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을 내리 노는 지중해식 휴가를 즐길 수 없다면, 누릴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휴가처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름을 부르는 영화, 추리 소설, 음악, 만화 그리고 보고 또 볼 수 있는 시리즈!

MUSIC 길 위의 음반

여행의 시작은 집을 나서면서부터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순간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여행의 강도와 밀도는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뮤지션이 직접 선곡한 길 위의 음반.

1. Train [California 37]
얼마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때 떠오른 음악이 바로 트레인의 ‘Drive By’였다. 한때전성기를 누린 전형적인 아메리칸 록 스타일로 여전히 건재함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버터’적인 사운드에 느끼해질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으니 김치나 피클을 함께 추천한다. –에스테반(아톰리턴즈)

2. Jorge Drexler [2 Segundos de Oscuridad]
휴가 때마다 더운 햇볕과 바다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늘 이 음반과 함께다. 여유로운 낮 시간이든, 파도 소리가 들리는 밤이든 완벽하게 어울리는 이국적 사운드가 아름답다. –호란(클래지콰이)

3. Richard Ashcroft [Alone With Everybody]
버브(The Verve)를 추천하고 싶지만 운전 중에 정신이 몽롱해지면 곤란할 테니 리처드 애시크로프트로 대신하겠다. 명랑한 곡과 차분한 곡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김한신(노리스펙트포뷰티)

4. Sheryl Crow [The Very Best of Sheryl Crow]
설레는 마음으로 떠날 때 어울리는 ‘Steve McQueen’이나 모든 걸 떨쳐버리고 떠나는 여행에 어울리는 ‘Soak Up the Sun’, 이별 여행에어울리는 ‘If It Makes You Happy’, 생각하는 여행에 어울리는 ‘Home’ 등 셰릴 크로의 명곡을 한곳에 모았다. –희영

5. Risa Ono [Dream]
앨범 전 곡이 훌륭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의 스쳐 지나는 풍경을 보면 더 행복해지기도 하고 지난 여행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하는 음반. –조현아(어반자카파)

6. James Blake [James Blake]
특히 밤에, 도심에서 교외로 빠져나갈 때 들으면 딱 어울릴 음반이다. 잔잔하게 깔리는 건반 사이로 느릿느릿하게 조여오는 베이스 드럼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시에 꿈꾸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최상민(포니)

7. Miles Davis [Doo-Bop]
한때 긴 여행을 반복했고 밤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때 이어폰에서 내 귓속을 울린 음반이 바로 이것이다. 고속도로의 노란 선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머릿속에서는 마일즈의 트럼펫이 울리며 우리는 함께 질주했다. 시끄럽거나 혼란스럽지 않고 시원한 안개 같은 기분으로 말이다. –차효선(트램폴린)

8. [Ghost on Summer 2007]
대한민국의 여름을 책임진 명곡을 밴드 사운드로 재해석해 듣는 이로 하여금 흥겨움을 유발한다. 만약 이 앨범을 달리는 고속도로 안에서 재생한다면 차 안에서 록 페스티벌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안녕바다의 풋풋한 목소리도 확인할 수 있다. –나무(안녕바다)

9. 어반자카파 [01]
여행을 생각할 때면 동시에 ‘Driving to You’라는 곡이 떠오른다. 이 곡을 녹음할 때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길을 상상했었다. ‘나비’라는 곡 역시 여행의 흥분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박용인(어반자카파)

10. Earth, Wind&Fire [Playlist : The Very Best]
펑키하면서도 세련된 그들의 음악은 색색의 보석상자 같다. 영화 <언터쳐블>을 봤다면 마세라티를 타고 도시를 질주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September’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처럼 신나게 도시를 질주하고 싶다면 이 앨범이 제격이다. –고지후(텐시러브)

에디터 | 조소영

MOVIE 여름으로 남은 영화

더위가 지긋지긋해도 여름만큼 눈부신 계절이 또 있을 리 없다. 여름의 아름다움으로 기억의 한자리를 차지한 영화들.

1. [여름 이야기(A Summer’s Tale)]
누벨바그의 대표적인 감독인 에릭 로메르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테마로 각각 만든 영화 연작을 ‘사계절 이야기’라고 한다. 그중 <여름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프랑스 해변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세 명의 여자와 연애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일기처럼 여름의 하루하루를 기록한다.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휴양지 영화로는 최고인 것 같다. 그 물색과 나이 든 감독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여름의 한때.-김홍천(영화진흥위원회)

2. [유스 인 리볼트(Youth in Revolt)]
영화 속 마이클 세라는 늘 번듯한 남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건 이 영화에서도 변함이 없는데, 이름부터 ‘안습’인 ‘닉 트위습’이라니,불쌍해서 눈물이 다 난다. 이름부터 동정받아 마땅한 닉은 아직까지 동정을 떼지 못한 상태. 영화는 ‘동정 소년’ 닉이 트레일러 캠핑장에서 만난 아름답고 지적인 소녀 시니와 함께하기 위해 ‘나쁜 남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닉의 반사회적인 자아 ‘프랑수아’는 엄마의 차를 훔치고, 동네에 불을 지르고 시니를 퇴학당하게 만든다. 인생에 있어 학창시절의 여름방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각심을 일깨우는 성장영화다. 여주인공 포샤 더블데이가 입고 나오는 옷은 캠핑장에서도 얼마든지 예쁘게 하고 다닐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김가혜(<보그걸> 피처 에디터)

3.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74년에 만든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패션과 장면들은 여전히 내가 상상하는 가장 아름다운 미국의 여름이다. 로버트 레드포드라서 완벽하게 소화해낸 개츠비의 크림색과 밝은 핑크색의 슈트, 눈부시지만 어리석은 바보 데이지가 입은 로웨이스트 시폰 드레스, 종 모양의 모자, 보브 헤어 스타일이 그렇다. 옛 연인 데이지와의 우연한 만남을 위해 매일 수백명의 사람을 초대한 개츠비의 파티와 개츠비와데이지의 피크닉, 그들이 모두 모여 더운 여름날 땀 흘리며 방 안에 늘어져 있는 장면, 그리고 개츠비가 데이지의 배신에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수영장에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까지 모두 내가 존재했으면 싶은 시대의 여름이다. –민혜령(사진가)

4.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
여름은 내게 ‘Green’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싱그럽고 푸른 녹음이야말로 여름의 트로피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위대한 유산>은 그 여름의 신선함을 담은 영화다. 이 영화의 너무나 유명한 장면인 에단 호크와 기네스 팰트로의 분수대 키스 신은 초여름 싱그러운 ‘Green’ 그 자체다. 물론, 기네스 팰트로가 입은 도나 카란의 황홀한 그린 드레스가 한몫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겠다. –정유선(문학동네 마케팅팀)

에디터 | 허윤선

MOVIE 추리소설의 서늘한 밤

더위를 식히는 덴 호러 영화보다 추리소설이 한 수 위다.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동안 시간은 휙휙 지난다. 범인은 늘 예상을 비켜가지만, 그래야 훌륭한 추리소설이니까.

1. [활자잔혹극] 루스 렌들
그 어떤 소설도 현실보다 무섭진 않다.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먼데일 일가를 죽였다.” <활자잔혹극>의첫 문장은 이렇듯 대담하게 시작된다. 문맹인 것을 숨긴 유니스 파치먼은 하필이면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중산층 커먼데일 가족의 하녀가 되고, 어느 날 문맹인 것을 들킨다. 그 다음 수순은 범인 유니스와 피해자 커먼데일 일가가 어떤 사람이며 도대체 왜 문맹이 범죄의 동력이 되었냐는 내용이 전개될 것이다.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이고 세부적인 이 범죄의 기록은 마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서늘해진다. 읽다 보면 소설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북스피어

2. [회귀천 정사] 렌조 미키히코
추리소설도 탐미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책. 꽃을 주제로 한 렌조 미키히코의 여덟 작품, 일명 ‘화장 시리즈’ 중 다섯 작품이 들어 있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모든 사건 현장에서는 꽃이 발견된다. 1920~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속에는 사라진 시대에 대한 정취가 들어 있고, 대중소설로 치부되는 추리소설을 순수문학으로 끌어올린 작가의 문장은 섬세하고 기품 있다. 제3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작품은 1920년대 일본 천재 가인으로 불린 소노다 가쿠요의 두 번에 걸친 정사 미수 사건을 다룬다. 시리즈 중 나머지 세 작품을 담은 [저녁 싸리 정사]도 출간되었다. 시공사

3. [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거머쥔 상복 많은 책이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검은 머리털과 함께 빛바랜 노트 네 권을 발견한다. 그 노트에는 살인을 고백하는 생생한 수기가 담겨 있다. ‘살인자의 고백’이라는 형식을 취한 추리소설은 전에도 있었지만, 이 작품은 보다 영악하다. 수기를 쓴 범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고, 수기와 수기를 읽은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치밀하다. 서울문화사

4. [생폴리앵에 지다] 조르주 심농
조르주 심농이 창조한 매그레 반장은 가장 매력적인 탐정으로 손꼽힌다. 열린책들에서 매달 꾸준히 선보이는 매그레 시리즈는 여행지에 휴대하기 딱 적당한 크기와 무게를 선보인다. “겨울에는 코냑 한 병, 그리고 심농 소설과 지내는 게 최고”라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말이나, “아프리카 우림에서 비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되었다면 심농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대처법은 없다”라는 헤밍웨이의 말도 그와 다르지 않다. 세 번째로 출간된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젊은 날 겪은 일을 소재로 했다. 그와 어울리던 친구가 생폴리앵 성당의 문에 목을 맨 채로 발견되었는데 자살인지, 자살을 위장한 타살인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열린책들

5. [스노우맨] 요 네스뵈
[밀레니엄] 시리즈가 한번 폭풍을 몰고 간 뒤 찾아온 북유럽발 스릴러 소설이다. “우린 저 눈사람 안 만들었어요. 그런데 왜 눈사람이 우리 집을 보고 있어요?” 천진난만한 아이의 질문 뒤로 엄마는 사라진다. 잔인한 현장마다 남아 있는 눈사람. 미국과 유럽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을 미리 알아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판권을 구입해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주연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소설의 시린 풍경이 어떻게 재연될지 궁금하다. 비채

6. [달콤하게 죽다] 멜린다 웰스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아줌마 탐정이 등장하는 코지 미스터리 소설이다. 문자 그대로 편안한 미스터리 소설을 뜻하는 ‘코지 미스터리’는 미스터리의 가장 오래된 장르 중 하나로, 탐정은 주로 미혼 여자다. <달콤하게 죽다>는 케이블 TV의 요리쇼 진행자 자리를 맡게 되면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킬러 무스’를 시식하던 전임자가, 정말 사망한 사건을 다룬다. 주인공은 파티시에, 살해 도구는 무스 케이크이므로 사건은 시종일관 달콤하게 진행된다. <웜 바디스> 등 개성 넘치는 추리소설을 선보이는 ‘블랙 로맨스 클럽’의 신작이다. 황금가지

7. [화차] 미야베 미유키
영화 [화차]를 봤더라도 이 책을 읽는 것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화차]는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범인을 만든 세계를 두려워하게 만드니까.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일본 사회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사회 구조 안에서 무력하기 마련인 인간의 인생을 새삼 느끼게 되는 정통 사회 추리소설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다. 올봄 새로 출간된 [화차]는 기존 번역본에서 빠지거나 축약된 원고지 500매 분량을 되살렸다. 문학동네

8. [명탐정의 규칙] 히가시고 게이고
히가시고 게이고는 세계 추리소설계에서 일가를 일군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다. [명탐정의 규칙]은 그 어떤 사람도 생각하지 못한 플롯이나 잔인한 범죄를 생각해내는 대신, 영화 [스크림]처럼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열두 개의 클리셰를 패러디한다. ‘자학 미스터리’라는 출판사의 홍보 문구가 과언이 아니다. 모두 열두 장에서 벌어지는 열두 개의 사건은 추리소설의 뻔한 이야기를 뒤집는다. 두 명의 화자는 독자를 대신해 내내 투덜거린다. 왜 산장은 폭설로 고립되고, 등장인물은 왜 뻔하며, 왜 죽기 전에 남긴 ‘다잉 메시지’는 애매모호한가. 추리소설의 거장이 가볍지만 진지하게 건네는 추리소설에 대한 추리소설이다. 재인

9. [미국 총 미스터리] 엘러리 퀸
오래전 절판되어 웃돈을 주고 거래된 엘러리 퀸의 작품이 드디어 복간되었다. 게다가 더 좋은 소식은, 국내 초역으로 선보이는 작품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 3대 추리소설로 손꼽히는 엘러리 퀸은 작가이면서도 탐정인 인물. 사실 엘러리 퀸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촌 형제가 함께 만든 필명이다. [그리스관 미스터리],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로마 모자 미스터리] 등 일명 ‘국명 시리즈 (Country Series)’ 중 하나로 지난달 [미국 총 미스터리]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되었고, 세 권이 더 출간될 예정이다. 검은숲

10. [미세레레]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파리의 아르메니아 성당에서 성가대 지휘자가 청각기관이 온통 훼손되어 살해된 채 발견된다. 범행 도구도 알 수 없고, 방법도 괴상하다. 한편, 파리 곳곳에서 성가대 아이들이 실종된다. 증인들 역시 하나둘씩 살해된다. [장미의 이름]에 비견되는 이 복잡한 미스터리는 [크림슨 리버]로 스타덤에 오른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신작이다. 음악과 종교, 건축 등 저널리즘을 바탕으로 한 놀랍도록 지적인 추리소설. 그레고리오 성가곡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딴 제목처럼 가장 내면적이고 심층적인 ‘악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문학동네

에디터 | 허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