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계절이 곧 시작된다. 패션 트렌드에 관해 그 누구보다 예민한 촉수를 가진 디자이너, 모델, 바이어 등 패션 피플 40명에게 다가올 계절을 위해 눈여겨본 것이 무엇인지 들었다. 이들이 뽑은 34개의 아이템을 확인할 즈음 이번 가을, 겨울에는 무엇을 쇼핑할지 감이 좀 올 것이다.

1 목에 입는 옷
봄/여름 동안 프티 스카프를 즐겼다면 찬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머플러만 한 것이 없다. 만약 쇼트 헤어로 중성적인 매력을 가졌다면 머플러만으로도 부드러운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머리가 길다면 기술이 필요하다. 정확한 비율로 가르마를 나눈 후 꾹꾹 눌러 빗질한 것보다는 손으로 ‘슥’ 하고 대강 묶은 머리가 머플러를 두를 때 훨씬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김승원, 헤어스타일리스트

여성복 쇼를 보지 않는다. 가뭄에 콩 나듯 남자 여자 모델이 함께 나오는 쇼를 보는데, 뉴욕에서 본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 쇼가 그중 하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템은 퍼 스카프. 살벌한 퍼를 복부인이 아니라 알프스 소녀처럼 두르는 게 포인트. 올이 굵고 낙낙한 니트, 보송보송한 울 팬츠, 두툼한 멜란지 양말과 함께 걸친다. 남자 모델도 역시 같은 걸 하고 나왔다. 가끔 몰래 훔쳐 두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 박태일, <지큐> 패션 에디터

2 라이더 재킷을 대하는 자세
라이더 재킷만 있으면 가을을 더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에 가죽 팬츠와 워커를 매치하면 강렬한 바이커족으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보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인상을 줄 수도 있어 가끔은 티셔츠와 데님 팬츠에 걸치기도 한다. 큼직한 반지나 팔찌, 목걸이 중 하나로 포인트를 주면 더욱 세련돼 보인다. – 박세라, 모델

3 손가락을 빛내라
클러치백을 쥔 손이 더욱 빛나 보이고, 칵테일 잔을 쥔 손에 드레스보다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아마도 칵테일 반지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칵테일 반지는 드레스업 스타일에 한정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티셔츠와 데님 팬츠와의 조화도 훌륭하다. – 이지연, ‘스와로브스키’ 홍보 담당

4 울 스커트와 티셔츠
여자를 더욱 여자답게 만드는 것은 스커트가 아닐까?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 무릎을 덮는 길이의 울 스커트나 맥시 스커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블라우스와 함께 차려입으면 더 격식 있어 보이겠지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티셔츠를 빼서 입어도 충분히 세련된 멋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 신해원, 편집숍 ‘셀러브레이션’ 대표

5 옷장을 밝힐 때
작년 겨울, 내 옷장에는 캐멀과 블랙 의상으로 가득했다. 그 옷장을 다시 떠올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너무 어둡다.’ 형형색색의 코트가 간절하다. 컬렉션 룩을 찬찬히 살펴보니 버버리 프로섬, 드리스 반 노튼, 마르니 등에서 선보인 밝은 색상의 오버사이즈 코트가 눈에 쏙쏙 들어온다. 여기에 벨트를 두르면 원피스를 입은 듯한 효과를 노릴 수 있겠다. – 정민주, 홍보 대행사 ‘인트렌드’ 실장

6 코쿤 실루엣의 계절
1960년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허벅지 중간을 덮는 코쿤 코트. 단 한 벌만으로 트렌디한 감성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펠트나 해리스 트위드 같은 도톰한 소재의 코쿤 실루엣 드레스 안에 이번 시즌 유달리 눈에 띈 얇은 소재의 니트(터틀넥이 좋다)를 이너웨어로 입으면 코트처럼 연출할 수 있다. 이너웨어와 드레스의 색상을 선명한 보색으로 맞추면 컬러블록의 묘미도 즐길 수 있다. – 최유경, <더블유> 패션 디렉터

7 경쾌한 앵클부티
뼛속까지 시린 겨울이라고 모피 코트에 롱부츠까지 신는다면? 입는 사람이야 따뜻하겠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은 조금 무거울 수도 있다. 그래서 롱부츠 대신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를 더하는 앵클부티를 선택하고 싶다. 그래도 롱부츠를 포기할 수 없다면 세련된 한 마리 백곰을 연상시키는 이자벨 마랑의 룩을 추천한다. 니트 원피스, 모피 코트, 롱부츠가 만들어낸 매력적인 조합이라면 맨다리를 드러내는 것쯤은 참을 수 있다. – 김가빈, ‘지미추’ 홍보

8 사각형은 호감형
지금까지 편지 봉투를 연상시키는 사각 클러치백에 열광했다면 실용성이 가미된 사각 토트백, 사각 크로스백으로 시선을 돌려도 좋겠다. 여기에 정갈한 코트를 툭 걸쳐 입는다면 클래식한 여인의 향기를 풍길 수 있다. 참고로 옷과 가방의 색상을 통일하는 대신 포인트 역할을 해낼 만한 가방을 든다면 탁월한 패션 감각까지 갖춘 가을 여자가 될 것이다. – 조윤희, 스타일리스트

세모, 네모, 동그라미, 마름모…. 그 많고 많은 도형 중에서 직사각형이 이토록 매력적인 때가 있었나. 입생로랑 쇼에 등장한 사각 클러치백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셔터를 누르며 본 가방이 무수히 많았지만 정갈한 디자인 때문인지 사각 백에 다시 눈이 간다. 모델처럼 원피스나 스커트 슈트와 매치해도 어울리겠지만 늘어난 티셔츠, 롤업 데님 팬츠에도 멋질 것 같기 때문이다. – 보리, 사진가

9 ‘‘로퍼를 신어요.’’
2011 가을/겨울 주목할 만한 룩은? 고민 없이 입생로랑. 입생로랑의 유산을 매만지는 스테파노 필라티의 솜씨는 여전했고, 잘 빠진 체크무늬의 팬츠, 원피스, 스커트는 무척 클래식했다. 웨지힐 덕분에 키가 커진 옥스퍼드 슈즈도 매력적이다!
연출 방법은? 입생로랑의 룩을 응용해 발목까지 오는 시가렛 팬츠를 선택해도 좋고, 스키니 진이나 쇼츠와 함께 입으면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다. 단, 신발의 특징을 고려해 간결한 액세서리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슈즈는 어떤 것? 클래식한 디자인의 로퍼. 최근의 케이트 모스의 파파리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이힐 슈즈보다는 로퍼가 압도적이다. 입생로랑의 로퍼뿐만 아니라 토즈의 클래식한 로퍼(고무 페블 대신 메탈 페블을 사용한 것이 특징)도 추천한다. – 김수림, ‘토즈’ 홍보

10 반짝반짝 빛나는
이번 시즌 금, 은, 동 메달 컬러로 물들인 메탈릭 슈즈가 레오퍼드 슈즈의 자리를 대신할 전망이다. 많은 아이템 중 메탈릭 슈즈와 가장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짝은 가늘고 긴 실루엣의 미디 스커트. 실버나 브론즈 등 2~3가지의 메탈릭 컬러가 섞인 블록 슈즈가 더 멋지지만, 아직 부담스럽다면 구조적인 디자인의 메탈 힐 슈즈도 나쁘지 않다. – 주가은, <보그걸> 패션 에디터

11 체크의 유혹
색깔별로, 너비별로 줄무늬를 즐겼다면 이제 체크의 매력에 빠져보면 어떨까. 그중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체크 셔츠는 팬츠의 종류에 큰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다. 셔츠를 목까지 잠가 단정한 멋을 내거나, 단추를 풀어 안에 입은 티셔츠를 드러내도 멋지다. – 고태용, ‘비욘드 클로젯’ 디자이너

12 오버의 매력
컬렉션을 살펴보니 과장된 실루엣의 오버사이즈 코트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가을/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품 같다. 사진으로 보는 것은 예쁘지만 막상 입으면 ‘몸이 거대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달리 스키니 팬츠, 단정한 헤어스타일과 함께하면 신체의 단점을 숨길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트렌드 아이템인 사각 클러치백을 든다면 도시적인 분위기까지 곁들여진다. – 이수향, 홍보 대행사 ‘APR’ 실장

13 주얼리 연출의 규칙
이번 가을에 기억해야 할 것은 주얼리 레이어링으로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실크 소재의 팔찌와 골드 체인 팔찌, 플라스틱 뱅글, 시계를 적절하게 섞어 사용하면 근사한 스타일링을 완성할 수 있다. 목걸이를 착용할 때는 체인의 굵기와 길이를 다르게 해야 멋스럽고 엉킴도 방지할 수 있다. – 이수진, ‘수엘’ 디자이너

14 Mini Interview
“트렌치코트를 입어요.”
2011 가을/겨울 주목할 만한 룩은?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가 강약을 이룬 클래식한 댄디 룩.
필수 아이템을 꼽는다면? 댄디 룩을 위해 갖추어야 할 아이템은 남자 코트를 연상시키는 큼직한 사이즈의 테일러드 코트 혹은 트렌치코트다. 이 두 가지 아이템만 있다면 중성적인 클래식 룩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특히 세린느 컬렉션에서 선보인 무릎을 덮는 롱 코트와 선명한 주황색 코트는 실루엣, 라펠의 크기, 색감 등이 탁월해 올겨울 가장 입고 싶은 의상이다.
코트를 활용해 낮과 밤, 서로 다른 분위기로 연출한다면? 낮에는 활동성을 고려해 낮은 굽의 옥스퍼드 슈즈를 신고 매니시한 페도라로 경쾌한 포인트를 준다. 데이트나 행사가 많은 밤에는 하이힐 슈즈를 신어 여성스러움을 더하고 토트백으로 클래식한 분위기를 얹는다.
추가하면 좋을 것들은? 형형색색의 화려한 주얼리는 잠시 잊자. 대신 반듯한 사각 백이나 여성스러움을 물씬 풍기는 펌프스를 선택해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하면 좋을 듯. 랑방, 페라가모, 질 샌더에 등장한 사각 백은 탐날 만큼 세련됐고, 스텔라 맥카트니와 지방시의 펌프스를 신고 걷던 모델은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 김윤미, 스타일리스트

15 남자 또는 여자
가을/겨울 패션을 위한 서로 다른 매력의 두 가지 룩을 제안한다. 첫 번째, 오버사이즈 코트나 남성복과 견줄 만한 재단이 돋보이는 테일러링 재킷으로 중성적인 요소를 즐길 것. 두 번째, 무릎을 덮는 플리츠스커트와 메리 제인 슈즈를 매치해 사랑스러운 소녀의 향기를 풍길 것. 소년이 될지, 소녀가 될지는 당신의 몫. – 박유라, ‘탐스 슈즈’ 홍보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