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발레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 적도 드물 것이다. 바로 영화 <블랙스완>과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발레리노’ 때문이다. 사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에 대한 동경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발레리나의 가녀린 팔과 긴 목, 발레리노의 섬세한 근육은 대중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니까. 올해는 국내와 해외 유명 발레단의 공연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발레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으로 이 좋은 공연을 놓치는 건 아쉽다. 그래서 유니버설 발레단의 문훈숙 단장에게서 발레 감상법을 들었다.

같은 공연 장르인데도 뮤지컬과 연극은 처음 보는 관객도 쉽게 적응하는 데 비해, 발레는 초보자에게 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발레가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대사가 없기 때문이에요. 뮤지컬은 가사를 통해 스토리가 전개되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비해, 발레는 몸짓이라는 무언의 언어로 표현해요. 발레의 춤 동작은 크게 순수 춤과 판토마임으로 나눠요. 발레의 판토마임은 주로 손동작으로 표현하는데, 동작마다 의미가 담겨 있어서 미리 알고 보면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일종의 수화 같은 거네요. 기본적인 몇 가지만 알려주세요.
무용수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면‘나’, 상대방의 가슴을 향하면‘너’라는 의미예요. 두 손을 심장 밑에 살포시 포개면‘ 사랑합니다’는 뜻이고, 오른손으로 왼손 넷째 손가락을 가리키면‘ 청혼’을 의미하죠.”

발레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공연을 보기 전에 작품의 배경이나 줄거리에 대해 알고 가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어요. 공연 시작 전에 프로그램 북을 사서 읽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정해진 감상법은 없지만,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한 접근법은 있어요. 발레는 몸의 언어예요. 상체가 형용사라면하체는 동사예요. 모든 감정 표현은 상체와 팔의 움직임에서 나오고, 하체는 모든 동작의 토대를 이루죠.춤 동작을 볼 때는 상체를 먼저 보고,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 하체를 보고, 그 다음에는 전체적인 아름다운 선을 보고, 마지막으로 각각의 무용수의 연기력과 표현력을 감상하면 돼요. 마치 아름다운 조각품을 감상하듯이. 발레는 종합예술로, 의상, 무대, 음향, 조명, 연출, 안무 등 모든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만 수준 높은 공연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각각의 요소가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 조화를 이루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발레 공연을 처음 접하는 관객은 어떤 작품을 보는 게 좋을까요?
고전이라 일컫는 작품은 한 번씩은 두루 보는 게 좋아요. 발레를 보는 것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아요. 만나는 횟수가 늘수록 상대의 매력이 느껴지고 더 가까워지는 것처럼 발레도 한 번 봤을 때와 여러 번 봤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발레를 처음 보는 거라면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인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도 괜찮고, <돈키호테>, <지젤>도 좋아요.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은 멜로디가 친숙하고, 음악과 춤이 한데 어우러져서 음악을 들으면 이야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어요‘. 발레는 심각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진 분께는 <돈키호테>를 추천하고 싶어요. 경쾌하고 발랄한 희극 발레인 데다, 스페인이 배경이라 정열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요. 발레에 맞게 각색한 스페인 민속춤과 고전 클래식 발레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특히 상체 움직임을 보면 스페인 민속춤의 손동작을 발견할 수 있어요. 무용수들이 기타를 연주하고, 캐스터네츠와 탬버린을 치면서 흥을 돋우기도 하죠. 극중에서 돈키호테가 꿈을 꾸는 장면이 있는데, 아름다운 요정들이 등장하는 이 장면은 고전 클래식 발레의 진수를 맛볼 수 있어요. 인도를 배경으로 화려한 무대와 의상이 돋보이는 <라 바야데르>도 괜찮아요.

요즘 해외 유명 현대 무용단의 내한 공연이 자주 열려요. 고전 발레와 현대 발레의 감상법이 다른가요?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발레를 보고 싶다면 현대 발레를 보세요. ‘인간의 몸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 많아요. 현대 발레는 대부분 줄거리가 없고 춤과 음악을 중심으로 흘러가요. 춤은 음악을 시각화하는 작업이에요. 들리는 음악을 눈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춤이죠. 때문에 현대 발레는 춤과 음악의 조화가 어떠한지, 음악을 몸으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감상하면서 보는 것이 좋아요.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감동을 느끼는 건 뛰어난 기교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악성이 뛰어나기 때문이에요. 무용수 자체가 음악이 되는 거죠.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발레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그동안은 고전 발레 위주로 공연해왔어요. 요즘은 국내 무용수들의 실력이 뛰어나 현대발레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어 해외 유명 안무가가 직접 참여해 무대에 올리는 공연도 많아지고 있어요. 6월에도 스위스 바젤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허영순 무용수의 <디스 이즈 유어 라이프>와 현대 발레의거장 이리 킬리언의 대표작인 <쁘띠트 모르>, <세츠 탄츠> 공연이 예정돼 있어요. 발레를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친구를 사귀듯이 편안하게 다가가보세요. 많은 작품을 볼수록 발레의 매력에 빠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