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보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의 임차인이었다’라는 문장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아득한 내 집 마련의 순간까지 월세, 또는 전세로 살아갈 우리를 위해 정리한 현명한 임차인으로 살아남는 법.



웹툰<어쿠스틱 라이프> 3권에는 주인공이 전세 계약금을 날린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등 떠밀리듯 계약을 했지만 곧 건물 자체에 불안한 점이 발견됐고, 결국 계약을 파기한 것이다. 뼈아픈 경험을 한 주인공은 말한다. ‘어째서 나는 그 순간에도 남의 눈치를 봤을까’라고. 매몰차지 못한 세입자 모두가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둬야 할 대사다. 왜 우리는 집주인 앞에서 작아질까? 낡은 배관 시설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돈으로 보일러를 고치고, 입주 전에 교체해주기로 한 변기 커버가 그대로여도 참고 만다. 그로 인한 억울함과 분노는 자려고 누웠을 때, 슬그머니 밀려왔다 사라진다.

전월세자로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이 임대인에게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부모님 뻘인 데다가 종종 같은 건물에 살기도 하는 임대인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까봐, 둘째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정당한 요구사항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에서 발표한 ‘통계로 본 서울시민의 연령계층별 삶’에 따르면 15~29세 가구의 90%가 전세, 혹은 보증금을 낀 월세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자리 잡은 30세부터 45세까지의 장년층도 전세자의 비율이 40%가 넘는다. 전셋값 폭등으로 월세에서 반월세로 전환하는 가구가 많아지면서 주택 임대시장 내 월세 비중이 49.7%로 급상승했다는 인구주택총조사의 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의 가구 중 절반이 세입자로 살아가는 지금, 그동안 너무 착한 임차인으로 살아온 우리를 지켜줄 법률들을 모았다.



문서의 힘
계약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으니 계약이 완료된 이후부터 나와 임대인의 관계와 의무는 철저히 계약서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문서의 효력을 간과하는 많은 초보 임차인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계약을 취소하더라도 이야기만 잘하면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계약 후 24시간 이내면 괜찮다는 잘못된 사실을 믿는 사람도 많지만 이는 이미 2008년 대법원 공보관에 의해 ‘법적 근거가 없는 관행’으로 판결된 사실이다. 가계약금의 경우 돌려주기도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관행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할 때 반드시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바로 특약사항이다. 아직은 임대인과 ‘밀당’을 할 수 있는 계약서 작성의 시간, 방범창을 비롯한 새로운 시설물의 설치, 가스레인지의 교체, 반려동물을 키워도 좋다는 합의 등 입주 전 임대인에게 요구 사항을 매끄럽게 문서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필요 사항과 요구 사항을 꼼꼼히 확인하고 점검해 특약사항에 첨가하도록 하자. 물론 임대인이 특약사항으로 걸어둔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서화된 계약서의 힘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니까.

최소임차기간’과 ‘자동 연장’을 아세요?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최소임차기간이다. 주택의 경우 2년 동안 임차인의 거주를 보장하는데, ‘법률’, ‘2년’, 이 두 단어만 기억한 나머지 주택을 계약할 때는 반드시 1년, 혹은 2년 단위로만 해야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최소임차기간과 상관없이 임대인이 동의한다면 7개월, 20개월 등 자유로운 계약이 가능하다는 사실! 계약을 연 단위로 끊어 생각하는 습관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오해는 2년 계약을 했더라도 1년이 지나면 이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2년 계약을 했다면 1년만 살고 나가는 것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따라서 다음 임차인의 부동산 중개료를 지급함은 물론 방이 나갈 때까지 월세를 지불해야 한다. 계약 기간이 끝났다면? 계약만기를 기준으로 6개월~1개월 사이에 별 다른 이야기가 없다면 계약은 ‘자동 연장’된다. 법률 용어로 ‘묵시의 갱신’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이전의 계약 내용을 갱신하는 것을 양쪽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의미다. 자동 연장이 됐다는 것은 임차인, 즉 내가 처음 계약 기간의 내용을 충실히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급작스레 나가게 되더라도 언제든지 당당히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 임대인이 보증금, 혹은 전세금을 선뜻 돌려주려고 하지 않거나 다음 임차인을 구하는 데 소극적이라면? 자동 연장 기간 중에는 해지 통보 후 3개월이 지나면 법적으로 나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 것.

보증금을 사수하라!
집주인이 내 보증금과 전세금을 통장에 고이 간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건물을 가지고 있는 임대인이라고 해서 언제나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최악의 경우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사회적 약자인 소액 임차인을 위해 만든 법이 바로 주택임대차보호법 중 하나인 우선변제권이다. 경매 대금에서 임차인이 보증금을 우선 받을 수 있도록하는 이 법의 혜택을 누리고 싶다면 전입신고를 할 때 주민센터에 계약서를 들고 가서 확정일자를 받으면 된다. 수수료는 단돈 6백원! 다른 임차인보다 먼저 전입신고를 하고 살았다고 해도 확정일자를 받지 않는다면 변제 순위가 맨 뒤로 밀리게 되고, 내 몫의 배당금이 남지 않아 보증금, 혹은 전세금을 못 받게 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러니 확정일자를 반드시 받자. 그래도 불안하다면 전세금보장신용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전세금 인상을 무리하게 요구한다면
계약 기간 중의 임대료 인상 요구는 무시해도 좋다.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줄이고 월세를 늘리거나 월세로 전환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따를 의무는 없다. 자동 연장된 경우에도 마찬가지. 하지만 어쨌든 계약 만료의 시간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특히 전세의 경우 몇 천만원씩 오르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또 이삿짐을 꾸리기 일쑤다. 주택의 임대료 인상한도를 5%로 제한하는 법이 있긴 하지만 재계약할 때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무척 마음에 들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사를 할 수 없을 경우, 큰 폭으로 오른 전셋값을 어떻게 충당하는 것이 좋을까? 요즘같이 전세 가격이 불안정할 경우에는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 것보다 전세금의 인상폭만큼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가 차라리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 한국주택연구소의 입장이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충당했다고 해서 2년 후, 계약 기간이 끝날 때도 시세가 그대로 유지되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방범창 설치, 요구해도 되나요?
반지하, 혹은 2층 정도 높이의 저층에 입주할 경우, 안전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임대인은 임차인의 안전을 배려하거나 도난을 방지하는 등의 보호의무까지 부담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결이다. 입주 전 특약사항에 방범창 설치 등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항을 요구했다면 좋았겠지만 시기를 놓쳤다면 임대인의 동의를 얻어 자비로 설치한 후 집을 나올 때 임대인에게 구매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민법 제 646조에 따르면 임대인의 동의를 얻어 설치한 부속물의 경우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매수를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임대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 화장실에 세면대를 설치하거나 변기를 교체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설치 여부뿐 아니라 대략적인 가격도 합의해야 다툼 없이 양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또 고장 났다!
지붕, 변기, 벽, 가스 등 기초 설비에 문제가 있을 경우, 임대인은 수리비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 문제 상황을 임대인에게 알린 후, 수리 견적서와 영수증, 그리고 전문가로부터 받은 고장 사유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다. 하지만 ‘임차인이 잘못 사용해서 고장 났는데 내가 왜?’라고 생각하는 임대인도 있다. 가장 흔한 예가 겨울철 잦은 보일러 동파 사고다. 가스비를 줄이기 위해 보일러를 끄고 며칠 동안 집을 비운 임차인 때문에 보일러가 동파될 경우 임대인은 억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청 주택임대차상담실 소속 이인덕 상담위원의 저서 <나몰라 임대인 배째라 임차인>에 따르면 서울시청에서는 보일러의 사용 가능 기간을 7년으로 잡고, 보일러의 잔존금액에 따라 임차인의 지불 한도금액을 설정하고 있다. 5년 전에 50만원을 주고 설치한 보일러의 잔존금액을 계산하는 방법은 ‘보일러 설치비(50만원)× 2/7(남은 기간/보일러 사용 가능 기간)’인 것이다. 이 경우 임차인이 지불해야 하는 최대 수리금액은 약 14만원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설치한 지 7년이 넘은 보일러가 고장 난 경우, 원인은 ‘시설 노후’로 처리돼 수리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올겨울처럼 한파가 계속되면 수도계량기가 동파되기도 하는데, 2010년 제정된 법률에 따르면 수도계량기는 수도사업자가 설치한 것이므로 사용자가 수리비를 지불할 의무가 없다니 기억해둘 것. 기본 시설 수리가 임대인의 책임이듯이 수도꼭지, 형광등 같은 작은 소모성 자재의 경우 임차인이 수리비를 지불해야 한다. 세상은 서로 지킬 걸 지킬 때 아름답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누수로 인한 수도세, 누가 책임져야 할까
누수의 원인은 시설 노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상수도 자체의 설비 및 배관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수도세가 수십 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다행히 민법 제 623조에 따르면 임대인은 임대목적물의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수도배관 수리비뿐만 아니라 수도관 파손 누수로 인하여 발생한 수도요금도 부담해야 하는 것. 실제로 노후한 수도관으로 인한 특별시와 광역시의 수돗물 누수율은 6.5%에 달하며, 수도관 노후가 누수의 원인으로 인정될 경우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수도세를 차감해주기도 한다. 과도한 수도세 앞에 고민하기보다는 원인을 파악하고, 한국수자원공사에 민원을 신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월세로 소득공제 받기
수많은 월세인이여 기뻐하라! 수입의 가장 큰 현금지출 항목을 차지하는 월세. 바로 그 월세의 연말정산 혜택이 올해 한층 늘어났기 때문이다. 혜택 대상자 기준은 총 급여액 3천만원 이하에서 5천만원 이하로 확대됐고, 배우자나 부양가족이 없는 단독 가구주도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월세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필요한 주민등록등본과 임대차 계약서, 계좌이체 등의 지급 증명 서류를 준비하고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공제 금액의 한도는 최대 3백만원으로 정해져 있지만 월세 금액의 40%까지 공제받을 수 있으니 솔깃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임차인이 여전히 월세 소득공제신청을 망설인다. 임대인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긴 자신의 현금 수입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어느 임대인이 반기겠나. 때로 세금을 더 내게 됐다며 임차인에게 부가가치세를 청구하는 양심불량의 임대인도 있지만 개인으로 등록된 소유자의 경우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지 않으니 소득공제를 받으려면 월세를 더 달라, 부가가치세를 내라는 요구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집주인이 사업자로 등록된 경우에는 현금영수증이 발급가능한 사업장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야 소득공제를 요청할 수 있다.부디 올해 나와 당신이 당당한 임차인으로 거듭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