심 있어요. 꾸준히 읽진 않지만 <20대 재테크 이렇게 하라>는 책을 산 것도, 용돈 받아 쓰는 친구들과 달리 전 제가 돈을 버니 아무래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유아원, 양로원, 고아원, 그리고 제 집, 이렇게 네 채의 집을 갖고 싶거든요. 언젠가 한번 인터뷰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 기사 타이틀이‘ 차예련, 집 네 채 갖는 게 꿈’이라고 나가서 오해 많이 받았어요. 제목만 읽으면 무슨 또라이 같잖아요. 하하.

차예련은 진국 같은 사람들이 그립다 | 주변에 내 말 잘 들어주고 나랑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솔직히 많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많은 줄 알았어요. 이쪽 바닥은 정말 금방금방 친해지거든요. 내 딴엔 편하다고, 친하다고 생각해서 이런저런 말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아요. 이 사람은 정말 날 이해해 주는 것 같고 이 사람은 정말 믿을 만하구나 싶었는데 얼마 지나면 말이 다 돌았더라고요. 그런 거였구나 싶더라고요. 그 사람은 내가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인 거더라고요. 그래서 두려웠던 적이 굉장히 많았어요. 당하기도 많이 당했죠. 그런데도 제가 사람을 좀 쉽게 믿는 것 같아요. 마음을 금방 주지는 않지만 몇 번 보다가 편하고 좋고 내 사람이다 싶으면 간 쓸개 다 빼주죠. 이 사람 좋은 거 같아, 내 마음 다 알아줄 것 같아, 그러면 정말 홀딱 빠져요. 헌데 정말 쿨한 사람, 뒷말 없고 뒤탈 없는 사람, 계산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거침없이 툭툭 내뱉는데도 그게 다 진심이고 진짜인 가식 없는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차예련은 엽기적인 그녀다 | “공포영화라고 해봤자 <여고괴담>과 <므이> 두 편을 했을 뿐인데‘ 호러퀸’이라는 수식은 너무하잖아요. 그런 이미지로 굳어져버릴까 걱정이 돼요. 사실 지금 이 나이에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지극히 한정돼 있어요. 스물여섯에서 서른 정도가 돼야 배우다운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것 같아요.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의 폭도 가장 넓은 것 같고요. 지금 하는 연기는 흉내내기에 그칠 수밖에 없어요. 제가 겪었던 일이 적으니까요. 일정 나이가 되고, 일정 경험이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그런 연기를 저도 언젠가는 하게 되겠죠. 하지만 그전에 우선 밉지 않은 미친년 역할이나 바보 역할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그런 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나 아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역할, 있지 않을 법한 그런 역할, 카메라 앞에서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역할들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