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옷을 ‘입히는’ 스타일리스트, 그들이 손을 잡았다. 그 덕분에 아이돌 그룹의 무대의상과배우의 스크린 속 의상은 한층 더 멋진 스타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배우 윤승아 & 디자이너 예란지

스타일리스트가 따로 있지만 예란지의 옷만큼은 본인이 직접 고른다는 배우 윤승아와 옷을 통해 배우로서 또 여자로서의 윤승아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는 디자이너 예란지. 그녀들은 서로를 든든한 조력자라 부른다.

처음 만남
윤승아 시트콤 <몽땅 내 사랑>을 찍었을 때 예란지의 세컨드 브랜드인 ‘베이비 센토르’의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게 되었어요. 옷이 예뻐 디자이너가 궁금했고, 디자이너 예란지를 알게 되면서 옷도 옷이지만 예란지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예란지 처음에는 승아의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협찬해갔어요. 내가 만든 옷을 예쁘게 입어줘서 고맙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승아가 직접 쇼룸에 오기 시작했어요. 극중 역할에 맞는 의상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특별한 날 입을 옷을 골라주기도 했죠. 알고 보니 섬유디자인을 전공했더군요. 그래서 대화가 더 잘 통했던 것 같아요.

둘이어서 더 좋은 점
윤승아 머릿속에서는 이런 의상을 입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어떻게 입어야 할지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에요. 그때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이 언니예요. 평가도 냉철하게 하죠. 이 옷은 너에겐 어울리지 않아, 라는 말을 솔직하게 해주는 사람이 제 곁에 몇이나 있을까요. 사람은 언제나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가 더 좋은 거예요.
예란지 전 솔직히 옷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어요. 사교성도 별로 없는 편이고, 나서서 브랜드를 홍보하는 넉살도 없죠. 반면 승아는 다르죠. 다양한 경험을 하는 연예인이잖아요. 그런 친구는 늘 저에게 새로운 자극을 줘요. 실제로 디자인이나 콘셉트 제안도 많이 해주고요. 한번은 컬렉션 때 무심코 프론트로를 봤는데, 승아가 제 옷을 챙겨 입고 와주었더군요. 디자이너 예란지를 빛내주는 배우이자, 저를 응원하는 동생인 승아가 정말 고마웠어요.

기억에 남는 협업 의상
윤승아 한 촬영 때 입었던 자주색 드레스! 전 드레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디자이너의 눈은 다른가 봐요. 이제 변신이 필요할 때라면서 언니가 먼저 권해줬어요. 애가 엄마 옷 입은 느낌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거울 속의 저는 여자가 되어 있더군요.
예란지 윤승아도 올해로 서른이에요. 믿어지세요? 말은 안 해도 앳된 얼굴 때문에 이미지 변신이 힘들 거예요. 소녀와 숙녀의 중간 느낌을 찾아내는 걸 제가 해주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그 자주색 드레스도 다른 사람이 입었으면 야해 보였을지도 몰라요. 승아는 은근한 여자의 느낌으로 소화하더군요. 정말 예뻤어요.

서로를 표현한다면
윤승아 디자이너 예란지는 ‘나의 위시 리스트’다. 위시 리스트는 꼭 손에 넣지 않아도 마음을 설레게 하잖아요. 늘 저에게 예쁜 옷으로 새로운 설렘을 선물해주는 사람이니까요.
예란지 배우 윤승아는 ‘Like a Bergin’이다. 그녀의 타고난 소녀다움에 제 옷으로 매력적인 도발을 얹어주고 싶어요. 윤승아는 이제 서른이니까. 그게 가능한 순수한 사람이니까.

디자이너 스티브J, 요니P & 스타일리스트 정보윤

3년 전 런던에서 날아온 듀오 디자이너 스티브와 요니.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핑클, 이효리, 포미닛, 미스에이의 의상을 담당해온 무대의상의 1세대 스타일리스트 정보윤. 이들은 파트너라기보다는 가족 같은 끈끈한 관계가 되었다.

처음 만남
정보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처음 스티브와 요니를 만났어요. 잘 모르는 디자이너였는데도 옷이 무척 마음에 들었죠. 그 다음 날 당시 가로수길에 있던 쇼룸으로 무작정 찾아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 봐요.

이제까지의 작업
정보윤 제가 지금 담당하고 있는 가수가 이효리, 포미닛, 미스에이, 비스트 등이에요. 첫 시작은 포미닛이었어요. 따로 제작을 하지 않아도 포미닛 멤버들의 스타일을 멋지게 만들 수 있는 의상이 스티브&요니 매장에 딱 걸려 있었죠. 그 후 꾸준히 함께 작업하고 있고, 제가 담당하는 가수가 두루 입고 있어요.
스티브&요니 저희는 따로 의상을 제작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놓은 의상을 그때그때 콘셉트에 맞게 협찬하고 있어요. 포미닛은 프린트와 색감이 경쾌하고 밝은 옷, 미스에이는 가죽 의상을 선호하죠. 그렇게 그룹의 성격에 맞게 가지고 간 옷이 방송에서는 마치 제작한 의상처럼 멤버들의 몸에 완벽하게 입혀져 있어요. 너무 신기해요.

기억에 남는 협업 의상
스티브&요니 포미닛의 ‘Heart to Heart’ 뮤직비디오 의상이요. 노래 가사가 예전 같지 않은 남자친구에게 따지는 내용인데요. 악마 프린트와 줄무늬를 섞은 티셔츠, 원피스 등을 멤버 각자의 매력에 맞게 입었어요. 남자친구에게 화가 난 여자가 악마 프린트를 입고 있다는 설정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연말에 열렸던 MAMA 시상식에서 미스에이가 입었던 골드 장식의 검은색 의상도 멋지게 연출되었어요.
정보윤 스티브&요니의 의상은 모두 마음에 들어요. 아이돌 그룹 의상은 무대 위에서 돋보이는 화려함과 세련됨, 그리고 활동성이 고루 어울려야 빛을 발할 수 있는데 이 조건에 정확하게 부합해요. 제작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둘이어서 더 좋은 점
정보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언타이틀 의상 기억하세요? 제가 담당했었는데, 그때만 해도 스타일리스트가 의상 제작까지 다 했었어요. 그러니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요. 그런데 지금은 스티브와 요니가 멋진 옷을 만들어주잖아요. 멋과 편안함을 고려한 디자인 덕에 옷을 입히는 제가 너무 편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늘 ‘OK!’ 하는 이 커플의 긍정적인 성향이 정말 좋아요.
스티브&요니 무대에서 돋보이는 의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디자인 폭이 넓어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10년을 훌쩍 넘은 세월에서도 여전히 트렌디함을 유지하며 최고의 무대의상을 연출하는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해요.

스타일리스트 이진규 & 디자이너 고태용

진보한 디자인의 남성복을 만들고 싶었던 고태용과 진부한 스타일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진규는 금세 친구가 되었고, 남성복의 위트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 만남
이진규 디자이너 고태용의 브랜드, 비욘드 클로젯이 론칭했을 때 이거다 싶었죠. 그러곤 제가 먼저 찾아갔어요. 한국 남성들의 전형적인 슈트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클래식을 위트 있게 푼 느낌이랄까. 더블 브레스트 슈트의 재킷은 적당히 짧았고, 팬츠의 핏은 균형미가 있었죠. 그 덕분에 남성복 스타일링에 있어 셔츠와 양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어요.
고태용 제 옷을 아무에게나 덥석 빌려줄 순 없잖아요. 그런데 처음 만난 스타일리스트 이진규는 믿음이 갔어요. 비율이 좋은 몸매가 아님에도 한눈에 멋쟁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과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분방한 그의 옷차림은 옷을 잘 아는 스타일리스트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죠.

기억에 남는 협업 의상
이진규 헤링본 소재의 오버올. 오버올은 대부분 데님 소재잖아요. 그리고 캐주얼한 느낌이 강하고요. 그 중간의 멋을 배우에게 입히고 싶은데, 해외 브랜드까지 다 뒤져도 딱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비욘드 클로젯에 헤링본 소재의 오버올이 있는 거에요. 보는 순간 심장이 요동쳤어요.
고태용 전 몇 년 전 제 패션쇼에 온 배우 장희진의 옷차림을 잊을 수 없어요. 여자에게 남성복을 입힌다는 자체가 그 당시엔 발상의 전환이었죠. 비욘드 클로젯의 베스트와 셔츠, 꽃무늬 머플러로 연출한 타이, 그리고 윙팁 구두를 매치한 장희진의 세련된 플래피룩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스타일리스트 이진규의 힘을 새삼 느꼈죠.

둘이어서 더 좋은 점
고태용 개인적으로 스타일링에도 관심이 많아요. 남성복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누가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옷의 격이 달라지니까요. 진규가 담당하고 있는 오지호, 성훈 등 남자 배우들의 옷차림을 눈여겨봐요. 각자의 캐릭터에 맞게 스타일링하는 부분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거든요.
이진규 아직 저는 많이 부족하지만 만약 진짜 스타일링을 잘한다고 해도 멋진 옷이 없다면 빛나지 못할 거예요. 언젠가 마카롱을 주제로 의상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남성복의 컬러 팔레트는 정말 단순하다는 걸 느꼈죠. 그때도 디자이너 고태용 때문에 살았습니다. 부드러운 레몬색의 셔츠와 연한 회색 플란넬 팬츠를 만드는 남성복 디자이너가 있기에 스타일리스트도 성장할 수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