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과 조석의 만화가 일상적인 화제에 오르고 웹툰 작가들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웬만한 연예인에 버금간다. 바야흐로 웹툰의 시대,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웹툰 작가들을 만났다.

기안84

연재 반 년 만에 최고 웹툰 중 하나로 등극한 패션왕의 어록은 다음과 같다. ‘멋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칼라를 세워서 남자의 자부심을 한껏 끌어 올리는 거냐? 하지만 발목을 접음으로써 귀여운 맛도 잊지 않는군?’ 등등. ‘체대옴므’ ‘무소유옴므’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기도 한 <패션왕>은 실제 스타일 아이콘인 이수혁, 장윤주, 제레미 스콧을 오마주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현실과 가상을 잇는다. 황당하지만 ‘멋있어지고 싶다’는 시대적 욕망에 기묘하게 밀착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만화이기도 하다.

패션왕은 패션을 매개로 변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고등학생인 주인공 우기명의 성장과 변화를 그린 만화다.
야후에서 연재했던 <노병가>와 <기안 단편선>은 어둡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도 <최강전설 쿠로사와>, <무뢰전 가이>, <기생수>, <폭음 열도> 같은 암울하고 현실적인 만화를 좋아한다.
웹툰은 이말년의 <이말년 씨리즈> 외에 주호진의 <신과함께>, 귀귀의 <열혈 초등학교>를 보고 있다. 아직도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보는 게 더 좋다.
<패션왕>을 그리고는 있지만 정작 최근에는 옷을 많이 사지 못했다. 아디다스가 한창 유행하던 스무살에 구입한 파란색 저지 트림딕(Trimm Dich)은 지금까지 아껴 입고 있다.
그리면서 재밌었던 부분은 주인공 우기명이 패션왕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4화다. 집과 학교만 오가던 EBS 청소년 드라마의 주인공 같던 삶이 귀여니 소설 속 주인공처럼 바뀌는 부분.
웹툰 작가로서의 삶은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작업에 올인한다. 자정이 되면 칼같이 다음 화가 올라오는 네이버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마감이 늦는 편인데 스토리를 자꾸 고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악플에 대한 내성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무플이 악플이었던 시절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까.

하일권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데뷔작 <삼봉이발소>부터 ‘남과 다른 게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던 <두근두근두근거려>, 성공의 기준을 돌아보게 했던 <안나라수마나라>까지. 하일권은 유려한 그림체와 만화적 재미, 그리고 풍부한 스토리 틈새로 자연스레 문제의식을 던지는 작가다. 그의 최신작인 <목욕의 신>에서도 따뜻한 시선은 이어진다. 투철한 프로의식을 가진 목욕관리사(때밀이)들이 일하는 초호화 목욕탕 금자탑은 초현실적인 공간이지만 ‘노력한 만큼 인정받고 진심을 담은 만큼 전해지는 빛바랜 가치들이 아직까지 소중하게 지켜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작품마다 전해지는 그 진심을 독자들은 안다.

<목욕의 신>은 재미를 우선한 만화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읽는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리게 됐다.
회심의 개그는 때밀이들이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는 ‘목욕투’다. <목욕의 신>은 ‘신의 손’이라는 이유로 스카우트된 주인공 허세, 목욕의 신 테미러스, 문신까지 밀어버리는 때밀이 실력 등 황당한 설정이 많지만 누가 더 많은 때를 미는지 겨루는 목욕투야말로 가장 만화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찜질방이 대세인 지금, 목욕탕은 이제 추억의 장소가 됐지만 그래도 누구나 한 번쯤 목욕탕에 가서 몸을 담그고 편히 쉬다 온 기억은 있을 거다. 목욕탕은 나에게도 그런 곳이다. 아련한 어린 시절 추억이 있고, 사회에서 동떨어진 채 쉴 수 있는 곳 말이다.
작업은 혼자 한다. 따라서 연재하는 중에 여유 시간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주 7일 근무하다 보니 거의 일중독 수준이나 다름없다. 내년 4월에 결혼할 예정인데 내년 초, <목욕의 신> 연재를 마치면 푹 쉴 예정이다.
연재를 마치고 다음 연재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물론 세이브 원고를 몇 화정도 만들어놓는다. 하지만 막상 연재를 시작하면 금방 없어지고 매주 마감에 허덕이게 된다. 다른 만화가분들도 그렇지 않을까?
좋아하는 웹툰은 조석의 <마음의 소리> 이말년의 <이말년 시리즈> 같은 개그 만화다.

캐러멜&네온비

<미스문방구매니저>, <셔틀맨> 등을 함께 만들어온 캐러멜과 네온비는 웹툰계의 막강콤비다. 얼마 전 부부가 된 이 콤비의 찰떡 같은 궁합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실제로도 ‘운동 덕후’라는 두 작가의 경험이 녹아난 <다이어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건강한 몸으로, 즐겁게 살자!”

<다이어터>는 느리지만 제대로 된 다이어트 법을 소개하는 만화다. 누구나 알지만 하기 어려운 식이조절과 운동을 해낼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북돋우는 만화이고 싶다.(캐러멜) 밝고 귀여운 우리 작품과 달리 <도박묵시록 카이지>, <간츠>, <사채꾼 우시지마>, <기생수>, <이토준지 시리즈>처럼 어둡고 강렬한 만화를 좋아한다.(네온비) 네온비는도라에몽 마니아다.(캐러멜)
일상은 일반 회사원과 비슷하다. 작업실로 출근해서 밤이 되면 집으로 퇴근한다. 물론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고, 일주일 중 이틀은 카페에서 콘티를 짜는 자유가 있기는 하다.
웹툰 작가라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는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낯설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호칭도 아직 어색하다.(네온비) 주 2회 연재를 하는 동안에는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이나 작업파트너로서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웹툰은 독자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재미있다. 마치 스피드 복권 같다.(캐러멜) 거침없는 감상평에 철렁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힘이 된다. 우리 독자들은 상냥하다.(네온비)
다른 웹툰을 볼 때는 존경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배운다는 마음이 크다. 강형규의 <라스트>, 천계영의 <드레스코드>, 정연식의 <더 파이브>, 골드키위새의 <메지나> 등 좋은 웹툰이 점점 많아져서 행복하지만 작가로서 위기의식을 느낄 때도 있다.(네온비)

순끼

<치즈인더트랩>은 가슴 설레는 남자 캐릭터가 득실대는 웹툰이다. 이 미남들의 시선이 여주인공 홍설을 향하고 있다는 점은 기존 순정만화의 문법에서 어긋나지 않지만 2년 전과 현재를 오가는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등장 인물들의 진의를 의심하게 하는 장치들이 보인다. 여기에 심리 묘사와 대학 생활을 배경으로 한 현실적인 사건이 계속 더해지며 꾸준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치즈인더트랩>의 매력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이렇다. “남주가 여주한테 잘해주는데 불안한 만화는 처음이야 !”

<치즈인더트랩>은 보편적인 순정만화 구도에서 여주인공이 가족과 친구관계, 학비, 학점 같은 연애 이외의 요소들로 고민하는 모습을 함께 담고 있는 캠퍼스 웹툰이다. 만화적 재미를 위해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독자들도 만화를 보며 실제 경험과 문제를 공유할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다.
등장인물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캐릭터는 남자주인공인 유정이다. 한 컷도 등장하지 않거나 그림이 이상하면 아쉽다는 푸념이 제일 많다. 여자주인공인 홍설도 만화 캐릭터답지 않은 예민한 성격이지만 대부분 설이를 실제 존재하는 친구처럼 생각하고 공감하는 것 같아 창작자로서 뿌듯하다.
현실적인 내용이 많다 보니 주변 인물이나 경험담을 참고해서 그린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혹시 내 주변의 누가 자신을 풍자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척들은 처음엔 웹툰이라는 개념 자체를 의아해했다. 지금이야 나를 ‘화백님’이라고 부르며 민망하게 하지만 친구들에게서 ‘어디에서 네 만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기분은 좋다. 하지만 필명 외에는 어떤 것도 공개할 생각이 아직은 없다.
웹툰은 출판만화보다 접근성이 높아서 연령과 성별을 초월한 독자층이 형성되는 것 같다. 독자의 감상을 빠르게 확인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는 얻을 수 있지만 독자의 반응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여기 소개된 작품은 모두 평소 챙겨 보던 웹툰들이다. 최근에는 웹툰의 원조 격인 <마린블루스>의 작가 정철연의 <마조앤새디>, 오성대의 <봉봉오쇼콜라>를 즐겨본다.

난다

<어쿠스틱 라이프>가 주는 재미는 소소하고 다정하다. 남편 한군과 새침한 여자 난다가 엮어가는 나날에는 기가 막히는 사건이나 요행 따위는 없다. “동정하지 마라? 내는 괜찮데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태도는 호들갑스럽지 않다. 그런 <어쿠스틱 라이프>가 큰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다면 우리 모두의 삶이 화려한 일렉트릭 기타보다는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어쿠스틱 라이프>는 만화가 아내와 게임개발자이자 오타쿠인 남편, 21세기형 초식남인 난다의 동생이 발견하는 생활의 즐거움과 불만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만화다.
처음 만화를 그린 고등학교 때는 소년만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김나경의 <사각사각>, 아즈마 키요히코의 <아즈망가 대왕>을 만나며 차츰 일상에 개그가 섞인 만화를 좋아하게 됐다. <스노우캣>, <마린블루스> 같은 에세이류만화를 보며 가벼운 생활만화를 그리게 됐다.
고다 요시이에의 <자학의 시>를 좋아해 만화에 상을 엎는 장면 등 <자학의 시>를 오마주한 장면을 넣기도 했다.
‘한군 같은 남편이 있다면 결혼하겠다’, ‘결혼하고 싶어진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나의 남자 보는 눈에 우월감을 느끼며 흡족하다.
물리적인 시간의 여유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있는 편이지만 머릿속은 쉴 때가 거의 없다. 늘 다음 연재에 대한 불안과 생각들을 안고 지낸다.
내 만화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작가로 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아직도 적응을 못하고 있다. 친구가 내 만화 이야기를 할 때면 부끄러워서 눈앞이 흐려질 정도다. 좋은 만화를 그리고 싶지만, 만화로 인해 내 생활이 바뀌거나 휩쓸리게 되는 것은 싫다.
웹툰은 독자들과 거의 1 : 1로 앉아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반응이 즉각적이다. 감상자의 반응보다 창작자에게 말초적인 자극을 주는 건 없으니까. 창작자의 날카로운 감각을 잃는 일이 없도록 긴장하고 있다.
챙겨 보는 웹툰은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함께 연재 중인 고아라의 <어떤교집합>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의 요소가 많은 그림과 만화로서의 이야기.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는 감각이 좋은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