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화장품이 좋다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뒤늦게 한국 화장품의 진가를 알기 시작한 거란다. 정말 명동 밖에서도 K 뷰티의 물결은 넘실거리고 있을까?

궁금증은 명동을 걸으며 시작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 화장품 소비에 이렇게 열을 올리는 광경은 신기루일까? 먼저 일본의 뷰티 에디터에게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한국 여성들의 피부가 정말 좋은 걸 보면, 한국 화장품에 그 비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몇 년 전 지인이 한국에 다녀오면서 선물로 사다 준 미샤의 수퍼 아쿠아 셀 리뉴 스네일 하이드로 겔 마스크를 사용해봤는데, 주위에서 “요즘 레이저 시술받았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어요. 제 자신도 놀랄 만큼 눈에 띄게 피부가 좋아진 걸 직접 경험했고요. 그 이후로 한국 화장품을 신뢰하게 되었죠.” 일본 <누메로>의 뷰티 에디터인 히사코 야마자키는 일본 내에서 한국 화장품의 반응이 뜨거운지를 묻는 에디터의 질문에, 한국 화장품의 품질에 사로잡혔다는 고백을 늘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작년에 취재차 서울을 방문했을 때, 마침 일본에서는 발효 화장품이 붐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발효 화장품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때 막걸리 팩과 숨37의 발효 화장품 등을 무척 많이 구입한 기억이 나네요.” 일본에서 달팽이 성분 화장품이 인기 있다는 이야기는 다른 에디터의 증언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일본의 화장품 시장에는 없는 한국만의 발상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달팽이 같은 특이한 성분의 화장품도 그렇고요. 비비크림을 메이크업에 접목해 새롭게 개발한 점도 높이 사고 싶어요.” <스푸르(Spur)>의 뷰티 에디터인 토모코 아사다는 말한다. 중국도 마찬가지 분위기였다. 최근에 열린 ‘2013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중국 내 한류가 한국화장품의 구매 의향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한 강원대학교 김종석 교수의 자료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중국 여자 대학생이 사용하는 화장품 중 한국산 화장품 비율이 86.7%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비비크림이 알린 코리안 뷰티
비비크림에 대한 이야기는 해외 뷰티 에디터들 사이에서 늘 회자된다. 미국 <얼루어>의 뷰티 디렉터인 패티 톨로라니 역시 비비크림을 예찬하고 나섰다. “비비크림은 기존의 스킨케어 방법을 바꿔버렸죠. 비비크림을 잇는 차세대의 혁신 제품은 무엇이 될지 기대됩니다.” 비비크림이 한류의 주역으로 승승장구 중인 이유는 하나의 제품으로 피부 재생, 메이크업 베이스, 자외선 차단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 홍콩에 비비크림을 수출하고 있는 한국 화장품 기업은 닥터 자르트, 스킨79, 한스킨 등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비비크림의 인기 덕분에 한국 화장품의 홍콩 수출도 급증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홍콩의 한국산 화장품 수입 규모는 6번째로 전체 화장품 수입액의 2%에 불과하지만 비비크림의 판매가 늘면서 수입 증가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간단한 사용법으로 건강하고 화사한 피부 톤 연출이 가능한 비비크림에 홍콩 직장여성들이 푹 빠졌죠. 제품이 좋으면서 가격도 비싸지 않아 인기가 여전해요.” 미샤 홍보 담당자의 말이다. 비비크림의 성공은 경쟁사가 없는 확실한 틈새시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홍콩 화장품 시장은 랑콤, 로레알 파리, 올레이, 에스티 로더, 크리니크, 시세이도, 레브론, 맥스 팩터, 크리스찬 디올, 클라란스, SK-II 등 상위 10개 브랜드가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다소 편중된 시장에서 신규 브랜드의 진입이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이 유일하게 생산을 하지 않는 제품이 바로 비비크림이라 한국 제품이 별다른 경쟁 없이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위에 언급한 브랜드 중 상당수가 비비크림을 판매하고 있다.

동경받는 한국 여자들의 피부
한국 화장품의 인기를 체감하는지에 대한 에디터의 질문에 토모코 아사다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에는 피부가 좋은 여성들이 많아서 그럴까요? 어떤 브랜드의 화장품이든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 여성들로 하여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죠.” 그런가 하면 <마키아(Maquia)>와 <마리솔(Marisol)> 등 뷰티 매거진에서 활약하는 뷰티 에디터인 쿄코 우카이는 일본 여성들 사이에 한국의 화장품과 미용법이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고 말한다. “왜냐고요? 주변에서 코리안 뷰티에 관한 질문을 안 받는 날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에요. 한국 여성들의 피부는 마치 ‘반드르르’ 하고 소리가 날 것같이 매끄러워서,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게다가 작년부터 일본의 뷰티 업계에서는 ‘피부 탄력’이 붐이거든요. 줄기세포, 뱀독 등 탄력에 꼭 필요한 성분을 재빨리 화장품 성분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 또한 한국 화장품의 특징이라고 봐요.” 쿄코 우카이는 ‘코리안 뷰티’가 전통적인 미용법을 바탕으로, 그 위에 세계적인 트렌드와 특이한 성분,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 등을 적절하게 가미해 훌륭한 화학반응을 일으킨 ‘믹스 뷰티’라고 표현했다.

‘한국미’에 대한 인식이 생기다
한국의 화장품은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젊고 소비력이 높은 20~30대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고, 특히 K-팝을 좋아하는 현지인들이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놓은 부분도 있다. 그 선두에 있는 브랜드 중 하나가 바로 마몽드이다. 한류 화장품의 중심지인 명동 한복판의 마몽드 매장에서 한국 화장품을 애용한다는 외국인을 만났다. “한국 화장품을 사용하는 이유는 좋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 때문에 구매하기도 하지만 브랜드 모델에 대한 선호가 제품으로 이어졌어요”라고 말한다. 마몽드는 최근 슈퍼주니어의 최시원과 소녀시대 유리를 새로운 모델로 기용했다. 현재 중국, 대만, 홍콩, 몽골, 일본,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등 23개국에 진출해 있는 더페이스샵의 경우는 많은 해외 팬을 보유하고 있는 김현중을 대표모델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 화장품을 구입하는 아시아 소비자들에게 여왕은 따로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모든 국가를 통틀어 라네즈 모델 ‘송혜교’가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하얗고’ ‘맑고’ ‘자연스러운’, 즉 ‘화장을 한 듯 안 한 듯한’ 깨끗한 이미지를 한국 여성과 한국적인 미의 기준으로 꼽은 것이다.

아시아를 넘어서기 시작하다
최근에 열린 닥터자르트의 신제품 론칭 행사에서 마케팅 담당자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영국의 부츠라는 유럽 최대 멀티드럭스토어 300곳에 저희 브랜드가 입점되어 있어요. 제품이 좋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결과죠.” 이후 빌리프가 그 계보를 이어나갔다. 영국의 지점 세 곳과 영국 유명 드럭스토어인 로이드 파머시의 지점 두 곳에 입점한 것. 지난해 말에는 로이드 파머시에 입점한 지 2개월도 안되어 매장 전체에서 판매 순위 톱3에 빌리프의 수분 폭탄 크림인 ‘더 트루 크림 아쿠아 밤’이 선정되기도 했다. “새로운 제품을 시도하는 것을 즐기는 영국 20~30대 소비자들은 빌리프만의 독특한 콘셉트와 제품 네이밍 및 디자인, 제품에 숨겨진 네이피어스의 포뮬러와 한국에서 계승한 빌리프의 스토리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로이드 파머시의 스킨케어 엑스퍼트인 야스민 워드의 말이다. <보그> 아시아퍼시픽 뷰티 디렉터인 캐시 필립스도 영국의 뷰티 마니아 사이에서 한국의 비비크림은 유명하다고 증언한다. 미주 지역에 도전장을 내민 브랜드들도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설화수를 선두로 네이처 리퍼블릭, 더페이스샵, 잇츠스킨, 참존, A.H.C 등 스킨케어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이다. 비디비치의 경우는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인 마캄 플레이스에 입점해 한국 메이크업 제품의 우수성과 그에 따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셀러브리티를 통한 입소문
할리우드 스타 중에 한국 뷰티 브랜드에 애정을 보였다가 광고 모델까지 된 경우도 있다. 2005년, 뉴욕의 아모레퍼시픽 뷰티 갤러리 앤 스파에서 트리트먼트를 받고 아모레퍼시픽 쇼핑백을 들고 뉴욕 거리를 활보하다 파파라치에게 사진을 찍힌 배우이자 패셔니스타 시에나 밀러 말이다. 이 사진은 온라인과 매체를 통해 퍼져, 한국 태생의 뷰티 브랜드 하나가 할리우드 스타의 손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바뀌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물론 일회성은 아니었다. 그녀는 미국의 <피플>지 등 여러 매체를 통해서도 자신을 아모레퍼시픽 마니아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연은 아모레퍼시픽이 시에나 밀러를 광고 모델로 발탁하는 인연으로까지 이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버그도프 굿맨을 비롯해 니먼 마커스 27개 점, 노드 스트롬 7개 점, 세포라 140개 점에 입점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유명 배우 겸 모델인 린카는 자신의 뷰티 노하우를 담은 책 에서 8년간 설화수를 애용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기 있는 제품들
“싱가포르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끈적거리는 제품을 선호하지 않아요. 그래서 치아씨드 스킨케어 라인과 같은 가볍고 산뜻한 제형의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죠.” 더페이스샵 싱가포르 마케팅 매니저인 캐롤 웡은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묻는 <얼루어>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숨37의 경우는 일본 화장품 블로거들 사이에서 ‘시크릿 프로그래밍 에센스’와 ‘화이트 어워드 디톡스 마스크’ 등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잡지에 소개되면서부터 소비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숨37의 자연발효가 일본 소비자에게는 신선한 반응을 얻고 있죠.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시크릿 프로그래밍 에센스 앤 디톡스 마스크예요.” 긴자 GSI 쇼룸의 매니저 시모오카 시호코의 말이다. 에뛰드하우스는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아온 진주알 맑은 비비크림, 래쉬펌 3스텝 볼륨카라, 수분가득 콜라겐 크림 등이 홍콩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속모델인 샤이니와 함께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 전 지역을 대상으로 케이뷰티 전파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라네즈는 워터 슬리핑 팩 EX의 인기를 홍콩에서 실감하고 있다. 홍콩의 패션 매거진인 <오리엔탈 선데이 모어(Oriental Sunday More)>외 다양한 매체에서 최고의 수분 제품으로 선정된 것. 중화권 내에서는 단일품목으로 브랜드 전체매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제품이다. 엘리샤코이 ‘올웨이즈 누디 비비 24’도 온라인 입소문과 제품력으로 일본 내에서도 입점이 까다롭다는 소니플라자 70여 개 매장에서 10만 개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비비크림 단일 제품으로는 이례적인 사례였다. 작년에는 캄보디아에 플래그십 스토어가 오픈하면서 아시아에서 부는 뷰티 한류 열풍이 더 먼 곳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렇듯 바라보고 있으면 뿌듯한 아시아 중심의 K 뷰티에 대해, 앞으로도 세계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브랜드 스스로 제품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고, 현지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해외브랜드 제품을 카피하기보다는 브랜드 고유의 제품을 내놓는 노력이 뒤따라야 K 뷰티의 전성기가 오래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