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모두 자신의 시간을 걷는 배우들이 있다. 이제 만개하려는 어린 배우들과 우리나라의 전설이 된 여배우 7인이 조금씩 다른 얼굴과 조금씩 다른 감정으로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달콤한 의미가 이 안에 있다. 아름답다.

스웨터와 모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반지와 브로치는 세인트 에띠엔느(St. Etienne). 팔찌는 미리암 살랏(Miriam Sal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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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여배우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빌라의 맨 위층의 문을 열고 들어간 최은희의 집은 오후의 따뜻한 햇살에 젖어 있었다. 아이보리색의 소파는 TV가 걸린 벽이 아닌 커다란 발코니를 향해 있었고, 창밖으로 제각기 다른 지붕이 만들어내는 선은 불규칙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은막의 배우’라는 예스러운 표현이 잘 어울리는 대배우는 이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대중은 여배우를 사랑하고 여배우는 대중이 필요하다. 백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여왕도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아름다웠던 한 시대를 호령한 최은희의 목소리는 여전히 깊다. 발음은 또렷하고, 눈은 예리하며, 의사표현은 명확하다. 너무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말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궁금한 건 다 물어봐요. 나는 비밀이 없어요.” 시간. 여배우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물었다. “여배우는 나이를 잊은 존재고, 잊고 싶은 존재고, 잊어야만 하죠. 나는 생일도 잊고 살았어요. 정말 바빴어요. 어머니가 챙겨주면 그제서야 그날이 내 생일인 줄 알았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북에서 생일상을 먹게 되었어요. 김정일이가 차려준 생일상.” 최은희는 말했다. 연기를 하고, 감독을 하면서 아름다움을 보는 그녀의 눈은 더 깊어졌다. “한국적인 여성상을 표현하려고 했고, 감독들도 그걸 요구했죠. 양복 입으면 양복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어요. 한복이 더 잘 어울린다고 했어요. 그래서 반발심으로 양복을 더 입었죠. 그래도 사람들은 내가 이마를 똑바로 터서 한복을 입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역할을 연기하는 걸 더 좋아했어요.” 그럼에도 자신은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내 사진, 내 작품에 만족한 적이 없어요.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그녀의 눈과 목소리에는 긍지가 있다. 그 목소리의 울림을 들으며,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최은희만큼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배우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사랑한 배우.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이고 흠모할 수밖에 없는 재능이라서 금지된 나라에서 훔쳐가길 원했던 최은희의 얼굴에도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이 새겨져 있다. 한 세기 동안 존재한 우리나라 최고의 여배우의 얼굴은, 사진으로 가둬야 할 위대한 유산이다.

케이프는 셉렙 바이 김영주(Celeb by Kimyoungjoo). 모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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