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멋있는 중년을 꿈꾼다. 현재가 과거이고 또 미래라 생각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기꺼이 찾아 나선다. 책상 앞에 앉은 지진희가 지진희이기에 가능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웨터는 니나 리치 맨(Nina Ricci Man).

셔츠와 타이는 디올 옴므(DiorHomme). 베스트는 존 화이트(John White). 선글라스는폴리스 바이 세원 ITC(Police bySewon ITC). 시계와 팔찌는모두 까르띠에(Cartier).

가장 더울 때 <대풍수> 촬영을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한여름에 사극촬영이라니. 생각만 해도 땀이 나네요.
현대극에 비해 힘들고 불편한 점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촬영을 하고, 심지어 산으로 다녔으니까요. 그것도 엄청난 두께의 털옷을 입고 동물 가죽까지 덮어 쓰고 말이에요.

이성계를 연기하는 당신을 보며 ‘정말 지진희야?’라고 한 건 저뿐만은 아닐 거예요.
의도한 바예요. 저인지 몰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 더 새까맣게 칠했다가 너무 심하다 싶어서 조절한 게 그 정도예요. 초반에는 사람이 아니라 거의 동물처럼 나와요. 이제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서 좀 놀라긴 했을 거예요.

본의 아니게 또 사극이냐는 말을 좀 들었겠어요.
사극을 많이 한 건 아닌데 사극이 다 잘되어서 그런지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당분간 좀 멀리 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작품이 좋아서, 너무 좋아서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용석 PD에게 이성계 역할을 먼저 제안했다고 들었어요. 왜 이성계여야 했나요?
<대풍수>에서 이성계는 즉흥적이고 가볍지만 의리 있는 인물로 그려져요. 왕에 관심조차 없는 인물이었지만, 운명을 받아들이고 임금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줘요. 역사를 통해서, 혹은 그동안의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보여진 이성계의 모습은 잊어도 좋을 만큼 드라마틱하게 그려질 거예요. 그래서 욕심을 낸 거예요.

역사적 인물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그리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겠어요.
감독님도 저도 초반에 많이 망가지기를 원했어요. 어느 선까지 가야 할지, 어디까지가 적절할지 조율하면서 맞춰나갔죠. 초반에는 매일 기생집에서 술 마시고 난봉꾼처럼 굴어요. 임금과는 전혀 거리가 먼 야인의 모습에서 점차 변해가는 모습이 흥미로워요.

얼마전 기자간담회 때 보니 배우들끼리의 팀워크가 유난히 돈독해 보이더라고요.
네. 정말 좋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용석 PD가 좋은 배우들, 화합이 잘되는 배우들만 캐스팅했어요. 초반에 캐스팅할 때 요구 조건이 많은 배우는 정리하고 다시 재정비를 한 거예요. 몇 번 회식을 했는데, 다들 성격도 좋고 어찌나 잘 노는지 매번 쫑파티 수준으로 논 것 같아요. 그래서 빨리 친해지기도 했고요.

기자간담회에서 목지상을 연기하는 지성이 ‘지진희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며 느닷없이 고백을 하기도 했죠.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서 현장에서 가장 의지하면서 지내요. 우리 둘이 함께 가지 않으면 이야기가 전개될 수가 없어요. 이성계와 목지상이 서로를 믿고 가야 하는 작품이라 그렇게 이야기했을 거예요.

셔츠는 디올 옴므.팔찌는 까르띠에.

영화에서의 당신의 캐릭터는 특히 종잡을 수가 없어요. 다분히 의도적인 거겠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좋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드라마는 TV 틀면 나오는 거지만 영화는 일부러 찾아 봐야 하잖아요. 드라마와 같은 모습을 굳이 영화에서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시청자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요. 중국에 가서 <퍼햅스 러브>라는 뮤지컬 영화를 했고,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라는 블랙 코미디도 했고, 라는 스릴러, <수>라는 하드 보일드 영화도 했어요. 계속 다르고 새로운 걸 제시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건 제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관객들이 그런 당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게 서운하지는 않나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몇 명이 봤다는 객관적인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작품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졌겠죠. 그 영화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뭔가요?
제가 봤을 때의 ‘재미’예요. 굉장히 주관적인 요소죠. 그런데 여기에는 많은 게 포함되어 있어요. 저를 아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재미도 있고 , 제가 하면서 즐거운 재미도 있어요. 저는 낯선 것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요. 골목길, 옛 길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성향 때문이에요. 저 골목길에서 돌아가면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고 설레어 하죠. 작품을 볼 때도 그래요. 완전히 눈에 보이고 그려지는 것보다 미지의 어느 부분이 남아 있는게 좋아요.

최근 개봉한 영화 <점쟁이들>에 출연도 하지 않고 ‘원안’ 제공자로 크레딧을 올렸어요. 어찌된 일인가요?
제작자가 친한 친구예요. 방콕을 여행하다 가이드한테 들은 이야기가 너무 신기해서 들려줬더니 흥미로워하더라고요. 평소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잘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시나리오에 있어 소재가 가장 중요한데 크레딧만 올리고 끝난 건가요?
레고를 사주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건 안 사주고 자기가 사주고 싶은 거 사줬어요. 사정이 좋아지면 좋은 거 사준다는데 안 사줄 것 같아요. 사실 지금 정말 기막힌 이야기가 하나 있거든요. 정말 끝내주는 건데 이건 다른 제작자한테 이야기하려고요.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어진다는 말은 자주 듣고 있죠?
저는 중년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진짜 멋있는 중년이 되고 싶고, 그 길을 차근차근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멋있는 게 아니라 한 남자로서 멋진 중년이 되고 싶어요. 얼굴 표정, 손짓 하나에서도 지난 인생이 느껴지고 철학이 배어 나오는 그런 중년 말이에요.

사진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배우의 길로 들어섰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배우가 최고의 직업이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연기라는 거예요. 만약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면 사진가가 최고의 직업이고, 사진 찍는 일이 가장 자신 있었을 거예요. 저는 현재에 충실할 뿐이에요. 지금의 제 모습이 과거이고 또 미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