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이 별것인가요. 햇볕 드는 곳에 잠시 머물면 그게 피크닉 아니겠어요? 바람은 불고, 햇볕은 따사롭고 세상이 초록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피크닉의 명장면을 이야기할 텐데요, 피크닉 한번 즐기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심한 사람.



생에 첫 피크닉의 기억
아마 어느 누구도 자신의 첫 피크닉을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젊은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때는 너무 오래전 일이니까 말이다. 당신의 첫 외출은 유모차에 탔거나, 아니면 부모님의 가슴과 등에 매달리는 것으로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아이는 시야에 걸리는 모든 것이 신기해서 울다가도 울음을 그쳤을 것이고, 그것이 신기해서 엄마는 당신을 계속 밖으로 데리고 나갔을 것이다. 아버지가 일을 쉬는 주말이면 집 근처에 담요 한 장을 깔고 당신을 풀어놓곤 했을 텐데, 마치 거인국의 소인국처럼 무엇이든 너무 커서 놀라기도 했으리라 짐작된다. 누구나 사진첩에 그런 사진 한 장쯤은 가지고 있다. 우리의 피크닉이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늘 밖에 나가고 싶은 충동은 그런 먼 기억으로부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제 공식적인 피크닉이 시작된다. 처음 만나는 야외 소풍은 설레는 일이라서, 며칠 전부터 달력에 표시해놓고 잠을 못 이루곤 했다. 소풍에서 ‘바람 되기’ ‘나무 되기’ ‘바다 되기’ 같은 신체 표현 운동을 할 때면 창의력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가 금세 구분되었고, 수건돌리기를 할 때면 인기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가 나뉘었다. 약간의 서러움이나 의기양양함은 점심시간이 되면 모두 김밥과 함께 배 속으로 사라졌다. 도시락을 열고 들어 있는 김밥은 스무 명이면 스무명 모두 맛이 달랐다. 오이를 넣는다는 건 집안 식구들이 오이를 질색하지 않는다는 의미였고, 햄 대신 소고기를 볶아 넣으면 고기깨나 밝히는 집, 밥을 고슬하게 먹는 집, 밥을 질게 먹는 집이 다 있었다. 김밥 옆구리가 터져 있으면 집안일에 서툰 엄마거나 너무 젊은 엄마를 뒀을 가능성이 높았고, 야무진 몸매에 참깨까지 뿌렸다면 십중팔구는 언니, 오빠가 있었다. 김밥은 그래서 골고루 나눠 먹었다. 그게 소풍의 맛이었다.

밤이라서 안 된다니요
봄만큼 사람을 들뜨게 하는 계절은 없다. 사람이 바람 들게 만드는 유일한 계절이기도 하다. 목련과 벚꽃이 팝콘처럼 팡팡 터지기 시작하면 피크닉 시즌이 시작된다. 피크닉을 떠나고 싶은데 주말마다 다른 약속이 있고, 퇴근을 하면 이미 해가 진 다음이라고 해도 포기하긴 이르다. 피크닉은 밤낮을 가리지 않으니까. “어떻게 밤에 피크닉을 해?” 라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온다 리쿠의 책 <밤의 피크닉>을 보길. ‘피크닉’이라는 이미지에서 태양 대신 달을 넣은‘밤의 피크닉’이라는 제목은 여러 번 곱씹어도 매력적이다. 못생긴 체육복 입고 선글라스 낀 조교의 구령에 맞춰 앉았다 일어났다, PT체조, 오리걸음 100개를 해야 했던 우리의 수학여행 대신 소설 속의 고등학교에서는 ‘밤의 행보제’를 연다. 예민한 소년, 소녀들이 줄지어 걸으며 두근대는 심장과 예민한 공기를 나눈다. 전하지 못한 마음, 숨겨둔 비밀을 하나하나 벗기며 친한 친구들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서로의 손과 발과, 달빛과 손전등 불빛에만 의지해서 말이다. 그리고 다 함께 모여 도시락을 먹고 녹차를 나눠 마신다. 책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버려 마지막 보행제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아이와의 대화가 나온다. “ 모두 함께 밤에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말이야. 어째서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특별한 걸까.” 이 말 안에 밤의 피크닉의 정답이 들어 있는 것 같다. 그냥 무작정 나가기만 하면, 마력의 밤공기가 나머지는 다 해줄 것이다.

봄날의 음주 피크닉
조선 시대 양반과 한량들의 피크닉은 수묵화로 옮겨져 지금까지 남아 있다. ‘풍류를 읊는다’는 말이 있듯 자연과 벗삼는 건 조선시대 양반의 중요한 사생활이었다. 여기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피크닉에 능숙해질수록 술과 피크닉이 만나는 일은 더 잦아진다. 와인에 대한 가장 매력적인 영화 중 하나인 <사이드웨이>는 나파 밸리의 들판에서 벌어지는 와인 피크닉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두 남자의 버디 무비는 두 여자를 만나면서 급물살을 타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한 피크닉 장면은 와인 참 맛있겠다고 입맛 다시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피크닉에서 적당한 음주를 곁들이는 건 어른의 특권이다. 로맨틱한 피크닉에는 샴페인이나 와인이 어울린다. 뵈브클리코, 멈, 모엣&샹동 등 샴페인 브랜드가 앞다투어 275ml의 작은 보틀을 판매하는 것도 야외 피크닉을 겨냥한 것이다. 친구들과 작정하고 간 피크닉에는 진토닉이 잘 어울린다. 봄베이 사파이어 한 병과 레몬 조각, 탄산수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피크닉이라면 캔 맥주면 충분하다. 동료들과 즉흥적으로 갔던 한강의 기억도 떠오른다. 각자 취향껏 캔커피와 맥주 등을 사서는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그냥 앉아 있었다. 가을의 마지막이 물든 한강은 참 아름다웠다. 뭘 잘못 먹었는지, 한 꼬마가 우리 돗자리 주변에서 토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옆에서 등을 두드려주는 부모의 안쓰러움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나 조용히 돗자리를 접었다.

야구장의 몇몇 풍경
여자들이 남자 친구와의 로맨틱한 피크닉을 상상하는 동안, 남자들은 다른 상상을 한다. 많은 남자가 가지고 있는 환상은 ‘야구장 피크닉’이다. 치열하고 뜨거운 축구장에 비해서는 야구장이 훨씬 여유가 있는 건 사실이다. 축구를 전쟁에 비유한다면, 야구는 인생과 같다. 전반 후반 두 판 승부가 아닌 9회라는 긴 시간도 그렇고, 사람이 집을 떠나 다시 집(Home)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인생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남의 것을 훔치고(도루), 홈런을 치면 금의환향할 수 있다. 하지만 객사할 가능성도 있다. 야구장에서 인생이 몇 번씩 되풀이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여자 친구가 싸온 도시락을 먹는 것. 그것이 남자들의 최고의 로망이라고 한다.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는 야구광 남자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을 알려준다. 콜린 퍼스가 주연을 맡아 영국에서 영화화 되기도 했던 닉 혼비의 <피버피치>를 야구로 각색한 미국 영화가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다. 원작에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광팬인 주인공은 영화 속에서 보스턴 레드삭스팀으로 소속을 바꿨다.

야구장의 피크닉 메뉴는 대체로 치킨과 피자다. 하지만 이미 매점 음식을 질리도록 먹은 후라면 다른 것을 찾게 된다. 직접 싼다면 김밥보다 유부초밥을 싸는 편이 실력이 덜 들통난다. 초밥용 밥을 만들 때 오이나 양파, 소고기 볶은 것을 섞으면 훨씬 그럴듯하다. 사들고 오는 메뉴로는 족발이 제법 눈에 띄는데 주의해야 할 것은 절대 족발을 무릎에 올려두지 말 것. 병살이라도 잡는 날엔 벌떡 일어나서 족발을 다 쏟는다.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식어도 맛있는 충무김밥이나 이탤리언 파니니도 괜찮은 선택이다. 야구장에 갈 때 시간이 남으면 근처 코엑스에 들러 뉴욕프라이즈의 칠리 프라이를 사 간다. 맥주는 물론 콜라 안주로도 최고다. 물론 야구장에서도 돗자리를 깔 수는 있다. 그러나 이곳은 세 가지 블랙홀이 존재한다. 하나는 돗자리에 앉으면 앞 좌석에 가려 야구가 잘 안 보인다는 것이고, 하나는 인근 돗자리 이웃이 팩 소주를 마시는 아저씨들이라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풀리지 않는 경기에 화가 난 남자들이 등 뒤에서 줄담배를 뻑뻑 피워댄다는 것이다(분명히 금연 구역인데도).

피크닉의 쉬운 시간들
음식에 도통 자신이 없다면 레스토랑의 도시락이나 테이크아웃 서비스를 이용하면 간단하다. 여기에 시원한 주스나 차, 함께 볼 수 있는 만화책 정도만 준비해도 즐거운 피크닉이 될 테니까. 좀더 쉽고 자연스럽게 피크닉을 즐기고 싶다면 봄이면 내놓는 호텔 피크닉패키지를 이용해보길. 신라호텔과 W서울, 그랜드 하얏트 서울 등 산을 끼고 있는 호텔은 모두 피크닉 패키지에 일가견이 있는 곳이다. 특히 신라 호텔에는 단골 투숙객이 아니면 잘 모르는 넓은 공원이 숨어 있다. 총 1만여 평에 달하는 공원에 오래된 수목과 국내외 유명 작가가 만든 21점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다. 남산이 그대로 보이는 이곳은 프라이빗한 피크닉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사적 10호인 서울 성곽길이 정비되면서 최근 공원에서 남산까지 산책길이 이어졌다. ‘피크닉 앳더 신라’는 호텔 숙박과 함께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패키지이다. 종이로 만든 피크닉 박스를 열면 페이스트리 부티크에서 만든 2인분의 가든 샌드위치, 머핀, 푸딩, 쿠키, 브라우니, 수제 너트 초콜릿, 사과주스, 생수 등 탐나는 피크닉 메뉴가 넉넉하게 담겨 있다. 5월 4일부터 9일까지는 ‘와이너리 투어’가 열린다. 조각공원 곳곳에 마련된 다양한 와인 부스를 돌며 무제한 와인 시음을 할 수 있는 행사인데, 면면이 상당히 화려하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중 유일한 여성 셰프 ‘안 소피 픽(Anne Sophie Pic)’과 샤푸티에(M. Chapoutier)’의 합작 와인부터 국내 첫 출시하는 ‘덕혼 디코이(Duckhorn Decoy)’ 등이 나온다. 촌스러운 돗자리 대신 빨간 격자무늬 깔개도 준비해놨다. 뭘 깔고 앉느냐는 피크닉의 비주얼에서 중요한 문제다. 왜 우리나라에서 하는 피크닉은 외국에서처럼 멋지지 않은가를 고민한다면 답은 은박으로 코팅된 돗자리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하이드파크나 볼로뉴 숲에서 그들이 폼나게 깔고 앉은 천도 별게 아니라 낡은 이불 홑청이나 베드 커버다. 만약 외국에서 피크닉을 떠나고 싶은데 아무것도 없다면, 호텔에 있는 이불 홑청을 벗겨 가져갔다가 욕조에 던져둬도 상관없다.

일상을 바꾸는 마법의 돗자리
피크닉은 친구와도 갈 수 있고, 동료들과도 갈 수 있다. 연인과 단둘이 가는 것이 가장 쉽지 않은 일이다. 공원이나 들, 계곡이라는 열린 장소에서 천 하나 깔고, 우리만의 영역을 표시하는 건 공공의 성격을 띠는 동시에 지극히 배타적이다. 마네의 걸작이자 인상파의 부흥을 알린 유화 작품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공공성과 배타성이 충돌했을 때의 파격과 도발을 동시에 보여준다. 두 남자 두 여자가 강이 가로지르는 숲으로 피크닉을 떠난다. 방금 점심 식사를 마친 듯 과일과 빵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고, 한 여자는 목욕을 하고, 목욕을 마친 듯한 한 여자는 나체로 그림을 보는 우리와 눈을 마주하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 전시되었을 때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흥분한 관객들이 지팡이와 우산으로 그림을 쿡쿡 찔러대서 다른 그림보다 훨씬 높은 곳에 매달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이 그림이 일상에서 벗어난 피크닉을 보여준다면,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의 피크닉은 일상이 피크닉으로 바뀌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랜드 피아노 위의 정사 신이 아니라, 쇼핑과 오페라, 에스카르고가 날아다니는 장면도 아니고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함께 즉흥적으로 피크닉을 즐기는 장면이었다. 슈트 차림의 리처드 기어를 잔디밭 위로 끌고 들어가 억지로 앉히고, 그의 휴대폰을 빼앗아 던지고 신발마저 벗겨버린다. 다음 장면에서 그들은 서류가방을 베개 삼고 누워서 같은 책을 읽고 있다. 그 흔한 샌드위치 하나 등장하지 않았지만 완벽한 피크닉이었다. 이렇게 피크닉은 피크닉을 하겠다는 단순한 의지만 있으면 충분하다. 샹그리아 한 잔이 있는 루 리드(Rue Leed)의 ‘Perfect Day’, 바람이 느껴지는 어떤 날의‘ 그런 날에는’이 우연하게 귓가를 스치는 날이면, 잠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떠올린다. 지금이라도 밖으로 나가면, 참 괜찮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