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들이 일제히 스마트폰 중독을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도 이미 스마트폰의 달콤함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이게 다 스티브 잡스 때문이다. 불을 가져온 프로메테우스처럼 스마트폰의 혁신을 가져온 덕분에 우리는 스마트폰의 늪 같은 매력에 빠져버렸다. 알람 앱을 듣고 일어나 라디오 앱을 들으며 씻고, 집에서 나가기 전에는 날씨 앱과 버스 앱 확인은 필수. 그리고 어디든 이동할 때도 스마트폰 친구가 있으니 외롭지 않다. 아니다. 스마트폰은 친구가 아니라 또 다른나, 분신이자 페르소나다. 식사 자리에서 돌연 침묵이 시작된다면 어색해서가 아니라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급기야 회사에서는 중요한 연수나 워크숍을 진행할 때 휴대폰을 아예 반납한다고 한다. 휴대폰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중독에 따른 금단 증상은 대단하다.

스마트폰 중독을 자각하는 첫 번째 신호는 눈으로 온다. 어느 날, 자꾸 힘을 주어 눈을 깜박이거나, 시리거나, 스마트폰에 거의 코를 박고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과 눈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스마트폰 중독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직장인들이 자주 시달리는 안구건조증과 염증도 스마트폰 중독에 따른 증상 중 하나다. “우리의 눈은 근거리와 원거리를 볼 때 눈의 모양체근으로 수정체를 조절해 초점을 맞춥니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눈을 가까이 하거나 흔들리는 차 안에서 보는 상황을 반복하면 근시의 원인이 됩니다.” 김진국 원장의 설명이다.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한 눈 건강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선 중독에서 벗어날 것. 그 작은 화면을 적게 들여다볼수록 눈 건강에 이롭다. 두 번째는 스마트폰과 눈 사이의 거리를 30센티미터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30센티미터 자를 들고 스마트폰과 눈 사이의 거리를 재어보길. 20센티미터 수준으로 가까워졌다면 의식적으로 눈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을 수밖에.

그러나 미디어가 간과하는 게 있다. 게임이나 SNS 등 개인의 여흥이 스마트폰 중독의 모든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흔한 게임이나 페이스북 하나 하지 않아도 일 때문에 본의 아니게 스마트폰 중독, 아니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사람이다. “과거 스마트폰이 없을 때에는 잠시 미룰 수 있었던 일들이 스마트폰 세계가 열린 후로는 ‘지금 당장’으로 바뀌었어요. 보세요. 지금 계속 클라이언트가 전화와 문자로 저를 쪼아대고 있어요. 어서 메일 확인하고 답을 달라고요! ” 세계적 IT회사 한국 법인의 한 담당자는 거의 울부짖었다. 이처럼 퇴근 후나 주말, 몰디브의 푸른 바다로 휴가를 떠났더라도 여전히 스마트폰은 우리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 하늘로 도망치면 좀 나을까? 그러나 방심하긴 이르다. 항공사들이 10달러 지폐 몇장이면 구름 위에서도 무제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니까(지금까지는 있어도 너무 비쌌다). ‘사무실에 돌아가서’ 또는 ‘내일’이라는 말은 더 이상 핑계가 되지 않는다. 통신망만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지금 당장’ 일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워커홀릭으로 만들고, 워커홀릭은 책임감 때문에 다시 스마트폰에 중독된다.

스마트폰 중독을 경고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스마트폰 중독으로 우리를 밀어넣는 구조는 이제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한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사생활을 야금야금 집어삼킨다. 남자친구로부터, 동료나 가족으로부터“그 놈의 스마트폰 좀 그만 들여다보라”는 말을 듣고 있다면 한번쯤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우리가 스마트폰 세상에서 얻는 건 무얼까? 페이스북의 좋아요, 끝없이 업데이트되는 뉴스 혹은 트위터 팔로어일까?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 스마트한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은 얼마나 공허한가? 한 가족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라, 바쁜 시간을 쪼개어 만나는 소중한 관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은, 정작 눈에는 안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