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루어>의 9주년에 나무액터스의 뿌리 깊은 배우들이 함께 했다. 배우이자 한 사람으로서의 내면을 고요하게 들여다보는 흑백 영화 뒤엔 그들의 영화적 열정을 응축해 담은 또 한 장의 영화가 있다. 무성과 유성, 흑백과 컬러, 장르와 장르를 오가며 완성된 영화적 순간들.

드레스는 제이미앤벨(Jamie&Bell),

드레스는 제이미앤벨(Jamie&Bell),

배우로서 신세경이 가진 힘. 흔히 ‘아우라’ 라고 부르는 그것은 무채색 위에 올릴 때 가장 잘 보인다. 흰 배경천 앞에서 검정 드레스를 입고 가만히 앉은 신세경의 얼굴은 그 자체로 서정이 있었다. 검정 터틀넥에 검정 시가렛 팬츠라는 단순한 실루엣을 입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 신세경에게는 더할 것이 없다. 아름다움마다 종류가 있다면 그녀의 것은 다른 사족을 덜어내고 주변 상황을 단순하게 정리했을 때 증폭되는 종류의 아름다움이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의 아이콘인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트루먼 카포티가 창조한 골치 아프고 매력적인 캐릭터 할리 골라이틀리가 되기에 그녀는 너무나 지적이고 생각이 깊었지만, 타고난 사랑스러운 무드만큼은 참 잘 어울렸다.

“촬영을 하면서 잠깐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긍정적인 일인 것 같아요. 어떤 모습이든 표현해야 하는 게 직업이니까요. 오드리 헵번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로마의 휴일>을 본 적이 있어요. 어느 쪽이 더 좋았냐면 <로마의 휴일>이요.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이 좋았어요.” 신세경의 눈은 독특하다. 세상을 한번에 다 담을 듯 눈꼬리를 열어놓았다. 그러다 웃을 때면 그 눈이 동시에 평행선을 그리고, 그 순간엔 세상이 반짝인다. 신세경은 자신이 밖으로 표출한다기보다는 안으로 파고드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깊은 꿈을 꾸다가도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문득문득 반짝거리는 웃음을 짓곤 했다.

“배우도 각자 실제 모습이 있잖아요. 생각해보면 저는 남들 앞에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잘 맞았을 것 같기도 해요. 혼자 쓰고 혼자 간직하는 일기처럼 말이죠.” 그러면서 무심코 무릎에 붙여놓은 반창고를 만졌다. <런닝맨> 촬영에서 얻은 영광의 상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잘 맞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현장에선 누구보다 잘 어우러지는 그녀는, 곧 개봉하는 <리턴투베이스>에서 하늘을 사랑하지만 파일럿은 될 수 없었던 정비사를 연기한다.

포스터 속 신비한 아이의 소녀시절은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식탁 위에 놓인 꽁치만 봐도 슬펐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할 정도로 사춘기가 빨리 왔다. 그 시절을 지나 마침내 배우로 사는 삶.
“우리나라에서 여자연예인에게 요구하는 많은 덕목을 다 지키면서 동시에 좋은 배우가 되라는 것은 모순이라고 항상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이 제게 충고를 해줘요. 물론 좋은 말이죠. 하지만 그런 말들이 한 사람으로서의 정서나 성격 형성에는 안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신세경은 여배우가 신경 써야 하는 많은 것에 대해서 말했다. 만약 그 제약 중 하나를 없앨 수 있다면?
“모든 초점이 ‘아름다움’에 맞춰져 있는 것을 없앨래요. 각자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유독 ‘예쁜’ 것에만 초점을 맞춰놓고 보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괴로운 점이 있지만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저는 안쓰럽거든요.”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공정한 걸까?
“어쨌든 연기. 배우라면 연기를 하는 매력이 남자든 여자든 배우한테는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캐릭터라는 건 뭘까. 작품의 흥과 망을 떠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맡고 많은 광고를 찍는 것보다 스스로 자기만족을 얻을 때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판타지 같은 캐릭터들이 가득한 시나리오 틈에서 그녀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패션왕>은 한 인간의 성공과 멸망에 대한 이야기예요. 강영걸이 성공해서 여자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백마 탄 왕자가 되는 건 아니고요. <패션왕>의 인물은 굉장히 복잡했어요. 저도 이해 안 되고 복잡한 부분이 많아서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또 저는 모든 인물이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결말이요? 절대로 가영이 영걸을 죽인 것이 아니죠. 사랑했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에요.”

감독들은 자꾸 신세경의 눈물을 담으려고 하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배우는 각자 자리하는 인간의 감정선이 있대요. 저는 뜻하든 뜻하지 않든 슬픔이라는 감정선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싫지 않아요. 우울하다고 말하는 대중들의 평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걸 없애기 위해 밝은 캐릭터를 하고 싶다거나 하진 않아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필요한 이미지 변신일까요? 올해는 생각이 많아요.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제 의견을 정확히 표현해야 하는데 전 그게 너무 어렵거든요. 그런 건 엄마랑 꼭 닮았어요.”

“제 삶을 지키려면 이 의지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랑을 받으려면 많은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게 배우를 딜레마에 빠트리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변형시킬 수밖에 없잖아요. 자꾸 나를 바꾸려고 하면 쫓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데, 그런 건 싫어요.” 그녀 안에 깊은 게 있었다. 보여주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는 것. 지금 시간을 멈추는 게 아니라 시간이 빨리 흘러서, 20대 후반의 신세경과 30대의 신세경 그리고 40대의 신세경을 모두 만나고 싶어졌다. 그녀 인생에서 벌어진 영화 같은 말들과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다.

터틀넥 스웨터는 자라(Zara). 팬츠는보티첼리(Botticelli). 목걸이는 엠주(Mzuu),진주 귀고리는 토스(Tous), 크리스털반지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플랫 슈즈는 바비 슈즈(Barbie 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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