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지혜는 항상 옳다. 더위와 피로로 지친 몸은 마땅히 보양식으로 다스릴 일이다. 얼마나 신통방통한지, 몸으로 가기 전에 마음부터 충전되는 기분이다. 보양식을 탐식했다.

1.불도장 불도장은 중국의 대표적인 보양식이다. 불도장 끓이는 냄새에 ‘스님이 담을 넘는다’는 이름을 가졌을 정도니, 이 기운 넘치는 한 그릇에 담긴 맛의 유혹은 그만큼이나 강렬하다. 삼계탕처럼 큰 그릇이 아니라 국그릇만큼 작은 그릇에 조심조심 담겨 나오지만 이 귀한 한 그릇을 완성하기까지 셰프들이 들이는 노력은 대단하다. 신라호텔 팔선의 불도장은 귀한 재료와 정성으로 유명해졌다. 오골계, 도가니, 말린 관자, 송이버섯, 샥스핀 등 진귀한 재료를 다리고 다려서 약처럼 내놓는다. 취향에 따라서 청하면, 마지막에 코냑을 넣어 향을 낸다.

2.해천탕 튼튼한 닭 한 마리에 문어나 낙지, 전복, 가리비 등을 넣어 푹 고아서 먹는다. 고소한 닭육수에 바다 재료의 시원함이 어우러지는 맛은, 진하고 걸쭉한 삼계탕과는 또 다른 개운함이 있다. 담백한 닭살과 내장까지 삶은 전복, 질겨지지 않도록 먼저 건져주는 문어와 낙지는 여름 더위로 시름시름 풀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낼 만하다. 이태원의 해천은 해천탕이라는 보양식을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동해에 있는 홍포집도 유명하다. 무엇보다 해물이 신선해야 제맛을 낸다.

3.훠궈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 훠궈 냄비는 보통 두 칸으로 나뉘어 있다. 맑은 국물과 매운 홍탕을 각각 담는데, 음양이 조화된다고 해서 음양탕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훠궈는 중국과 홍콩에서 뛰어난 보양식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야채와 함께 양고기와 소고기를 데쳐 먹는 수준이지만, 본토에는 생선머리와 소와 돼지의 뼈까지 넣어서 진국을 만든다. 샤오훼이양은 몽골식 훠궈를, 불이아는 중국식 훠궈를 선보이는 훠궈 전문 레스토랑이다.

4.민어탕 더운 여름, 양반들이 꼭꼭 감춰두고 먹었다는 보양 생선이 바로 민어다. 민어집에서 민어회를 주문할 때 도톰하게 썬 민어와 함께 ‘배받이’로 불리는 뱃살, 껍질, 부레가 함께 나와야 비로소 민어를 먹은 게 된다. 마늘을 잔뜩 갈아 넣은 막장에 찍어 민어회를 먹은 후엔 민어탕도 꼭 먹는다. 목포자매집에서는 남도식으로 다대기와 후추를 넣어 빨갛고 얼큰하게 끓여낸다. 민어 고유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순하고 맑게 끓여낸 아리아께의 민어맑은탕을 권한다. 완도산 민어의 뼈를 우린 육수에아가미살과 머리, 등살, 부레까지 넣어 참하게 끓인다. 생선전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것이 바로 민어전. 민어전 한 접시도 보양식이다.

5.장어구이 강화도의 갯벌에서 기른 장어는, 양식이면서도 자연산인 신기한 운명을 얻게 되었다. 양식 장어와 자연산 장어의 장점을 결합한 강화도 장어는 냄새가 적고 가격이 적당해서 장어로만 배를 채워도 부담이 없다. 220년된 전통 장어집의 8대손이 “육질이 쫄깃하면서도, 일본 정통 장어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촉촉함을 두루 갖췄으며 흙냄새 같은 잡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터프하게 소금만 뿌려 굽거나, 비법 장어소스를 발라 굽는다. 어느 쪽이든 생강채는 꼭 곁들여야 한다.

6.오리백숙 집에서 냄비 하나만 걸고 닭을 삶아도 백숙은 백숙이지만, 야외에서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 같다. 특히 오리는 닭보다 지방이 적은 고단백식품이다. 서울 근교의 남한산성은, 서울과 등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시골 같아서 좋다. 이곳에서 키우는 오리가 바로 재료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평상에 앉아서 먹으면 땀이 주룩주룩 나는데도 시원하다. 백숙은 결대로 찢어 먹고 얼큰한 오리탕을 먹어도 된다. 큼지막한 오리간이 들어 있는 오리탕의 부추만 건져 먹어도 힘이 솟는다. 풀어놓고 기른 ‘자연산’이라 조금 질기다.

7.복국 복맑은탕은 아무리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게 진짜 보양식답다. 특히 여름 밤에 몸이 축나도록 술 한잔 한 다음 날이라면 복에 콩나물을 듬뿍 넣어 시원하게 끓인 복국이 간절해진다. 비싼 복일수록 맛이 좋고, 살아 있는 게 죽은 것보다 맛있다. 현복집의 모든 복요리는 살아 있는 ‘활복’으로 만든다. 해운대 골목에 있는 매일복집은 가장 비싼 까치복지리도, 활복지리도 모두 1만5천원이다. 서울에서 냉동복지리를 먹는 가격으로 신선한 지리를 먹을 수 있는 셈인데, 종종 고니까지 들어 있다.복어의 정소로, 복어 요리에서 가장 귀한 재료 중 하나인 고니는 버터처럼 부드럽고 고소하다. 부산식으로 먹으려면 먹기 전에 국물에 식초를 한번 두른다.

8.산해황 산과 바다에 나는 가장 진귀한 재료를 넣어 만든 웨스틴 조선호텔 홍연의 ‘산해황’은 아는 사람만 찾아 먹는 보양식이다. 우럭이나 다금바리를 연잎으로 싸, 간에 좋은 상황버섯을 우린 육수를 붓고 장뇌삼과 전복을 넣어 쪘다. 연잎을 조심조심 벗기면 생전 모습 그대로 익은 생선이 드러난다. 담백한 생선살에 상황버섯과 인삼의 향이 스친다. 몸에 좋은 진귀한 재료가 녹아든 국물을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 밖은 덥고 실내는 추운 요즘엔 특히 생각나는 보양식이다.

9.갯장어 샤브샤브 여름이면 서쪽과 남쪽 바닷가에는 일제히 ‘하모’라는 깃발이 내걸린다. ‘하모’는 갯장어를 이르는 말. 다양한 장어 중에서도 갯장어는 여름에만 잡히는 재료다. 양식이 되지 않는 장어라, 잡혀야만 맛볼 수 있다. 포를 뜬 갯장어를 끓는 육수에 껍질부터 넣어 살랑살랑 흔들면 꽃처럼 오그라든다. 이걸 집집마다 비장하게 만든 소스에 찍어 먹고 부추도 함께 데쳐 먹는다. 동촌은 보기 드물게 서울에서 갯장어 샤브샤브를 내는 집이다. 양파와 함께 깻잎에 싸서 먹는 갯장어 회도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맛이다.

10.복숭아 빙수 보양식의 공통점은 ‘고단백’이라는 것. 묵직한 보양식에 질렸다면 보양과일을 실컷 먹는 것도 좋겠다. 여름철 대표적인 ‘보양과일’은 복숭아다. 대부분의 과일이 찬 성질을 띠는 것과 달리 복숭아는 성질이 따뜻해서 많이 먹어도 괜찮다. 한의학에서는 복숭아가 몸을 보호하고 심장과 폐의 기를 보강해준다고 설명한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복숭아지만 빙수로도 먹을 수 있다. 파크하얏트 서울 더 라운지에는 이 복숭아를 듬뿍 넣은 빙수를 낸다. 꿀과 허브에 절인 복숭아를 가득 썰어 넣은 이 빙수는 한 그릇을 혼자 먹어도 배탈 날 걱정은 안 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