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두 남자의 부엌을 습격했다. 안 친한데 친한 척하는 건 아니겠지, 촬영장의 불이 꺼지면 금방 쌩 해지는 건 아니겠지, 억측과 추측이 난무한 촬영장의 부엌에 잠입했다. 쉬는 동안에도 한 남자는 툭툭 던지고, 또 한 남자는 뭐가 웃긴지 계속 싱글벙글. 아니 이건, TV랑 너무 똑같다.

왼쪽이 보나세라의 샘 킴 셰프, 오른쪽이 시리얼 구어메의 레이먼 킴 셰프다. 함께 요리할 운명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한 부엌을 나눠 쓰며 ‘좋은 사이’가 되었다.

‘선생님’으로 불리는 요리 전문가들이 일방적으로 강의하던 요리 프로그램은 사라졌다. 이제 요리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과 더 비슷해 보인다. 쉽고 만만한 동시에 리얼리티 쇼처럼 흥미로울 것. 본격 요리 전문 채널 올’리브는 2AM의 멤버 창민이 직접 요리를 만들고, 이하늬가 채식 레시피를, 강성연이 눈물 나게 매운 요리를 맡고 김호진과 수진이 여행과 미식을 버무리며 각기 다른 맛으로 화면 고정 시간을 만들고 있다. 그중 가장 재미있고 웃긴 프로그램이 <샘과 레이먼의 올리브 쿠킹타임 듀엣>이라는 건 모두 동의할 것이라 믿는다. 남자 둘이 앞치마를 질끈 매고 툭탁거리며 요리를 하는 모습은 마치 고든 램지와 제이미 올리버가 함께 요리하는 것처럼 이질적이면서도 유쾌하다. 분명한 건, 요리 프로그램이 진화의 진화를 거듭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속에서 두 셰프의 운명은 매번 바뀐다. 샘 셰프는 드라마 <파스타>의 숨은 손이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보나세라’의 샘 킴과 풍요로운 미국 남부 음식을 선보이는 ‘시리얼 구어메’를 이끄는 레이먼 킴은 모두 자신의 주방에선 왕으로 군림한다. 그러나 한 주방은 두 명의 왕을 모시지 않는다. 촬영을 시작하면 한 사람은 주방장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부주방장이 되어야 한다. 그 말은, 주방장이 된 사람이 다른 셰프를 마구 부릴 수 있다는 뜻이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강남에 있는 자신의 주방에서 “멍청아! 그게 아니고!”를 외쳤을 법한 사람이 다소 어색하고 공손하게 묻는 것이다. “감자는 몇 등분할까요? 웨지로 자를까요? 토마토는 껍질을 벗겨서 준비할까요? 아, 더 작게 썰겠습니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다. 야자 타임 후에 군기타임이 오듯 주방장과 부주방장의 역할은 금세 바뀐다. 그렇다면 이제 복수혈전이다. 재미의 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온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은? 물론 요리의 재미다. 정량보다 적당히, 일단 맛을 보고 부족하면 더 넣는다. 해산물을 삶기로 했다가, 그냥 구울까? 구우면 맛있겠지? 하고 냄비 대신 팬을 올려버리는 자유로움.

“대본이오? 대본 물론 있죠. 그런데 잘 안 봐요.” “맞아요. 우린 리허설도 안 해요. 리허설하면 어색해서 더 못해요.” 이 두 사람은 마치 자신의 주방에 서 있는 양 편안해 보인다. 방송 작가들도 그런 이들에게 이미 적응한 듯,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화이트 보드에 적어서 가만히 들어 올리고 만다. 촬영은 NG 없이, 컷을 나누는 것만 제외하면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간다. 샘 셰프가 해산물 샐러드에 신선한 레몬즙을 사정없이 넣자, 레이먼 셰프가 또 한마디 한다. “아우, 시다니까.” 어느 날, 이들이 만드는 해산물 파에야를 무심코 보다가 새벽 1시에 밥을 차렸다고 말하자, 두 셰프가 함께 웃는다. 해산물 파에야는 일종의 금기어다. 레이먼 셰프가 설명한다. “그거요, 그때 제가 요리에 소금을 안 넣었어요. 정말 잊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파에야가 다 완성된 후에 소금을 뿌렸죠. 그때부터는 놀리는 말이 소금은 넣었냐는 거예요.” 샘 셰프도 말을 잇는다. “사람들의 입맛은 다 다르잖아요. 내 입에는 맞는데, 레이먼에게는 짤 수있죠. 그렇게 각기 다른 입맛을 맞춰가는 재미도 있어요.”

1, 2, 3, 4.  샘 셰프의 주도로 감자 포카치아 빵과 구운 해산물 샐러드를 만들었다. 완성 후에는 다시 레이먼 셰프가 셰퍼드 파이와 대파 수프를 만든다. 두 셰프의 대화는 그대로 음식을 만드는 팁이 된다. 5.  하정석PD 역시 요리하는 남자. 6.  액션과 리액션이 어우러지며, 즉흥적이고 흥겨운 음식이 완성된다.

“우린 일 때문에 만난 사이예요.” 각기 다양한 문화권에서 자란 배경과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남자 둘만 모이면 으레 생기는 ‘형’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요리하는 사람과 요리하는 사람이 만났으니까요.” 두 사람은 서로 우리가 함께 요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혼자 할 때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각자 자신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셰프를 함께 묶은 것은 제작진이지만, 서로가 인정하듯 두 사람은 썩 잘 어울린다. “프로그램에서는 레이먼이 저를 괴롭히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안 그래요. 결정적인 한마디는 늘 제가 하거든요.” 샘 셰프의 말이다. “난 정말 10분마다 한 번씩 열 받아요. 촬영은 8시간을 넘게 하는데 말이죠. 샘은 완전히 어린 놀부예요.” 레이먼 셰프는 미혼, 샘 셰프는 기혼. 날라리와 모범생, 거침없는 요리와 섬세한 요리. “레이먼은 맛있게 만드는 알맹이를 알아요. 군더더기 없이 정수만 쏙쏙 빼서 만드는 요리예요.” “샘은 작고 예쁘고 섬세해요. 정통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이름 붙은 음식을 다 해요. 그것만 해도 대단해요.” 성격만큼이나 요리 스타일도 다른 두 사람이 만드는 요리는, 음식은 먹을때뿐만 아니라 만들 때조차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는 걸 알려준다. 만약에 서로를 하루 동안 이용할 수 있다면? “레이먼을 고기 파트에 세울 거예요.” “난 샘에게 ‘콜링’을 시킬 거예요. 주방을 전부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아무거나 시켜도 돼요? 그럼 세차도 시킬래요. 저 사람은 세차도 면봉으로 할 것 같아요.”

촬영은 2주에 한 번, 두 회분씩 촬영하지만 이들은 거의 매주 본다. “엘본 더 테이블의 최현석 셰프와 함께 셋이 자주 만나요.” 계산이나 목적이 없는 그냥 편하고 좋은 사이인 이들은 돌아가면서 서로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기도 한다. 밥이나 먹자는 취지로 가볍게 시작했던 모임은, 최현석 셰프가 8 코스 요리를, 샘 셰프가 11 코스 요리를 선보이면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되었다. 친구를 잘 대접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맛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기쁨이 뒤섞여 있을 그 식탁이 궁금해졌다. 다음은 레이먼 셰프의 차례.레이먼 셰프는 예의 터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냥 팬케이크나 12장 구우려고요.” 하지만 그것이 농담인 건 그도 나도 안다. 도대체 그날이 언제인지 궁금할 뿐이다.

감자 포카치아 만들기

1. 껍질을 제거한 감자를 웨지 모양으로 6등분한 뒤 뜨거운 소금물에 삶아 익힌다.
2. 믹싱볼에 밀가루, 소금, 설탕을 넣고 골고루 섞어서 반죽을 만든다.
3. 또 다른 믹싱볼에 물, 올리브유를 넣은 뒤 드라이이스트를 넣는다.
4. 배합한 반죽에 드라이이스트 물을 넣어 함께 반죽하고, 삶은 감자를 갈아서 고루 섞는다.
5. 큰 판에 넣어 원래 분량의 두 배가 될 때까지 발효시킨다(1차 발효/40분).
6. 올리브유를 두른 오븐 팬에 반죽을 넣고, 손가락으로 반죽을 꾹꾹 누른 후 다시 발효시킨다(2차 발효/20분).
7. 반죽 위에 올리브유를 바른 뒤, 얇게 썬 방울토마토와 블랙올리브, 로즈메리 등을 골고루 뿌린다.
8. 190℃로 예열한 오븐에서 약 20분 동안 구우면 완성.

<샘과 레이먼의 올리브 쿠킹타임 듀엣>
젠틀한 셰프 샘 킴과 터프한 셰프 레이먼 킴이 이탤리언 쿠킹과 아메리칸 쿠킹을 알려준다. 푸드 라이프스타일 채널 올’리브에서 매주 수~목 오전 10시, 밤 11시 방송. 채널 올’리브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레시피와 요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