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식도 아닌데 아침부터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여자를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의 결혼식을 앞두고 쇼핑하는 여자의 마음에는 허영심보다는 비장함이 깃들어 있다. 잘 차려입은 하객 패션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봄바람을 타고 청첩장이 하나 둘 날아오는 계절이 돌아왔다. 그런데 하객의 입장에서 바라본 결혼식은 보통 까다로운 행사가 아니다. 청첩장을 받아 드는 순간부터 우리는 기쁨과 부러움, 기대감, 무덤덤함, 또 때로는 귀찮음 등 만감이 교차하는 동시에 그날 스케줄이 어떤지, 축의금은 얼마가 적당할지, 또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진심으로 앞날을 축복해줘야 할 예비 부부는 물론이요, 친인척이든 직장 동료든 식장에서 마주치게 될 수많은 이해관계의 사람들도 한 번씩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나의 사회적 역할을 되새긴다. 결혼식이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근황을 가장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축하하는 마음만 있으면 됐지’ ‘식장에 와줬으면 됐지’는 신랑 신부에게나 통할 얘기일 뿐, “걔 요즘 힘든가 보다. 얼굴이 안 좋더라” 식의 코멘트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다면 근사하고 센스있는 옷차림은 필수다.

바람직한 하객 패션을 위한 준비
결혼식은 다른 TPO에 비해 옷차림에 대한 많은 고민을 요구한다. 관혼상제, 인륜지대사의 하나인 만큼 지켜야 할 예의가 있기 때문이다. 멋진 하객 패션을 연출하기 이전에 그 예의를 먼저 짚어보자. 다들 알고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사항은 바로 흰색 옷을 입지 않는 것이다. 흰 웨딩드레스는 신부의 순결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옷이기 때문에 결혼식 당일 신부가 가진 고유의 권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 흰 옷으로 그녀의 권한에 도전하지 말자. 두 번째로 지켜야 할 규칙은 바로 과도한 노출을 삼가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출의 수위는 꽤 보수적인 편에 속한다. 허벅지 위로 껑충 올라오는 짧은 미니스커트나 속옷이 비치는 시스루 블라우스, 가슴골이 드러나는 상의는 모두 불합격이다. 몸의 굴곡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옷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전지현 급의 늘씬한 몸매를 가졌다고 해도 결혼식같이 로맨틱한 이벤트에서 다른 남자 하객들의 눈요깃거리가 되는 건 신랑신부와 그들의 부모님 및 다른 어른들의 눈에 불쾌하게 비춰질 수 있다. 세 번째는 격식을 갖추는 것이다. 결혼은 공식적인 행사다. 예비 부부가 독특한 취향을 가져서, 특별한 테마가 정해진 결혼식이 아니고서야 너무 캐주얼하거나 지저분한 행색은 그들이 그간 공들여 준비한 행사에 참석하는 예의에 어긋난다. 신랑 신부에게 영원히 아름다운 날로 기억될 결혼식에 유일한 오점으로 남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위의 세 가지 규칙을 숙지했다면 이제는 실전이다. 무엇을 입고 갈지 고민하기 전에 가장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은 바로 청첩장. 청첩장에는 우리가 그 결혼식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 식이 열리는 장소와 날짜, 시간은 물론 글씨체가 전달하는 뉘앙스, 리본 등 장식의 유무, 함께 실린 사진을 보면 신랑 신부가 어떤 결혼식을 그리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경건한 분위기든 가족적인 분위기든 청첩장에 깃든 메시지를 읽고 그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옷차림을 준비하자.

멋과 예의의 교집합 찾기
결혼식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멋까지 챙기려면 약간의 영감이 필요하다. 이럴 때는 요즘 화제가 되는 연예인들의 하객 패션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 그녀들의 옷차림을 관찰하면 성공적인 하객 패션을 연출하기 위한 열쇠가 되는 아이템들이 한눈에 보인다. 일반인들은 물론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흔하게 활용되는 하객 패션 아이템은 단연 파스텔 톤 재킷이다. 최근 원더걸스 선예의 결혼식에 등장한 소녀시대 멤버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파스텔 톤 색상의 재킷과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스키니 팬츠와 실크 셔츠, 간결한 디자인의 가방과 구두로 실용적이면서 편안한 매력을 살린 수영의 옷차림이 크게 주목받았다. 몇 년 전 장동건과 고소영의 결혼식에 옅은 핑크색 재킷을 입고 나타난 신민아도 마찬가지. 모던한 쇼츠와 티셔츠, 담담한 무드의 가방과 샌들로 간결한 매력을 살린 것이 주요 스타일링 포인트였다. 이렇게 파스텔 톤 컬러의 재킷은 예뻐 보이려고 애쓴 흔적이 드러날 때보다 담백한 느낌을 유지했을 때가 훨씬 세련돼 보인다. 당당한 애티튜드를 가진 스타들이 선택한 아이템은 와이드 팬츠였다. 이천희의 결혼식에 참석한 이효리는 몸에 맞춘 듯 완벽한 피트의 베이지 컬러 와이드 팬츠에 옅은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어 그녀의 가장 세련된 룩 중 하나로 기억될 옷차림을 선보였고, 김민희는 살구색 블라우스와 선명한 파란색 와이드 팬츠, 클러치백을 활용해 에지 있는 하객 패션을 완성했다. 와이드 팬츠는 특유의 매니시한 느낌 때문에 여성스러운 블라우스로 딱딱함을 완화하고 간결한 디자인의 액세서리로 모던함을 강조하는 게 가장 예쁘다. 사랑스러운 원피스 역시 셀럽 하객 패션의 단골 메뉴다. 얼마 전 엄태웅의 결혼식에 참석한 정려원은 빈티지 무늬가 들어간 원피스 위로 간결한 코트를 걸쳐 격식을 차리는 동시에 빨간색 펌프스를 매치해 특유의 발랄함을 강조했고, 같은 날 엄지원은 세련된 디자인의 언밸런스 원피스를 입되 계절과 격식을 고려한 검은색 상의를 받쳐 입어 예의를 표했다. 단아한 옷차림이 평소 엄지원의 이미지와 시너지를 일으켜 다른 하객들보다 훨씬 그녀를 돋보이게 했다는 평이다. 근사한 한 벌 차림 또한 품격 있어 보인다. 계산된 디테일의 조화가 완성된 옷차림을 만들기 때문이다. 장· 고 커플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 중 벨트로 허리를 강조한 김윤진의 투피스 차림이나 스카프를 응용한 민소매 톱과 스커트 앙상블을 선택한 하지원을 보면 세련된 한 벌 차림만큼 공식 행사에 잘 어울리는 옷차림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셀럽들의 하객 패션에서 찾은 또 다른 스타일링 비법은 바로 심플한 액세서리 연출이다.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든 그녀들의 가방은 하나같이 간결한 디자인이었고, 구두는 펌프스와 메리제인 슈즈, 스트랩 샌들 등 클래식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액세서리도 크고 요란한 것을 주렁주렁하기보다는 꼭 필요한 것만 적재적소에 매치해 옷차림의 허전함을 보완하는 정도다. 성공적인 하객 패션의 열쇠는 예절의 선을 넘지 않되 간결함과 세련미를 강조하는 데 있었다.

하객 패션의 진정한 의미
예전에 비해 요즘은 결혼식이 다양해졌다. 저녁에 하는 경우도 많고, 야외에서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는 날씨와 장소를 미리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잔디밭이나 해변에서 열린 결혼식에 스틸레토 슈즈를 신고 가면 발이 푹푹 빠지는 건 당연지사, 찬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슬리브리스 원피스 하나로 긴 주례사를 버티는 건 고문이 따로 없다. 아무리 옷을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추위에 떨거나 땀을 주체 못해 쩔쩔 맨다면 결코 스타일리시해 보이지 않을 테니 청첩장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또 예식 이후 피로연이 이어지는 경우에는 옷을 갈아입을 여유가 따로 없는 이상 드레시한 원피스에 매니시한 재킷을 매치하는 등, 처음부터 행사 진행에 따른 의상의 변화를 준비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바람직한 하객 패션은 나의 센스와 사회적 지위를 그대로 나타내는 척도이자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고 행사의 격을 높이는 중요한 드레스 코드다.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차려입든 실용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런웨이가 아닌 예비 부부도, 하객도 모두 즐거워야 할 축제의 장이라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