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의 아티스트가 그들 각자의 ‘그린’을 포스터 한 장에 담았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봄 거리에 그들의 생각을 펼쳐놓았다.




김원선


<엘리펀트> 아트디렉터
‘Green’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보편적이고 익숙한 명사다. 일차적인 뜻은 초록색. 하지만 친환경을 의미하는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김원선은 이 단어에 좀 더 접근해보기로 했다. 거창한 말로 빙빙 둘러 어렵게 표현하지 않고, 가장 기본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묻고, 되새겼다. ‘Green’의 스펠링을 이리저리 배열하고, 색만 입혔다. 참 간결한 접근 방법이다.




오기사


건축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초록색은 친환경의 상징이다. 아니다. 초록색은 친환경의 상징처럼 여겨질 뿐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초록색은 꽃잎과 나무, 숲을 닮은 ‘척’하는 모습이지 진짜 자연의 색이 아니니까. 벽에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는 것만으로는 그곳이 자연친화적인 공간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초록의 선한 이미지에 속아서 진짜 초록의 의미를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기사는 (인위적인) 초록색은 죄악이라 말한다.




275c


일러스트레이터
동물과 식물은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다. 그래서 275c는 그 동물과 식물의 대표적인 아이콘을 딱 하나씩만 꼽아 이번 작업에 활용했다. 식물의 아이콘은 길쭉한 나뭇잎, 동물의 아이콘은 사슴. 나뭇잎이 흐드러져 있는 바탕 이미지에 사슴의 뿔을 형상화한 그래픽 작업물을 배치했다. 이것마저도 나무 소재로 표현해서 나뭇잎 사이에 자연스레 어울린다. 275c의 그린은 그냥 그대로 자연의 이미지다.




김혜진


<꽃피는 봄이오면> 아트디렉터
이런저런 사족은 다 덜어내고, 최소한의 것으로 친환경을 표현했다. ‘Green’이라는 단 한 단어를 꾸밈없이 쓰고, 이 단어에 자연의 색을 녹였다. 그리고 글자 위에 나뭇잎을 상징화한 간단한 포인트만 줬다. 멀리서 보면 봄에 막 피어난 나뭇잎 몇 장이 하얀 도화지 위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쓸데없는 것을 과감하게 비우는 것도‘ 그린’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공민선


<오픈 비주얼 디자인 스튜디오> 아트디렉터
사람, 꽃, 나무, 새, 물고기, 태양, 그리고 물.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함께 있어야 더 의미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공민선의 포스터에서는 동물보호구역 같은 표지판과 숲을 배경으로 사람과 나무, 새, 물고기, 해와 달, 물이 사이 좋게 나란히 붙어 있다. 사람이라고 특별할 건 없다. 물고기나 새, 나무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존재일 뿐이니까.




조태상


<모임 별> 디렉터
조태상은 그저 보기에 예쁜 포스터가 아니라 실질적인 그린의 의미가 담긴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결코 인간들만의 것이 아닌 땅에서 철새조차 쫓아내버리는 인간들의 욕심에 경고를 보내기로 했다. 바로 그 포스터에 쓰인 글과 사진은 그의 아버지인 조류 사진작가 조승호의 저서, <날개 달린 영혼>에 수록된 것. 사진으로 미처 다 담지 못한 글은 여기에 그대로 덧붙인다.

수확을 앞둔 천수만 간척지 논둑에 장대 높이 죽은 왜가리가 매달려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털을 보는 이들의 마음이 섬뜩하다. 땀 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새에게 빼앗기는 농부의 고민이 얼마나 컸을지 실감 나게 한다. 허수아비 정도로는 새를 쫓기가 정말 힘들었나 보다. 그러나 정작 왜가리는 곡식을 먹지 않고 물에서 고기를 잡아 먹고 산다. 오리나 기러기 종류가 볍씨를 먹으나 그것도 쓰러져서 누워 있는 벼나 추수 후 떨어진 곡식만을 주워 먹는다. 아마도 다른 새가 농부에게 왜가리가 곡식을 먹었다고 모함을 했을지 모른다. 자기가 먹고 왜가리가 먹었다고 뒤집어씌웠거나 아니면 평소에 쌓인 감정으로 왜가리를 제거하고 싶은 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죄 없는 왜가리가 장대에 매달려 죽어 있는 이유가 혹시 세상 만물을 어여삐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회개 않는 죄 많은 새와 사람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심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2000년 전 유태인의 각박한 마음이 오늘날 우리 농민의 마음과 비슷했을 것 같다. 새가 선지자인 줄을 못 알아보고 그들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우리는 결국 유태인처럼 자신의 땅을 잃어버리고 정처 없이 지상을 떠도는 저주를 받을지도 모른다.
눈 덮인 천수만의 들판에서 하늘을 뒤덮으며 나는 새의 날갯짓 소리를 듣거나 해미천 상류의 오리를 쳐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떨릴 정도의 아름다움에 이곳은 결코 사람만이 살라고 만들어진 땅이 아니란 느낌이 든다. 새를 쫓아낸 천수만 사람들은 결국 돈 몇 푼 받아 들고 타지로 떠나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타지 사람을 위해 노예처럼 일할 것이다.
장대에 매달린 왜가리는 동아시아의 가장 거대한 철새 도래 지역이며 번식 지역이 인간의 무지와 욕심 때문에 사라지는 것을 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경고이자 마지막 구원의 계시다.
사진·글| 조승호(조류 사진작가, 가톨릭의과대학 교수)