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추억은 은밀하고 고요하다. 그 시간을 더듬어 작가들이 꺼낸 그 도시 이야기.

루앙프라방을 체험하기위해서는 가장 먼저가져온 물건의 일부를내버리고 가져온 마음의내부를 햇볕에 말리고가져온 사람의 눈동자를우주의 뿌연 천공으로보내주어야 한다.

낭창낭창한 해먹이 있는 루앙프라방

지구상에 배낭에 챙겨간 해먹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행지를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남미의 고원이나 아프리카의 들판보다 메콩 강 지류가 내려다보이는 라오스의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을 말하고 싶다. 루앙프라방과 해먹은 사진 속으로 들어온 빛의 여행처럼 속궁합이 잘 맞는다. 그늘과 시원한 타일 바닥이 마련된 늘어지기 좋은 숙소를 한 군데 정한 후 나무 사이에 그물 침대인 해먹을 연결해놓고 닥치는 대로 모히토나 라오비어 맥주를 마시며 기분 좋게 축축 처지는 기분을 느끼기엔 루앙프라방만 한 곳도 없다.

해먹 위에서 팔을 하나 축 아래로 떨어뜨린 채 옆으로 돌아누워 지그시 레몬을 하나 입에 물고 멀리 하류로 떠내려가는 메콩 강의 사공들을 나른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삶에 대한 괴이한 미련도 사라지고, 때 아닌 상실감도 저녁이 오기 전 금방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무위를 겨냥하지 않아도 아무 이유 없이 할 일이 문득 사라져버리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삶을 타박받고 싶지 않은 도시가 루앙프라방이다. 삶이 허랑해지는 순간마다 저녁의 산빛을 찾아 떠나온 나비처럼 바랑을 어깨에 걸친 채 진흙 묻은 신발을 신고 걸어오는 객들의 미소를 금방 알아차리는 곳이 루앙프라방이다. 해먹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여행객들은 배낭을 던져놓고 제일 먼저 근처 마켓에 가서 해먹을 고른다. 저녁에 구워 먹을 햄을 고르는 여행객보다 해먹을 고르고 돌아와 들고 온 <반듀링론>을 아무 거리낌없이 쓰레기통에 툭 버리고 싶은 도시. 루앙프라방에서는 책을 버리는 여행객이 유난히 많다. 자네 프리가 말했던가? 자신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책을 읽으면 더러워지기 때문이라고. 타고난 욕망을 노출해봐야 본전도 찾지 못한 채 자신이 생각하는 위기가 금방 찾아와버리는 라오스에서는 책 속의 묵묵한 언어의 결계도 자주 억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욕망을 비우기 위해선 제일 먼저 익숙한 몸의 감각을 잊는 수행을 해야 하듯이 루앙프라방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가져온 물건의 일부를 내버리고 가져온 마음의 내부를 햇볕에 말리고 가져온 사람의 눈동자를 우주의 뿌연 천공으로 보내주어야 한다. 루앙프라방은 강물 뒤에 자리한 대개의 도시가 그러하듯 저녁이면 산숲 그늘과 안개가 층층이 내려와 마을로부터 물을 숨긴다. 비라도 오면 숨은 물속에서 이따금 고기가 작은 돌멩이를 흔드는 기미가 물결에 은은하다. 마음 또한 살림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그런 저녁 해거미가 내린 길을 걷다가 캄캄한 돌멩이를 주워 물마루를 맨발로 지나와 방 안의 창턱에 세워둔다.

여행을 하다 보면 대체로 까닭 없이 피곤해지거나 문득 외로워진다거나 별 볼일 없이 멍청하게 걷고 있는 자신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여행자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하게 마련이다. 루앙프라방은 장기체류자가 유난히 많은 도시지만 인심이 야박하지 않아 언제 가도 빈방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성수기에도 그다지 물가가 오르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주인에게 낚싯대를 빌려 철립을 쓰고 메콩 강을 따라 살집이 총총한 민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도 있다. 달빛은 오후에 자연사한 어느 늙은 개의 죽음을 가장 먼저 비추고 방금 그 사람이 물 위로 떠나보낸 종이배의 돛을 비추고 마지막으로 노트 위를 지나간 한 줄의 산책, 내가 누군가에게로 가기 위해 그은 밑줄 위를 비춘다. 그 사람은 한 번쯤 만나도 좋을 순간에 어느 고백으로 태어날 것인가? 시는 정교한 논리를 가지지 않은 채 야박하지 않게, 낭창낭창하게 언어에게 매달려 이쪽으로 온다.

오늘 보니 이 삶이 나와 갑이로구나! 하고 호언하지 않아도 금방 휘청거리게 되는 그리움은 비리게 마련이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묻는 것에 대해서 당신이 묻고 온 것에 대해서, 당신이 물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이곳의 침묵은 적의가 아닌 대상에 대한 호의에서 시작되는 화음들이다. 당신이 내게 이곳에 왜 왔느냐고 묻는다면 ‘누군가 은하수의 물을 이쪽으로 비웠다고 하던데요’라고 답해도 되고 ‘사랑을 벼리고 긴 활을 이 강물로 떠내려 보낸 한 협객의 눌변을 따라왔소’라고 답해도 되고, 그다지 신통치 않다면 ‘봄빛은 산 빛이지요’라고 무심히 답했다가 ‘여름빛은 아침에 맞이하면 그처럼 서늘할 수 없습니다’라고 물어도 된다. 당신의 정글이 피로하다면 여기 머물러 뗏목을 하나 만들며 지내라고 루앙프라방은 천천히 목덜미를 주무른다. 글 | 김경주

부에노!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백만 개의 불빛이 발아래 펼쳐졌다. 검은 밤하늘을 마찰하며 그곳에 내려앉는 동안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지구의 끝이라 불리는 우슈아이아(Ushuaia)에서 덜컹거리는 군용 비행기를 타고 그곳에 닿았을 때, 이상한 안도감과 누구도 불러주지 않았지만 기대 가득한 설렘이 있었다. 지구 끝에서부터 시작된 그 불안한 비행은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는 그곳에 나를 내려주었지만 나는 그저 그곳이 좋았다.

비행은 끝이 났고 나는 그곳에 닿았으므로. 좋은 공기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하고 오래된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아르헨티나에 들어오면서부터 나는 그곳을 아끼고 아껴두었다. 춥고 긴지구의 끝에서부터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이상한 따뜻함이 가슴속 한 구석에서 울려왔기 때문에 메캐한 밤공기마저도 포근하게 느껴지던 곳. 영화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에서 본 흑백의 장면처럼 이어지던 밤의 풍경이 나를 조금 취하게 만들었고 그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불빛들이 처음부터 설레던 곳. 그 도시가 내 마음을 훔쳤거나 나는 그 도시에게 아무런 준비 없이 모든 것을 허락하는 심정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랬으니 나는 그곳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날 밤, 나는 잠을 잤던가? 꿈을 꾸었던가? 아직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환한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그 설렘이 가시지 않던 밤.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반도네온의 아스라한 소리가 날아온 오전. 오래된 베란다 아래에서 중년의 신사가 한낮이 되어가는 햇볕을 연주한다. 나는 세수도 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눈부신 그 풍경을 바라본다. 분명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만 누군가의 이야기 속으로 잠시 불려 들어온 착각을 하던 시간. 한낮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른 도시보다 반 박자 정도 느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 곁을 걷는다. 사람들이 느리다.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나만 급해진 마음으로 그 곁을 서성인다. 그곳에 펼쳐진 모든 것이 궁금해서 자꾸 급해지는 마음으로 그들 속을 배회한다. 어디선가 아는 사람이라도 나타나준다면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처럼 여유롭게 인사하게 되겠지만 상관없었다. 늘 내가생각하고 상상해오던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데 그 마음이 어찌 차분해질수 있겠는가? 나는 충분히 흥분해도 좋을 것이다.

오후가 되어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모든 거리는 갑자기 담장이 허물어진 공연장 같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를 연주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그나마 느린 발걸음을 멈추고 어깨를 붙여 둥그런 공연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춤을 본다. 세상에서 가장 아련한 음악을 밟고 서서 그들의 진중한 움직임을 살폈다. 그 오후, 어느 골목을 돌아도 나타나던 그 풍경에 매료되어 나는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마치 그곳의 사람들처럼 느려졌다. 모든 것이 공기 속에 부유하는 어떤 좋은 느낌들처럼 천천히 흐르던 그곳의 시간. 나는 자주 보랏빛 와인에 취했고 그보다 더 자주 음악과 탱고에 취했다.

여행이라는 것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오래도록 머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였다. 시간을 잡고 싶어 한 곳. 나의 마음도 한없이 느려지고 있었으므로. 브라질행 비행기 티켓을 버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일부러 비행기를놓쳤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딱히 그곳을 떠나 더 좋을 곳을 찾아내기 힘들 것 같아서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마음으로 나는 오래오래 그 도시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냥 그 상태로 오래오래 지켜내고 싶은 핑계가 자꾸 늘어나게 만든 도시. 가끔 느리게 흘러가던 그곳의 시간을 생각하면 나는 조금 더 빨리 취할 수가 있다. 내가 처음 마음을 빼앗긴 그 오래된 도시를 생각하면 언제든지 취한 마음으로 흐뭇하게 웃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자주 그 도시가 그리웠다.

그날 내 곁으로 지나가던 모든 느린 것이 지금도 빠르게 추억되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도시. 매캐한 공기도 좋게 느껴지던 그곳에서 천천히 그들을 보라. 그리고 천천히 마셔라! 그들이 움직이는 그 공기 틈에서 빠져나온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 처음 만나는 이와 밤새워 이야기해도 좋으리라. 나를 느리게 부추기던 낡고 오래된 그 도시에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두고 온 느낌이 아직도 있다. 부에노! 부에노스아이레스. 글 | 변종모

어쩔 수 없이 도쿄

사람마다 여행을 떠나면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별 탈 없으면 맥주를 마신다. 그렇기에 내 머릿속에는 방문해본 지역별로 맥주에 관한 순위가 매겨져 있다. 유럽 몇 지역이 머릿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긴 하지만, 1위는 언제나 도쿄다.

일본의 생맥주야 워낙 유명하기에 시시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맥주는 사실 술만 마실 때보다는, 소소한 안주를 곁들일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안주라 해서 거창하게 필요한 건 아니니까, 간단한 달걀말이나 꼬치구이 몇 줄, 간이 잘 밴 단무지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아진다. 게다가 맥주는 유독 장소를 탄다. 쌀쌀한 기운이 내려앉은 거대한 성보다야 아무래도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나무탁자와 나무의자가 낫다.

계속 맥주 이야기만 해서 미안하지만, 하는 김에 좀 더 한다. 맥주를 잘 마시려면 날씨도 따라줘야 한다. 낮에는 화창한 햇볕이 내리쬐고,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 그렇다 해서 너무 쌀쌀해지면 곤란하다. 낮에 바람이 분다 해도 공원에 누워 하늘을 볼 때,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소리를 내고 움직일 정도면 적당하다. 봄에는 벚꽃이 적당히 피어 있고, 여름에는 보름달이 둥그렇게 뜨고, 가을이면 거리에서 적당한 바람이 불어오면, 어쩔 수 없이 동공은 이미 승냥이처럼 ‘기린’, ‘산토리’, ‘삿포로’ 따위의 글자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아무도 마시지 않는데, 나 혼자 마시면 아무래도 머쓱하기 마련인데, 도쿄에선 그럴 일이 없다. 마시지 않는 편이 오히려 머쓱할 정도다. 기차에 타면 풍경이 좋으니까 꿀떡꿀떡, 점심시간의 덮밥집에서는 직장생활이 힘드니까 또 꿀떡꿀떡, 저녁 시간에는 맨 정신에 아내 얼굴 못 보겠으니까 또 꿀떡꿀떡, 하는 소리가 정오부터 저녁까지 도시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과장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동경의 맥주는 이런 식으로 소비되고, 동경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간다. 눈을 뜨면 어제의 맥주를 배출하고, 해가 뜨면 오늘의 맥주를 넘기는 식이다.

어째서 괜찮은 도시와 여행을 이야기하면서 줄곧 맥주 이야기만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각자의 기준이 다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낯선 도시에 가자마자 쇼핑을 왕창 하는 사람이라면, 홍콩이나 콸라룸푸르, 아니면 파리가 마음에 들 것이고, 반드시 서핑을 해야 소화가 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호놀룰루나 롱비치가 최고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일단은 꿀떡대며 마셔야 하니까, 여기저기서 꿀떡대는 도쿄가 최고인 셈이다.

그나저나 도쿄에서 즐겨 마시던 생맥주들이 서울에 많이 들어왔다. 물론 일본의 가격보다는 비싸지만, 당장 오늘 밤에 맥주 한잔 생각났다 해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수는 없는 법이기에, 아쉬운 대로 마시곤 했다. 그러나 같은 듯 다른 그 미묘한 차이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지는 느낌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에 들어온 맥주는 중국산이라는 둥, 일본 맥주가 비싸서 손님이 찾지 않아 오래된 생맥주라는 둥, 안주가 달라서라는 둥, 여러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거품이 입술에 닿고, 한 모금이 목을 넘어가는 순간, 슬프게도 알아버렸다. 술의 풍미를 돋우는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바로 장소라는 것을.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제주 생막걸리가 어찌 서울의 빌딩을 바라보며 마시는 그것과 같을 수 있을까. 남해의 바위 위에서 회를 뜨며 마시는 경남 하이트 소주가, 담배연기 자욱한 종로 뒷골목 선술집의 그것과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술에는 무릇 그 지역의 풍경과 공기와 냄새와 바람, 그리고 현지인들의 대화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안주이자, 애피타이저인 셈이다. 그러므로 ‘동경’의 네온 아래 밤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생맥주는 그곳이 아니고서는 대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니, 내게 도쿄가 언제나 최고의 도시일 수밖에. 글 | 최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