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소중한 성역인 허리를 꿰찬, 그의 이름은 페플럼. 코르셋을 입지 않아도 날씬해 보이고,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우아해 보이는 ‘페플럼’의 매력적인 요건들을 이야기한다.

페플럼(Peplum)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블라우스나 재킷의 허리 아랫 부분을 말하며, 주름 잡은 천을 이어 붙이거나 러플처럼 늘어트린 장식. 혹은 그러한 모양의 짧은 스커트. 어려운 말 다 빼고, 보기에는 나팔꽃을 뒤집어 허리에 붙인 것처럼 보인다. 이 활짝 핀 꽃봉오리 같은 모양이 낯설지만은 않을 거다. 그 시초는 1948년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성이 중시되던 시절 허리를 잘록하게 조인 재킷은 희대의 산물이었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가녀린 허리선 아래 달려 있던 것이 바로 페플럼이다. 그 후로도 꾸준히 선보였지만 최근 다시 눈길을 끌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봄/여름 질 샌더의 컬렉션에서다. 흰색 티셔츠에 생경한 색상의 맥시 스커트를 입은 모델이 워킹을 시작했는데, 허리선에 붙은 봉긋한 페플럼 장식이 그 옷차림을 고고하게 빛내고 있었다. 그해 가을/겨울부터 페플럼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스텔라 맥카트니의 도트무늬 시스루 룩을 더욱 관능적으로 만든 것도,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핑크색 옷차림을 드라마틱하게 한 것도, 미우미우의 1940년대 빈티지 룩을 한층 더 우아하게 만든 것도 페플럼이었다. 그 후 스타들이 레드 카펫과 패션쇼 프론트 로 옷차림으로 페플럼 의상을 자주 선택하면서 대중에게도 그 매력이 공공연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 기다렸다는 듯 수 많은 디자이너가 페플럼을 선택했다. 런웨이는 그야말로 페플럼의 잔칫상이었다. 어떤 음식을 고르든 딸려 나오는 반찬처럼 재킷과 블라우스, 스커트, 원피스, 심지어는 시가렛 팬츠에도 페플럼이 달렸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미묘하게 다른 멋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페플럼이 달린 위치와 길이가 관건이다

이제는 리얼웨이 차례다. 페플럼은 여자들이 열광할 만한 충분한 요건들을 지니고 있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페플럼의 진정한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데다, 아랫배도 슬쩍 가려주잖아요. 거기다 그 미묘한 곡선미가 여자를 금세 우아하게 만들죠. 마치 드레스를 입은 듯 말이에요. 어떤 여자가 페플럼을 마다할까요.” 메종 드 제인의 디자이너 정진숙은 말한다. 허리선 아래로 짤막하게 붙은 러플 모양부터 비대칭으로 물결치듯 떨어지는 디자인, 반듯하게 주름을 잡아 힘 있게 연출되는 디자인까지 페플럼의 모양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일관되게 연출되는 매력이 있으니, 바로 날씬해 보이는 동시에 우아해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허리와 엉덩이 사이에 새로운 실루엣을 만들어주기 때문인데, 상대적으로 허리는 더 가늘게 엉덩이는 더 볼륨 있어 보이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곡선적인 여성의 몸을 부각하는 데 제격인 셈이다. 이 착시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페플럼이 달린 위치와 길이를 눈여겨봐야 한다. 허리선보다 살짝 위에 달려 있고, 엉덩이 중간선 위로 떨어지는 길이가 가장 매력적인 비율로 꼽힌다. 너무 낮게 달려 있거나 엉덩이를 전부 다 가리는 길이를 선택했다간 오히려 다리가 더 짧아 보이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디자이너 정진숙은 앞은 짧고, 뒤는 조금 더 길게 떨어지는 디자인을 추천한다. 옆에서 봤을 때 몸이 S라인처럼 보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플럼이 달려있는 의상의 소재 선택도 중요하다. 부드러운 면이나 실크 소재는 자연스러운 곡선미를 만든다. 시스루 소재를 선택할 때에는 과한 주름이나 러플 장식을 피해야 공주처럼 보이지 않는다. 가죽 소재의 페플럼 의상도 많이 선보이고 있는데, 가죽이 너무 빳빳하면 볼륨이 커져 어색한 실루엣이 만들어지므로 반드시 입어보고 전체적인 느낌을 살펴보길 권한다. 초보자라면 페플럼 장식을 탈착할 수 있는 의상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수에게도 유용하다. 허리 장식이 없는 다른 옷에 페플럼을 연출해 새로운 분위기를 낼 수 있으니까.

로맨틱하거나 모던하거나, 연출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진다

페플럼 의상을 잘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떤 옷과 입느냐이다. 페플럼이 대거 쏟아진 이번 시즌 컬렉션에서 그 매력적인 연출 팁을 배울 수 있다. 페플럼 의상에 집중한 컬렉션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대체로 세 가지 스타일이 드러나는데, 그중 한 가지는 현대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분위기다. 대표적인 디자이너는 세린느와 드리스 반 노튼. 이들의 컬렉션에서 눈여겨봐야 할 공통점은 상·하의를 흰색으로 통일했다는 것. 소재도 면이나 얇은 울 등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는 느낌을 선택해 페플럼의 똑 떨어지는 멋을 살렸다. 두 번째는 로맨틱한 분위기다. 제이슨 우, 니나리치, 지방시, 베라 왕 컬렉션에는 이런 로맨틱한 옷차림의 여인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그녀들은 주로 시폰이나 실크 소재의 페플럼 블라우스나 스커트에 실루엣은 간결하되 잔잔한 프린트나 은은한 반짝임이 있는 의상을 짝으로 매치했다. 가녀린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얇은 벨트를 두르기도 한다. 마지막은 슈트 스타일의 커리어 우먼 분위기. 핑크색 페플럼 베스트에 테일러드 팬츠를 매치한 입생로랑, 펜슬 스커트에 복고풍 페플럼 재킷을 연출한 에르마노 설비노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모두 날렵하고 좁다랗게 떨어지는 하의로 허리선에 붙은 페플럼을 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 가지 분위기 중 가장 날씬해 보이는 효과를 내는 연출이기도 하다. 시대에 관계없이 몸을 아름다워 보이게 하고 싶은 것은 여자의 기본 욕망이다. 로코코 시대에는 엉덩이를 부풀린 버슬 스커트가 유행했다면 이번에는 가녀린 허리를 강조하는 페플럼 시대다. 코르셋을 입지 않고도 날씬해 보이는 효과가 있고, 드레스를 입지 않고도 여성적인 우아함을 풍기는 페플럼 의상은 부드러운 햇살과 만개한 꽃의 봄날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