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레인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던 주윤하가 첫 번째 솔로 앨범을 들고 왔다. 체념하는 듯한, 그러나 결코 절망적이지 않은 담담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이제껏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스스로에게조차 답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의 앨범 <집으로>를 반복해서 들었다. 불안하고 따뜻했다.

(왼쪽부터) 첫 솔로 앨범을 발매한 보드카레인의 주윤하, 주윤하의 1집 앨범 <On The Way Home>

솔로 앨범을 준비하면서 어느 때보다 많은 감정의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나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야 했기 때문에 그간 쌓여 있던 감정의 흔적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할 얘기가 꽤 많더라고요. 앨범을 완성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 때도 있었고 생각보다 우울하고 치열한 시간이었어요. 덕분에 사소한 기억, 마음의 변화들이 고스란히 담겼어요. 보드카레인이 네 명 간의 ‘화학작용’이라면 이번 앨범은 내 안에서의 그것이었던 거죠.

앨범 제목 <집으로>는 어떤 의미인가요?
집으로 가는 길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하면서도 따뜻한 마음. 이 앨범을 만드는 내 마음이 그랬어요.

만드는 일도, 부르는 일도 참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녹음하던 중 그리 심각하지 않게 ‘내가 없어져도 내 목소리와 감정들은 남겠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영원히 남을 그 무엇을 만드는 건 진실해야 하는 일이고, 그래서 어렵고 슬픈 일인 것 같아요.

‘당신의 평화는 연약하다’의 그 가사가 특히 그래요.
평화로운 오후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가족의 부음을 듣게 되었어요. 평화로움이란 저녁까지도 이어지지 않는 연약한 감정이었던 거죠. 그때 내 마음에 새겨진 문장이에요. 그리고 이 문장과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것처럼 멜로디가 떠올랐어요. 사람, 사랑, 고요, 평화 모두 연약하구나, 내내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꿈은 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가 바로 당신의 이야기라 말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어떤 사랑을 이루었다면 그 사람은 사랑에 성공한 걸까요? 그동안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수많은 성공이야기를 보게 되지만 꿈과 멀어지는 이야기가 이 세상에는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다행히 꿈의 범주 안에 들어 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좀 더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주위 사람에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낯을 많이 가리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유쾌한 사람이에요. 재미있고 쾌활해 보이지만 사실 좀 폐쇄적이에요.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 봐도 한두 사람 이상은 떠오르지 않아요.

최근에 떠난 홋카이도 여행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요?
이번 작업의 통로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여행 초반에는 괜히 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밴드 활동을 중단한 이후 상실감에 힘들었거든요. 음악도 많이 듣고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술도 많이 마셨어요. 그러다 언젠가부터 조각 나 있던 음악에 대한 생각들이 신기하게도 하나로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행과 당신의 음악은 늘 이어져 있었죠.
여행을 떠나면 묘한 불안감에 휩싸이곤 해요. 혼자가 되면 상처받은, 불안해하는 나를 만나게 되죠. 그런 내가 이런 음악을 하고 있는 거예요.

보드카레인의 보컬 안승준과의 관계는 그보다 더 가까이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낯선 운동장에 승준이가 있었어요. 처음 봤을 때 호감이 가더라고요. 같이 노래도 하고, 꿈 얘기도 하고… 유년시절의 우리를 묶어준 감성과 기억을 사랑해요. 그런데 인간적으로는 하나도 맞는 게 없어요. 하하.

당신을 기쁘게 하는 건 뭐죠?
말 통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거. 그보다 더 즐거운 건 그들과 함께 춤추는 거고요.

끊임없이 당신을 자극하는 건요?
한때는 남들이 만든 좋은 음악과 남들이 서는 좋은 무대였는데 지금은 자신에게 너그러움을 잃어가는 ‘나’인 것 같아요.

어떤 음악을 하는 어떤 당신이고 싶어요?
“넌 이런 감성을 알아”라는 말을 들으면 충분할 것 같아요. 물론 내가 원하는 음악과 결과물이 일치할 때요.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착한 사람 말고 좋은 사람이요.

+ New Music & Concert

1. <Seoul Seoul Seoul>
인디 뮤지션을 응원하는 모임인 라운드앤라운드에서 1년간 준비해온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27팀이 들려주는 포크, 로큰롤, 블루스,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 결국 ‘서울’ 이라는 맥락에 대해 노래하는 이야기들. 비트볼뮤직

2. <Tokyo. London. Paris>
브릿 팝, 제이 팝, 프렌치 팝을 구분 없이 두 개의 CD에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이 발매되었다. 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각 나라의 매력적인 음악을 담아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 언어를 초월한 멜로디를 즐길 수 있게 한다. 소니뮤직

3. <Blah Blah> 타루
타루가 미니앨범을 들고 왔다. 먼저 공개된 디지털 싱글 ‘Summer Day’를 비롯해 ‘봄이 왔다’, ‘기침’, ‘블라블라’ 등 6곡을 담았다. ‘문자왔숑’의 주인공이자 CF음악으로 유명한 그녀의 진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 올드레코드

4. <Hold On ‘Til the Night> 그레이슨 챈스
피아노를 치며 레이디 가가의 ‘Paparazzi’를 부른 영상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프로 뮤지션으로 데뷔한 14세 소년 그레이슨의 앨범을 들으며 당신의 열네 살을 반성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유니버설뮤직

5. <Kiss on the Bottom> 폴 매카트니
올해 일흔이 된 폴 매카트니의 열다섯번째 솔로 앨범. 일흔이라는 나이도 열다섯이라는 앨범의 횟수도 폴 매카트니라는 이름 앞에서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정통 재즈의 커버곡이 수록되어 더욱 기대된다. 유니버설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