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갔다. 싱싱한 초록 잎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풀향기를 머금은 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숲으로 갔다. 날숨으로 근심과 조급함을 내쉬고, 들숨으로 고요함과 평온을 들이마셨다. 채우러 갔다 비우고 돌아왔다.



반곡지 왕버들 숲

반곡지는 왕버들의 천국이다. 여름이 오면 어른 아름으로 두 아름이 넘는 왕버들이 호수 위에 가지를 떨군다. 왕버들에서 뻗어나간 가지들이 멱을 감기라도 한 걸까? 호수에 손을 담그면 푸른 물이 들 것만 같다.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왕버들과 수풀이 무성한 강둑을 따라 걸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조그만 선착장은 강태공들의 차지다. 팔뚝만 한 붕어를 심심찮게 건져 올린다. 이곳에선 사람도, 물고기도 초록색 바탕에 찍힌 작은 점 같다. – 남인근(사진가)



제주도 올레길 박수기정 숲

박수기정으로 가는 올레길은 날선 각도의 산길로 시작한다. 솔직해지자면 30분밖에 못 걸었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힘들어서가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박수기정 위에 도착하면 발아래로는 바다가 펼쳐지는 황홀한 숲에 다다른다. 배병우의 사진처럼 사방이 안개로 뒤덮인 그날의 풍경은 꿈에서도 만나지 못할 만큼 기이했다.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제주 막걸리를 끊임없이 홀짝였다. – 나정원(프리랜스 에디터)



점봉산 곰배령

전날 내린 비로 숲의 공기는 부드럽고 달았다. 이름 모를 풀잎과 야생화마다 이슬이 촉촉이 맺혔다. 부엽토가 겹겹이 쌓인 산길을 걸을 때마다 폭신폭신한 감촉이 전해졌다. 울창한 활엽수림이 촘촘히 둘러싼 개울가엔 풀향기를 머금은 물안개가 드리워 있었다. 푸른 이끼가 낀 바위 사이로 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다. 울창한 숲이 키 작은 수풀과 야생화로 바뀌더니 하늘길이 환하게 열렸다. 하늘과 맞닿은 곰배령은 야생화의 천국. 그곳에서 천상의 화원을 만났다. – 안형준(사진가)



제주도 비자림

한 달 전, 비자림을 찾았다. 서귀포시의 천둥 번개를 뚫고 516도로를 넘을 때까지만 해도 그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다다른 제주시는 마치 이국의 땅처럼 빛났고 우리는 비현실적인 기분을 만끽하며 그 길을 걸었다. 800년 이상 수령의 비자나무가 뿜어내는 날숨 내음이 아찔했다. 비자림은 꼭 맨발로 걸을 것, 그리고 걷다가 맨땅에 드러누워도 볼 것. 비자 나뭇잎 사이로 쨍글쨍글 떨어지는 그 빛을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 나정원(프리랜스 에디터)



치악산 활엽수림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깊고 울창했던 숲이었지만, 세월은 흘러 숲도 변하고 사람들도 변했다. 치악산을 찾았던 날은 비가 촉촉이 내렸다. 구룡사로 들어가는 내내 금강소나무의 숲이 이어졌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숲은 축축한 솔향기로 가득했다. 비가 그치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초록빛이 사라진 숲은 수묵으로 물들었다.
– 박경화(<그 숲, 그 섬에 어떻게 오시렵니까> 작가)



주산지 왕버들 숲

주산지의 여름은 온통 푸르다. 거울처럼 숲이 비치는 호수가 푸르고, 아침에 피는 물안개가 푸르다. 동틀 무렵 왕버들이 드리워진 호숫가에 안개가 피어 올랐다. 왕버들의 기이한 형상과 물안개가 어우러진 모습에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숲의 푸른빛이 안개에도 스몄다. 바람도 시간도 잊은 듯한 잔잔한 호수에는 초록으로 물든 여름 숲이 온전히 비쳤다. 그때 왜가리 한 마리가 숲의 정적을 깨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기둥만 남은 초라한 고목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 남인근(사진가)



팔공산 자작나무 숲

작약꽃을 담으러 밀양으로 가다 생긴 일. 대구를 지날 무렵 우거진 숲이 보였다. 그곳에 크진 않지만 근사한 자작나무 숲이 있었다. 깊은 산,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만 자란다는 나무. 아침 내내 내린 비에 촉촉하게 젖은 숲에서는 신비롭고 오묘한 향이 났다. 무성한 수풀 사이에서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이 눈부시게 빛났다. 기분 탓일까? 우산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소리가 자작나무가 불에 탈 때 난다는 자작자작 소리처럼 들렸다. 하얀 눈밭 위로 연회색 기둥이 대나무처럼 솟은 겨울의 자작나무 숲도 멋지지만, 비 오는 날의 자작나무 숲은 잊지 못할 풍경이다. – 장인환(사진가)



봉선사 광릉 숲

광릉 숲은 사시사철 푸르다. 전나무 숲이 푸르고, 소나무 숲이 푸르다. 국립수목원에서 광릉까지 가는 길 내내 푸르렀다. 광릉 초입에 이르렀다. 120년 된 거대한 전나무 숲이 만든 터널을 지났다. 하늘도 길도 전나무 차지.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모습이랄까? 사람도 자연도 풍경 속에서 하나의 점이 되어버렸다. 반세기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온전히 제 모습을 만들었다. 속세를 벗어난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에 싸인 절집으로 이어진다.
– 전영우(<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작가)



담양 죽녹원 대나무 숲

햇살이 뜨거웠던 지난여름, 대숲으로 갔다. 울창한 숲이 만들어낸 그늘로 숲 속은 새벽녘처럼 선선했다. 그 시원한 기운이 좋아 풀섶에 하늘을 보고 누웠다. 쭉 뻗은 기둥과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햇볕에 눈이 부셨다. 직감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때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뭇잎이 흔들렸다. 대숲의 바람은 나뭇잎을 타고 온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그치자 또다시 찾아온 고요. 대나무만 가득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다. – 주정락(사진가)



성미산 아카시아 숲

동네에 숲이, 산이 있다는 건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성미산은 산세가 둥글어 웬만해선 숨이 차지 않는다. 소박하지만 자연스러운 멋을 간직한 숲. 긴 세월을 한자리에 머물러온 탓에 오래된 벗처럼 친근하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올 무렵 텃밭을 만났다. 노란 호박꽃이, 푸른 옥수수가 정겹다. 언젠가부터 서글서글했던 그 숲이, 그 나무들이 사라지고 피처럼 붉은 속살이 드러나고 있다. 봄이오면 대로변을 넘어 마을까지 내려오던, 아카시아의 그윽한 향기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 표기식(사진가)



보성 다원 메타세쿼이아 숲

어둔 밤을 달려 신새벽 다원에 닿았다. 산도 하늘도 숲도,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시간. 부지런한 새들만이 숲의 정적을 깼다. 날이 밝자 어둠에 가려졌던 숲과 차밭에 초록색 불이 탁 켜졌다. 차밭을 따라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 군락도 모습을 드러냈다. 구불구불한 숲길이 끝나는 곳에 차밭이 있었다. 여름 햇살을 먹고 자란 잎새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잎을 만지던 손길에 싱그러운 풀 내음이 남았다. 연둣빛 차밭에 하얀 목련이 피는 봄날, 다시 찾고 싶다. – 장인환(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