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관에서 모습을 비추었던 연기자들이 무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열기와, 끝난 후의 남겨지는 여운때문에.

1. 의 배종옥과 조재현. 2. 의 오달수.

1. <그와 그녀의 목요일>의 배종옥과 조재현. 2. <키사라기 미키짱>의 오달수.

배종옥, 조재현이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은 바로 이거였다. ‘어머, 이건 꼭 봐야 해!’ 이런 생각을 한 게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라디오스타>는 예능으로서는 드물게 <그와 그녀의 목요일>의 배우들을 초청했다. 배종옥, 조재현, 그리고 정웅인이 함께 출연한 방송은 작품의 홍보를 위한 자리였지만 공중파 예능에서 ‘연극’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이기도 했다.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을 이야기하며 ‘대학로보다 주차 시설이 좋습니다. 편하게 보러 오세요’라는 정웅인의 능청스러움 사이로, 중년의 두 이성친구가 매주 목요일마다 만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작품의 구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TV와 스크린에서 익숙해진 얼굴들이 무대 위에 오른다는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로 열연한 것에 이어 <어쌔신>에서는 연출가로 변신한 황정민은 2012년을 내내 공연장에서 보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윤제문은 극단 ‘골목길’의 창단멤버로서 연극 <쥐>의 무대에 다시 섰고, <골든 타임>의 삼인방, 이성민과 송선미, 그리고 정석용은 연극 <거기>에서 만날 수 있다. 정석용, 강신일이 속한 극단 차이무의 작품 <거기>는 애초보다 3개월 연장된 2월 24일에 막을 내린다. <신사의 품격>의 이종혁의 다음 행보가 <벽을 뚫는 남자>라는 뮤지컬일 줄 누가 알았을까? 영화 <공모자들>에서 오랜만에 주연을 맡았던 임창정, 얼마 전 <무한도전-못친소 특집>에서 인기상을 받은 배우 고창석 역시 11월 27일부터 같은 무대에 서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벽을 뚫고 지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소심한 우체국 직원의 이야기를 그린 <벽을 뚫는 남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한편, 지난 11월 29일 세 번째 시즌을 개막한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은 원년 멤버인 이철민에 이어 오달수가 합류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중견 배우들의 연이은 공연 소식은 사건이라기보다는 귀향에 가깝다. 대학로에서 시작해 공중파와 스크린으로 진출했던 배우들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니 말이다. 다만 스타가 된 후 다시 대학로로 돌아오는 행보가 예전에는 새삼스러운 것이었다면 이제는 무대와 TV의 간극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을 뿐이다. 송강호나 신하균은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조재현은 <계백>을, 황정민은 <댄싱퀸>을 마친 후 다시 무대로 온다. 왜 무대를 찾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비슷하다. 누군가는 현장의 숨막히는 열기에 대해, 누군가는 막을 내리고 난 후의 여운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제고 무대로 다시 돌아오는 몇몇 배우의 행보에서 느껴지는 것은 연기자로서의 카타르시스를 뛰어넘는, 무대를 향한 책임과 우직한 애정이다.

그 대표적인 배우가 조재현이다. 2004년, 침체된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연극열전>의 대표적인 얼굴인 그가 처음으로 프로그래머를 맡았던 <연극열전 2 : 조재현 프로그래머 되다!>의 작품들은 14개월 동안 총 관객 27만 명, 객석점유율 95%의 기록을 세웠다. <에쿠스>, <민들레 바람 되어> 등의 무대에 선 그는 <연극열전>의 든든한 프로그래머이자 배우다. 그가 가진 대중성은 장진 감독과 함께 <연극열전>의 한 기둥이 된다.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지금은 대학로에 공연장을 짓는 중이라고 한다. 오달수는 1990년 극단 연희단거리패에서 연기를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신기루 만화경’이라는 이름의 극단을 이끌고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는 <친절한 금자씨>의 목사, 혹은 <도둑들>의 소심하고 머리 큰 도둑이지만 그 사이사이 그는 총 제작비 30만원의 연극을 만들기도 하고, 연극의 실패로 가진 돈을 잃기도 했다.

<키사라기 미키짱>의 출연을 앞두고 쏟아졌던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에게 ‘연극이 집이라면 나머진 직장’이다. <라디오스타>에서 왜 연극에 출연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배종옥은 “조재현 씨가 뜬금없이 전화해서 그러더라고요. 돈 많이 벌어서 뭐해, 연극이나 하지”라고 했다며 웃었다. 연극은 ‘돈이 안 된다’는 현실이 얼핏 비치는 말이었다.

꾸준히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 그렇지 않은 배우들보다 더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학로의 환경이 충무로나 여의도의 그것보다 척박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어디에 속해 있든 간에,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이들은 더 큰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 <연극열전 4>의 다섯 번째 작품인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예술의전당에서 12월 31일까지, <키사라기 미키짱>은 2월 24일까지 컬처스페이스엔유의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