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다. 몸의 일부가 될 식물이 언제 싹을 틔우고, 어떤 열매를 맺으며, 어떻게 자랐는지를 지켜보는 일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감사하는 일이다. 도시의 건물 옥상에 씨앗을 뿌리는 도시 농부와 나무를 심고 쟁기질을 하기 위해 도시를 떠난 이주 농부를 만났다.

문래동 54-34번지. 오래된 철공소 건물의 옥상에100제곱미터 남짓한 문래도시텃밭이 들어섰다. 당근, 가지 등온갖 채소가 자라고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는 곳이다.

문래동 54-34번지. 오래된 철공소 건물의 옥상에
100제곱미터 남짓한 문래도시텃밭이 들어섰다. 당근, 가지 등
온갖 채소가 자라고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는 곳이다.

 

| 녹 색 , 옥 상 을 점 령 하 다 |

미드 <푸싱 데이지스(Pushing Dasies)>의 여주인공은 꿀벌을 사랑한다. 그런 그녀를 위해 남자는 빌딩 옥상에 양봉시설을 지어 그녀에게 선물한다. 손을 꼭 잡은 연인의 모습, 그리고 꿀벌이 날아다니는 건물 아래로 석양이 비치던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 중 하나였다. 문래동 54-34번지. 오래된 건물의 옥상을 본 순간 바로 그 장면이 떠올랐다. 서울에 이렇게 녹색으로 가득한 옥상이 있다니. 심지어 양봉장이 있는 것도 똑같다! 비록 문래동 벌들의 임무는 꽃가루 수분을 돕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문래동은 철공소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공존하는 곳이다. 빈 철공소의 2~3층을 작업실로 사용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문래동으로 모여들어 문래 창작촌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이뤘다. 그리고 2010년, 문래동 주민들은 도시텃밭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구제역 파동,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 그리고 도시 공동체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다. 방치되어 있던 40년 된 건물의 옥상을 깨끗이 치워 텃밭의 터전으로 삼았다. 2011년부터 시작된 문래도시텃밭은 올해 벌써 세 번째 농사를 준비 중이다. “벌써 세 번째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올해는 특히 문래도시텃밭에 중요한 해예요. 그간은 여성환경연대를 비롯한 단체들로부터 운영금을 후원받았지만 올해부터는 진짜 자립을 하려고 하거든요.” 운영위원이자 문래동 주민인 박상권의 말이다. 시골 농부의 겨울이 모종을 준비하고, 땅이 녹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라면 도시 농부는 텃밭 상자와 주머니를 마련하는 것으로 겨울을 보낸다. 텃밭 상자는 직접 만들었지만, 분리수거장에서 운 좋게 구한 나무 상자들도 있다. 커피 원두를 담았던 자루와 비료포대는 모두 훌륭한 텃밭 주머니가 된다. 100제곱미터 남짓한 면적의 옥상텃밭은 수십 개의 상자와 90여 개의 텃밭 주니머들로 가득하다. 가지, 고추, 토마토, 감자, 허브, 완두콩, 깻잎과 상추 등 친숙한 작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참가자 대부분 농이사 경험이 많지않고, 도시 농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많다. “결국 땅이 아닌 화분에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흙의 깊이가 얕고 증발이 빨라요. 매일 물을 줘야 하는데 이걸 규칙적으로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전문 농경지처럼 스프링쿨러가 있는 것도 아니니 날이 가물 때면 매일 물당번을 정하는 것도 일이지요. 수도세를 아끼기 위해 빗물을 재활용하는 방법도 모색해야 하고요.” 박상권의 설명이다.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비료도 직접 만든다. 칼슘이 풍부한 달걀껍데기를 뿌리기도 하고, 지렁이 분변토를 퇴비로 이용하는 식이다. 상추, 대파 등 여름 내내 끊임없이 자라는 공동 텃밭의 작물은 수확해 인근의 식당에 공급한다. 제대로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해 3월에는 농부학교를 개최하기도 했다. 약 한 달 동안 어떤 흙이 좋은지, 로컬푸드와 토종종자의 종류, 텃밭디자인 등 다양한 도시농업에 관한 내용을 배우고, 독립영화를 감상하며 도농시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문래도시텃밭은 텃밭을 통한 공동체의 회복을 꿈꾼다. “텃밭 크기도 작고, 수확량도 얼마 안 되지만 한 달에 두 번 정도 있는 워크숍에 많을 때는 30명 이상 모여요. 문래동 작가, 아이들부터 장년층 등 많은 사람이 놀러 오죠. 주말텃밭이나 다른 도시텃밭에 비해 지역 주민의 비중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대로 텃밭 부흥회, 옥상 부엌파티, 김장 잔치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주민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래도시텃밭의 또 다른 역할이다. 지난 6월에는 감자 수확을 핑계로 바비큐 파티를 열고, 11월에는 김장 잔치를 열었다. 텃밭에서 키운 배추와 채소로 담근 겉절이를 수육, 막걸리와 곁들이며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냈다. 지난가을부터는 ‘마르쉐@혜화동’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마르쉐는 도시 농부들이 직접 재배하거나 가공한 식재료를 가지고와 판매하는 도심 속 장터. 문래도시텃밭을 비롯해 파절이, 홍대텃밭다리 등 많은 도시 농부 단체와 개인 참가자들이 참여하는 이 장터는 오후 두세 시면 대부분의 상품이 동이 날 정도로 인기다. 지난 3월 9일에 열린 네번째 장터에서 문래도시텃밭 사람들은 아이들이 글씨를 직접 새기고 자투리 나무를 재활용한 씨앗통과 냉이 된장 비빔밥을 만들어 팔았다. 큰 수익을 내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텃밭 운영에 들어가는 기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다. 농경사회에서 농업은 공동체의 근간이었다. 두레와 품앗이가 있었고, 새참을 나누며 서로의 논과 담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기계화로 농업이 대규모 사업이 된 지금, 농촌의 공동체는 무너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정기적으로 텃밭 워크숍을 개최하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교류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도시농업 공동체가, 농업의 원형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농과촌 철저히 분리돼 있던 도시 사람들의 삶이 도시텃밭을 통해 농촌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 흙이 잔뜩 묻은 옷을 입은 문래동 사람들이 다시 옥상으로 오를 시간이다.

시골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 식물들은 수시로자라나고 가을에는 밤나무와 감나무가 열매를 늘어뜨린다.귀농 1년, 푸드 칼럼니스트 김영미의 사계절도 빠르게 흘렀다.

시골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 식물들은 수시로
자라나고 가을에는 밤나무와 감나무가 열매를 늘어뜨린다.
귀농 1년, 푸드 칼럼니스트 김영미의 사계절도 빠르게 흘렀다.

 

| 스 물 여 섯 , 그 녀 의 귀 농 |

“행복해요!” 귀농 후 두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는 푸드 칼럼니스트 김영미는 인터뷰 내내 ‘행복하다’는 단어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그녀는 올해 스물여섯 살이다. 요리하는 게 좋아 2007년부터 블로그에 직접 요리하고 스타일링한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큰 인기를 끌었고, 그녀의 요리들이 <뽕브라의 천원 밥상>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오기도 했다. 가족들과 함께 충남 대천으로 귀농한 것이 2년 전이니, 고작 스물네 살의 나이에 귀농을 결심한 셈이다. “답답한 아파트 생활은 저와 저희 가족 모두에게 맞지 않았거든요. 많은 사람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학교와 직장이 도시에 있기 때문인데, 프리랜서이다 보니 어디에서 일을 하느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귀농을 결심하게 한 이유였죠.” 어디로 갈까, 이 땅 저 땅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한 곳이 바로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충남 대천이었다. 하지만 집을 고치고, 목사인 어머니의 교회를 짓고, 여기에 농사일까지 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도시에 살때도 어머니와 함께 부지런히 주말 농장을 다니고, 베란다에서 간단하게 텃밭 채소를 기른 그녀지만 느닷없이 주어진 시골 땅은 낯설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던 비닐하우스에 비닐을 사다 씌우고, 과일 나무를 심으며 시골 땅에 조금씩 적응해가면서 그녀는 화분에 담긴 흙이 아닌 진짜 땅의 생명력을 깨달았다. “같은 작물을 심어도 훨씬 튼튼해요. 실내에서 키울 때는 햇빛을 씌워주기 위해 밖에 내놨다가 다시 들여놓기를 반복해야 해서 손도 많이 가고, 면역력이 부족해서 성장도 더뎠거든요. 하지만 시골에서는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죠. 게다가 훨씬 싱싱하고요. 소쿠리 하나 들고 수확하러 갈 때는 정말 발걸음이 가벼워요. 당근, 토마토, 오이를 슥슥 닦아 그 자리에서 한입 베어 물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이런 게 행복이다 싶죠.” 농촌 생활에 푹 빠진 그녀의 입에서는 스물여섯 아가씨가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가 술술 나온다. ‘밑이 든다’, ‘노지에서’ 같은 말들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노지(露地)’는 ‘지붕 등으로 덮여 있지 않은 땅’이라고 한다. 비닐하우스 외의 경작지를 가리키는 단어였던 것이다! ‘밑이 든다’는 토란, 고구마 같은 뿌리 채소의 열매가 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물론 그녀 역시 아직은 초보 농사꾼이다. 요리에 사용하는 허브와 몇 가지 채소는 직접 관리하고 있지만 아직은 할머니와 부모님이 하는 것을 곁눈질로 배우며 시키는 것을 하는 정도다. 사람들은 시골에서는 ‘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하루는 오히려 짧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가족들 먹을 만큼만, 취미로 짓는 농사도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짓는 분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계절의 부지런함도 저절로 깨닫는다. 5월에 모종을 심은 고추는 7월이 되니 주렁주렁 풋고추가 열렸다. 집 공사를 하러 온 인부들은 맛있다며 그 풋고추를 뚝뚝 따서 먹었다. 9월이 되자 고추는 빨갛게 익었다. 태양 아래 고추를 바싹 말린 후 방앗간에 가져가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가을이 수확의 계절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 것도 귀농 이후다. 도시에서는 마트에 가야 볼 수 있는 감, 밤, 오디, 매실을 조금만 걸으면 잔뜩 만날 수 있었다. 10분 거리의 뒷산에 잠깐만 다녀와도 한 포대의 밤을 너끈히 담아올 수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빵과 케이크에 넣을 밤조림이라도 만들면, 하루는 금세 지나갔다. 예전에는 식재료를 사서 이것저것 요리를 연구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요리의 기본인 양념과 효소까지 직접 만들고 있다. 뒷집 할머니의 매실나무에서 자란 황매실로 매실효소액을 담그고, 직접 키운 콩에 천일염을 넣어 메주도 띄웠다. 김장을 하고, 들깨도 턴다. 겨울이라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다음 봄을 준비해야 한다. 적양파, 당근 등 각종 모종을 비닐하우스에 조심스레 키우면서 아무것도 나지 않는 줄 알았던 겨울에도 자라는 식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이사를 했거든요. 처음 집에 왔는데 마당에 풀이 있었어요. 올해도 그 풀이 보이기에 알아봤더니 부지깽이 나물이라고 하더군요. 겨울을 이겨내는 나물인데 쑥갓 같은 오묘한 향이 있어요. 밥, 된장국에도 넣고, 파스타에도 넣어봤어요. 직접 심어 수확하는 재미 때문에 이것저것 자꾸 만들게 되네요.” 그녀가 ‘한국식 파스타’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린 부지깽이 나물 파스타에는 5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계절은 한 바퀴를 돌았다. 정신없이 대천에서의 첫해를 보냈으니 마, 연근, 도라지 등 뿌리 채소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나만의 땅이 있다는 자유로움, 산길의 풀냄새, 땅의 기운을 품은 건강한 작물들. 스물여섯의 그녀는 귀농의 한순간, 한순간을 그렇게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