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목소리와 그녀의 관능, 또움직임과 스타일 모든 것이 그녀만의 것이었다. 우리는 한 세기에 한 번쯤 나올 것 같은 아주 특별한 존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재킷은 더 센토르(The Centaur). 보디슈트는 보브(Vov). 보티슈트 위에 연출한 시퀸 뷔스티에는 루드브가드 바이 스수와(Lou de Beauregard by Cesoir). 스터드 장식의 헤어핀과 가죽 팔찌는 쟈뎅드슈에뜨(Jardin de Chouette). 왼손 검지의 큼직한 반지는 에릭슨 비먼 바이 디테일(Erickson Beamon by Detail). 실버 체인 팔찌는 금은보화. 나머지 체인 팔찌와 반지는 모두 H.R.

재킷은 더 센토르(The Centaur). 보디슈트는 보브(Vov). 보티슈트 위에 연출한 시퀸 뷔스티에는 루드브가드 바이 스수와(Lou de Beauregard by Cesoir). 스터드 장식의 헤어핀과 가죽 팔찌는 쟈뎅드슈에뜨(Jardin de Chouette). 왼손 검지의 큼직한 반지는 에릭슨 비먼 바이 디테일(Erickson Beamon by Detail). 실버 체인 팔찌는 금은보화. 나머지 체인 팔찌와 반지는 모두 H.R.

“오늘은 눈썹도 안 붙였어요.” 누가 김완선을 ‘야한 여자’라고 했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아이라인을 지워낸 그녀의 고요한 얼굴을 겨우 30cm쯤 떨어져서 지켜봤다. 관능의 눈매에는 고혹적인 빛이 더해지고, 자존심처럼 솟은 코는 얼굴에 예쁘게 음영을 그린다. “얼굴이 좀 부은 상태에서 찍은 게 아쉬워요. 이제 좀 가라앉아서 예쁘게 나올 것 같은데….” 스튜디오에 음악이 흐르면, 정지된 순간을 뒤로한 채 김완선은 물 흐르듯 춤을 췄다. 신기했다. 거울 앞에서 죽도록 연습한 것 같은 아이돌의 군무가 아니었다. 그 춤은 몸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마치 호흡처럼 흘러나왔다. 그녀는 처음부터 나만의 것이 없었다고 노래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그녀의 관능과 또 움직임, 스타일 모든 것이 그녀만의 것이었다. 그녀는 디바인 동시에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파격적인 데뷔, 여자 가수로서 처음으로 100만 장의 앨범 기록을 세운 1990년, 50만 장을 넘긴 대만 활동 등은 지금까지 누구도 깨지 못하고 있는 전설이 되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김완선이 다시 무대에 섰고, 숨겨진 많은 이야기와 자신의 진심을 들려줬을 땐 어쩐지 미안해졌다. 그러나 늘 담담하고 당당하다. 이렇게나 멀리 왔어도 또 다른 출발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가죽 재킷은 노케제이(Nohke J). 호피무늬 드레스는 더 센토르. 양손의 가죽 팔찌는 쟈뎅드슈에뜨. 왼손 검지에 낀 반지는 엠주(Mzuu). 크리스털 팔찌와 반지는 모두 H.R.

가죽 재킷은 노케제이(Nohke J). 호피무늬 드레스는 더 센토르. 양손의 가죽 팔찌는 쟈뎅드슈에뜨. 왼손 검지에 낀 반지는 엠주(Mzuu). 크리스털 팔찌와 반지는 모두 H.R.

요즘처럼 당신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건 새롭게 출발한다는 걸 표현하는 나의 방식이었어요.

덕분에 친근해진 부분도 있죠. 늘 김완선은 미지의 존재였으니까.
친근해졌다는 건, 긍정적인 것 같아요. 쉬는 동안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바뀐 거예요.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굉장히 많이 신경 썼었는데 지금은 별로 개의치 않아요.

케이블TV에서 당신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정말? 본 사람 별로 없던데.

다큐멘터리는 집요하게 일상과 내면을 파고들죠. 그걸 허락했을 땐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아는 분이 부탁하는 방식으로 제의가 왔는데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어요. 더 완성된 사람이 어울리는 자리 같았어요. 나는 이제 막 시작을 하려는 시기였으니까. 과연 좋은 게 나올까 싶었어요. 그런데 점점 욕심이 났죠.

계기가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연스러워진 부분도 있지만 가장 고마운 건, 나와 함께한 두 명의 PD가 나를 좋아해준 거예요. 내가 일을 오랫동안 했잖아요. 찍는 사람이 찍히는 사람을 정말 좋아해서 찍는 것과 그냥 찍는 것과 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걸 너무 잘 알아요. 내게 애정을 가진 사람들과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게 내 인생에서 몇 번이나 되겠어요.

그렇게 완성된 다큐멘터리는 로드 무비 같았어요. 울릉도에 가서 가 족을 만나기도 하고, 공백 기간을 보낸 하와이에도 갔죠.
나도 그런 말을 했어요. 촬영한 것에 비하면 방송된 부분은 아주 적죠. 필름 가지고 내가 편집을 해서 로드 무비를 만들면 어떨까, 농담처럼 이야기를 했죠. 나는 누구와 함께 여행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여행은 여러 명이 가면 재미있구나 처음으로 깨달았죠.

학교에서 직접 그린 그림과 사진을 봤는데, 작품이 좋던데요. 모든 과목이 A학점이었다면서요?
맞아요. 방송이라고 거짓말 한 게 아니에요. 전부 A학점이었어요. 난 늘 노래와 춤만 해왔는데, 처음으로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된 거죠.

결혼해서 하와이에 정착하고 싶었다면서요?
동네가 너무 예뻐서 그러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어요. 기가 막히는 일이었죠.

단 한 번도?
딱 한번, 슈퍼마켓에서 남자가 말을 걸더라고요. 외과의사 명함을 주고, 자기는 하와이 북쪽의 노스쇼어에 산다고 자기가 구경을 시켜주겠다는거예요.친구한테 말했더니 펄쩍 뛰면서 절대 안 된다면서, 노스쇼어에서 행방불명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된 일이 많다고. 특히 동양여자가요.

스웨터와 팬츠는 세린느(Celine). 양손의 흰색 가죽 팔찌는 쟈뎅드슈에뜨.

스웨터와 팬츠는 세린느(Celine). 양손의 흰색 가죽 팔찌는 쟈뎅드슈에뜨.

로맨스가 갑자기 스릴러로!
무서워서 연락을 안 했죠. 그 후로는 그런 일도 없었어요. 하와이 사람들은 나처럼 마른 사람 좋아하지 않아요. 어디 유럽이나 가야지 먹힐 것 같아요, 나는. 유럽 가니까 그래도 눈길은 주더라고요. 하하.

우리는 당신이 있어서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당신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대중으로서 미안함. 그런 것도 느꼈죠.
그러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하지만 언제나 누군가는 당신을 지켜주고 있었죠?
그랬어요. 난 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도움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지 못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죠.

다양한 의상을 소화하는 당신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는데, 예전부터 패션에는 일가견이 있었죠. 김완선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이 있었어요.
매니저가 감각이 있었죠. 억지로 입을 때도 많았어요. 난 쇼핑을 해본 적도 없었어요. 옷도 평소에 입는 옷이 필요 없었어요. 의상은 늘 무대 의상이었고 나머지는 트레이닝복이죠. 어떻게 입어야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지금도 옷을 못 입어요.

옷을 못 입는다고요?
무대 의상은 잘할 수 있어요. 그런데 평소의 스타일은 잘 모르겠어요.

전설이 된 스타일이 있잖아요. 특히 홍콩과 대만을 오가면서 스타일이 더 풍부해졌죠. 홍콩 디자이너가 만든 블랙 드레스는 지금도 선명해요.
그 디자이너의 숍을 홍콩에서 우연히 들렀는데, 한눈에도 특이하고 근사했죠. 재킷인데 앞에는 가죽이고 뒷면은 레이스라거나, 핫팬츠에 오간자 스커트를 덧입는다든가… 마음에 들어서 많이 입었어요.

<중경삼림> 속 왕정문의 모델이 김완선이라는 말도 많았고.
음…그런 말이 있었어요?

원래 그 영화에 캐스팅되었다는 소문이 무성했잖아요.
원래 영화를 하려고 홍콩에 간 거였어요. 그래서 왕가위 감독과 다른 감독을 많이 만났죠.

결국 하지 않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어요?
한국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홍콩에 가면 촬영하면서 그냥 ‘일이삼사오륙칠’만 말해도 된다고.

홍콩의 배우들도 다시 더빙을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그렇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난 열렬한 영화 팬이에요. 뮤지컬, 오페라, 콘서트도 재미가 없고 오직 영화만 재미있어요. 막상 홍콩에 가서 우리가 너무 좋아했던 감독을 직접 만나보니까, 그렇게 날라리로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음반 회사랑 계약을 한 거예요.

여전히 영화 쪽에 관심이 있어요?
작품이나 감독에 따라서 정하겠죠. 감독이 내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볼 것 같아요. 사실 내 얼굴이 가수만 하기엔 아까운 얼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