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같은 인생을, 노래처럼 부르며 살았다. 인순이는 모든 이야기를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무한한 확신을 뿌리로 삼고 우물처럼 길어 올린 말들에는 하나의 망설임도, 거짓도 없었다.

시퀸 원피스는 곽현주 컬렉션(Kwak Hyun Joo Collection). 귀고리는 비쥬아이(Bijoui). 팔찌는 오르시아(Orsia).

시퀸 원피스는 곽현주 컬렉션(Kwak Hyun Joo Collection). 귀고리는 비쥬아이(Bijoui). 팔찌는 오르시아(Orsia).

 

페도라는 제이미앤벨(Jamie&Bell). 깃털 장식의 톱은 브리오니(Brioni). 팬츠는 랄프로렌(Ralph Lauren). 오른손의 실버 뱅글은 오르시아. 골드 뱅글은 수빈 주얼리(S&B Jewelry). 흰색 로프 팔찌는 제이미앤벨. 왼손의 뱅글은 수빈 주얼리.

페도라는 제이미앤벨(Jamie&Bell). 깃털 장식의 톱은 브리오니(Brioni). 팬츠는 랄프로렌(Ralph Lauren). 오른손의 실버 뱅글은 오르시아. 골드 뱅글은 수빈 주얼리(S&B Jewelry). 흰색 로프 팔찌는 제이미앤벨. 왼손의 뱅글은 수빈 주얼리.

하나의 콘서트를 보고 있는 줄도 몰랐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인순이는 줄곧 노래를 부르거나 리듬을 탔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 따라 촬영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그곳이 콘서트장이건 촬영장이건, 관객이 된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목적과 목표를 잊는다. 대신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오래된 묵은 감정들과 화해한다. 무엇인가에 전부를 건 사람들.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주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얻는 것을 반복한 사람들이 가진 아름다운 당당함이 그녀에게는 있다. 서른 살이 어린 뮤지션과도 언제든 무대에 올라가 땀 흘리는 이 열정적인 디바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해주길. “음악이건 삶이건, 언젠가는 내려놓음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지금은 어린 친구들과 무대에 서고,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언젠가는 놓기 싫어도 놓아야 할 날이 올거라는 걸 아니까, 지금은 그걸 더 누리고 싶고.” 인터뷰를 하면서 천천히 순이는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조금씩 사라지는 화장과 발맞추며 조금씩 깊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땐 노래 이상의 자유로움으로 살고 싶어요.” 말이 멈췄을 때, 얼굴 위에는 인위적인 그 어떤 치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듯한 그 얼굴은, 디바의 것이었다.

<나는 가수다> 출연이 확정되었다고 드디어 발표가 났어요. 늘 소문은 무성했죠. 제안은 진작부터 받았죠?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받았죠. 그때는 몇 회 하는 것 보고 하겠다고 했었죠. 그런데 여러 일이 있었고, 6~7월에는 내가 미국에 가 있었거든요. 몇 번만 노래하고 내려오리라, 그런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가수다>에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고민하고 있는 다른 가수들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브리지 역할을 해줘야겠다고 말했어요.
글쎄, 그 말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날 오만하다고 생각할까? 내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해준다’라고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해요?
안 할 수 없죠. 우리는 다 열려 있잖아요. 박수를 받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또 의식하는 것과 결정하는 건 다른 문제죠.

대의적인 이유 말고, 개인적으로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뭐예요?
경청을 하는 무대에 서보고 싶은 것. 그 긴장에 대한 호기심. 내가 더 떨어서 노래를 못할지라도 한번 경험은 해보고 싶었어요. 해보고 하는 후회와 안 해보고 하는 후회의 차이를 생각해봐요. 해본 후회는 갈수록 흐려지지만 해보지 않은 후회라는 건, 점점 더 진해지기 마련이거든요.

<나는 가수다>가 나가지 않으면 후회할 만한 프로그램인가요?
우리나라에 가수가 수천 명 되는 것도 아니고, 폐지된 다음에 경험해볼걸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아서 나를 원할 때 나가기로 결정한 거예요. 나는 늘 돌아가는 것보다, 맞닥뜨리는 걸 선택해왔어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나가서 그게 다 표정에 나타날까봐 걱정이죠.

뭐랄까, 이미 각오는 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같이 즐기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축제처럼.

<나는 가수다>는 피할 수 없는 순위가 존재해요. 모두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에 대한 부담으로 고뇌하죠.
내가 음악을 하면서 깨달은 단 한 가지는 그거예요. 4천만의 톱은 될 수가 없어요. 어느 한 사람의 가슴에 노래가 내려앉았다면 그 사람한테는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톱이죠. 이별할 때는 이별하는 노래, 사랑할 때는 사랑하는 노래. 결국 톱은 관객이 만드는 거예요.

당신의 톱은 누구였어요?
셜리 베스라는 가수를 너무 좋아해요. 그 사람은 내겐 언제나 넘버원이죠. 그리고 패티 김. 그 관리, 그 여자. 정말 대단하죠.

이달 우리는 당대의 디바를 만나고 있어요. ‘디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별로 감동이 없어. 아무한테나 다 디바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감동이 있어요. 디바는 어렵게 완성되어야 하고, 너희는 조금 더 있어야 디바가 되니까 좀 더 올라와보라고 말할 수 있어야죠. 나는 그냥 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좋고, 그거면 되었다고 봐요.

돌아온 디바, 은둔한 디바, 이제 만개하는 디바가 있다면 인순이는 항상 곁에 있었죠. 그걸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 건 역시 조PD의 ‘친구여’였고, 그 후로 싸이, 이트라이브와 슈프림팀이 이어졌고요.
그때 여러 명이 내게 데모를 보냈는데, 조PD는 직계 후배인 정원관(소방차)이 제작을 해서 들어봤죠. 조PD가 악동의 느낌이 있어서 일단 가사를 먼저 보자 했는데, 가사가 너무 좋았어요. 어려도 친구가 그립고, 나이들어도 친구가 그리운 건 똑같거든요. 그렇게 부른 거죠.

당대의 힙합 뮤지션과 소울의 대모가 함께한 뜨거운 무대는 파격적이었어요. 무대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조PD와 나는 20년 차이예요. 선배로 올라가야 되나, 노래에 맞는 캐릭터가 되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후자가 된 거예요. 노래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왜 따져. 같이 놀자는 노래는 놀아야지. 그래서 핫팬츠 입고, 머리를 하늘로 세우고 그렇게 함께 놀았죠.

얼마 전 이적이 <무한도전>에 나와서 ‘거위의 꿈’ 이야기를 했어요. 인순이가 불렀으므로 그 노래가 진정성을 갖게 되었다고요.
방송을 보진 못했지만 그 이야기는 정말 많이 전해 들었어요. 그 노래는 데뷔 30주년 콘서트에서 처음 불렀어요. 원래 마지막에는 의미 있는 노래를 부르곤 했거든요. 문득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라는 가사가 떠올랐죠. 원래 공연의 마지막은 모두가 아는 노래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내 팬들은 그 노래를 모르니까, ‘거위의 꿈’을 부를 땐 늘 자막을 띄웠어요.

콘서트에서 부르던 노래가 방송으로, 그 방송이 싱글로 점점 올라왔죠. 가수는 늘 자신의 음악을 소구하지만, 이 노래만은 거꾸로였어요. 관객들이 먼저 원했어요.
‘거위의 꿈’에 얽힌 이야기는 너무 많죠. 방송에서 처음 부른 건 <윤도현의 러브레터>였는데, 그때도 그거 말고 다른 노래 불러달라는 걸, 싫으면 편집하라고 하고 부른 거였어요. 그게 화제가 되고, 자꾸 불러달라고 하고, 다른 곡을 연습한 날도 난 그만 부르고 싶었는데 계속 요청은 들어오고, 사람들은 싸이 미니홈피에 깐다고 찾아다니고… 그래서 싱글로 만든거예요. 팬서비스 같은 거였죠.

그 곡이 음악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죠. 그리고 먼 아프리카 아이들이 합창을 하기도 했고요. 노래의 힘을 다시 느꼈을 것 같은데.
소통의 힘도 느꼈지만 무엇보다 관객들이 나에게 뭘 원하는지를 깨달았죠.

뭘 원하던가요?
혼자 갖고 있는 어떤 비밀 같은 고뇌. 내가 알아주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일대일로, 나를 알아주는 것 같은 느낌. 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지난 6월에 일본에서도 그 노래를 불렀는데 많이 울더라고요. 그 노래를 부르기 전에 메모를 읽었어요.‘내일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면, 오늘의 불행은 웃음으로 견뎌라. 친구여, 내일 울게나.’ 노래는 늘 사람의 가슴에 가서 안겨야 하는 것 같아요.

또 당신이 부르는 노래는 유독 가사가 잘 들려요.
언제나 가사 전달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토막토막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정확하게 불러요. 인생의 선배가 주는 메시지처럼.

(Zadig&Voltaire). 브로치로 연출한 깃털 장식은 제이미앤벨. 왼손의 사각형 반지는 티피앤매튜(Tippy&Matthew). 크리스털 반지는 모두 스와로브스키(Swarovski).

(Zadig&Voltaire). 브로치로 연출한 깃털 장식은 제이미앤벨. 왼손의 사각형 반지는 티피앤매튜(Tippy&Matthew). 크리스털 반지는 모두 스와로브스키(Swarovski).

디바로 사는 인생은 어땠어요?
반반인 것 같아요.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잃어버린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이죠?
딸과 외출을 할 때도 조금이라도 챙겨 입어야 하고, 슈퍼마켓에서도 사인해줘야 하죠. 사람이 가장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영광을 맞바꾼 거죠. 그 두 부분이 서로를 달래줄 때도 있어요. 옛날 말처럼 양손에 떡을 쥘 순 없어요. 그걸 진작부터 깨달았어요.

디바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은 뭐라고 생각해요?
첫째 조건은 노래를 잘해야죠. 디바는 가수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이름이니까.

두 번째는?
패션이건 트렌드건 다른 리더 그룹과 함께 걸어갈 수 있어야 해요. 뒷방으로 가는 순간, 디바라는 이름이 흐려지죠. 원로 디바가 되는 거지. 과거의 디바. 현재에도 빛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누구나 속마음은 다 현역에 있고 싶어 해요. 은퇴하면 더 행복해질 순 있겠지만 현장에서 누리는 기쁨은 없어져요. 기자도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나와서 일하는게 좋지, 데스크에 앉아봐요. 심심할걸.

그럼 디바는 무엇으로 완성되죠?
마지막으로 디바는, 버려야 해요. 환란의 도시에, 그 밤에 항상 화려한 존재가 되어야 해요. 아이들의 공부를 봐줄 수도, 남편을 위한 현모양처가 될 수도 없어요. 그러기엔 조금 부족한 존재죠.

요즘은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무드가 이 도시를 뒤덮고 있어요. 패션도, 음악도 그래요. 모두가 1980년대를 그리워하잖아요.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지켜봤죠.
결국은 똑같아요. 그때는 그때 나름의 뭔가가 있고, 지금은 지금대로 뭐가 있어요. 이렇게 세월이 지나다 보면, 결국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그때 새롭다고 열광한 것들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듯, 그래서 난 웃을 수 있나봐. 여유죠, 이런 게.

인순이에게 가장 나다운 노래는 뭐예요?
어떤 사람들도 내게 어떤 가수라고 정의를 내리지 못할 거예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해요?
몰라요, 나도.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이게 정말 나 같고, 또 다른 노래를 부르면 또 그게 나 같아요. 노래 연습을 할 때, 내가 내 목소리를 못 찾아요. 어떤 게 내발성이고, 어떤 게 내 목소리인지 이제 잊어버렸어요. 모든 게 다 있지만 정말 내 목소리는 없는 거죠.

다양한 목소리. 그건 대단한 재능 아닌가요?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노력해서 찾은 것들이죠. 원하는 것들을 갖기 위해서 노력을 해서 그걸 찾아내고, 또 다른 걸 찾아내기 위해 연습을 해요. 그래서 나는 늘 2% 부족한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인순이만의 그 무엇은 없어요. 어쩌면 난 종합선물세트 같은 존재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종합 선물세트에는 진짜 맛있는 게 없어요. 진짜 맛있는 건 정말 그 전문가게에서만 파니까.

내가 생각하는 인순이만의 것은 ‘선동’이에요. 당신처럼 선동적인 가수를 본 적이 없어요. ‘밤이면 밤마다’를 들을 때면 당장 나가서 놀아야 할 것 같고, ‘거위의 꿈’을 들을 땐 많은 것을 가진 지금도 여전히 꿈을 꿔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람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움직여요.
상대편의 마음을 움직여서 들어오게 하는 게 그거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선동적이다’라는 것.

대단한 무기죠.
그렇죠. 그건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죠. 내 노래의 원칙. 진실로 부르자. 한 곡을 부르고, 어떤 장소에 가더라도 진실로, 진실로 노래해요. 그래서 나는 노래에 너무 깊이 들어가서, 나올 때 힘들어요.

마치 촬영 중인 작품이 끝나면 마음앓이를 한다는 배우들처럼?
그걸 매 곡마다 느껴요. 박수가 나오거나 말거나, 난 그냥 서 있어요. 마음을 다시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해서요.

오늘 직접 만나서 촬영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당신은 고집도 있으면서, 타협도 잘할 것 같아요. 상충되는 두 가지가 있어요.
딱 맞췄어요! 난 고집이 센데 이해를 시키면 금세 풀어요. “내가 거길 왜 나가?” 그럼 매니저가 자분자분 설명을 해줘요. ‘거기에 나가면 뮤직비디오를 두 번 틀어준대요’라든지. 그런 식으로라도 하면 난 금세 받아들여요. 근데 그걸 내가 왜 해야 되는지 이유를 주지 않으면 아주 고집이 세요.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라는 영화가 있어요. 데브라 윙거와 동시대에 활동한 여배우들이사라진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 떠나는 거예요. 결국 나이든 여배우는 설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영화죠. 무대도 똑같지 않아요? 점점 주변에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나는 지금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거예요. 내 자신이 편한 것보다는 무대가 우선이에요. 돈 낸 사람들이 아깝지 않게 해주고 싶어요. 핫팬츠도 그냥 입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든지, 가리려고 머리를 쓰든지 해야하는 거고. 원래 친구가 많지 않은 편은 아니었지만 분장실에서 깔깔대고 그런 사람들이 옆에 없어요. 많이 외롭죠.

이제 화장이 다 지워졌어요. 메이크업을 한 인순이의 얼굴도 지금 보이는 온전한 맨 얼굴도 모두 당신의 것이죠.
이게 나예요. 무대에서 울고 웃고, 넘어지고 뛰고. 드레스를 입었다가 핫팬츠 입고. 그 어느 하나 내가 아닌 게 없어요. 인순이를 찾을 필요가 없어요. 인순이가 오면, 저게 인순이구나 그러면 돼요. 사람들이 나는 내놨대요. 늘 하고 싶은 걸 하니까. 내가 나가면 <나는 가수다>가 열린음악회처럼 되는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인순이니까라고 말해줘요.

인순이의 이름은, 대단한 훈장이네요.
훈장이죠. 그리고 면죄부도 돼요. 앞으로 내가 살면서 나쁜 짓만 안 한다면 사람들은 계속 나를 인정해주고, 내가 지금처럼, 하고 싶은 대로 계속 놀 수 있게끔 바라봐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