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라는 현명한 말은 누가 먼저 했을까. 서울이라고 똑같은 아파트에서 살라는 법 없고, 서울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활동할 수도, 전주에 태어나 서울 찍고 다시 전주로 가기도 한다. 그렇게 들어본 전국 동네 자랑.




서촌 라이프


답답한 사무실에서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려봤지만 보이는 건 또 다른 빌딩의 사무실뿐, 퇴근 후 거리로 나서도 꽉 막힌 도로와 현란한 전광판들 사이에서 여유를 느낄 겨를은 없다. 어서 동네로 돌아가 긴장의 끈을 풀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여유와 안식을 찾기에는 역시 우리 동네만 한 곳이 없다. 근래 들어 빠르게 상업화되고 있는 동네가 두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런 안식을 느낄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줄어드는 것에 대한 자기방어적 행동이 아닌가 싶다.

처음 서촌에 터를 잡았을 때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저 대통령이 단골인 유명 삼계탕집이 근처에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4년이 흐른 지금, 서촌에 푹 빠져 주민들과 소식지도 만든다. 돈 안 되는 일을 돈 되는 일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인왕산 밑자락,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우리 동네 서촌은 지척에 청와대와 경복궁이 있다. 이 때문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그 흔한 고층빌딩도, 아파트단지도 없다. 조선시대 지적도의 골목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고, 오래된 한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집 앞 골목에는 시인 윤동주가 <서시>를 노래했던 하숙집이 있고, 화가 이중섭은 그 뒷골목에서 <길 떠나는 가족>을 그렸다. 이렇듯 옛 시대의 향기와 흔적이 골목 곳곳에 배어 있다. 변화가 느린 이 동네에서는 시간마저도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서촌은 소박하고 서정적이다. 서울 속에서 유일하게 시골 같은 동네라고 한다. 최첨단 소통수단이라는 트위터에서도 서촌은 소박하다. 마을 정자 앞에서 파는 수박을 반씩 나누자며 주민을 모으는가 하면, 어떤 이는 마트의 할인 정보를 올리기도 한다. 동네 카페 앞마당에 벼룩시장이 열린다고 하니 일제히 리트윗 한다. 아무런 연고 없는 이곳에서 이웃사촌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이 생기고, 각박한 서울생활이지만 동네에서만큼은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태정태세문단세…’도 풀어서 말하지 못하던 내가 세종의 셋째 아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것은 서촌이 내게 준 많은 선물 중 하나이다. 역사의 배경이 집 앞 골목에 있고, 버스정류장 옆에 있으니 그 중심에서 나도 한 장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 같다. 서촌이기에 가능했을 것들이다.

누군가 내게 서촌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다락방에 꼭꼭 숨겨놓은 보물 상자와 같다고 말하고 싶다. 혼자만 숨겨놓고 꺼내보고 싶다가도 가장 친한 친구가 놀러 오면 “너만 보여줄게” 하면서 스~윽 자랑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너무 알려지는 게 싫다가도, 누군가 동네에 대해 물어보면 열변을 토한다.

나는 오늘도 퇴근 후 동네로 들어서면서 안식을 얻는다. 서울 속 시골, 태어난 곳도 아닌데 회귀본능은 나를 자연스레 서촌으로 이끈다. 서촌은 내게 고향을 선물했다.
최용훈(<서촌라이프> 편집장)

나의 단골집
누하우동초밥 비틀스의 음악이 흐르는 서촌의 심야식당이다.
카페스프링 이곳에 오면 꼭 2층에 간다. 창밖으로 백송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스프링의 2층은 머무르고 싶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곳의 대표메뉴 ‘핫 브라우니’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꼭 먹어야 할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티아트 청각장애인 바리스타가 내주는 홍차의 맛은 멀리서도 수소문해 찾아오게 만들 정도다. 9번 마을버스 종점 앞에 있다.






부암동과의 연애


온 마음을 주었던 동네를 떠나야 했을 때, 나는 그랬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과연 이 동네만 한 곳을 대한민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북촌 한옥마을이 주는 고즈넉한 정취, 시내 중심과의 빠른 접근성, 사시사철 다른 꽃이 피고 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도심 한가운데의 전원생활을 대신할 곳을 찾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부동산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몇몇 폭탄을 만나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뼛속 깊이 확인하던 얼마가 지난 밤. 피터팬도 울고 간다는 인터넷 부동산 직거래 카페에서 어느 집의 사진을 발견했던 그날. 내 심장은 다시 두근거리고 내 얼굴은 다시 바람난 봄처녀처럼 붉어졌다.

새로운 연인의 이름은 부암동. 인왕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이 은밀한 연인과 이제 막 사계절의 순환을 한 라운드 끝냈다. 아직 깨가 쏟아지는 연애 1년 차. 부암동 초보 거주자의 눈에 이곳은 여전히 단점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랑스러운 곳이다. 몇 년 전부터 팬이었던 치킨집 ‘치어스’를 이제 집에서 단 몇 분만 걸으면 갈 수 있고, 커피중독자로서 웬만한 바리스타들도 인정한 ‘클럽 에스프레소’의 커피로 집 안의 향기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사치다. 입맛이 없는 날에는 ‘4.5평 우동집’에서 유부초밥과 따끈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손님이 오면 ‘드롭 오가닉 커피’에서 치즈케이크를 테이크아웃해서 대접한다.

바로 집 앞에 얼마 전에 오픈한 ‘비스트로 드 파르마’는 자다 깬 상태에서도 파스타와 키시를 즐길 수 있는 동네 밥집이다. 물론 지난여름의 끝에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이선균 집을 확인하고 그 길로 백사실 계곡에 들러 잠시 신선놀음을 청하기도 했었지. 모든 사랑에서의 부질없지만 간절한 바람처럼 나는 부암동과 오래도록 사귀고 싶다. 너무 많은 이들이 원하는 동네 ‘미스터 빅’ 같은 가회동을 떠나 바야흐로 지금은 ‘에이단’ 같은 부암동과의 편안한 시즌을 맞이했다. 캐리는 결국은 빅에게 돌아갔지만 글쎄, 그건 인생의 마지막 회가 되어야 알 일이다. 아직은 이 따뜻하고 너른 품에서 잠시만 행복하련다.
백은하(<10 아시아> 기자)

나의 단골집
오로지 김치찌개 정말 메뉴는 김치찌개만 있지만, 오로지 김치찌개만으로 완전한 식당. 끓이는 시간에 따라 점심과 저녁의 김치찌개 맛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사골국물 같은 저녁의 김치찌개를 선호한다. 테이크아웃도 가능.
치어스 부암동에서 ‘치어스’를 모르면 간첩이다. 등산객, 동네주민, 관광객들로 언제나 자리가 없는 곳이지만 기다린 가치가 있다. 시장 통닭처럼 바싹 튀긴 프라이드치킨과 함께 나오는 감자튀김은 진정한 맥주도둑.
비스트로 드 파르마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프렌치 식당. 매일 조금씩 바뀌는 런치 메뉴와 큼직큼직한 새우가 들어간 보리쌀 리조토를 강추.






전주 생활


전주는 희한한 곳이다. 전북에서는 꽤 큰 도시이자 관광명소에 속하는 데 비해 유동인구가 턱없이 적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주가 무슨 시골동네인 줄 알지만 백화점부터 해서 갖가지 숍이나 대형 체인점 등, 서울에 있을 법한 것들이 다 있다. 영화의 거리는 마치 홍대 거리를 걷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전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많은 문화를 즐길 수 있으면서도 복작복작하지 않고 여전히 느긋함을 누릴 수 있으니까. 전주의 자랑인 한옥마을은 사실 내가 중학생일 때는 전주 시민들도 잘 모르는 동네였다. 돌아다니길 좋아했던 나와 친구가 처음 한옥마을을 발견했을 때 마치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우리만의 세계를 찾은 것 같아 마구 설레었다. 관광특화사업의 일환으로 한옥마을을 개발하기 전, 말 그대로 정말 낡은 한옥마을의 골목 골목을 우리는 탐험가가 된 기분으로 누비고 다녔다.

경기전에 있는 한옥집 부엌에 서서 솥에 불 붙이는 흉내도 내보고,전통 문화체험관에서 제기차기를 하다가 질리면 바로 옆에 있는 한지박물관에서 한지엽서를 구경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발견을 꼽자면 교동다원이다. 나이 지긋한 부부 내외가 운영하는 이 전통찻집은 내 단골가게다. 여기서는 직접 말린 찻잎으로 끓인 전통차를 맛볼 수 있다. 여름이면 숯을 태워 모기를 쫓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이따금 탁 트인 찻집 마루에 앉아 국화차를 마시며 몇 시간이고 원고지에 글을 쓰곤 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전동성당 길 건너에 있는 백반집으로 향했다. 한밭식당에서 스무 가지가 넘는 반찬을 먹어보면 왜 전주 사람들이 다른 지역 음식을 맛없고 야박하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간식으로 천안 것보다 더 크고 맛있는 전주호두과자를 사 들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했다.

한번 전주를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늙으면 터를 잡아 살고 싶은 곳이라고 말한다. 아마 그것은 전주가 조용하고 한적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어느 시대에도 어떤 순간에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도시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는 달려가는 것만 있는 게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가로등이 아니라 호롱불이 밤을 밝히는 이곳, 전주에서 나는 한 잔의 국화차에 위로를 받는다.
전영신(작가)

나의 단골집
장가네 왕족발 동부시장 조약국사거리의 족발집. 참나물 무침을 곁들인 족발 한 접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왱이콩나물국밥 김과 수란의 절묘한 조화로 탄생한 얼큰한 국밥과 시원한 전통술 모주는 사 먹지 않을 수 없다. 헌책방 골목에 있다.
금암소바 대표 메뉴인 소바 말고도 콩국수와 냉면까지 두루두루 맛있는 집. 깔끔한 장국이 매력이다.






제주에서 활동 중


지금 집은 제주가 맞지만 원래 집은 제주가 아니다. 내 주소는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 514 이중섭 창작스튜디오. 이중섭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창작스튜디오의 입주 작가로 지낸 지 2년째다. 나와 같은 입주 작가는 모두 6명. 모두 엄청난 경쟁률을 뚫은 사람들이다. 본래 입주 계약은 1년씩이지만 제주 생활이 마음에 들어 다시 심사를 통해 연장했다.

화가들은 대체로 겨울을 싫어한다. 추우면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한번은 부모님을 따라 38선 근처 마을에 산 적이 있는데, 그때 다시는 추운 곳에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제주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고, 얼음이 잘 얼지 않는다. 지금도 밖을 보니 푸른 바다와 섬이 보인다. 뒤로는 한라산이 있다. 나가면 모든 게 뻥 뚫린 기분이다. 바다 위에는 섭섬이 있고, 산과 들이 만들어낸 곡선이 있고, 마을에서 보이는 직선이 있다. 그렇게 보다 보면 삐뚤한 마음도 평온해지고 차분해진다. 그래서인지 자꾸 산수화를 그리게 되고 작품 분위기도 좀 바뀌었다고 한다. 얼마 전 개인전을 했는데 전시 주제가 ‘두원산수화’였다. 제주에 살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작업물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태어난 사람은 이 아름다움을 오히려 잘 모르는 것 같다. 너무 오래 봐서 그런가. 나도 이제 2년이나 살다 보니 가끔은 이곳이 섬이라는 걸 잊는다. 제주는 워낙 큰 섬이고, 이렇게 높은 산이 있는 곳은 세계 구석구석을 뒤져도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제주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보다 분명 느리게 간다. 가끔은 이렇게 느리게 가는 시간도 섭섭해진다. 내가 제주에 있다고 하면, 제주가 작가에게 영감을 주냐고 많이들 묻는다. 어디에 있어도 영감은 받는다. 하지만 역시 뛰어난 자연이 많은 영감을 준다는 생각은 든다. 제주에서 작업 활동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건,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만날 놀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제주는 어찌되었던 사람이 별로 없다. 젊은 사람은 더 없고, 젊은 여자는 더 더 없는 곳이다.

제주가 주는 재미있는 상황은 날씨다. 제주의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하다. 하루에도 날씨가 몇 번씩 바뀐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분명 맑은 날씨에 외출했는데 비가 왔다가, 비바람이 몰아쳤다가 갑자기 안개가 막 올라온다. 더 웃긴 건 제주 안에서도 날씨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날씨가 다른데, 서귀포시가 겨울에 2℃ 정도 더 따뜻하다. 한라산이 만드는 푄 현상 때문이다. 한라산 때문에 제주는 맑고 서귀포는 흐린 일도 자주 있다. 그래서 제주에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는데 우산을 잘 안 챙긴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다 맞는다.

제주에서 사는 첫 번째 재미가 날씨와 풍경이라면, 두 번째 재미는 사람이다. ‘제주민국’의 사람들. 말만 한국어를 쓰지 문화가 많이 다르다. 지역방송을 많이 보고, 외부(육지)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신문도 제주신문을 주로 구독하고, 제주산 농산물을 먹는다. 제주 사람들이 서울과 같은 육지에서 건너온 사람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러다 정말 주민이 되면 가족같이 잘해준다. 식구가 되어준다.

제주에 살게 된 후부터는 서울은 전시가 있을 때 아니면 재료 사러 다섯 달에 한 번쯤 갈 뿐이다. 난 제주에 사는 게 너무나 만족스럽지만, 제주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제주에는 일자리가 별로 없으니 예술이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 정도? 동네라는 건 다 자기와 맞고 안 맞고가 있다. 제주에 놀러 왔는데 괜히 좋고 그렇다면 한번쯤 제주에 살아보라. 사람도 결국 자연인데, 자연 속에 있으면 좋은 것만은 확실하다.
이두원(미술 작가)

나의 단골집
아서원 아서원은 중국집인데 특히 짬뽕이 맛있다. 안 매워 보이는데 엄청 맵고, 돼지고기 고명이 올라간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동네 중국집이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아는 사람만 전국에서 찾아오는 맛집이다.
정훈이네 밥을 안 해 먹기 때문에 단골집은 모두 음식점이다. 제주도에서 나는 재료로 차리는 정식이 맛있다.






해방된 동네


학업이나 직업 때문에 상경한 것이 아니고서야 내 또래 친구 중 혼자 자기 집을 따로 구해 나와 사는 사람은, 그리고 여자는 거의 없다. 유년시절 인천에 살았던 것을 제외하면, 나는 그야말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 촌년이다. 그것도 강북 촌년. 조용해서 너무나 지루했던 강북의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던 부모님집 문을 걷어차고 나올 때 내게 가장 중요했던 건, 무엇보다 가고 싶은 카페가 근방 30m 이내에 자리 잡고 있을 것, 친구와 집 앞에서 맥주를 기울일 수 있는 젊은 바가 하나쯤 있을 것, 따라서 주말에는 여유롭게 카페에서 책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셔도 주말에 어렵게 택시를 잡아 타고 들어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

처음에는 꽤 그럴싸하게 생각됐다. 생각해보면, 주말에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 잔 걸치면, 조용한 강북의 주택가로 들어서려면 택시기사에게 박대를 당하기 일쑤였고, 택시비 좀 아끼면 비싼 월세도 어지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년 이 동네 저 동네를 돌다 나는 드디어 강남의 가로수길에 안착해서 3년 이상을 살았고, 8천~1만원에 이르는 커피값을 매일 써댔으며, 회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이유와 버스가 없다는 이유로 출퇴근 택시를 이용했고, 주말에는 지겨운 가로수길 대신 홍대로 마실 나가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결국 나는 보다 싼 동네로 이사를 결심했다. 특히 주말에는 파리 한 마리 없을 것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동네가 어느새 명동과 다름없이 북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벗어나야만 했다.

해방촌은 발견되지 않은 신세계였다. 종종 외국인 친구들을 통해 그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경리단길보다는 어쩐지 한 수 아래인 것 같은 느낌으로 배척했던 바로 그 동네. 하지만 우연히 그 동네의 부동산을 찾아간 후, 나는 그냥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잠깐, 아직까지 조용한 이 동네가 혹시나 1~2년 사이에 인기몰이를 해서, 순식간에 집값이 올라가고, 가로수길처럼 변해버릴까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조마조마하다. 그러면 나는 또 어디로 이사 가야 하나. 나도 잡지쟁이지만 잡지에서 해방촌을 주목하기 시작하면 사람들 몰리는 건 시간 문제잖나.

일단, 이곳에서 커피값은, 그것도 어지간한 체인 커피숍보다 훨씬 훌륭한 질을 자랑하는 로스팅 커피숍의 커피값은 2천5백원. 집 앞 20미터 근방에 위치해 있다. 모로코 형제가 직접 운영하는 정말 끝내주는 4천원짜리 모로칸 샌드위치집, 다양한 막걸리와 제대로 된 안주가 즐비한 막걸리 바, 1인분 1만원의 갈비집, 핸드메이드 햄버거, 이탈리아식 레스토랑. 외국인 선생님이 주로 많이 살고 있는 까닭에 외식 코스는 꽤 다양하다.

무엇보다 이 동네의 즐거움은 이웃과의 교류다. 나의 옆집에는 케냐에서 이민 온 한 가족이 산다. 창 너머로 보이는 검은 피부의 꼬마가 한국말로 나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 커피숍에서 자주 마주치는 금발의 언니는 ‘하우 아 유?’ 하고 안부를 묻고 우리는 가끔 일요일 브런치를 함께한다. 그러다보니 동네 친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내가 동네 부녀회에 가입한 것도 아닌데 몇 달 사이 길 위에서 인사하는 친구가 꽤 많아졌다. 혼자 사는 재미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아, 이곳으로 이사를 오겠다고 급결심 중인, 그래서 이 동네 집값을 올리시려고 작정 중인 당신에게 한 가지 주지시킬 이야기가 있다. 집들이 꽤 노후한 까닭에, 이사 온 후 한두 달은 바퀴벌레와 죽음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사실. 때로 잠자리처럼 밖에서 집 안으로 날아드는 손가락 두 마디만큼 큰 그 녀석들을, 난 이제 소리지르지 않고 잘 잡아낸다. 동네 길 위에서 쥐를 봤다는 주민도 있다. 그러니까, 뭐, 그렇다는 말이다.
손혜영(<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나의 단골집
르 카페 로스팅한 아메리카노가 2천5백원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하루에 두번은 그냥 들르게 되는 로스팅 커피숍.
다모토리ㅎ 외국인과 한국인 모두가 이 곳에서 5~6천원짜리 막걸리를 마신다. 안주가 너무 맛있어서 발길을 끊을 수 없지만 이른 저녁시간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인디고 샌드위치, 파스타 등을 판매하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레스토랑. 웬만한 이태원 유명 레스토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훨씬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고깃집 7시가 넘으면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1인분에 1만원인 소갈비가 이곳의 주요 메뉴인데, 주말에는 예약도 안 된다.






상수동 일기


상수동에 이사온 건 2007년 9월. 그전 한동안은 목동에서 부모님과 살았고, 형과 함께 상암동에 산 적도 있다. 그리고 형과 (성격 차이로 인한) 결별 후 진정한 독립 생활이 시작되었다. 2005년, 학과 공부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잃었을 때쯤부터는 늘 이곳에서 놀았기 때문에 이 동네에 흘러 들어온 건 자연스러운 수순 같은 거였다. 그때만 해도 이곳엔 카페와 다방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4년 가까운 시간, 나는 늘 그대로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동네는 엄청난 속도로 변해버렸고 지금도 변하고 있고 이런저런 얘기를 주워듣자면 전셋값이나 보증금도 놀랄 만큼 치솟았다고 한다. 한 번도 전셋값을 올리지 않은 관대한 집주인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의 말을 전한다(재계약 시즌이 다가오고 있어서 요즘 좀 초조하다).

상수동에는 몇몇 거점 지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에 가면 아는 사람이 한 명은 있겠지 싶은 곳. 물론 그런 곳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 경우에는 럭키스트라이크 바와 벨로주다. 왜 그 두 군데냐고 묻는다면 사실 이유야 간단하다. 1번 가까워서. 2번은 이제 친해져버려서. 상수동에는 이런 ‘단골 문화’가 있다. 일도 집에서 하고, 잠도 집에서 자다가 잠깐 나가볼까 싶어서 찾아가는 곳. 혼자 바에 가서 마티니를 달그락거리는 시크하고 센티멘털한 남자라는 느낌이 아니라, 친구네 집에 가서 수다 좀 떨어볼까, 라는 쪽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24시간 하는 카페에 가서 친구 출근시간까지 수다 좀 더 떨고 출근하는 친구를 뒤로하고 나는 집에 들어와서 이제야 잠을 청하는 일상. 그런 일상이 자연스러운 동네가 서울에서 상수동 말고 또 있으려나. 반면, 동네다 보니 상수동을 놀이터로 여기는 다른 동네 사람들보다 행동반경은 오히려 좁다. 오고 가면 다 아는 사람인 곳이 상수동이기 때문이다. 치킨집 사장은 내가 아는 뮤지션의 후배고, 저기 바 사장은 내 친구의 친구다. 한 다리만 건너면 대충은 다들 안다. 아파트 같은 익명성은 기대할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친한 사람, 친한 가게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도 있다. 자주 가던 가게를 한동안 안 가면, 길거리에서 그 사장님을 마주치면 왠지 미안해지는 것이다.

이 동네에 살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많은 아티스트와의 교류다. 그림 그리는 조립식, 이우일, 현태준(뽈랄라 아저씨) 같은 사람들과 오가며 친해지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여기 아니었으면 이렇게 편한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 동네를 떠나게 된다면, 멀어진 단골가게들보다 자주 못 보게 되는 얼굴들이 더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이 동네에 어울리는 사람은, 회사원들은 한참 하루 업무로 바쁠 이른 오후 시간에 한가함의 정점을 찍는 젊은 영혼들이다. 그런 사람이 뭐 많겠나 싶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카페마다 가게마다 가득가득하다. 주로 프리랜서지만 프리랜서의 탈을 쓴 백수도 많고 말이다. 상수동이 ‘뜨는 동네’가 되면서 달라진 것은 이 동네를 나들이 코스 삼아 오는 사람들이 잔뜩 늘었다는 거다. 동네 사람으로서 조금 미안한 부탁을 조심스레 하자면, 이제 그만 놀러 왔음 좋겠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카페를 막 돌아다니면서 가게 간판마다 사진을 찍는다(간판 디자이너인가?)든지 예쁜 담벼락 하나 나오면 쇼핑몰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다(대체 왜!)든지 하는 모습들엔, 아아 이젠 지쳐버렸다. 사람이 많이 찾는 게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데, 사람이 많이 찾는 동네가 되다 보니 좋아하던 가게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게 무엇보다 슬프다. 결국 동네를 끌고 가는 건 문화보다 경제논리인가 싶은 서글픈 생각.

예전에 한번은 TV에서 홍대 맛집 소개를 하는 걸 보고 웃음이 절로 났다(흥겨운 웃음이 아니라 픕 정도). 매체에 소개되는 곳도 분명히 좋은 장소들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금방 찾을 수 있는 곳이고 누구나 좋아할 법한 곳이다. 하지만 정말 보석 같은 좀 더 아늑하고, 좀 더 좋고, 좀 더 동네 사람이 좋아할 만한 곳은 아직 남아 있다. 동네 사람이니까 이 구석까지 숨어들듯 찾아와서 나른한 오후시간을 야금야금 좀먹는다는 느낌을 주는 장소들. TV에 짠 하고 등장시키기보다는 내 친구 하나에게만 ‘야 오늘 나랑 같이 여기 가보지 않을래?’라고 소개해주고 싶은 그런 곳 말이다.

요즘 상수동은 정말 미친 듯 빠르게 흘러간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속도로 변하고 있는 동네인데 언제까지 여기 살 거다, 라고 얘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있다. 관대하신 집주인님이 전셋값으로 갑자기 대반전을 펼치지만 않는다면 일단 2년은 더 살 작정이다. 그 다음엔 2년 후 내가 얼마나 젊은지 보고 더 살지 결정하겠다. 이 동네는, 물리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나이가 들면 못 버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일상을 녹여내기에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싹 붙어서 이 동네 귀신이 되고픈 생각도 불쑥불쑥 드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 상수동 자락은 매력이 있는 동네다. 공식적으로 내가 늙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빠가 된다면 그때는 아마도 자의든 타의든 이곳을 떠나야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상수동 말고 살고 싶은 곳은 없다.
임익종(카투니스트)

나의 단골집
더 컷 상수동에 있는 헤어숍의 실장님을 난 ‘컷사마’라고 부른다. 머리를 짧게 자르다 보니 한 달에 두 번씩 간다. 그러다 보니 단골 되어서 같이 점심도 먹는다.
노 사이드 내 첫 단골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오코노미야키 전문점. 잠시 문을 닫았다가 이전해서 얼마 전 다시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