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작가 5인을 만났다. 그들은 각자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힘과 반복해서 붓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했다.

아버지의 세계, 2010~1011

아버지의 세계, 2010~1011

 

박경률

어린 시절 다양한 문화권을 옮겨 다니며 겪었던 경험, 적응에 대한 기록들이 캔버스를 가득 메운다. 화면 속의 코끼리, 자동차, 완두콩 등의 다양한 오브제의 조합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상징한다. 보편적인 잣대에서 벗어난 것, 금기시되는 것을 기록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다각적인 시선을 제안하고 있다.

작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결과물보다는 작가의 태도에 대해 먼저 생각한다. 좋은 태도를 지니고 있는 작가가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다.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 당혹스러움과 민망함, 그리고 나를 규제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온다. 반항이라기보다는 어리숙함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처한 상황이나 공간에 익숙해지기 위해 관찰을 많이 해왔고 그런 경험들이 드로잉의 형태로 기록된다.
개인전 <Floating_B> 전시는 크게 세 명의 인물에 초점을 두었다. 사회 구조의 모순을 이야기함에 있어 개인의 역사가 사회의 역사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가족에서부터출발했다. 아버지의 세계, 집에 갇힌 엄마, 그리고 특정 인물 ‘B’가 등장한다. 는 부유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과 나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기억들이 회화, 조각, 영상, 설치로 기록된다. 사회적으로 명명된 딸이나 여성의 입장이 아닌 독립된 인간으로서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계속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힘 어린 시절 여러 나라에 거주하면서 그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내가 보고 느끼는 세계를 미술의 형식을 빌려 드러낸 것이다. 잘 모르고 이해되지 않아 갖게 된 자격지심이 작업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동기가 된다.
박은영에서 박경률로의 개명 ‘단어가 의미를 상실할 때 자유를 얻는다’는 말이 있다. 박은영에서 박경률이 되는 순간 그 단어들은 일종의 대명사가 되어 어떤 이름도 나를 표현할 수 없는, 여러 애칭 중 하나가 되어버렸으며 동시에 나와 작업에 대해 더욱 애착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박경률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것 “처음에는 그림 자체만 보인다. 어떻게 하면 주목을 받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화면 구성 때문에 박경률의 그림은 화려하다는 오해를 낳는다. 그러나 각각의 형상과 색의 선택이 전체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설정된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화려함이 노출하고 싶어하는 다양한 내러티브에 놀라게 된다”라고 Hzone 이대형 대표가 말했다.

Pacifier, 2011

Pacifier, 2011

 

도병규

키덜트적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인간의 감정과 내적 욕망을 이야기한다. 인형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페르소나, 혹은 극중 배우로 등장하여 상상 속의 드라마를 가시화한다. 오는 2월 26일 부터 한전 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The Symbol’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인전 <Fetishrama> 페티시라마는 페티시와 드라마를 합성해 만든 단어다. 페티시는 사람이 아닌 사물이나 그 밖의 대상에서 성적 흥분이나 쾌감을 얻는 성도착증을 의미한다. 내가 생각하는 페티시는 그 어원인 페티코(Feitico), 즉 마음이 깃드는 물건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물건에 대한 애정의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유년시절에는 그 대상이 인형이나 로봇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형을 대상으로 그리던 상상을 통해 내적인 욕망, 불안한 심리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작업의 소재인 인형 인형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물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그 생김새가 사람을 쏙 빼닮아 어쩐지 불편하게 만드는 대상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대상과의 감정이입이 쉽게 일어난다. 인형과 대화를 하며 펼쳐지는 상상 속에는 폭력적이거나 금지되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인형은 작품 속에서 자아를 대신하는 분신 또는 대체물로 등장해 내가 만들어낸 시나리오 속 배우 역할을 한다.
인형을 둘러싸고 있는 것 액체에 대한 첫 번째 연결고리는 유년 시절 가학의 대상이었던 개구리에서 왔다. 표피에 덮여 있는 끈적이는 점성의 액체는 개구리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보호막이고 사람에게는 양수와 같은 의미다. 작품 속에서 한 가지 의미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명과 보호막 역할을 의미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치 수수께끼처럼 알쏭달쏭하고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작가는 ‘수수께끼를 파는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도 작가의 중요한 임무다.
계속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힘 작업은 휴식이나 놀이 같은 것이다. 별다른 힘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즐기는 마음으로 지속한다. 나는 인형이나 장난감,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 키덜트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수집하고 즐기다 문득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좋아하는 소재를 작업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다. 2월 말에 선보일 개인전의 신작 역시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소재로 풀어진다.
도병규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것 회화를 전공하기 전에 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때문에 작품 속에서 영화적 연출과 회화적 표현이 동시에 나타난다. 자동차 커스텀페인팅 업체에서 일하면서 배운 자동차 도장기술도 적용되어, 캔버스와 유화로 그려진 기존의 정통회화에서 느끼지 못한 독특한 질감과 표현기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 Star Pattern Shirts, 2011 2. Green House , 2009

1. Star Pattern Shirts, 2011 2. Green House , 2009

 

한경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의 고정된 인식을 꼬집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은 세상의 모든 사물은 바라보는 관점에 의해 얼마든지 다르게 인식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는 얼마전 치러진 제11회 송은미술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것. 예술은 소통의 수단이다.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다면 서로의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사람의 시점과 관점에 대한 작업 나이, 국적, 성별, 지위 등에 따라 같은 사실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이 항상 흥미로웠다. 한 가지 현상이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절대적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익숙한 오브제와 이미지의 소재들 사람들은 배운 지식과 경험에 따라 색안경을 끼고 대상을 볼 수밖에 없다. 언제나 비교 대상이 필요하고 전혀 새로운 현상이나 사물을 마주치면 당황해하면서 기존의 무엇과 비교해 자기 방식으로 합리화하려고 한다. 그래야 우리가 그동안 만들어온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래서 컬러바, 몬드리안, 의자, 국기와 같은 익숙한 이미지를 사용해 관객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트릭에 빠지도록 유도했다.
개인전 <Blind Spot>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은 없다. 인식하지 못한다고 정의하는 순간은 반대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고정관념을 다른 식으로 해석해 보여주고 이미 알고 있는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자체로서 보여질 수 있는 작업을 시도했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고정관념이 바로 ‘Blind Spot’인 거다.
계속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힘 사람들의 관심. 관심과 기대가 커질수록 심리적 부담이 커지지만 그만큼 나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그것이 계속해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끈다.
한경우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것 아날로그 형식을 고수하며 최소한의 로테크 기술로 관객을 매료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별것 아닌, 일상적인 설정일수록 관객의 감동은 배가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작업에 사용하는 이미지들은 보편적인, 누구나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이미 모두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단지 선택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이다.

Modern Boy-Custom Made Breath, 2011

Modern Boy-Custom Made Breath, 2011

 

강강훈

강강훈은 현대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해학과 익살을 통해 풀어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오는 5월 홍콩 아트페어 주최측의 요청으로 솔로 쇼 형식의 부스전을 가질 예정이며 국내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사실주의를 고집하는 이유 일반적으로 극사실주의는 작가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현상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의도지만 내게 있어서는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이며, 인물과 그 내면의 감정선을 표출해 내는 본연의 의미를 지니는 기법이다. 나는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불분명한 자아와 불안한 시대의 아이러니를 표현한다. 연출에서 보여지는 허구적인 상상은 삶에서의 일탈과 자유를 대변하고 동시에 현대인의 현재를 보여준다.
다양한 표정 모델과 만나 작품의 세계와 연출의 의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러한 소통이 이뤄진 후에 나타나는 표정들은 훨씬 더 강력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곤 한다.
자화상이 갖는 의미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연구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새로운 연출과 구상에 대한 구체적인 체계를 만들어주고 충분한 실험의 토대가 되기에 앞으로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하는 작업이다.
작업을 연결하는 키워드 ‘현대인’ 그리고 ‘상실과 혼돈의 자아.’ 자아의 상실과 혼돈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문제의 근간이기도 하다.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뭔가를 떠올리기 적합한 순간을 살아가면서 무수히 만나게 된다. 현상을 작업과 연결하려면 작업과 연관된 생각이 습관이 되어야 하며 그런 일상들이 작업과 연관되는 것으로 풍요로워질 때 작업에 대한 의욕도 충만해진다.
계속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힘 삶의 내면을 연구하는 과정을 회화라는 수단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즐거움이지만,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수없이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기쁘다. 현상이나 사진의 결과물과는 별개로 나만의 체계가 쌓여가고 완성되어가는 것을 느낄 때 다시 붓을 집어들 수밖에 없다.
강강훈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것 나의 작품의 매력은 테크닉의 정교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칠고 자연스러운 테크닉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모공이나 사물의 조직적인 부분을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려나가는 계산보다는 필력에 치중해 회화 본연의 의미에 더욱 중점을 두어 작업했다는 뜻이다.

Suitcase Window 1, 2010

Suitcase Window 1, 2010

 

차민영

‘가방’이라는 오브제 안에 축소된 세계를 연출하고 그것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업을 한다. 가방 사이의 구멍을 통해 무기력하고 부조리한 일상의 반복이 아닌 ‘탈주’와 ‘변신’이라는 코드를 부여하고 인간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작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 ‘겉으로 보이는 것은 껍질이며 가짜다, 들여다보면 그 안에 진짜가 있다’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모든 시각적인 차원 너머에서 작동하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응시다.
개인전 <Missing Link> 6개의 가방이 한 작품이다.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공간, 다른 상황이지만 상황을 이어주는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가방 속 또 다른 작은 가방은 여행중이다. 그것은 목가적인 여행이 아니라 가방들 사이의 닫힌 회로망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여행이다. 인과관계의 사슬을 끊고 탈주의 환상을 꿈꾼다.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지만 거대한 가방 속에 갇혀버린, 그래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자 하는 표류하는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내가 살았던 공간, 기억,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미지와 상황. 그냥 평범한 나열 같지만 작은 기억, 잠시 머물렀던 공간, 사소한 이미지 하나에도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계속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 힘 6살 이후부터 꿈이 바뀐 적이 없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내가 작가의 삶을 살도록 프로그래밍되어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곤 한다. 그렇다고 천부적 재능에 대한 믿음이 있다거나 작업하는 것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다. 애착이 큰 만큼 스트레스도 받는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가장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쏟아 붓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 확신이 작업을 이끌고 나가는 힘이다.
차민영의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것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과 강렬함은 찾기 힘들다. 멋지게 차려입은, 그럴싸해 보이는 작품들 사이에서 조금은 어색하고 엉뚱하게 서 있는 보릿자루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무심결에 보고 돌아서다 또다시 고개를 돌리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들의 시선과 생각을 붙잡아두는 무언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