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우긴다면, 예쁘고 잘생긴 순서라거나 연기 잘하는 순서로 배우들을 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서가 곧 그 배우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를 의미하진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인간은 죄다 같은 재료로 이뤄져 있으나 다만 함량이 제각각일 뿐이라고. 배우도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배우도 다 고만고만한 재료로 구성돼 있다. 그런 비주얼, 그런 자질, 그런 끼를 가지고 있으니 배우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함량이 다르다. 더욱이 그 배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특정한 자질의 함량이 아니라 온갖 자질의 배열이 그 배우 안에 그려놓은 고유한 무늬라는 논리다. 때문에‘ 제2의 누구’라는 스포트라이트로 데뷔와 동시에 유망주로 등극했던 4~5년 전의 소이현보다는, 세월과 경험의 축을 맞춰 보다 안정적인 제 안의 배열을 만들어놓은 지금의 소이현이 한결 매력적이다. 오늘 그녀로부터 언뜻 본 그것은, 어쩌면 배우의 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골드 비즈 리본 원피스는 손정완,골드 앤티크 귀고리는 셀바폰데(Selvafonte).

골드 비즈 리본 원피스는 손정완,
골드 앤티크 귀고리는 셀바폰데(Selvafonte).

감언이설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을 캐스팅 담당자야‘ 두 명의 여주인공 중 하나’라며 그녀에게 맡기고 싶은 역할을 설명했겠지만 개봉 전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 입장에선 <중천>의 여주인공은 소이현이 아닌 김태희다. 그러니 의외였다. 어쨌든 <맹부삼천지교>의 타이틀 롤을 맡아 스크린 데뷔한 그녀였다. 때문에 ‘어떤 역할인가’ 보다는 ‘왜 그 역할이었나’가 더 궁금해졌다. “작은 역할로 데뷔한 건 아닌지라‘ 왜 그랬냐’고 묻는 분들이 주변에 많았죠.‘ 너 정도면 주연으로 들어오는 작품도 있을 테고 네 얼굴 타이틀로 넣어달라고 그럴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랬어?’라고 말하는 분들 많았어요. 다들 제가 욕심을 덜 냈다는 거예요. 헌데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 것도 있었고, 또 솔직히 약간은 숨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남녀 주인공이 원 톱으로 가는 이런저런 시나리오들도 많이 들어왔는데 자신이 없더라고요. 이걸 해서 만약 안 되면? 그리고 만약 잘된다 하더라도? 이런 물음표들이 끊임없이 떠올랐어요. 아직 그런 그릇이 안 될 것 같은데, 그걸 담으면 넘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도 들고. 만약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친다면 그에 대한 나의 실망감이나 두려움은 또 어찌 해야 할까 그런 생각도 들었죠.” 솔직하다. 게다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나아가 연기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데뷔 이래 그녀는 ‘예쁘면 연기를 못한다’는 공식을 어느 정도 깨부수는, 평균 이상의 연기를 펼쳐왔다. 물론 그 앞엔 늘 ‘신인치고는’이라는 수식이 붙어온 터였다. 데뷔 이후 만 4년. 더 이상 ‘신인’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신의 부족함을 변명할 수 있는 연차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 조금은 신중한 노선. 어쩌면 그것은 멀리 보는 그녀의 영악하지만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다시 태희 언니가 연기한‘ 소’라는 역할과 제가 연기한 ‘효’라는 역할 중 마음대로 골라보라 한다 해도 전 ‘효’를 택할 거 같아요. 정말 상투적인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전 정말 그래요.‘ 주인공 아니면 안 해’가 아니라 정말 잘할 수 있는 역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효가 바로 그런 역이었어요. 아주 단단하고 멋진 캐릭터였죠. 굉장히 파괴력이 큰 역할이랄까. 꼭 한번 해보고 싶던 여자 역할이었어요. 온통 남자들뿐인 무사 세계에서 기죽지 않고 얘기하고 무공도 대단하고. 똑 부러지면서 여린 구석도 있고. 어쩌면 내 모습과 비슷해 애착이 가기도 하는 그런 캐릭터였죠.” 캐릭터 자체에 대한 욕심, 거기에 평소 좋아하던 배우 정우성과의 공동작업, 그리고 <맹부삼천지교> 시절 인연을 맺은 촬영감독의 적극적인 추천,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며 그녀의 중국행은 결정됐다.“ 중국 올 로케이션이었기 때문에 배우들이나 스태프들끼리 아주 각별해졌죠. 태희 언니와도, 아마 한국에서 촬영했다면 서로 전화번호도 모르고 촬영을 끝냈을지 몰라요. 저도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 태희 언니도 굉장히 낯을 가리거든요. 초반에 친한 척은 해야겠는데, 뭐랄까 범접할수 없는 아우라 같은 게 있더라고요. 헌데 배우들이 다 한 숙소에 묵으면서 아침마다 부스스한 얼굴로 만나서 ‘누구세요?’ 그러면서 맨얼굴로 아침밥 먹고 그러다 보니, 많이 친해졌죠. 지금 보면 반갑고 그래요.”

낯설고 어색한 느낌. 후시 녹음을 위해 처음 자신의 촬영분량을 찬찬히 재확인한 소이현의 첫 감상이다. “시대극조차 해본 적이 없었잖아요. 헌데 <중천>은 판타지에 액션, 그리고 사극, 멜로, 게다가 퓨전까지. 낯설더라고요. 제 모습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좀 창피하기도 하고. 아마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라서 그랬을 거예요. 6개월 동안 내가 다 한 건데도 정말 저걸 내가 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미묘하게 놀랐어요. 걱정도 되는데, 도전인 것 같기도 하고, 복합적인 마음이에요.”

소이현의 2007년 계획은‘ 진짜 배우’가 되는 것이다. 소이현을 버리고 캐릭터를 몸에 입는 것, 자고 일어나면 하늘에 닿아 있는 콩나무처럼 하루아침에 성장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제가 아직 내공이 없어서 그런지 화면엔 여전히 캐릭터가 아닌 소이현만 보이는 것 같아요. 어렵다는 건 알지만 노력은 하고 싶어요. 트렌디한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난해하지만 작품성 있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냥 쉽게 가는 역할 말고, 죽고 싶을 만큼 노력해야 하는 난이도 있는 역할을 맡아보고 싶어요. 그래서 ‘쟨 그냥 예쁘장하게 생기고 말라서 배우 하는구나’ 이런 게 아니라 ‘쟨 정말 배우 해야 되는 애구나, 저렇게 안 하면 잰 미치겠구나’ 이런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요.” <중천>은 이런 소이현의 야심만만한 프로젝트의 워밍업이 되어줄 작품이다. 말을 달리고 검을 쓰며 하늘을 나는 그녀에게서 과연 배우의 결이 느껴지는지, 이것이 영화 <중천>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되시겠다.

화이트&그레이 프릴 슬리브리스는 다치스 by이윤정(Duchess), 골드펄 핫팬츠는 쿠스토바르셀로나(Custo Barcelona), 앤티크 벨트는디젤(Diesel), 블랙 네크리스는 보우(Veou),그레이퍼트리밍 부츠는 미소페(Misope).

화이트&그레이 프릴 슬리브리스는 다치스 by
이윤정(Duchess), 골드펄 핫팬츠는 쿠스토
바르셀로나(Custo Barcelona), 앤티크 벨트는
디젤(Diesel), 블랙 네크리스는 보우(Veou),그레이
퍼트리밍 부츠는 미소페(Misope).

작품 들어갈 때마다 늘 새로운 것을 익히니 배우들은 좋겠어요. 핑계 김에 다이어트도 하고 말이죠. 이번엔 검술과 승마 등을 배웠다죠?
욕심 많은 배우들이야‘ 좋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배우들은 ‘귀찮겠다’ 그러는걸요. 제 경우 전자이긴 한데 드라마 <부활> 끝내자마자 바로 움직이려니까 죽겠더라고요. 액션스쿨 가서 와이어 타고 검술 배우고 용인 승마장 가서 말 타고 그랬는데, 정말 매니저가 질질 끌어서 데려다 놨다니까요. 근데 또 막상 데려다 놓으면 신나서 열심히 해요. 그러다 집에 가면 푹 퍼지고 또 데려다 놓으면 열심히 하고 그랬죠.

자발적으로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스타일은 아닌가봐요?
하하. 좀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쇼핑 말고는 자발적으로 하는 게 없어요.

멋 부리고 나설 시간도 별로 없을 텐데, 무슨 쇼핑을 그렇게 해요?
그래서 엄마한테 만날 혼나죠. 심지어 가방, 신발, 목걸이처럼 티 안 나고 돈 많이 들어가는 아이템을 좋아하거든요. 학창 시절에도 죽어라 아르바이트해서 쇼핑하고 그랬어요. 버릴 수 없는 유일한 취미예요.

배우 되길 정말 잘했네요?!?
그렇죠. 그런 건 좋죠.

배우라서 행복한 또 다른 이유는 없나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거? 화보를 찍는다고 하더라도 기자나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가는 게 좋아요. 잠깐 잠깐이지만 그 중에서 정말 괜찮은 사람이 톡 걸려서 묵은지 같은 인연이 될 수도 있고요.

친구가 많을 것 같아요.
전 폭이 넓지 못해요. 이 바닥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다가 연락 안 되면 그냥 말아버리고 그런 것 같아요. 헌데 전 세 명 혹은 네 명 아삼육처럼, 우리 패밀리야 하면서, 그렇게 만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 많이 만나보고 좋은 사람 딱 걸렸다 싶으면 그 사람과 좀 더 친해질 수 있도록 제가 보다 잘해줘요. 뒤에서 막 작업 걸고. 스토커처럼요. 하하.

경제적인 풍요로움도 무시 못하죠?
그럼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참 좋죠. 그리고 아버지 사업이 좀 안 좋아지셨을 때 제가 도움을 드려 재기하신 것도 너무 뿌듯하고. 부모님도 그런 것들에 굉장히 감사하시죠. 해서 제가 갖다 드리는 돈을 함부로 못 쓰시더라고요. 우리 딸이 추운 데서 고생하면서 번 건데 하시면서 양말 한 켤레 편히 못 사시더라고요. 부모 마음이 그런가봐요.

연예계엔 소녀가장들이 참 많아요?
그러니까요. 하하. 그리고 뭔가 배울 수 있다는 것도 배우라서 행복한 점 중 하나예요. 시나리오 때문에 책이나 영화도 찾아서 보게 되고,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해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거든요.

그럼 배우가 최상의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지금은요. 물론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 있었어요. 드라마 <부활>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그때 아마 뮤직뱅크 MC만 하고 있었을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냥 MC하고 오는 게 전부여서 개인적인 시간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모르겠어요. 시간이 많으니까 생각할 시간도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슬럼프에 빠졌던 거 같아요. 이게 진짜 내 길인가 싶기도 하고, 연기에 별다른 변화도 없고, 그냥 신인치고 좀 하네? 뭐 이 정도?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좀 보여야 하는데 모자란 것 같고 자신도 없고 그렇더하고요. 그땐 정말 다 때려치우고 공부나 할까 싶었죠.

영화는 세 편뿐이지만 드라마 출연이 잦았죠?
그렇죠. 드라마는 두세 편만 해도 인지도가 확 높아지더라고요. 영화는 미친 듯이 찍고 있어도 얼굴이 안 보여지니‘ 걔 요즘 쉬나봐’ 그러는데 드라마는 작은 역할로 출연해도‘ 요즘 열심히 활동하네’ 그러거든요. 요즘 영화 배우들의 딜레마죠. 정우성 오빠가 신인배우라는 소리까지 듣는다잖아요.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좋아요?
딱히 정해놓은 건 없는데, 만났을 때의 느낌인 것 같아요. 너무 잘해주고 너무 좋은데 그 행동이 진실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땐 소름이 끼쳐요.

하지만 배우들 주변엔 온통 그런 사람들 천지 아닌가요?
많겠죠. 헌데 저와 친해질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가령 매니저나 코디 같은 분들 중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정말 소름 끼쳐요. 전 가까운 사람들에겐 진짜 속까지 다 보여주는 스타일이라서, 내가 이 사람에게 툭 까놓고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싶어요. 저 사람 앞에선 조심해야지, 이러면 제가 답답해서 돌아요. 전 못났든 잘났든, 속이 따뜻한 사람들이 좋아요.

헌데 그런 게 한눈에 보이나요?
보이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 저 사람이 나한테 진실되구나, 아 날 정말 좋아해주는구나 뭐 그 정도는 느껴져요. 왜 강아지도 자기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느끼잖아요. 싫은 소릴 해도 왜 싫은 소릴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예전엔 진짜 싫어서 싫은 소리하는 줄 알고 못마땅한 눈으로 째려보고 그랬어요.

배우도 경력이 늘어갈수록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죠? 그런 부분들이 생기는 게 좋은가요, 아니면 오히려 불편한가요?
선배님들이 그러더라고요. 한 7년에서 10년 정도 지나면, 그땐 거의 반 점쟁이라고요. 사람 얼굴만 봐도 나온대요. 너무도 많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면서 연기를 하다 보니, 얼굴에서 묻어 나오는 것만 봐도 대충은 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제 4년 반 정도 되는데, 보면 언뜻언뜻 좋은 사람인 거 같아, 이 정도의 느낌은 와요.

그럼 본인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인 것 같아요?
이 직업 갖고 나서 스스로 놀라운 부분 중 하나가 사람 대하는 법이 다양해졌다는 거예요. 정말 놀라워요. 내가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 사람 보면서 이렇게 웃으면서 얘길 하게 되는구나, 로봇처럼. 이런 생각 들 땐 스스로가 좀 끔찍하죠. 하지만 반면 이런 게 사람 살아가는 법들이구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나이 먹는 것 같아요. 요샌 그래요. 열여덟 열아홉 뭐 이럴 때 데뷔했으니까, 주변 분들이 나이를 묻고는 ‘벌써 스물넷? 너도 나이 참 많이 먹었다’ 그러세요. 저 보고 언니, 누나라고 부르는 스태프들도 많아지고. 저도 나이 어린 친구들 보면서 ‘음 얘는 금방 그만둘 애, 얘는 오래 갈 애’ 뭐 이런 게 보이거든요. 그런 제 모습 보면서 우습기도 하고 그래요.

나이 먹는 게 좋은가봐요?
싫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좀 더 컸으면 좋겠어요. 머리나 생각이. 주변에서 아직도 넌 애야 그러시거든요. 샘 많고 질투의 화신이고 밥 안 주면 삐지고 참을성이나 인내력 부족하고 성격도 급하고. 2007년엔 연기도 제 자신도 한 뼘씩은 성장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