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한 이름 석자를 제대로 알린 건 강동원과 함께한 <늑대의 유혹>. 이후 영화 <선데이 서울>과 두어 편의 드라마에 차근차근 출연했지만 전작의 유명세만큼 파장은 크지 않았다. 더구나‘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그녀를 접수한 어린 남성들의 소심한 관심을 제외하면, 그녀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루머’나‘ 비난’보다 무섭다는‘ 무관심’ 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그녀의 이미지를 ‘평면적이고 밋밋한 느낌’으로 일갈했다.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우연히 인터넷에 뜬 제 기사를 보게 됐어요. 한데‘ 얘는 어떻게 계속 주연을 하는 거냐’는 리플이 달렸더라구요. 솔깃했어요‘. 그러게 왜 나를 시켜주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라인의 여배우가 별로 없더라구요. 평범한 캐릭터가 필요한데 다들 너무 예쁜 거죠. 전 배우를 할 수 있는 커트 라인인 것 같아요. 감독들은 하이 클래스도 원하지만 커트라인도 필요로 한다는 거죠. 좋은 위치라고 생각해요.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이것이 바로 이청아의 원동력이자 커트라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이를 입증하듯, 그녀는 신작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에서는 아예 전면에 나서서 영화를 이끈다.

Her Taste | 어떤 풀이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어서 딱풀과 물풀을 종류별로 모으고 있는 여자. 세상의 모든 풀 종류뿐 아니라 그 모든 문구류에도 집착하는 여자. 서점에서 신간 구경한 뒤 주문은 꼭 인터넷을 통해 저렴하게 해결하는 여자. 그런 용도를 제외하고는 컴퓨터와 절대 친해지지 않는다는 여자. 그 어떤 블로그나 싸이월드와도 담 쌓고 사는 데다 학교 방침에 따라 가입했던 MSN메신저마저 한참을 접속하지 않아 해지당한 여자. 보는 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혼자만의 글쓰기를 즐기는 여자, 그래서 근 1년간 영화잡지 <스크린>에 자신의 지면을 가지고 있던 여자. 일찌감치 단종의 운명을 맞은 기아 차 카스타의‘ 고딕적인 선과 클래식한 디자인’에 반해 저 혼자 열광했던 여자. 그렇게 아날로그적이고 수동적이며, 옛날 사람의 냄새를 풍기는 그녀는 만 스물넷이다.

“조금 엉뚱해서 그렇지, 평범한 편이에요. 대신 취향은 분명하죠. 사실 우울한 거, 좀 오래 빠져 있는 타입이에요. 처음에 연기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그녀의 아버지는 유명한 연극배우, 어머니는 연출가다)가 많이 반대하셨어요. 한데 제가 이 직업을 가진 이후로 밝아지고 사람 대하는 것도 능숙해져서 그건 좋으시대요. 사실 저, 가족 모임에서 누가 말 시켜도 대꾸도 잘 못하고 그런 아이였거든요. 굉장히 엉뚱해 보이고, 혼자서 딴 생각도 많이 할 것 같죠? 한데 저 관찰도 굉장히 많이 하고, 눈치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주변 얘기에 무척 민감하고 상처도 많이 받는 편이죠. 남들은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쪽에서 하는 얘기 다 듣고 있고 그러거든요. 스스로 피곤해서라도 고쳐야 될 단점 중 하나죠. 그리고 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잘하는 스타일인 거 같아요. 공부도 대학교 때부터 재밌어졌죠. 고등학교 때는 선택의 자유가 없지만 대학교는 스스로 커리큘럼을 선택하고 짜잖아요. 그러니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하게 되더라구요. 뭐든지 그래요. 늘 이유가 있어야 움직이죠. 지금 이걸 하는 이유, 만약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늘 딴 길로 새거든요. 하하. 이것저것 딜레마에 빠져 있는데도 배우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 끈기가 없는 편이지만 아직 좋아서 하고 있는 거죠. 그러나 여전히 준비가 완벽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스타일이에요. 가령 뮤직비디오가 들어왔는데 준비 기간이 하루밖에 없다? 그러면 아까워도 포기하죠. 한 가지씩 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이것저것 하다 보니 자꾸 핑계를 대게 되더라구요. A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B의 탓으로 돌리고, B가 부족한 걸 C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식인 거죠.”

Her Act | 스스로 여배우이기를 부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늑대의 유혹> 이후 예기치 않게 몰아 닥친 스타덤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기보다는 피폐하게 만들었다. 개인의 삶이 대중에 의해 장악된다는 것, 우호적이든 악의적이든 간에 타인이 흥미로 채를 써는 도마 위에 오른다는 것,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이 핑 돈다. 출국신고서 직업란에‘ 배우’가 아닌 ‘학생’을 기재하던 시절. 그 변변찮은 자존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건‘ 어차피 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이후다.

“연기는 좋지만 여배우라는 타이틀은 좀 싫어요. 누군가 저한테‘ 딱 여배우 같네’라고 그러면 칭찬 절대 아니고 욕으로 들려서 너무 싫어요. 남들 인터뷰 읽어봐도 다 똑같아요. 다른 배우들도 다 자기가 배우인 거 싫어하고 연예인인 거 싫어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걸 보면 ‘아 사람들 생각하는게 다 똑같구나’싶어요. 다들 진솔하거나 진중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변함없이 구설수에 올라요. 한데 ‘그런 사람’으로 취급 받지 않으려면 그냥 이 일을 그만둬야 해요. 계속 할 거면 일정 부분 포기 해야 하구요. 저 또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제 이미지를 단숨에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다음 작품, 또 다음 작품, 계단을 겹겹이 놔서 서서히 대중들의 인식을 바꿀 순 있겠죠. 하지만 지금 당장 제가 하고 싶다고 가능한 일이 아닌 걸 알아요. 개인이 노출되는 건 정말 배우로서 너무 안 좋은 거 같아요. 그나마 전 매니저 없이 자기 생활이 불가능해 보이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제 개인의 삶을 가까이 두고 있는 편이거든요. 그럼에도 누군가 날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 그 누군가가 날 알아보며 나만의 시간을 깨버릴 땐, 정말 슬퍼져요. 하지만 가끔, 매번 그런 건 아니고 아주 가끔, 연기가 재미있을 때가 있어요. 내가 내 스스로의 연기가 마음에 들 때 정말 행복해요. 주변에서 뭐라 하든, 그냥 내 마음에 드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발랄한 컬러가 돋보이는 튜브톱 시폰드레스는 미소니(Missoni), 주얼리는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발랄한 컬러가 돋보이는 튜브톱 시폰
드레스는 미소니(Missoni), 주얼리는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Her Aura | 나이만큼, 혹은 나이보다 조금 더 매력적인 내면을 채워두고 있는데도 겉으로 보여지는 이청아는 무미건조했다.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은 열망에 달뜨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금 곧 돌아서 나가버린다 해도 조금도 아쉽지 않을 만한 대수롭지 않은 대상. 한데 어느 정도의‘ 대화’가 이어지고 그녀가‘ 자신에 대해 말하기’시작하자 숨어 있던 그녀의 아우라가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A’라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지금껏 우리에게 보여줬던 이미지는, 재미있게도 그녀의 실체와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B’라는 성향의 것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밋밋하고 평면적인 이청아를 입체적이고 반짝반짝 빛나는 이청아로 탈바꿈시켰다.

“한양대 연출과에서 극작을 전공했는데, 뭘 전공하든 간에 연기 수업이 필수였어요. 당시 늘 지적받았던 게“ 넌 비극은 되는데 희극이 안 되니, 희극을 연습해라”였죠. 한데 지금까지 제가 했던 연기를 보면 다 희극 쪽이거든요. 그렇게 캐스팅되고 그런 연기를 하는 걸 보고 주변에선 다들 의아해했어요. 사실 시작이 <늑대의 유혹>이라 그렇지, 당시 캐스팅됐던 다른 작품들을 보면 다‘ 우울한 청춘’느낌의 캐릭터들이었거든요. 출발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이후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이런 어긋난(?) 출발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 분들도 있고, 기뻐하시는 분도 있었죠. 저요? 처음엔 안타까웠죠. 청춘물의 스타, 어찌 보면 인기에 민감한 쪽에서 시작한 거잖아요. 전 오히려 사람들이 몰라봐도 연기를 할 수 있고 내 생활을 지킬 수 있다면 차라리 인기와 무관한 쪽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먼저 맞는 쪽으로 간 거 같아요. 사실 원하는 쪽에서 시작했다면 연기는 좀 더 편하게 했을지 모르죠. 아직도 웃고 까불고 이런 거 시키면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난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어’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진짜 안되던 걸 예전보다 훨씬 잘하게 됐으니까요. 사람들이 저 좀 웃긴대요(하하). “청아야, 너 코미디가 살짝 되는 것 같아”라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구요. 못하던 걸 하게 됐으니 하나를 세이브한 셈이고, 원래 가지고 있던건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오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