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우아한 아르누보 스타일과 1960년대 풍의 옵아트 프린트, 밀리터리 룩과 팬츠 슈트의 우아한 귀환, 어깨선을 내린 오버사이즈 코트와 재킷, 검은색 가죽의 부드러운 변주 등 2012년 가을/겨울 트렌드를 한번에 여행하는 패션 급행열차.

Magic Print

마치 매직아이를 보는 듯 눈이 뱅글뱅글 도는 옵아트 프린트 의상이 런웨이를 급습했다. 기하학적으로 반복되는 다채로운 색상의 프린트로 무늬맞춤을 연출한 프라다와 블라우스, 팬츠, 케이프까지 3단 콤보 옵티컬 룩을 선보인 메리 카트란주, 서로 다른 프린트를 섞어 스타일링의 묘미를 살린 겐조 컬렉션이 대표적. 보는이가 현기증이 날지언정 이 트렌드를 탐낼 만한 이유는 체형 결점을 교묘하게 감춰주기 때문이다.

아르누보 시대

1900년대 등장한 예술사조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20년대에 이르러 보다 현대적이고 직선적인 양식인 아르데코(Art Deco)로 이어졌는데, 이번 시즌에는 이 두 가지 스타일이 교묘하게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식물 잎사귀와 덩굴을 모티프로 한 프린트와 자수, 반짝이는 젬 스톤과 섬세한 레이스 장식으로 대표되는 아르누보 스타일은 루이 비통, 마르니, 스텔라 맥카트니의 손을 거쳐 아르데코풍의 가늘고 긴 실루엣으로 탄생했으며, 구찌와 살바토레 페라가모, 랑방 컬렉션은 본질에 충실한 디자인으로 여자의 관능적인 촉수를 자극한다.

New Soldier

카무플라주 패턴으로 대표되는 식상하고 딱딱한 밀리터리 룩은 안녕. 군대에서 일명 ‘깔깔이’로 불리는 방한용 재킷을 닮은 누빔 패딩점퍼와 펜슬 스커트의 조합을 보여준 아크네, 나폴레옹의 제복을 닮은 슈트를 선보인 살바토레 페라가모, 밀리터리 재킷에 러플 장식의 스커트를 매치한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은 밀리터리 룩의 새로운 연출 방법을 알려준다.

스웨터의 품격

가을의 포문을 여는 스웨터는 언제나 많은 사랑을 받지만 이번에는 품격이 더 높아졌다. 올빼미가 그려진 버버리 프로섬의 스웨터는 여성스러운 헌팅룩에 위트를 불어넣고, 우아한 A라인 스커트 위에 걸친 로샤스의 스웨터는 여성성을 투박한 멋으로 중화한다. 오버사이즈 룩을 입은 소녀들을 낭만적으로 만든 클로에의 스웨터와 야성적인 매력의 겐조식 스웨터도 눈여겨볼 만하다.

Riding High

가을에는 근사한 라이딩 룩 때문에 승마를 배우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말을 탈 때는 물론이고 말에서 내려 곧장 번화가를 걸어도 멋질 라이딩 룩이 무수하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가죽과 실크, 스웨이드 소재의 멋진 궁합을 보여준 지방시, 과거 귀족들이 입었을 법한 고전적인 분위기의 랄프 로렌, 라이딩 룩의 영원한 친구 에르메스, 클래식의 절정을 보여준 에르마노 설비노의 컬렉션에서 낭만적인 라이딩 룩을 만날 수 있다.

팬츠가 돌아왔다

본디 남자의 것인 팬츠가 이번 가을/겨울 제대로 여자의 다리를 탐낸다. 특히 팬츠 슈트가 강세를 보이는데, 정숙하게 차려입는 정장 버전부터 편안한 감성의 파자마 스타일 슈트, 영국 신사 같은 체크무늬 슈트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팬츠 슈트를 선택할 때는 걸을 때마다 슬쩍슬쩍 다리선이 드러나는 와이드 팬츠와 테일러드 팬츠, 날렵하게 떨어지는 시가렛 팬츠를 주목하길. 때로는 다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미니스커트보다 잘 빠진 팬츠가 더 섹시하다.

Think Big

몸을 조이는 옷에서 해방될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가을/겨울에 손쉽게 멋쟁이가 되려면 큰 옷을 주목하면 된다. 어깨선을 팔 아래로 내린 둥그스름한 코쿤 코트와 넓은 소매를 붙인 낙낙한 테일러드 재킷, 땅에 끌릴 듯한 울 소재 와이드 팬츠 등 큼직한 사이즈가 근사함을 부른다.

Good Bye!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친구가 두 명이나 떠났다. 톰 포드가 떠난 빈 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준 입생로랑의 스테파노 필라티와 시들어가던 꽃을 활짝 피워낸 질 샌더의 라프 시몬스는 한 명의 디자이너라기보다 한 브랜드의 수장이라는 타이틀이 더 잘 어울렸다. 이번 가을/겨울 시즌을 끝으로 그들의 이름 앞에 붙었던 친숙한 수식어, 입생로랑과 질 샌더는 사라졌다. 마지막 질 샌더의 피날레에서 결국 눈물을 터뜨린 라프 시몬스는 디올로 떠났고, 얼마 전 2013 오트 쿠튀르 쇼로 순조로운 디올 데뷔 쇼를 마친 상태. 스테파노 필라티의 구체적인 행보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에디 슬리먼은 입생로랑(얼마 전 브랜드명을 ‘생 로랑 파리’로 바꾼다는 공식 발표도 있었다)으로 돌아왔다. 보내는 마음은 가볍게. 박수 받을 때 화려하게 떠난 그들의 앞날이 더욱 달콤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