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쇼가 시작되기 전, 무대 뒤편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디자이너와 모델들, 아티스트들이 궁극의 아름다움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그곳, 2013년 봄/여름 뉴욕 컬렉션장을 누빈 바비 브라운의 아티스트 노용남이 쇼 메이크업의 노하우로 가득한 백스테이지 다이어리를 보내왔다.
9/8 Marisa Webb
마리사 웹의 컬렉션은 강인하면서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현대 여성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메이크업 팀의 임무는 그에 잘 어울리는 완벽하게 빛나는 피부와 드라마틱한 눈매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종의 누드 메이크업이었다. 거기에 깊은 눈매를 연출하기 위해 내년에 선보이는 신제품인 ‘롱-웨어 크림섀도우’의 바크 컬러를 사용했는데, 실제 쇼 조명 아래에서 메이크업을 본 디자이너가 눈매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고 해 수정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직접 팀을 지휘한 바비 브라운 여사는 손가락을 이용해 몇 번이고 섀도를 닦아내려 했지만 잘 지워지지 않자 “역시 내가 만든 롱-웨어 제품은 정말 지워지지 않는구나” 하며 스스로 감탄해 웃음을 자아냈고, 결국 크림섀도를 리무버로 닦아내고 케이크 타입의 다른 섀도 제품으로 수정했다. 이렇게 백스테이지에서 일을 하다 보면, 사전에 아무리 꼼꼼히 시안협의를 해도 현장의 빛과 조명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당초 하기로 했던 메이크업을 정정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9/8 TiBi
티비 쇼에서는 낯익은 얼굴이 두 명 있었다. 바로 한국 모델 신재이와 강소영.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 함께 작업해본 적이 있던 터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참 신기하지, 자주 보던 얼굴도 외국에서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담소를 나누는 것도 잠시, 바쁘게 돌아가는 백스테이지의 분위기에 휩쓸려 곧 일을 시작했다. 이번 티비 쇼의 메이크업은 화이트 컬러의 베이스 위에 더스티 블루 컬러의 아이섀도를 엷게 펴 바른 눈 화장이 포인트였다. 눈을 강조하기 위해 입술은 매트하게, 볼에는 살짝 홍조를 더했다. 나는 신재이와 어느 백인 모델을 맡았는데, 콘셉트상 아이라인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홑꺼풀 눈매의 신재이는 뿌연 빛의 섀도 때문에 눈매가 평소보다 흐릿해 보였다. 아이라인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쇼의 콘셉트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애써 참았다.
9/9 Daniella Kallmeyer
화사한 꽃무늬 프린트의 옷에 미래지향적인 선글라스를 매치한 다니엘라 콜메이어 쇼에서는 피부 톤은 최대한 깨끗하게 정리하는 수준에서 머무르는 대신 눈썹을 아주 밝은 오렌지와 블루 컬러로 물들이는, 독특한 포인트를 주었다. 꽤 난해한 메이크업이라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어린 모델들의 귀여운 얼굴에는 그리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쓰자 그 위로 컬러풀한 눈썹이 올라오는 것도 재미있었다. 다니엘라 콜메이어 쇼에서는 다양한 인종의 모델들에게 메이크업을 할 수 있었는데, 그중 내가 맡은 한 흑인 모델이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메이크업을 해준 사람들 중 가장 어두운 피부 톤을 가진 그녀는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파운데이션 컬러를 발라도 어울리지 않았다. 모델의 뺨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지우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결국 우리나라에는 수입되지 않는 ‘체스트 넛’이라는 색상을 찾아서 발랐다. 현장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톤의 파운데이션이었다. 사실 이 색상도 그 모델에게는 약간 밝은 감이 있었지만 흑인들은 원래 피부 색이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피부색을 한 가지 톤으로 통일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