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계는 예능 프로그램이 장악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시청률 30%를 넘기는 드라마는 없어도 <1박2일>, <무한도전> 등 버라이어티는 많다. 웃음을, 눈물을, 때로는 감동을 주는 대한민국 대표 예능 프로그램의 작가 5인을 만나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강심장>의 토크 배틀 형식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야심만만>이니 <서세원쇼>의 ‘토크박스’니, 연예인 여럿이 나와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는 토크 프로그램은 많았다. <강심장>을 기획하면서 이것을 경쟁 구도로 구성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형식보다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심장을 뒤흔들 강한 이야기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의 ‘강심장’인데, 제목이 강하다 보니 게스트들이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강한 이야기, 독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나 보다. 그런데 요즘 토크 프로그램에서는 웃긴 얘기만 가지고는 시청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얘기라도 진정성이 없거나 가식적이면 외면당한다.

강호동과 이승기의 조합은 어떻게 생각해냈나?
강호동은 워낙 이미지가 강하다. <무릎팍도사>에서도 민감한 질문을 자주 던지고 게스트들에게 집요하게 답변을 끌어내는 것을 보면 ‘강하다’는 이미지가 컸다. 그래서 부드러운 이미지의 파트너를 내세우고 싶었다. 타인을 배려하고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강호동에게 기가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승기는 <1박2일>을 통해 강호동과 호흡을 맞추었고, 강호동에게 눌리는 성격도 아니라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토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게스트에 따라 시청률의 등락이 큰 것이 약점일 것 같은데, 어떤가?
물론 이슈가 되는 게스트가 출연하면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빅 스타가 출연해야만 반드시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연예인이라도 새로운 모습, 의외의 모습을 보이면 시청자들이 좋아한다. 그래서 톱스타를 섭외하는 데에도 신경 쓰지만, 시청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인물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요즘 이슈가 될 수 있는 인물들 말이다.

요즘 섭외하고 싶은 스타가 있다면?
지난해에 작가상을 받을 때 소감으로 “현빈, 원빈, 고수 씨 나와주세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빈 씨는 군대에 가셨으니 잠깐 포기했고, 원빈 씨와 고수 씨가 나와야 하는데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나이 지긋한 왕년의 스타들이 출연해서 재미있는 얘기도 해주시고,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도 좋지만, 어린 친구들이 조잘거리는 토크쇼도 있어야 한다. <강심장>은 나이 드신 분들도 출연하지만, 게스트 대부분이 어린 친구들이다. 그런 면에서 차별성이 있다.

<강심장>은 다른 토크 프로그램에 비해 나이 어린 연예인을 다수 섭외하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강심장>이 추구하는 전략인가?
프로그램 초반에 빅뱅, 2NE1, 소녀시대, SS501 등 아이돌 스타가 다수 출연해서 주목을 받았고, 프로그램이 쉽게 자리 잡았다. 보고 싶은 스타들이 나와서 평소 듣지 못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 게다가 우리 프로그램은 토크쇼지만 무대가 넓어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게 가능하다. 그래서 토크 프로그램이지만 역동적인 게 특징이다. 그런데 요즘 활동하는 아이돌이 사실 그리 많지가 않다. 섭외에도 한계가 있다.

<무한도전>의 초기 멤버는 아닌데,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
<무한도전>은 내가 처음으로 ‘메인작가’ 타이틀을 달게 된 프로그램이다. 1년 반 전에 김태호 PD의 제안으로 <무한도전>에 합류했다. 예전 작가들이 많은 걸 이루었기 때문에 내가 <무한도전>의 메인 작가가 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잘할 수 있어’라고 무모하게 도전하기엔 너무 큰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나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조연출이 김태호 PD였다. 김태호 PD의 입봉작 ‘미스터 요리왕’이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했던 인연이 <무한도전>까지 이어졌다.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작가는 어디까지 개입하나?
아이템마다 다르다. 콩트를 할 때는 대사가 있는 대본을 쓰지만, 레슬링 같은 아이템에는 진행 대본을 준비한다. ‘오늘은 이런 촬영을 이런 순서로 진행할 거예요’ 하는 식이다.

<무한도전>은 쟁쟁한 멤버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힘이다. 하지만 그 멤버들로만 진행되니 새롭지 않다는 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시청자들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무한도전>의 장점은 매번 새로운 형식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매번 신선하고 재미있는 아이템을 제안하는 게 쉽진 않지만, 그게 장점이다. 이번 주 아이템이 불만족스러워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다음엔 이런 게 있어요’라고 예고편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을 다독일 수 있다. 갱생할 수 있는 기회가 매회 있다는 게 다행스러우면서도 매번 내 목을 조인다.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기획하기 힘들지 않나?
처음 <무한도전>을 맡게 되었을 때에는 ‘매주 아이템을 어떻게 생각해내?’가 가장 고민이었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템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템이 아니라, 멤버들의 캐릭터에서 나오는 아이템이란 의미다. 예능작가들에겐 촉이 중요하다. 무속인들이 느끼는 ‘신기’가 아니라, 사람을 관찰하고 장점을 잘 뽑아내는 게 예능 작가의 중요한 능력이다. 이것이 새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기초가 된다. 얼마 전 정준하 씨를 ‘정총무’로 변화시켰는데, 어느 날 갑자기 ‘준하 오빠를 총무로 만들어야겠어’라고 기획한 게 아니다. 녹화를 하다가 ‘아, 오빠가 계산 감각이 있으시네’라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아이템이 생겨난 것이다. 하하 씨와 박명수 씨가 친하게 지내면 ‘하명수’ 커플이 나오는 것도 작가들이 그런 흐름을 눈치 채고 있기 때문이다. ‘예능 작가는 촬영장에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작가는 현장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고,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출연자 7인을 보면서 그들의 새로운 기운과 흐름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캐릭터로 끌어내주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출연자들이 “1년 후에 봅시다. 그 말 지키고 있는지!”라고 얘기하면, 1년 후에 ‘진짜 잘 지켜졌나?’라고 기획해서 진행해보는 것이다. 출연자들의 다른 프로그램도 본다. 재석 오빠의 <놀러와>도 보고, 명수 오빠의 <백점만점>도 보면서 오빠들이 요즘 누구와 친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체크한다. 이런 식으로 해나가면 ‘아이템 바닥났다’ ‘무도, 더 이상 출구는 없나?’라는 논란은 없을 것이다.

멤버들도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인가?
멤버 모두 아이디어를 내는 데 적극적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방송 때 뿐 아니라 사적으로도 친하다. 강남에 연습실을 마련해서 녹화가 없는 주말에도 모이고, 그때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 강남 연습실에서 춤을 배우면, 우리는 ‘오빠들 춤춘다는데 그걸로 방송할까?’ 하기도 한다. 김태호 PD가 이들과 작가 사이의 매개가 된다.

<밤이면 밤마다(이하 밤밤)> 청문회 형식을 계속 고수할 계획인가?
토크쇼 형식의 청문회는 꽤 흥미롭다. 청문회라고 하면 같은 얘기도 좀 더 민감하게 보이고, 게스트도 좀 더 긴장한다. 궁금증을 더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요즘은 스타들이 자기 얘기를 너무 쉽게 털어놓는다. 그러니까 형식뿐일지라도 청문회라는 코드를 버리고 싶지 않다.

섭외할 때 ‘이 정도까지 호응이 좋을 줄은 몰랐는데?’라고 생각했던 게스트는 누구였나?
인기 있는 아이돌 스타를 섭외하면 시청률은 보장된다. 하지만 인기 스타가 출연해도 속 얘기를 털어놓지 않으면 반응은 그저 그렇다. 장동건이나와도 속 얘기를 안 하면 시청자들은 냉혹하게 돌아설 것이다. 그런데 A급은 아니어도 우리가 알 만한 스타가 나와 ‘인기가 없어서 먹고살기가 어려웠다’고 말하면 시청자들은 반응한다.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이 TV에 나와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출연진이 얼마나 진실된 이야기를 할지 어떻게 판단하나?
사전 인터뷰를 할 때 게스트의 태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토크쇼의 근간은 사전 인터뷰이다. 인터뷰 전 자료조사를 통해 게스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대충 가늠하고, 인터뷰를 통해서 출연자의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를 방송할지 결정한다.

최근 토크 프로그램은 감동적인 자기 고백 일색이다. 왜 그럴까?
<야심만만> 이전에는 대부분이 예의 바른 토크쇼였다. “남자친구 있으세요?” “없는데요”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야심만만>에서부터 스타들이 개인사를 솔직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경고를 많이 받았다. 너무 선정적인 이야기를 시킨다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스타들에게 개인사를 털어놓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야심만만>은 ‘만 명에게 물었습니다’가 주제였다. 만 명의 국민이 느끼는 감정이 크게 차이가 없을진대, 연예인만 전혀 다르게 생각할 것 같지 않았다. 연예인도 사랑하고, 이별하고, 스토킹도 하고, 술도 마신다. 누구나 저지를 것 같은 실수나 경험을 얘기하라는 거였다. “이별했을 때 눈물 난 적 없으세요?”라고 물었을 뿐이다. 그러자 자기 경험담을 줄줄 털어놓았다. 연예인도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었을 텐데, <야심만만>을 통해 고백한 거다. 이전에 어떤 MC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으니 말하지 못했던 것들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졌다. 그러니 다른 기획이 필요하다. 그래서 <밤밤> 같은 토크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명수, 탁재훈, 김제동, 정용화, 김대성, 유이 등 MC가 여섯 명이나 된다. 각각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물어보고 듣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탁재훈 씨와는 첫 작업인데, 이야기의 방향 혹은 분위기를 바꾸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내성적인 성격의 송창의 씨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 탁재훈 씨가 분위기를 바꿔주고 제대로 리드하지 않았다면 어색하고 힘들었을 거다. 김제동 씨는 잘 들어주고 되받아치는 능력이 탁월하고, 박명수 씨는 넘겨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